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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ㅣ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K-1, 프라이드, UFC 등 이종격투기(異種格鬪技) 시합들을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다. 중국 쿵푸 영화나 프로레슬링(WWE) 경기와 같은 화려하고 현란한 “가짜” 액션에 길들여진 나머지 바닥에 서로 엉겨 붙거나 또는 가만히 서서 허벅지나 종아리에 발길질을 해대는 이종격투기식 “실제” 액션들이 싱겁게만 느껴지는 탓 - 진짜를 시시하게 느끼고 가짜에 환호하는 것을 보면 여기에도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도 있겠지만 천성적으로 피를 토하고 살갗이 찢어지며 뼈가 부러지는 폭력 장면에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심찮게 불거지는 폭력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종격투기에 대한 열기가 갈수록 높아지는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분석하는 여러 기사들이나 글들이 있지만 세련됨과 인위성을 강요받는 것에 대한 반발 작용으로 날것, 즉 꾸미지 않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라는 분석과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원초적 폭력성을 현실 속에서 아니라 링 위라는 승인된 공간에서 승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장 큰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런 “합법적인” 폭력에 열광하는 것은 비단 요즈음 경향만은 아닌 것 같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 대회에 레슬링과 복싱을 합친 것 같은 격렬한 격투기인 “판크라티온(Pancration)"이 큰 인기를 끌었고, 고대 로마제국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진 검투사(劍鬪士, Gladiator)들의 시합은 당시 로마 귀족들과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경기였다고 하니 말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지금은 그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한때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복싱(Boxing)", 그리고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스포츠로 평가받고 있는 프로레슬링, 그리고 앞서 언급한 이종격투기에까지 그 전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어떨까? 인간의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열광이 어느날 갑자기 사그라지지 않는 한 이런 전통은 계속될 것이며 첨단 하이테크 기술과 결합해 좀더 자극적이고 더 잔인해질 것이라는 예상을 쉽게 해볼 수 있다. 이런 미래의 “검투사”들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신체 조직이 뛰어난 슈퍼맨과 죄수들이 생사의 격투를 벌이는 TV 프로그램을 소재로 한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의 <런닝맨(The Running Man, 1987)"이나 정치권력이 대중들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롤러 볼'을 만들어 낸다는 영화 <롤러 볼(Roller Ball, 1975)> - 2002년에 “존 맥티어난” 감독이 리메이크했다고 한다 -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라고 하겠다. 무슨 책을 소개하려고 저렇게 소개가 횡설수설일까 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잡설(雜說)은 여기까지만 늘어놓고 이제 오늘 소개할 책인 “수잔 콜린스”의 <헝거게임(원제 The Hunger Games #1/북폴리오/2009년 10월)로 바로 넘어가야 겠다^^
먼저 이 책의 시대적 배경 설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폐허가 된 북미 대륙에 새롭게 들어선 국가인 “판엠”은 주변 구역의 반란을 처절하게 응징하고는 반란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홍보하기 위해 매년 주변 12개 구역의 십대 청소년들을 각각 두명 씩 추첨으로 뽑아 수도인 “캐피톨”에서 생사의 결투를 치르게 한다. 이 결투가 바로 “헝거게임”으로 한 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게 하는 미래판 “검투사” 시합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은 리얼리티 TV쇼로 국가 전역에 생중계한다. 가난한 탄광촌인 12번 구역에 거주하는 16세의 소녀 ‘캣니스 애버딘’은 아버지께서 탄광 사고로 돌아가시자 집안의 가장이 되어 구역 외곽의 숲에서 밀렵을 하며 생계를 근근이 이어간다. “헝거 게임” 추첨이 있던 날, 캣니스는 첫 추첨 대상이라 절대 뽑히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자신의 12살 여동생 “프림”이 뽑히게 되자 여동생을 대신해 자원하고 나선다. 또다른 선발자는 동갑내기 소년이자 마을 빵집 아들인 “피타 멜라크”가 되는데, 캣니스는 어릴적 자신에게 빵 덩어리를 던져준 그에게 가슴 속으로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과 아쉬운 이별을 마친 캣니스와 피타는 오래전 12번 구역에서는 유일하게 우승했던 인물이지만 지금은 술에 쩔어 사는 멘터 “헤이머치”와 행정관 “에핏 트링켓”과 함께 생환을 기약할 수 없는 길에 오르게 된다. 수도인 “캐피톨”에 도착한 캣니스와 피타는 스폰서를 모으기 위한 사전 행사에서의 화려한 복장과 전투력 측정 테스트에서 참가자들 중에서 캣니스가 최고 점수를 받고 피타 또한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일약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여기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둘의 로맨스가 소개되면서 둘은 참가자들 중 단연 최고의 화제의 대상으로 부각된다. 드디어 헝거 게임이 시작되고, 참가자들이 무기와 보급품을 차지하기 위해 일대 접전이 벌어지면서 처음부터 사망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한다. 캣니스는 그런 혼란을 피해 최소한의 보급품과 무기를 챙겨 전투장인 황무지 한 구석에 숨어 버린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망자들이 계속 발생하고, 캣니스는 자신의 주무기인 “활”을 사망한 참가자에게서 탈취하고는 본격적으로 살상게임에 나선다. 과연 캣니스는 이 죽음의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게임이 진행되면서 박진감과 스릴이 넘치는 이야기가 계속 펼쳐진다.
