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 이펙트 -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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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범죄의 원인을 분석할 때 일반적으로 범죄를 범한 개인의 기질에 대한 분석을 한다.
하지만 저자는 개인의 기질뿐만 아니라 그런 범죄를 유발한 상황과 제도도 함께 분석해야 하고 이것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의 중요한 범죄자인 아이히만이 '자신은 독일의 법과 제도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듯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어진 많은 대량 학살 등은 개인의 기질만 아니라 시대적, 지역적인 상황과 사회적 제도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1994년 3달동안 80~100만이 학살된 르완다 대학살에 참여한 후투족의 한 군인은 "우리는 그저 명령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모두 열의에 넘쳐 축구장에 떼 지어 모여서는 한 몸이 된 듯 힘을 합쳐 사냥에 나섰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들입장에서는 단지 그 시대적, 지역적 상황에 순종했을 뿐인 것이다.

1971년도에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모의 교도소 실험이 실시되었다. 평범한 대학생으로 구성된 교도관과 수감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몇 주간의 실험에서는 매우 경악스러운 결과가 도출이 되었다.
놀랍게도 30년뒤 2004년 5월,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 아부그라비 교도소에서 이와 유사한 학대사건이 발생하였다.
아부그라비 교도소에서 평범한 젊은 미군병사들이 이라크 민간인 수감자를 대상으로 잔혹한 가혹행위을 저질러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주장하였듯 '영웅다움의 평범성'을 주장한다.
즉, 너무나도 평범한 우리가 상황에 순응하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악'이 될수도 있지만, 순응을 거부하고 이에 맞섬으로 영웅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커피타임에 한 직장 동료가 결코 가볍지 않는 지나가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거대한 제도적 폭력에 너무도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시대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가 거대한 권력에 쇄뇌되어 왔고, 그 거대한 권력을 느낄 때면 너무나도 무기력함에 그냥 숨죽이며 지내고 있다.
이런 악순환은 완전 무감각하며 시대에 순응하는 좋은 보통인을 만들어 간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가 자신의 딸을 위해 더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자신의 재산 99%를 기부했다.
우리도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영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혼자서는 힘들겠지만 함께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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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 현대 프랑스 철학총서 11
미셸 푸꼬 지음 / 인간사랑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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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고전주의 시대는 종교이념에 의해 지배받던 시대이면서 이성이 싹트던 시대이다.

이 시대 대감금의 역사는 과거 종교적 저주로 인정되던 나환자의 추방과 감금의 역사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경제적인 부흥으로 인한 신흥 부르주아세력과 극빈한 대다수의 시민들의 불평등의 심화는 결국 대감금의 역사를 만들어낸다.
'광기'는 이러한 17세기 대감금의 역사 속에서 빈곤 등과 비슷한 류로 함께 등장한다.

당초 격리조치는 빈민에 대한 구제와 복지와 함께 고려되었다. 하지만 빈곤의 원천을 '게으름'으로 보고 이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노동'을 구상한다.
즉, 격리된 시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사회적 기여를 고안해 낸 것이다.

어찌보면 신흥 부르주아에게 이들의 값싼 노동력은 좋은 먹이감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노동의 대가는 일반적인 대가의 1/4수준이었다고 한다.
다만, 값싼 노동력의 등장은 또다른 실업을 낳고 실업은 또다른 빈곤층을 양상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노동의 부재는 나병과 동일시되었던 것같다.
나병이 종교적인 저주이듯이 노동도 원천적으로 아담의 원죄에서 도래한 것이다. 때문에 나병을 통한 구원과 같이 노동을 통한 구원을 생각한 것이다.

미셸 푸꼬가 중요시하는 것은 이러한 모든 사회적 행태가 겉으로는 '이성'에 의한 산물로 보이지만, 그 이면은 '권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가 이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불명확한 정신의학적인 진단과 그것에 대한 대처는 결코 이성적이지 않았다.
도리어 종교적인 명확치 않은 판단에 의해서 시민 100중 1명이 장기간 감금을 경험하는 엄청난 대감금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곳에 권력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파놉티콘(Panop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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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공존 - 하랄트 뮐러의 反 헌팅턴 구성
하랄트 뮐러 지음, 이영희 옮김 / 푸른숲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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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1997년)'에 대한 반박으로 하랄트 뮐러가 '문명의 공존(2000년)'을 발표한다.


헌팅턴에 따르면, 세계사는 국가간의 대립과 이데올로기 간의 대립을 마치고 이제 '문명'간 대립 단계에 들어섰다.

