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지식의 기쁨, 김헌의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마지막 강의는 110회 영웅의 시대다.

 

 

 

 

 

영웅 종족은 반인반신이다.  모계나 부계 둘 중 하나는 신, 다른 하나는 인간이니 혼혈인 셈이다. 기원전 13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테바이 전쟁과 트로이아 전쟁 이후 지상에서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철의 종족은 처절한 인간의 시대를 연다. 역사상으로도 철기의 시대는 전쟁과 제국의 시대이다.  값싸고 단단한 철로 만든 농기구와 무기는 인구의 증가와 전쟁의 대중화를 가져왔다. 전쟁의 확대는 영토의 확대로 이어져 드넓은 제국이 탄생했다.  

 

탁월한 개인보다 잘 훈련된 조직이 전쟁의 주도권을 쥐게 되자 아마도 영웅은 설 자리를 잃었으리라.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마지막 영웅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아킬레우스는 단명-명예와 장수-평범이란 두 운명 사이에서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그 이름을 영원히 남기는 영웅의 길을 선택했다. 아킬레우스와 달리 오뒷세우스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귀향에 성공하는 인간의 길을 보여준다.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서사시에서도 영웅은 사라지고 인간이 등장하고 있다.

 

 

 

 

 

영웅의 종족은 사라졌으나, 영웅은 서사시를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희랍적 영웅은 "인간의 한계 너머를 열망하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나, 그 한계에 부딪혀 파멸하는 비극적 존재" 이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한계 너머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신이 되고자 하는 그 열망이 없다면 인간은 한갓 동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타고난 유전자의 한계 안에 갇힌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세계를 구원한다는 마블 코믹스의 근육질 OO맨들이 영웅 행세를 하는 것은 우리 시대가 자기 안의 영웅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희랍의 대표적 영웅, 헤라클레스이다.  헤라클레스의 모험은 정화 의례이다.  헤라의 저주로 광기에 휩싸인 헤라클레스는 자식들을 죽이는데, 이 죄를 씻기 위해 12가지 과업을 수행한다.  영웅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었으나, 죽음으로 정화되어 신이 된 존재이다.

 

 

 

 

 

 

희랍 비극의 기원인 디오뉘소스이다.  올림포스 12신에도 들어가지만 태생은 반인반신의 영웅 종족이다. 역시 헤라의 저주로 광기에 휩싸여 방랑하지만 포도주의 신, 농업의 신, 생산의 신이 된다.  희랍 비극은 농사를 시작하기 직전 디오뉘소스 축제 때 신에게 바쳐진 찬가이자, 정화 의례이다.

 

 

 

 

조금 낯설지만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이다.  헤라클레스, 디오뉘소스, 아스클레피오스 모두 영웅으로 태어나 죽었다가 신이 된 존재들이다.

 

 

 

 

 

페르세우스보다 더 유명한 존재가 메두사이다.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오는 미션을 성공한 영웅으로, 영화로도 만들어 졌다.  유의할 점은 영화는 신화와 많이 다르다.

 

 

 

 

 

 

페르세우스가 타이탄 즉 티탄 신족들하고 무슨 상관인지 의아하지만, 영화는 이것 저것 신화를 뒤섞어 놓았다.

 

 

 

 

 

 

오뒷세우스가 고향 앗티케로 돌아오는 10년 동안 겪은 고난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신기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오뒷세우스는 엄마와 아버지 모두 인간이다. 엄격히 말해 영웅 종족은 아니다. 물론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의 혈통이긴 하다.  신의 혈통이 아닌 인간이 어디 있기는 할까. 우리도 환인의 아들 환웅의 아들 단군의 자손이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가 영웅적 면모보다는 인간의 잔꾀에 그 모험(겪음. 파토스)을 치중하고 있는 것도 오뒷세우스가 영웅 종족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일까?

 

 

 

 

 

 

로마의 건국 신화 『아이네이스』 의 아이네아스도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다. 패배한 트로이아의 영웅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새로운 땅을 찾아 10년간 방황한 끝에 로마에 정착한다.  

 

베르길리우스가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를 조합하여 『아이네이스』 란 건국 신화를 창작한 것은 로마제국의 첫 황제인 옥타비아누스를 신격화하기 위해서였다. 로마공화정에서 로마제국으로의 이행이 신이 정해 놓은 로마의 운명이며 번영의 길임을 노래했다.