앞에서 언급했던 두 편의 영화나 작가가 모티브를 얻었다는 일본 영화 <배틀 로얄(Battle Royale, 2000)>을 본 독자들 -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배틀로얄>과 <헝거게임>의 공통점을 분석한 글들이 제법 많다 - 이라면 꽤나 익숙한, 혹여 보지 않았더라도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스토리 라인에 결말도 쉽게 예측되는 어찌 보면 참 “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 막상 읽기 시작하면 식상함이나 진부함을 느낄 겨를이 없이 “마치 게임처럼 중독성이 강해서 도저히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다”라는 “스티븐 킹”의 평(評) - 앞서 언급한 <런닝맨>의 원작자이자 각본가가 “스티븐 킹”이었다고 한다 - 처럼 시선을 잡아끌어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특별한” 재미가 있다. 이 책만의 “특별한” 재미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최후의 승자가 살아남는다는 “서바이벌(Servival)" 게임 특유의 재미를 꼽을 수 있겠다. 최근 공중파, 케이블 TV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편성하고 있는, 가히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천국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과열 양상까지 빚는 이유도 바로 이런 서바이벌 게임이 주는 재미가 그만큼 강력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어마어마한 상금과 혜택, 굳이 별다른 꾸밈이나 장치를 가미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살벌한 경쟁과 인생역정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경쟁의 이면에서 서로 견제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서바이벌 특유의 재미에 푹 빠져 진행자와 포맷만 조금 다를 뿐 거기서 거기인 각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그렇게 열광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물며 가수, 배우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도 이렇게 열광하는데, 목숨을 걸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게임이야 얼마나 더 흥분되고 짜릿할까? 특히 서바이벌 게임은 최종 결과보다도 경쟁자들이 하나 둘씩 탈락하는 과정이 주는 재미가 더 흥미롭다고 할 수 있는데, 작가는 책의 2/3를 넘는 분량을 할애해서 주인공이자 화자(話者)인 “캣니스”의 시점에서 게임 과정을 세밀하고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벌이는 생존 게임은 잔인하고 폭력적일 수 밖에 없을 텐데,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고 오히려 다소 심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수위를 낮추어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마도 어린이 TV 쇼 작가와 청소년용 판타지 소설을 집필해온 경력과 작가가 여성이란 것이 큰 이유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스티븐 킹”이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에 우연적인 부분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작위적인 대목들도 있는데, 경쟁자들을 피해 나무 위로 도망간 캣니스가 머리 위에 있는 벌집을 이용해 경쟁자들을 물리치는 장면이나 재빠르고 영리한 두뇌로 꽤나 오랫동안 살아남은 한 경쟁자가 피타가 바위 위에 놓은 독(毒) 딸기를 먹고 어이없는 죽는 장면들이 바로 그러한 대목이며, 또한 경쟁자들이 하나 둘씩 죽는 장면에서도 주인공인 캣니스가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무위(武威) 때문이 아니라 앞서 말한 우연이나 또는 자기네들끼리 죽고 죽이는 장면들이 대부분이어서 다소 맥 빠지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처럼 덜 자극적인 액션과 우연이 겹치는 사건의 연속들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과연 이 게임의 최종 생존자는 누구일까 그 생존자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궁금증을 갈수록 증폭시키고, 아슬아슬한 전투 장면이 계속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최고조의 