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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평점 :
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이다. 그러한 사람과 일들로부터 격리된 나만의 정체성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관계다'는 이유이다.
신영복교수는
젊은 시절 20년을 감옥에서 무기수로 복역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참 깊이 있는 인간 성찰의 결과물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그 결과물로 새로운 심리치료법으로 제시한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화장, 성형, 의상으로 실현할 수 없는 것이 자기 정체성이다. 그것은 노동과 삶, 고뇌와 방황에 의해서 경작되는 것이다.
즉,
사람의 생각, 자기 정체성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이다. 누구의 생각이 옳다는 보장은 없다. 모두가 수많은 삶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등산로는 미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님으로 길로써 만들어진다. 즉 길은 관계의 흔적이고 소통의 결과로 생겨나는
'주름'이다.
내 얼굴에 하나둘 생기는 주름들이 모여서 나의 정체성을 이루었고 지금도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우리의 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이다. 변화는 결코 개인을 단위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
당면의 상황 속에서, 영위하는 일 속에서,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물이나 역사를 인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과 내가 맺는 관계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세계와 자기를 대면하게 함으로써 자기와 세계를 함께 깨닫게 하는 것이다.
자연은 하나의 가치, 일정한 형식이 없다.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최고의 질서, 가장 근본적인 질서, 그래서 가장 안정적인
질서이다.
이러한 자연과 대면하고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면 우리 삶 가운데 변화의 질과 높이는 얼마나 대단해 질수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자연과 진실한 관계 맺고자하는 것도 결국 우리 인간의 자고하는 욕심에 의한 것임을 생각할 때 자연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에는 우리의 그릇이
너무나 작다.
<인상적인
부분>
대전의
중동 창녀촌에 노랑머리라는 창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성직자가 이 노랑머리에게 여성다운 품행을 설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면서 그 사람의
품행에 대해서 관여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지요. 그것은 그 여자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입니다. 그 여자를 돌로 치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의 오만함과 천박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무지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선은
미덕으로, 위악은 범죄로 재단된다. 이것이 강자의 논리이다.
테러는
약자의 전쟁이고 전쟁은 강자의 테러이다. 우리의 현실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모순된 조어가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
명상은
현재의 공간을 벗어나는 '정신적 탈옥'이다.
여행이란
'떠나는 것'이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고, 자기의 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자기를 칼같이 떠나는 것이다.
그다음이
'만나는 것'이다. 자기를 떠나지 않고는 새로운 것을 만나기도 어려운 법이다.
그다음은
'돌아오는 것'이다. 종착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세상이 조금씩 변화해 왔다.
내용도 없으면서 지나치게 꾸미는 것보다는 차라리 다소 거칠더라도 진실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