 

 

 

 

 

기원전 13세기의 아이네아스를 기원전 8세기에 건국된 로마의 시조로 만들기 위해 베르길리우스는 로물루스 형제의 혈통을 아이네아스로 거슬러 올라가게 만들었다.  희랍보다 문명이 뒤진 로마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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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기획특강 - 지식의 기쁨, 김헌의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3,4 번째인  108회 올림포스 12신과 109회 인간의 탄생을 정리한 글이다.

 

 

 

새롭게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고대 희랍 신화는 통일된 하나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알라딘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검색하면 1,000권이 넘는데 지은이가 각각이다. 가장 유명한 책 중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주 오래전에 봤을 때는 이윤기가 번역한 것쯤으로 생각했는데,  그리스에서조차 고대 신화는 다양한 이야기꾼들에 의해 여러가지 판본으로 전해져 온 것이다.  헌의 강의에는 희랍의 헤시오도스, 아폴로도로스, 플라톤 뿐 아니라 로마의 오비디우스 등이 전하는 신화를 비교해서 보여준다.

 

 

 

 

 

 

가이아로부터 평화롭게 이양된 권력은 이후 세대간 투쟁을 통해 우라노스 → 크로노스 → 제우스로 넘어간다.  친부살해 Ptroktonia를 통해 신세대가 구세대를 몰아내고 새롭게 권력을 획득한다.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했고,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포함한 구세대와 전면전을 벌여 권력을 차지했다.

 

제우스는 이 과정에서 몇 번의 전쟁을 치른다. 첫 번째가 티타노마키아이고 두 번째가 기간토마키아이다.  아버지 세대인 티탄족들과의 전쟁이 티타노마키아인데 여기서 제우스는 아버지와 같은 세대이긴 하지만 주류에서 배제된 삼촌들과 연대하여 티탄신족들을 물리친다.

 

 

두 번째 기간토마키아는 거인족들과의 전쟁인데, 증조 할머니(?) 가이아가 제우스 체제에 불만을 품고 우라노스와 관계를 맺어 기간테스라는 거인신족을 낳았고 이들에 의해 일어난 전쟁이라고 설명한다.

 

 

 

 

이후에도 가이아는 타르타로스와의 사이에서 티폰을 낳아 올림포스 12신과 전쟁을 하게 만드는데 티폰은 그 자체로 세계를 뒤덮을만큼 무시무시하게 거대한 괴물이다. 티폰을 음차한 것이 한자어 태풍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이다. 가이아는 제우스의 올림포스 12신 체제가 공고히 확립될 때까지 계속해서 권력 투쟁을 촉발했다.  아들 크로노스를 사주한 것도, 손자 제우스에게 계책을 제안한 것도, 또 다른 자식들을 낳아 제우스에 도전하게 만든 것도 모두 가이아이다. 가이아는 어떤 권력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셈이다.  모계를 이끌던 가이아가 꿈꾸던 이상적인 권력은 도대체 무엇이었길래 모든 현실 권력들에 불만이었던 것일까?

 

 

 

 

 

제우스는 아버지 세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획득한 이후에도 계속 도전해 오는 새로운 세력과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제우스가  "영원한 권력" 이 된 것은 이 전쟁들에서 모두 이기고 난 뒤였다.  Patroktonia의 전통을 끊어낸 것이다. 어떻게 제우스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김헌이 제시하는 답은 세대 통합과 권력 분점이다. 제우스는 형들인 포세이돈, 하데스와 함께 하늘, 바다, 지하를 삼분했다.  대지는 공동의 영역이다.  자신을 도와준 구세대에게도 적절한 역할을 제공하여 견제와 통합을 한꺼번에 이루었다.  결정적으로는 자신의 자식들인 신세대에게도 권력을 나누어 주었다.  신구세대를 아우르는 세대  통합이 안정적인 제우스의 시대를 지금까지(?) 유지해 주고 있다.  그러나 기간토마키아나 티푼과의 전쟁에서 보았듯이 새로운 세대의 폭력적인 도전에 대해서는 철저히 응징하여 강력한 통치권을 장악했다.

 

고대 희랍인들이 제우스 이후의 권력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제우스의 세대 통합과 권력 분점이 이상적인 통치 형태라고 보았던 듯하다. 전제정보다는 귀족정 (과두정)을 더 선호하는 고대 희랍인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고도 설명한다.

 

 

 

 

 

 

제우스가 구축한 올림포스 12신 체제의 12신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전해진다. 기본적으로는 형제 자매 6신과 자식들 6신으로 신구세대를 균형있게 배치했지만, 이후 2명의 형제 자매가 빠지고 2명의 자식들이 포함되어 4신- 8신으로 변한 전승들이 많다.