긴장과 스릴을 맛보게 하고는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그만큼 더 바라게 만드는 “해피 엔딩”으로 그런 긴장감을 일거에 해소시킨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작가, 독자들의 감정선을 어떻게 자극하는지 긴장의 완급을 어디에서 조절해야 하는 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즉 흥행 코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영리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두 번째 재미는 책 속 곳곳에 숨어 있는 독재 정권의 폭력성과 현대 미디어 산업에 대한 조롱과 냉소일 것이다. 책 속의 국가인 “판엠”은 세계 경찰이라고 자부하던 미국이 몰락하고 그 지역에 들어선 미래 국가인데, 민주주의를 표방했던 미국의 가치와 정의는 온데 간데 없고 여느 독재 국가 이상으로 더 무자비하고 잔인한 폭력으로 주변 국가 - 여기서는 반란을 일으킨 구역으로 설정 - 를 통제하고 억압하면서도, 수도인 “캐피톨”에는 온갖 부(富)와 향락이 넘쳐나는 말 그대로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국가로 설정한다. 그러기에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주변 구역들의 주민들에게서 다시 한번 반란의 조짐이 고개를 들 만도 한데 국가는 헝거 게임을 개최하여 실패한 반란의 결말이 얼마나 참담하고 공포스러운지를 주민들에게 매년 주입식으로 교육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헝게 게임은 주민들에 대한 경고성 행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불만을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게임으로 무마시킨다는, 지난날 3S(Screen, Sports, Sex) 정책으로 유명했던 “우민화(愚民化)” 정책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겠다. 적어도 헝거 게임이 벌어질 때 만큼은 고단하기만 삶을 잠시 잊고 자신의 구역 선수들을 열광적으로 응원하게 되는, 마치 4년 마다 전 세계인들이 월드컵과 올림픽에 열광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작가는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걸린 게임이 누군가에는 오락이 되고 도박의 대상이 되는 상반된 현실을 적절히 대비하여 그 모순점들을 들춰낸다. 지금이야 이런 폭압 정치로 잠시 반란의 조짐이 무마된 것 같지만 언젠가는 폭발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 지난 역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듯이 - 그런 폭발을 촉발하는 존재가 바로 “캣니스”가 될 거라는 암시가 여러 군데에서 등장한다. 즉 이미 앞으로 이어질 후속편들을 이미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작가는 현대 미디어 산업의 지나친 상업성과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중들에게 어필 - 게임 참가자들에게는 생존을 위해 “스폰서”를 불러 모으는 중요한 수단이겠지만 - 하기 위해 화려한 옷차림으로 치장하고, 거짓된 로맨스라는 스토리 - 최근 서바이벌 오디션 방송을 보면 노래 실력 외에도 참가자의 인생 역정이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 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과장된 애정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며, 마지막 결말에서는 우승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프로그램의 생리를 이용해 위험천만한 모험까지 벌이기도 한다. 바로 오늘날 절찬리에 방송되고 있는 스타 만들기 프로그램의 폐해를 고스란히 담아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과 의미 찾기는 이 작품을 읽는 데 “전혀” 중요하지 않다. 헝거 게임이라는 서바이벌 게임이 주는 긴장감과 스릴 만으로도 재미가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서두부터 횡설수설하더니 “참 재미있다”라는 결론 한마디 쓰는데 감상을 이렇게나 길게 늘여 쓰고야 말았다. 아뭏튼 재미있는 장르소설을 찾는 독자라면 이 책과 곧이어 개봉 예정인 영화 또한 결코 놓치지 않길 바란다. 그나저나 “주인공 캣니스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하기 때문에, 후속 시리즈도 무조건 읽게 될 것 같다”는 “스티븐 킹” - 오늘 이 작가 자주 써먹는다^^ - 의 말대로 후속권들 빨리 만나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