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게 1997년 12월 30일이었으니 국제인권기구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가 지정한 “사실상 사형 폐지국” - 형법상으로 사형제도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집행을 하지 않는 인권국가에게 주어지는 호칭. 마지막으로 사형을 집행하고 10년이 지난 후에 지정한다고 한다 - 지위를 벌써 5년 째 이어가고 있다. 사형제 존폐(存廢) 논란들이야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수백 건이 나오니 굳이 여기서 찬반론을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개인적 입장을 밝혀두자면 반대하는 입장이다. 사형제도가 흉악범들에게 경종(警鐘)의 의미가 있다지만 집행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의미 또한 퇴색해질 뿐 더러 유명무실한 법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 들기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판사가 공정하고 신중하게 재판한다 하더라도 오판(誤判)의 가능성도 있는데, 1973년 이후 미국에서 107명의 사형수가 후에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어 석방되었다고 하니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 는 없을 것 같다. 일본의 유명 문학상인 “에도가와 란포상” 제47회(2001년) 수상작이라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원제 13階段 /황금가지/2005년 12월)>은 바로 이런 “오판”으로 인한 비극과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성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제목인 “13계단”은 일본에서 사형수의 목에 밧줄을 메는 교수형 대까지 걸어 올라가게 되는 계단수를 말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떨까 검색해봤지만 딱히 자료가 없다. 다만 우리나라 법률이나 법집행 관련 사항들이 일본에서 유래된 것이 많으니 우리 나라 교수형대 높이도 13계단 쯤 되는 것으로 미뤄 짐작해볼 만은 할 것 같다.

 

2년 전(1999년) 당시 나이 25세의 “미카미 준이치”는 술집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싸움이 일어나 다투다가 상대방을 밀쳤는데 상대방이 그만 머리를 땅에 세게 부딪혀 죽어버리는 바람에 상해 치사로 2년을 선고받아 복역하고는 석방 1개월 전에 가석방으로 출감한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보니 거액의 합의금 때문에 집을 팔고 공장을 줄였음에도 아직 다 갚지도 못했고, 동생 또한 그런 집이 싫어 뛰쳐나가고야 만 집안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다. 죄책감에 영 고개를 들 수 없는 미카미를 가석방을 도왔던 교도소 간수장인 “난고 쇼지”가 찾아온다. 10년 전 자신의 보호 감찰관이었던 노부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수로 복역 중인, 정권이 바뀌면서 사행 집행이 거의 확실시 된, 그것도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사카키바라 료”의 무죄를 입증하는 의뢰에 같이 동참하자는 것이다. 미카미는 비교적 큰 액수의 의뢰인데가 살인(殺人)을 저질렀다는 묘한 동질감에 그 의뢰를 받아들이고 10년 전 사건이 벌어진 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런데 이미 10년이나 지난 오래된 사건인데다가, 살인이 벌어졌을 당시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카키바라가 그나마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당시 “계단”에 올랐다는 것 밖에 없는 참 난감하기 짝이 없는 그런 사건이었다. 10년 전 경찰들이 그렇게 수색했는데도 찾지 못한 살인 사건의 흉기(凶器)와 피해자의 통장을 찾기 위해 다시 산을 뒤지고, 당시 주변 사람들을 탐문 수사해보지만 사건의 진행은 영 지지부진하고 사형 집행일은 갈수록 다가오게 된다. 그러던 중 10년 전 사카키바라와 함께 보호 감찰 대상자가 한 명 더 있었다는 사실과 사카키바라의 유일한 기억인 “계단”이 있는 건물이 몇 년 전 폐사된 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수사는 진실을 향해 한걸음 더 내딛게 된다. 여기에 미카미의 살인에 숨겨진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결말을 향해 더욱 숨가쁘게 전개된다.

 

10년 전에 벌어진 살인사건이라니 이제 와서 다시 조사한다고 해서 해결이 영 불가능할 것 같은 사건 - 40년 전 실종 사건을 소재로 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에 비한다면 양반이긴 하지만 - 을 풀어가는 과정이 촘촘하고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이 책은 사형 집행일이 갈수록 다가오는 데도 별다른 실마리를 발견하지 못해 애타는 두 주인공의 심리에 절로 공감하게 되어 긴장감과 불안감이 점점 고조되고, 실낱같은 단서에서 사건의 진실에 대한 단초를 발견하고는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부터는 극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다다라서 도대체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해서 자꾸 결말 부분을 펼쳐 보게 만드는 충동을 참기가 꽤나 어려워진다. 마침내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반전(反轉)은 여느 추리소설 못지 않게 꽤나 강력했고, 사건이 모두 해결될 즈음 밝혀지는 또 하나의 진실 또한 꽤나 인상적인 그런 책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몰입감과 스릴 만점의 멋진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오래된 사건의 진실을 하나하나 밝혀가는 과정도 참 재미있었지만 이 책의 압권은 사형 집행을 앞둔 사형수들의 공포와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의 고뇌와 심리적 죄책감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형 집행 당일날 아침 교도소 복도에 울려 퍼지는 교도관의 발자국 소리가 자신의 방에 멈춰 섰을 때 발작을 일으키는 사형수들, 온 몸으로 형 집행을 거부하는 사형수들을 13계단이나 되는 높은 위치의 교수대에 끌고 가 그들의 목에 올가미를 씌우고 형 집행 버튼을 누르는 - 누가 집행 버튼을 눌렀는지 모르게 하기 위해 교도관 3명이서 각각 하나의 버튼을 누르게 한다고 한다 - 과정을 머릿 속에서 그대로 그려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무리 법의 집행이라고 하지만 결국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평생을 시달리는 주인공 “난고”의 고백을 통해서 작가는 사형제도라고 하는 것이 사형수 뿐만 아니라 그 집행자인 교도관들, 그리고 관련한 모두에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살인자가 죄를 뉘우치면 형량을 줄여 주는 ‘개전의 정’이 감형(減刑)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나 피해자의 가족이 범인을 용서해도 형 집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법무부 장관의 사형 결정이 법의 정의 실현이라는 원론적인 결정이 아니라 개각(改閣) 등의 정치적 상황이나 여론 몰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 천왕 사망 및 새 천왕의 즉위(卽位) 등과 국가적 기념일에 종종 있는 사면 제도에서 사면 대상이 되기 위해 상고를 하지 않고 형을 조기 확정 - 미확정되면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사형수들이 제외되면서 결국 사형 또한 조기 집행되고야 마는 모순들을 하나 하나 꼬집는다. 이처럼 법의 모순과 사형 집행의 과정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웃 일본과 유사할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사형 제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 추리소설 본연의 긴장감과 재미를  제대로 맛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 읽고 나서도 법과 사형제도라는 곱씹어 볼만한 생각꺼리와 여운을 남기는 점으로 볼 때, 책 말미에 실려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평(評)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닌 완성도 높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러 이웃들의 추천에도 미루다 미루다가 이제야 와서 읽었는데, 좀 더 일찍 만나볼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데뷔작에서 이렇게 놀라운 완성도와 성취를 보여주다니 “다카노 카즈아키”, 이후 작품들에서는 얼마나 대단한 성취를 보여줄 지 절로 기대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다른 작품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