 

 

 

 

 

  

 

 

 

메소포타미아에서도 그렇듯 희랍에서도 인간은 신들에 의해 창조된다. 그런데 누가 인간을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인간 탄생 신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5단계 (4단계)의 인간 역사와 프로메테우스의 인간 사랑이다.

 

 

 

 

 

크로노스의 통치기에 탄생한 인간은 황금의 종족이다. 노동도 고통도 모르는 낙원의 인간이다.  이어서 제우스의 통치기에 은의 종족 → 청동의 종족 → 영웅 종족 → 철의 종족으로 이어진다. 금속으로 인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데, 언뜻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로 이어지는 실제 역사를 연상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희랍인들이 보여 주고 있는 인간의 역사는 타락의 역사이다.

 

 

 

 

우리가 그리스로 부르고 있는 나라의 정식 명칭은 The Hellenic Republic 이다. 그리스는 라틴어에 뿌리를 둔 영어식 명칭이고, 그리스어로는 헬라스 (현재는 엘라스로 발음)이다. 한자로 음차하면 희랍이 된다. 헬라스인들은 스스로를 헬레네스라고 하는데,  '헬렌의 후손' 이라는 의미이다.  헬렌은 여신 헤라도 아니고 트로이 전쟁의 불씨 헬레네도 아니다.  헬렌은 대홍수 이후 생존한 데우칼리온 부부의 아들이고, 희랍인들은 이 헬렌의 후손들이다.

 

 

 

 

 

 

 

희랍도 메소포타미아나 헤브라이인들과 아주 유사한 홍수 신화를 갖고 있다. 인간에게 분노한 제우스가 홍수로 인간을 절멸시키려고 했는데 인간을 특히 사랑한 프로메테우스가 아들 데우칼리온 부부에게 알려주고 대홍수 이후 이들만 살아남게 된다. 이들은 테미스 여신으로부터 "위대한 어머니의 뼈를 등뒤로 던져라"는 신탁을 받고 대지 가이아의 돌을 등뒤로 던졌다. 거기서 새로운 인간들이 탄생했다.

 

 

 

 

 

프로메테우스는 매우 흥미로운 신이다. 제우스와 끝까지 대항하면서 인간을 보호한 신이다. 올림포스 12신에도 들어가지 못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어떤 신보다 위대한 신이 아닐 수 없다.  수메르의 신들 중 서열 3위인 엔키와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신화도 있고, 다른 신들이 창조한 인간에게 능력을 부여했다는 전승도 있다.  김헌은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가 전하는 두 번째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설명해 준다.  

 

Pro - Metheus 는 '먼저 생각하는 자 ' 이다. Metheus는 '생각하다 혹은 알다' 라는 뜻이다.  동생은 Epi - Metheus 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신이 '생각' 혹은 '앎'을 의미한다는 것이 뜻 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첫 문장을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고싶어 한다." 로 시작한다.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말로 여겨진다. 인간의 아레테, 탁월함을 앎으로 보는 것이 서양 문명의 뿌리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아이스퀼로스의 현존하는 비극에도 그 인간사랑이 전해진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위해 불을 가져다 주고 제우스의 분노를 사서 카우카소스산에 묶여 형벌을 받으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제우스에 대항한다. 제우스를 독재자로 비난하며 아버지와 똑같이 자신의 아들로에 의해 쫓겨날 것이라고 저주한다.  제우스는 무시무시한 협박으로 그 아들이 누구인지 알아내려 하지만 아이스퀼로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입을 끝까지 봉하며 비극을 끝맺는다.

 

김헌의 강의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타협을 하고 티탄신족 중 제우스가 마음에 두고 있던 이모? 고모?인 테티스와 결혼할 경우 그 아들이 제우스를 쫓아낼 것이라고 말한다.  놀란 제우스는 테티스를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는데, 이 성대한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이 등장하여 그 유명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고 쓰인 사과를 던진다.  이 사과는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가 주인공이 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 의 발단이 된다.  이렇게 기원전 5세기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는 기원전 8세기의 <일리아스> 와 만난다. 희랍인들은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다양한 신화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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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 걸작선 - <오이디푸스 왕> 외 3대 비극작가 대표선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이스퀼로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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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고네』를 끝으로 소포클레스의 테바이 3부작 읽기를 마치려 한다.  책을 선택하는데 좀 고민이 있었다. 소포클레스의 현존하는 비극은 7편으로, 숲 출판사의 천병희 역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굳이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와  『그리스 비극 걸작선』 두 권을 구매했다.  세 책 모두 숲 출판사의 '원전으로 읽는 순수 고전세계' 시리즈, 천병희 번역이지만,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는 2017년에 새롭게 번역한 책이기 때문이다.

