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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스트 ㅣ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줄리 크로스 지음, 이은선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소설이나 영화에서 묘사된 “시간여행(Time Travel)"의 방법은 대충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법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타임머신(Time Machine)"을 이용하는 방법인데 통계 자료는 없지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방법일 것이다. 두 번째는 태풍이나 낙뢰, 지진 등 천재지변(天災地變)이나 핵폭발 등 때문에 생긴 시공간의 균열을 통해 시간 이동하는 방법인데, 미 해군의 항공모함이 해상훈련 중에 자기 폭풍에 휘말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시작되기 직전의 시간대로 간다는 내용의 영화인 <파이널 카운트다운(The Final Countdown, 1980)이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대체역사소설”들에서도 꽤나 애용하는 방법이다. 세 번째는 유전자 변이나 또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능력, 즉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일종의 초능력(超能力)적인 설정인데 미드 <히어로즈(Heroes, 2010)>의 “히로 나카무라”나 “오드리 니페데거”의 소설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주인공 “헨리”가 그 대표적인 예로 앞서 말한 두가지 방법보다는 그 빈도수가 작은 희귀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아예 과거 인물로 환생(環生)하는 방법도 있는데 엄밀한 의미로는 시간 여행이라고 볼 수 없어 여기서는 제외하기로 하자 -. 이번에 읽은 “줄리 크로스”의 <템페스트(원제 Tempest/폴라북스/2012년 2월)는 타고난 시간여행 능력을 이용해 시공간을 이동(Jump)하고 있으니 바로 세 번째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희귀한 방법이라고는 하지만 “시간 여행”이야 워낙 흔한 소재이고 최근 시간여행을 다룬 소설을 읽었던 터라 별 다른 게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흥미로운 설정과 이야기 전개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게 만드는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시간여행 능력을 타고난 19세 청년 “잭슨 마이어”는 자신보다 아이큐가 엄청나게 높고 조만간 MIT에 입학할, 말 그대로 “천재” 친구인 “애덤 실버먼”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고 시간 여행 실험을 진행한다. 그렇다고 잭슨의 능력이 과거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기껏해야 몇 시간 정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정도에 불과하며, 과거로 간다 해서 역사를 바꿀 수 없는 그리 대단한 능력은 아니지만 둘은 시간 여행 기록을 작성하면서 테스트를 진행한다. 그러던 어느날, 기숙사에서 연인인 “홀리”와 달콤한 사랑을 나눈 다음날 아침,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들이닥친다. 괴한들은 잭슨의 아버지 이름을 대면서 그의 아들이냐고 묻고는 둘에게 총을 쏘고 그 순간 잭슨은 2년 전 과거로 강제로 이동(jump)하게 된다. 잭슨은 2년 후 현실 세계로 돌아가려 수차례 시도를 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시간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갖혀 버리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스페인에 유학 중이던 과거의 자신은 그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2년 후 미래의 19세 잭슨이 2년 전 과거의 17세 잭슨을 “대체(代替)” 한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잭슨은 아버지께 공부가 싫어서 다시 돌아왔다고 둘러대고는 2년 전 시간대를 살아가게 된다. 잭슨은 과거의 애덤을 만나 시간 여행 기록을 보여주며 다시 한번 그의 협조를 받게 되고, 연인이었던 홀리도 다시 만나 사랑을 시작하면서 미래로 돌아가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계속한다. 그러던 중 제약 회사 사장인 줄 만 알았던 아버지가 자신의 친아버지가 아닐 뿐더러, CIA 비밀 조직원임을 알게 되고는 혼란스러워 하는 잭슨 앞에 2년 후 미래에 자신을 공격했던 괴한들이 나타난다. 시간 여행자가 자신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잭슨의 아버지는 잭슨과 같은 시간여행자들, 즉 “시간의 적(EOT; Enemy of Time)"과 맞서 싸우는 CIA 비밀 조직 “템페스트”의 팀장으로 역시 시간 여행자 - 이 책에서는 시간여행이 템퍼스 유전자라고 하는 특정 증상 내지는 능력을 유발하는 열성 유전자 때문이라고 설정하고 있다 - 였던 잭슨의 어머니가 낳은 잭슨과 그의 쌍둥이 여동생을 키워왔음이 밝혀지게 된다. 