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 영문판) 6
칼릴 지브란 지음, 유정란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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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치 종교 교리서 같은 책이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문장마다 저자의 깊은 철학이 숨어있고 이를 많은 비유로 표현했다.

 

지브란의 25가지 교훈 중 5개만 소개한다.

(결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면 기뻐하되 서로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십시오. 마치 기타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에 함께 떨릴지라도, 서로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아이들)
그대들의 아이들은 그대들의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갈구하는 생명의 아들이자 생명의 딸입니다.

(주는 것)
욕망 그 자체가 두려움이 아닙니까. 그대들의 우물이 가득 찼음에도 목마름을 겁낸다면, 그 목마름은 결코 풀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옷)
그대들은 옷으로 자신의 자유를 추구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밧줄과 사슬만 찾을 것입니다.

(죽음)
숨을 멈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저 끊임없이 흐르는 물결에서 벗어나 숨이 자유로워지는 것이자, 날아오르고 부풀어 올라 아무런 장애물 없이 신을 찾아가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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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양장)
유진 피터슨 지음, 이종태 옮김 / IVP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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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이야기는 현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경건한 이야기다. 다시말해 현세/인간의 상황 속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철저히 연습해 온 다윗에게는,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사자의 포효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성경속에서만 말씀하시는 하나님, 교회 속에서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 때문에 성경을 덮거나, 교회를 나오면 모두가 세상사람이 되고 하나님과 단절된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잘 해 나갈 수 있는 삶의 분야는 단 한가지도 없다.

다윗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삶을 살았다. 다윗이야기에는 단 한 번의 기적도 없지만 그 중심부에는 하나님이 모든 세세한 사건 속에서 언제나 현존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야기 내부에서 조용하고 꾸준하게 숨어서 작용하는 소재는 바로 다윗의 인간됨이다. 다윗은 결코 하나님을 떠나서는 다윗일 수 없고 하나님 안에서 더욱 인간됨이 뚜렷해 진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먼저 하나님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살피고 거기에 반응하는 삶이다. 즉 삶의 출발점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인 것이다.

어떤 직분, 직업, 업적이 있더라고 특권은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우리는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 안에서 바르게 살는 길을 발견한 감격으로 신앙 생활을 시작해 놓고는 점차 하나님을 위해 그분의 일을 대신 떠맡아, 사람들이 바르게 살도록 만드는 일을 담당하고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하나님 자리에 서서 으스대고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의 눈에 교회가 도덕적, 사회적 부랑자 모임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의 기대에 전혀 맞지 않는 장소와 사람들이 바로 우리 교회일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들어온 한 줄기 빛나는 아름다움이 그들 위에 비칠 때면, 우리는 그 동안 죄로 어두워진 내 눈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삶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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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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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의미'한 것들로 둘러싸고 있다. 우리 주위를 둘러싼 낯선 사람들, 고층 빌딩들, 공원에서 시간과는 무관심한 삶을 살고 있는 노숙자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둘러쌓고 있는 '무의미'들이다. 다른 면에서 보면 우리 개개인도 다른 이들에게는 무의미이다. 즉, 우리들의 삶자체가 '무의미의 축제'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축제에 참여하고 있지만 눈앞에 의미있는 것을 향해서만 달려가다보니 깨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잠시 멈추고 주의를 둘려보자.

자유롭지 않은가? 왠지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가?

우리에게 무의미한 것들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무의미의 축제에서는 더이상 다른사람에게 잘보이기 위해 꾸밀 필요도, 감정을 숨기기 위해 억지로 웃을 필요도, 괜히 어깨에 힘을 넣을 필요도 없다. 내가 그들에게, 그들이 나에게 무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보잘것 없는 것들, 의미없는 것들이 내 삶에서 도리어 소중한 것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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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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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서울 영등포의 '외딴 방'을 중심으로 10대 소녀의 삶을 잔잔하게 이야기하면서 70 ~ 80년대를 시대상까지 반영한 픽션과 넌픽션의 중간쯤 글이다.
글을 읽는 동안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국민학교와 중학교시절의 기억이 함께 떠올라 책을 읽는 내내 왠지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에 나'라는 존재가 '어릴 적 기억 속에 나'라는 존재와의 대면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은가 보다.