 

옮긴이 서문에 보면 "언어란 끊임없이 바뀌기도 하거니와 예전 작업의 오류들도 바로잡을 때가 되어 새롭게 번역을 손보았다. 직역으로 인한 어색하고 애매모호한 표현들을 줄이는 등 우리 시대의 언어감각을 고려해 가독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었고 최근에 나온 주석들과 번역들을 참고했다." 고 번역을 새로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사실 가독성보다 직역이 더 나을 수 있지만, 이전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았다는 것 때문에 새로운 번역판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왕 새로 번역하는 김에 테바이 3부작을 한꺼번에 실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크기는 하지만 출판사와 역자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고전들은 여러 출판사에서 많은 번역서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번역을 선택할 것인가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원전 직역인지, 번역자는 누구인지, 해설 등을 판단의 요소로 삼지만, 막상 둘 이상의 번역본을 보게 되면 같은 책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느낌이 다를 때가 많아서 원어를 읽지 못하는 독자의 설움에 심정이 상할 때가 꽤 있다.

 

 

 

 <폴뤼네이케스 시신 앞에 선 안티고네. Lytras Nikiforos, 1865>

 

 

『안티고네』는 기원전 441년 경 소포클레스의 테바이 3부작 중에는 처음으로 상연된 비극이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9092919521

 

 

 

 

 

 

오이디푸스 가문이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 <안티고네> 순으로 창작되어야 했으나 이 순서가 상관이 없었던 것은 오이디푸스 가문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승되어 오던 신화였기 때문이다. 희랍인이라면 트로이 전쟁과 테바이 전쟁 (오이디푸스 가문) 신화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희랍의 서사시와 비극들은 대부분 이 두 신화에서 이야기를 가져와 당대의 정치 · 사회적 상황에 맞게 재구성한 작품들이다.

 

 

 

 

 

아테네 근교 콜로노스에서 오이디푸스가 죽음을 맞이할 무렵, 테바이에서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서로 형제의 피로 물든 채 죽고 죽이는' 운명을 맞았다. 아버지가 죽은 후 안티고네는 오빠들의 비극을 막아보려 급히 테바이로 돌아오지만 이미 전쟁은 끝나고, 왕권은 삼촌 크레온에 넘어가 있었다.

 

 

 

프롤로고스에서는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이 비극의 대립과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안티고네』의 갈등 구조는 뚜렷하다. 공법과 사법, 인간의 법과 신의 법이 충돌한다.  절대선이나 절대악은 없다. 크레온의 입장도 안티고네의 입장도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나 두 입장 모두를 취할 수는 없다. 공법이 우선시 될 때 사법은 폐기되어야 하고, 사법이 중시될 때 공법은 유명무실해 진다.

 

 

 

 

 

코로스는 첫 번째 정립가에서 "그가 국법과, 신들께 맹세한 정의를 존중한다면 그의 도시는 융성할 것이나, .. " 라고 노래했지만,  『안티고네』 의 국법과 신에 대한 맹세는 양립할 수 없다.  국법에 따라 반역자 폴뤼네이케스를 새떼의 먹이로 던져 두거나, 하데스에 대한 불문율에 따라 폴뤼네이케스를 장사지내 주거나 할 수 있을 뿐이다.

 

 

 

 

 

크레온의 입장은 단호하다.  폴리스를 배반한 인간을 폴리스의 애국자와 똑같이 취급한다면 폴리스는 제대로 통치될 수 없다.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폴리스의 적을  친구로 삼을 수는 없다. 폴리스가 안전해야 진정한 친구도 가능하다.

 

 

 

 

 

안티고네는 더욱 강경하다. 인간의 법 따위가 신들의 불문율을 무시할 수 없다. "아무튼 하데스는 그런 의식을 요구" 하기 때문에 죽은 사람은 반드시 묻어 주어야 한다.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9092919521

 

 

누가 정의인가? 는 오늘날에도 쉽게 답하기 힘들다.  신법을 앞세우는 자와 국법을 앞세우는 자는 가치 체계가 다르다.  기원전 441년 <안티고네>가 상연되었을 당시 아테나이는 민주정의 절정기에 있었다. 그럼 해답을 다른 곳에서 찾아보자.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의 관점은 이 비극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희랍인들은 신들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자산은 이성이라고 믿었다. 인간 이성은 특출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다. 하이몬은 아버지 크레온에게 "남들도 쓸만한 생각을 할 수 있을 거" 라고 말한다.