서구가 제국주의의 우월감을 즐기는 동안 그 밖의 세계는 회한을 쌓아왔다. 이는 공동의 적인 공산주의가 붕괴된 현재, 서구 가치에 대한 격렬한 비판의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문제는 아시아의 경제 성장, 이슬람의 인구 성장 등 세력 관계가 비 서구 세계에 유리하게 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이러한 비판이 더욱 거세지는 현상이다.
비 서구권인 아시아, 이슬람, 일본 등 각각의 문명들은 문명별로 핵심국을 중심으로 연합하고 이러한 연합된 문명간의 갈등은 제3차 대전의 도화선(특히, 이슬람의 피의 경계선)이 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변화된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다면 서구에 대한 비 서구의 반격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헌팅턴은 특별히 이슬람문명을 가장 위험한 문명으로 지적하는데 최근 IS의 테러 등이 빈발하고 있는 시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뮐러는 이런 헌팅턴의 주장을 1)현대사회의 '탈신화화'와 2)국제협력과 교역 활성화를 통한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반박했다.

1)현대사회의 탈신화화

헌팅턴은 문명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종교를 들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탈신화화' 경향은 더이상 종교를 통한 연합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최근 이슬람국가를 외치며 민간인들을 향한 무차별 테러를 일삼고 있는 이슬람권조차도 종교적 연합은 소수 근본주의자들에 국한된 주장이다.
1991년 제2차 걸프전쟁 당시 이슬람 국가들은 '거대한 사탄' 미국에 저항하는 손가락질 한 번 하지 않았고, 밉살스러운 경쟁자 이라크에 훨씬 힘이 센 서방 군대가 폭격을 퍼붓는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보기만 했을뿐만 아니라 상당수는 '서방' 동맹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2) 국제협력과 교역 활성화를 통한 '세계화'

얼마전 저녁식사 중 브라질이 1930년대 대공황이후 최악의 경제침체를 맞이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브라질은 세계 9위의 남미 최대 경제 대국이다. 하지만 독재와 억압에 의한 비정상적인 근대화 과정과 이로 인한 부패와 빈곤은 GDP 세계 9위라는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부채가 GDP 대비 66%라는 오명까지 함께 하도록 했다.
최근 국제사회는 영토확장을 통한 국가세력 확장보다는 경제와 복지에 몰두하고 있다. 때문에 국가간의 경제 교류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경계까지도 허물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국제사회는 더이상 종교 등의 요소가 연합의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특정 국가의 자국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 행사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문명내에 핵심국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한 국가가 같은 문명내 다른 국가들을 어떤 수단으로든 지배하거나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체제는 지배받는 국가들의 경제와 복지에 좋지 않는 영향을 끼칠 것이 자명한 것이다.
예로서 아시아 보면 중국이 아시아의 전통적인 패권국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구열강과 일본에 의한 쓰라린 경험은 자존심 회복과 확고한 지위 확보를 절실케 할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잠재적 패권 추구는 역내 다른 국가들을 긴장하게 하고 세력 균형을 위한 연맹, 미국과 같은 외부 세력과 연대를 형성하게 하고 있다. 중국의 오랜기간의 거대한 영향력도, 뿌리깊은 유교와 불교의 영향력도, 아시아권의 연합을 위한 고리가 될 것같지는 않다.

뮐러의 결론은 모든 국가들이 근대화의 과정과 특히 서구와의 접촉 및 교류의 결과 공통된 특징을 가지게 되었고 앞으로도 자국의 경제와 복지를 위해서는 서구와 지속적인 국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NGO 등 국제기구의 활성화는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뮐러는 서구의 사상이 최상의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괜찮은 이념이라고 말한다.
40년대 초부터 서구는 협력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연결망을 만들어왔다. 협력의 원칙은 자유 무역, 공동 경영, 국내 정치 안정과 복지, 성문화된 국제기구를 포괄한다.
뮐러는 이러한 서구의 원칙에서 벗어나 보호주의로 후퇴한다면 복지 효과가 크게 줄어들 것은 물론이며 국제 경제는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뮐러의 서구 중심 사상은 서구의 이기주의적이고 비신사적인 결정들 조차도 쉽게 인정해 버린다. 물론 이를 비판하고, 이러한 행태가 이슬람권 등 제3세계가 서구를 쉽지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서구가 비교적 더 우수하다는 것이 결론이고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한 세계화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견해로 보았을 때 서구의 형태는 비록 물리적인 침략은 아닐지라도 경제와 사상에 의한 제국주의의 돌연변이라는 생각이 깊게 든다. 현대는 비록 물리적인 영토의 경계는 공식적으로 명확히 그어져 있지만 서구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은 이미 여러 국가들의 국경을 넘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침략 행위는 위에서 언급한 브라질 같은 제3세계 국가들을 끊임없는 신음을 요구하고 있고 침체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하고 있다.