잭슨은 과연 2년 후 현재로 다시 귀환할 수 있을까? EOT와 CIA, 과연 어디가 선(善)이고 악(惡)일까? CIA의 비밀 프로젝트 정체와 EOT의 음모가 밝혀지면서 결말로 갈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이 책에서의 시간 여행에 대한 설정이 꽤나 독특하고 색다른데, 책에서는 시간여행을 과거로 이동하지만 현실의 역사를 바꿀 수 없는 “하프 점프(Half-Jump)""와 과거의 시간을 완전히 대체하여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잭슨이 2 년 전 과거로 튕겨간 것과 같은 “풀 점프(Full-Jump)"로 구분한다. 하프 점프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서 사건을 일으키고, 과거의 인물들을 만난다고 해도 현재나 미래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즉, 저 유명한 “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 시간 역설)”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 물론 또 다른 우주, 즉 “평행우주(平行宇宙)”에서는 변동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시간대에서는 변화가 없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풀 점프의 경우에는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완전히 대체해버리는, 즉 동일한 시간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행동이 현재와 미래의 역사들을 바꿔 버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시간 여행 능력이 열성 유전자에 의해 생겨나고, 잭슨 혼자만이 아니라 수 백 년 전부터 꾸준히 존재해온 그런 자들이니 그들에 의해서 풀 점프가 빈번히 일어난다면 역사 자체가 바뀌어 버리는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 시간여행자들을 제거하는 조직이 바로 잭슨의 아버지가 몸담고 있는 CIA 비밀 조직 “템페스트”로 설정하고 있다. 영화 <점퍼(Jumper, 2008)>에서 순간 이동 능력자들과 대립했던 비밀 조직 “팔라딘”이 연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여행자(EOT) 들도 과거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위험 - 궁극적으로는 시간의 허물어지는 지구 종말적 상황까지 야기할 수 있다 - 한 지를 잘 알고 있고, 비록 적이지만 템페스트의 시간 변동을 막는 노력만큼은 존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들을 “악(惡)”이라고 규정할 수 는 없을 것 같다. 특히 결말 부분에서 잭슨이 본 서로 상반된 미래 모습에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3부작으로 기획된 책이라니 2, 3부에서 본격적으로 그 비밀이 드러날 것으로 보여 자연스럽게 후속작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런 설정 외에도 시간 여행을 통해서 일찍 세상을 떠난 쌍둥이 여동생과 재회하는 장면들과 2년 전 과거 시간에서 연인 “홀리”를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 - 실제 시간에서는 홀리에게 다른 연인이 있었고, 그와 이별한 후에야 잭슨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잭슨은 홀리가 다른 남자와 사랑하는 과거를 아예 없애 버린다 - 들도 꽤나 재미있고 인상적이다. 이미 2년 후 현실에서는 잠자리를 같이 할 정도로 깊은 관계였던 둘이 2년 전 과거에서는 아직은 미성년자들이다 보니 저절로 스킨십이 발생할 그런 상황이 되자 잭슨이 아버지께 방해(?)를 부탁하는 장면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유머스럽다. 그러나 마지막 결말에서 자신 때문에 위험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연인 홀리를 위해 잭슨이 하게 되는 “선택”의 장면에서는 안타까움을 넘어 애잔함마저 들게 한다. 앞으로 밝혀질 비밀들도 궁금하지만 잭슨과 홀리의 사랑은 어떻게 될지 또한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 판타지 소설로서의 재미와 로맨스 소설로서의 감동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 대부분의 판타지 로맨스 소설들이 판타지는 배경일 뿐 로맨스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 그동안 판타지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지 않았었다 - 없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판타지 로맨스” 소설 특유의 재미와 감동을 제대로 살린 멋진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 <트와일라잇> 제작 사단에 의해 영화화 예정이라니 영화에서는 시간 여행과 로맨스가 어떻게 그려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독자들은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다음 편을 볼 수 있는 미래로 “점프”하고 싶을 것”이라는 미국의 전문 서평지 커커스 리뷰 (Kirkus Review)처럼 영화든, 후속편이든 빠른 시일 내에 만나 보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