 

 

 

 

 

강유원의 칸트 강의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보편적 인간 이성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 이다.  '보편적 이성' 이므로 인간이면 누구나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 이성' 이란 한계 때문에 신과 같이 완전한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다. 

 

'보편적 인간 이성'은 인간의 가능성인 동시에 한계를 뜻한다. 인간 개개인은 진리에 도달하기 힘들지만,  모든 인간들의 이성을 모아 인식을 확대해 나간다면 완전한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런 믿음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든다.

 

 

 

 

 

하이몬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 아테나이인들의 민주정도 이런 인식에 기반해 있다.  폴리스 시민이라면 누구나 이성을 가지고 있다. 통치자 혼자의 독단보다는 시민들 대다수의 판단이 올바름에 가깝다고 믿는 것이 아테나이다.

 

"누군가 자기만 현명하고, 언변과 조언에서 자기만 한

 사람이 없다고 여긴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막상 검증해보면 속이 비어 있음이 드러나지요.

 현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많은 것을 배우고

 때로는 양보할 줄 아는 것은 수치가 아니예요. "

 

 

 

 

 

 

이쯤해서 소크라테스가 생각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이몬의 대사는 소크라테스를 겨냥하는 것도 같고,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 를 지지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그리고 확실히 플라톤은 민주정을 우민정치라 생각했다. 바보들 백 명, 천 명이 머리를 맞댄다고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그리고 훈련된 철학자만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테나이 시민들은 소크라테스를 민주정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이몬은 아버지에게 경고한다.

 

" 한 사람만의 국가는 국가가 아니지요." 

 

비극을 관람하는 아테나이인들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민주정은 시민들을 괴롭힌다.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가, 무엇이 폴리스를 위한 것인가를 고민하고 토론하고 싸우고 결정해야 한다. 아테나이 민주정은 누구나 통치를 할 수 있고 통치해야 하는 직접 민주주의였기 때문에 통치가 남의 일이 아니다. 크레온은 등장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 통치와 입법으로 검증받기 전에

   한 인간의 성격과 심성과 판단력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누구나 공적인 일을 통해 인간 자체를 평가받는 곳이 아테나이였다. 

 

 

 

 < ‘폴리네이케스에게 제주(祭酒)를 바치는 안티고네’. 1825. 세바스티앵 노르블랭.>

 

 

 

『안티고네』는 완전히 정치적인 텍스트이다. 아테나이 당대는 물론 지금도 여전히 "민주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계속된다.  정답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한 사람만의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민주정을 사는 시민들은 한 사람에게만, 한 계층에게만 국가를 맡겨둘 수 없다. 그것은 민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아테나이는 모든 시민들이 극장에 모여 앉아 무대 위에 올라온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보려 노력하면서 민주 시민의 덕성을 함양하였다. 희랍 비극을 통해 보는 아테나이와 실제의 아테나이가 얼마나 다르건, 우리가 고대 희랍을 얼마나 이상적으로 바라보고 있건,  우리는 희랍으로부터 배워야만 한다.  공동체 시민의 덕성을 함양하는 비극과 같은 공동의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이다.

 

 

 

<인문고전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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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기획 특강 <지식의 기쁨>  중  서양 고전 학자 김헌의 '한눈에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두 번째 강의를 정리하였다.  이 강의는 독서 스타디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기 위해 함께 듣고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희랍 신의 계보나 신들의 특성은 전승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이 강의는 기본적으로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를 따르고 있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희랍 최초의 신은 카오스, 가이아, 타르타로스, 에로스이다. 이후에 탄생하는 신들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계보를 따른다. 







 

생산력이 가장 왕성한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우라노스, 호론, 폰토스 즉 하늘과 산과 바다를 낳았다.  가이아는 우라노스를 선택해 남편으로 삼고 그 사이에서 티탄 신족 열 둘과 키클롭스들과 헤카톤케이르들을 낳는다. 키클롭스들은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외눈박이 거인들이다. 


 



신들이 많아지자 가이아는 통치권을 아들이자 남편인 우라노스에게 이양한다. 이 이야기는 모계가 가졌던 최초의 통치권이 부계로 넘어간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그런데 우라노스는 통치권을 함부로 휘두르며 폭력을 자행한다. 