70 ~ 80년에는 외딴 방이 유난히 많았나 보다. 어릴 적 기억 속에 나도 외딴 방에 대한 기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타지로 일하려 가신 부모님 때문에 동생과 둘만 남아 지내던 슬픈 기억속의 외딴 방, 시골에서 도망치듯 도시로 올라와 밤 늦게 들어간 좁은 골목길안에 작은 방, 몰래 스며든 젊은 날의 여자친구 자취방, 담배와 술냄새에 절은 대학교 동기 자취방 등등


작가의 외딴 방 생활은 '희재언니'라는 인물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이후 그는 외딴 방의 기억들을 외면한다. 마치 10대 후반이 인생에서 지워진 것처럼...


하지만 그 지워진 인생 속에서도 많은 관계들이 있었다. 자기들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많은 인생들이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작가라는 직업을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켰듯이 그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한 인생들이 특별한 존재가 된 인생과의 관계를 통해 특별한 존재라는 가면이라도 쓰고 싶어하는 ... 그런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많은 평범한 인생들이 작가가 지워버린 그 인생 속에 있었다.


그래서 글을 읽은 내내 속상했다. 작가가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고서 평범한 인생들과의 관계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만 '희재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특별한 존재가 된 작가에게는 특별한 존재로서 짊어지고 가야할 인생이 있음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평범한 존재들이 비참하지 않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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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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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만난 사람, 내가 겪은 일들의 집합이다. 그러한 사람과 일들로부터 격리된 나만의 정체성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관계다'는 이유이다.


신영복교수는 젊은 시절 20년을 감옥에서 무기수로 복역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참 깊이 있는 인간 성찰의 결과물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그 결과물로 새로운 심리치료법으로 제시한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화장, 성형, 의상으로 실현할 수 없는 것이 자기 정체성이다. 그것은 노동과 삶, 고뇌와 방황에 의해서 경작되는 것이다.

즉, 사람의 생각, 자기 정체성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이다. 누구의 생각이 옳다는 보장은 없다. 모두가 수많은 삶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등산로는 미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님으로 길로써 만들어진다. 즉 길은 관계의 흔적이고 소통의 결과로 생겨나는 '주름'이다.
내 얼굴에 하나둘 생기는 주름들이 모여서 나의 정체성을 이루었고 지금도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우리의 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이다. 변화는 결코 개인을 단위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 당면의 상황 속에서, 영위하는 일 속에서,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물이나 역사를 인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과 내가 맺는 관계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세계와 자기를 대면하게 함으로써 자기와 세계를 함께 깨닫게 하는 것이다.

자연은 하나의 가치, 일정한 형식이 없다.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최고의 질서, 가장 근본적인 질서, 그래서 가장 안정적인 질서이다.
이러한 자연과 대면하고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면 우리 삶 가운데 변화의 질과 높이는 얼마나 대단해 질수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자연과 진실한 관계 맺고자하는 것도 결국 우리 인간의 자고하는 욕심에 의한 것임을 생각할 때 자연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에는 우리의 그릇이 너무나 작다.


<인상적인 부분>

대전의 중동 창녀촌에 노랑머리라는 창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성직자가 이 노랑머리에게 여성다운 품행을 설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면서 그 사람의 품행에 대해서 관여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지요. 그것은 그 여자의 삶을 파괴하는 폭력입니다. 그 여자를 돌로 치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의 오만함과 천박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무지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선은 미덕으로, 위악은 범죄로 재단된다. 이것이 강자의 논리이다.

테러는 약자의 전쟁이고 전쟁은 강자의 테러이다. 우리의 현실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모순된 조어가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


명상은 현재의 공간을 벗어나는 '정신적 탈옥'이다.


여행이란 '떠나는 것'이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고, 자기의 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자기를 칼같이 떠나는 것이다.

그다음이 '만나는 것'이다. 자기를 떠나지 않고는 새로운 것을 만나기도 어려운 법이다.

그다음은 '돌아오는 것'이다. 종착지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 변화된 자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세상이 조금씩 변화해 왔다.

내용도 없으면서 지나치게 꾸미는 것보다는 차라리 다소 거칠더라도 진실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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