우라노스는 가이아가 낳은 자식들을 다시 가이아의 뱃속에 가둬버리는 데 자신의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자신의 틀에 가두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대를 두려워하며 자신 안에 가두려 한다. 





자식들을 강제로 자신의 뱃속에 넣게 된 가이아는 우라노스를 응징하기 위해 뱃속의 자식들을 소집하여 아버지와 싸우도록 종용한다.  막내인 크로노스가 가이아의 뜻을 따르겠다고 나선다. 





크로노스는  어머니 가이아로부터 받은 거대한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의 남근을 자른다. 우라노스는 깜짝 놀라 타르타로스로 숨어들고 잘린 남근에서 튀어나온 정액과 피가 가이아 위로 떨어져  복수의 여신들, 물푸레나무 요정들 그리고 거인신족들 (gigas)이 탄생한다.  거세된 남근은 바다로 떨어지는데 이때 거품이 부글거리며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다. 


Patroktonia , 친부 살행의 전통이 시작된다.  기성세대는 자신의 틀에 새로운 세대를 가두려하고, 새로운 세대는 그런 기성세대와 싸워 이겨야만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가 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테바이의 새로운 왕이 되는 것 역시 최초 신들의 전쟁에 그 기원이 있는 것이 아닐까. 


크로노스는 가이아 → 우라노스에 이어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  크로노스는 후에 시간의 신으로 여겨진다. 시간의 신에 대해서는 다른 說이 있지만, 신화가 전승되면서 크로노스가 시간을 의미하게 된다. 





크로노스는 남매인 레아와 결혼한다.  기득권이 된 크로노스는 자식들이 자신처럼 아버지를 죽이고 권력을 뺏을까봐 두려워 한다.  결국 레아가 낳은 자식들을 스스로 삼켜 자신의 뱃속에 가둔다.  레아는 6명의 자식을 낳는데 막내인 제우스를 낳고는 크로노스를 계략으로 속여 넘긴다. 강보로 감싼 바위를 제우스 대신 내미는데 크로노스는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 바위를 삼킨다. 제우스는 크레타섬으로 빼돌려져 몰래 성장한다. 





크로노스의 폭력에 화가 난 할머니 가이아가 제우스를 찾아온다. 제우스는 가이아의 조언에 따라 계략을 써서 아버지 크로노스가 삼켰던 형제자매들을 토해내게 만들고 아버지에 대항해 전쟁을 한다.  티타노마키아가 시작된다. 





제우스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들인 티탄신족들에 대항해 자신의 형제들 뿐 아니라 주류에서 배제되었던 삼촌들, 키클롭스들과 헤카톤케이르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연합군을 형성한다.  10년 간의 전쟁 끝에 제우스가 이끄는 올림푸스 신족들이 승리한다.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새로운 통치자로 등극한다.  어쩌면 친부살해는 늘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막강한 기성세대도 결국은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기존의 틀에 고착되어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는 소멸되기 마련이다. 





제우스는 지금도 건재하다.  기원전 776년에 처음 시작된 올림피아 제전은 로마제국 말기인 4세기 말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절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올림피아 제전은 천 여년을 묻힌 채 잊혀졌었으나, 1896년 제1회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개최되면서 부활한다. 올림피아 제전이 티타노마키아에서 제우스의 승리를 기념하여 시작된 것이라 하니, 올림픽의 부활은 제우스의 부활이기도 하다. 


우라노스나 크로노스와 달리 제우스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제우스는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올림푸스의 여러 형제 신들과 나눔으로써 안정적인 체제를 만들었다.  또한 모든 기성세대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소외되었던 기성세대를 끌어 안음으로써 신·구의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희랍인들은 제우스에게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시켜 주면서 통치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신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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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푸른시원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양운덕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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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미케네 시대의 테바이 전쟁을 직접 다루고 있다.

 

 

 

 

 

 

테바이는 스파르타, 아테나이, 코린토스, 아르고스와 함께 희랍 패권을 다투는 5강의 하나였다.

 

 

 <변신 이야기>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테바이와 코린토스는 스파르타가 주도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가담하여 아테나이와 전쟁을 치루었다.  아르고스는 중립을 지켰다.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승리하자 테바이와 코린토스는 아테나이를 멸망시키고 아테나이 시민을 노예로 삼으려고 하였다. 스파르타는 아테나이를 존속시키는 대신 30인 참주가 통치하는 과두 정체를 수립했다.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18072774101>

 

 

 

기원전 403년 아테나이는 과두정을 무너뜨리고 1년 만에 민주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상흔은 깊었다.  '민주정 → 과두정 → 민주정 ' 으로의 체제 변혁을 거치며 분열과 반목, 보복은 되풀이 되었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18072774101>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가 사망하기 직전 완성했지만, 공연은 기원전 401년 손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스파르타가 세운 과두정을 무너뜨리고 민주정을 되찾은 아테나이인들은 적국 테바이의 오래된 비극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조국 테바이에서도 쫓겨난 오이디푸스를, 희랍의 어떤 폴리스도 받아주지 않던 재앙 덩어리 오이디푸스를 오직 정의를 분별할 줄 아는 아테나이만이 받아들였다는 것,  테바이의 왕 오이디푸스가 신탁의 예언지로 아테나이를 선택하여 테바이로부터 아테나이를 지켜주겠다고 신성한 약속을 했다는 것 등은 아마도 아테나이인들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는 테바이 전쟁과 오이디푸스의 죽음이 중심 사건을 이룬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1842. 샤를 잘라베르>

 

 

테바이로부터 추방당한 오이디푸스는 안티고네에 의지해 희랍을 떠돌다 아테나이 근교의 콜로노스에 이른다. 콜로노스는 소포클레스의 고향이다. 아테나이의 왕은 테세우스이다. 크레타섬의 미궁에 사는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한 아테나이의 그 영웅이다.  

 

 

 <미노타우로스 , 그리스 도기, 기원전 515년 경>

 

 

오이디푸스와 테세우스가 동시대의 인물이라는 것이 생경하다. 지금도 무대에 공연되는 오이디푸스는 매우 현대적인 느낌인데 반해 테세우스는 글자 그대로 신화적이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는 오이디푸스가 콜로노스에서 죽음을 맞는 것을 허락한다. 그 대가로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걸고, 죽어서 아테나이를 수호할 것을 맹세한다. 

 

 

 

 

 

테바이에서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사이에 왕권 다툼이 일어나 폴뤼네이케스가 추방당한다. 폴뤼네이케스는 아르고스로 망명을 가서 일곱 부대의 창병을 모아 테바이를 공격한다. 이 테바이 전쟁에서 폴뤼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서로를 죽이고 동시에 죽는 운명을 맞는다. 아버지 오이디푸스의 저주는 실현된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1788. Jean-Antoine-Théodore Giroust >

 

 

 

폴뤼네이케스는 테바이를 공격하러 가는 길에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만나러 온다. 신탁에 따르면 테바이의 안녕은 오이디푸스에 달려 있고, 테바이 전쟁에서 오이디푸스가 편드는 쪽이 이기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내쫓은 테바이와 자신의 추방을 방관한 두 아들에 대한 분노를 폭발하고 저주를 퍼붓는다. 오이디푸스 가문의 남자는 이로써 모두 불행한 운명을 맞는다.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해설에서 양운덕은 베르낭과 지라르가 오이디푸스를 희생양으로 해석하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35487.html>

 

 

 

맥락이 많이 다르지만 서양 고전학자 김헌도 '제물'로서의 오이디푸스를  말한다. 비극 공연 자체가 예배이며, 무대 위에 등장한 오이디푸스는 제단 위에 바쳐진 제물이다. 재앙의 원인임이 밝혀지자 오이디푸스는 제물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눈을 찔러 도시를 정화한다.  물론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찌르는 행위에 대해서는 신에 대한 저항, 인간의 자유 의지 등으로 보는 다른 관점들이 다수 있다.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232쪽>

 

 

아테나이는 실제로도 매년 폴리스를 정화하기 위해 희생양을 희생시켰다. 이때 선택되는 희생양은 전형적인 약자이다.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234쪽>

 

 

베르낭에 따르면 희생양 의식은 카니발과 같다. 축제가 끝나면 반왕은 그가 구현한 모든 무질서를 짊어지고 죽어야 한다. 그의 죽음은 공동체를 정화한다.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229쪽>

 

 

 

오이디푸스가 왕이 된 것 자체가 일종의 카니발이라는 것이다.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의 죄를 저지르고도 테바이의 영웅으로 살았던 오이디푸스는 축제가 끝나자 테바이의 모든 재앙을 짊어지고 추방당한다. 베르낭이 '오이디푸스라는 수수께끼'라고 하면서 오이디푸스를 이중적 존재로 규정할 때, 희생양의 이중적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제거되어야 하는 오물이지만 제거됨으로써 성스러워진 존재가 희생양이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신탁이 두려워 자신을 데려가려고 테바이에서 사신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이스메네 :  아버지께서는 살아 계시든 돌아가셨든, 언젠가는 테바이  인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아버지를 찾게 된다고 했어요.

 

이디푸스 :나 같은 사람에 의해 누가 행복해질 수 있겠느냐?

 

이스메네 : 신탁에 따르면, 그들의 안녕은 아버지에게 달려 있대요.

 

오이디푸스 : 내가 아무것도 아닐 때 비로소 영웅이 된다는 말이냐?

 

 

something이라고 자부했을 때 실제로 nothing이었던 반면, 세상 모두에 nothing으로 드러났을 때  비로소 something이 되는 아이러니가 오이디푸스를 또 하나의 수수께끼로 만든다.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243쪽>

 

 

베르낭이 재앙의 원인이자 구원자라는 희생양의 이중적 성격에 주목했다면,  르네 지라르는 희생양이 어떻게 희생양으로 만들어지는가를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사회의 위기를 오염의 탓으로 돌리고 정화를 통해 벗어나려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희생양이다.  희생양이 위기를 조장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그렇게 믿을만한 지표나 징후를 만들 수 있으면 된다.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249쪽>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나 랑시에르의 '몫없는 자' 같이,  배재와 차별에도 저항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244쪽>

 

 

오이디푸스는 희생물의 징후를 모두 갖추고 있다. 갑자기 나타나 공동체의 명예와 부를  독차지한 이방인 오이디푸스에 대한 시기와 분노가 역병의 원인을 오이디푸스에게 덮어 씌우게 만든다. 지라르는 친부살해와 근친상간이 없었어도 오이디푸스에 대한 박해는 실행되었을 것이라 말한다.  

 

 

 

 

1923년 일본 관동 대지진 때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것은 조선인이었다. 왜 이방인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일까?  공동체의 위기는 공동체 내부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내부의 원인은 쉽게 해결될 수 없으므로, 그대로 두면 분열과 그에 따른 연쇄적인 폭력이 수반된다. 공동체가 와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내부의 폭력을 분출할 외적 대상이 필요하다.

 

 

 

 

한·일 학계는 조선인 6,60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강점기 재일 조선인들은 일본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단 위에 올려진 희생 제물이었다. 물론 다수의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진짜 우물에 독약을 풀고, 치마 속에 폭탄을 감추고 있다고 믿으며 학살을 자행했다.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1798.  플크랑-장 아리에>

 

 

신화와 달리 강점기 재일 조선인들은 희생 제물이었을 뿐 신성화 되지는 않았다.  베르낭은 희생양의 이중적 성격에 주목했다. 지라르도 희생제물이 신격화 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테바이의 재앙으로 추방당한 <오이디푸스 왕> 은 아테나이를 지키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로 신격화된다.  희생자 sacrifice는 신성하다 sacred.  희생자에 의해 공동체가 정화되고, 질서가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왕/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250쪽>

 

 

 

희생양에 대한 폭력으로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려던 현대적 시도는 1930년대의 전체주의에서 폭발했고 가공할 야만성을 드러낸 채 실패했다.  그러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추기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中

 

펠로폰네소스 동맹 vs 아테나이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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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이디푸스 왕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읽기 위하여
    from 말리 2020-08-20 21:26 
    희랍 문화는 고대 아테나이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기원전 6세기를 전후하여 민주정이 발전하기 시작한 아테나이는 기원전 5세기 초에 페르시아 전쟁에 승리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의 절정기를 맞는다.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 희랍 세계를 호령하면서 아테나이는 제국의 길로 들어선다. 아테나이의 야망에 두려움과 시기심을 느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결성한다. 양분된 희랍 세계는 기원전 5세기 후반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27년 간의 내전을 겪
  2. 오이디푸스라는 수수께끼, <오이디푸스 왕>
    from 말리 2020-08-20 21:27 
    <https://blog.naver.com/chanwoolee/221618153604> <오이디푸스 왕> 은 그냥, "원전 완역을 읽었다." 로 리뷰를 끝내야 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자료를 찾기 위해 검색을 하니 읽을 것도 볼 것도 너무 많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에 너무도 다양한 해석이 더해져 수천 년 동안 오이디푸스가 사로잡은 정신이 얼마나 많았는 지를 짐작하게 한다. '숲' 출판사의 '푸른시원'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