헌팅턴도 뮐러도 결국 서구 중심의 견해이고 서구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과제를 논하고 있다.
헌팅턴은 말했다.
비 서구가 부상하고 있다고...
뮐러는 말했다.
비 서구가 살 길은 서구화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우리는 서구도, 비 서구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우리를 규정하고 우리의 미래를 규정해 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서구가 서구 중심의 세계를 재편하듯 우리는 우리 중심의 세계를 재편할 것이고 그것은 서로가 동등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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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증보판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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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자들이 밝힌 인간의 마음은 결코 초월적인 영혼이나 합리성이 세속적인 육체를 움직이는 매개체가 아니었다.
수백만 년전 인류의 진화적 조상들에게 주어졌던 다수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설계되었다. 톱이 판자 자르기, 드릴이 구멍 뚫기를 각각 잘 수행하게끔 특수화된 공고들이듯이, 인간의 마음은 각각의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특수화된 수많은 심리적 '공구'들이 빼곡히 담긴 연장통이다. - 오래된 연장통 중 -)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진화심리학을 소개한 책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의 마음 역시 자연선택의 산물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수백만년동안 개체번식상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 자연선택된 다양한 심리 기제들의 묶음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결론 짓고 있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로 이어지는 진화론이 심리학에 접목된 것이다.


인간관계와 둘러싼 다양한 결정과 현상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여전히 모든 것이 가설 수준이고 명확한 확답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된다면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을 너무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그 누구도 명확히 답을 제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진화론이 현 시대의 우리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해서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불과 몇백년전만 하더라도 '지구가 둥글다'라는 사실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았고 과학적이지 못하였다.


이 책이 진화심리학를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용상 대립이 아닌 서로에 대한 존중과 겸손한 경쟁이 필요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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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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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즉 대체로 별다른 의식 없이 사는 백인들의 편의를 위해 언제까지고 대다수가 가난과 절망, 착취, 기아 속에서 신음해야 하는 세상을 거부하는 인간의 이성 속에 희망은 깃들어 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 속에는 도덕적인 요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흔들어 깨우고,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북돋우며,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 탐욕의 시대 중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과 때문에 도덕행위를 '수행'할 능력도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아이히만은 타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던 것이다.

아이히만은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목표는 조직내 출세라는 개인적인 욕망이었다. 그는 스스로 그 누구도 죽이라고 지시하거나 죽인 적이 없고, 다만 국가라는 조직 내에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충실한 임무 수행은 수십만명의 유태인의 학살이라는 결과는 낳았고 그 범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사형당했다.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의 행태도 결국 아이히만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단지 '이윤 극대화'라는 자신들의 목표에 충실했을 뿐이고 이것은 민간기업으로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단지 하나의 기업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파급효과도 엄청나다. 모든 것을 배제한 단순한 이윤 극대화라는 목표지향은 수천만명의 기아와 죽음을 대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혁명이후 대량생산을 통해 어느때보다도 풍요로운 이 지구상에서 5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현재 세계의 농업 생산력으로는 120억 명을 정상적으로 먹일 수 있다. 반면, 오늘날 지구의 인구는 62억 명 정도로 추산된다.
즉, 기아는 절대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기아로 죽은 어린아이는 살해당한 것과 마찬가지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편성된 세계의 경제, 사회 정치적 질서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무역장벽 철폐와 세계경제의 통합을 주장한다. 골리앗과 다윗의 말도 안되는 싸움에서는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과 극빈국인 제3세계 국가들의 싸움에서도 과연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기대해야만 할 것인가?

(출생의 우연이라는 수수께끼는 죽음만큼이나 신비롭다. 나는 왜 유럽에서 태어났는가? 어째서 잘 먹고, 가진 권리도 많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며, 고문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백인으로 태어났는가? 나는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째서 뱃속에 기생충이 우글거리는 콜롬비아의 광부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을까? 페르남부쿠의 혼혈인 카보클루는? 염산에 의 해서 얼굴이 일그러진 치타공의 벵갈 여인은?

그들은 그렇게 사는데, 나는 왜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이들 우연의 희생자 한 명 한명은 나의 아내,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나의 친구 혹은 나의 삶을 구성하며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다.

출생의 우연이라는 요소를 제외한다면, 나와 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갈라놓을 다른 요소들이란 전혀 없다. - 탐욕의 시대 중 -)

배고픈 그들이 쓰레기통의 뒤지면서 수치심을 느끼듯 우리들은 그들을 방관하면서 수치심을 느낀다.
다국적 기업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들을 방관하듯 나와 상관없는 일로 돌려버리고 그들의 방관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쩌면 다국적 기업의 욕심채우기를 지원하고 있는 한 축일지도 모른다.

아이히만은 누구도 살인하지 않았다. 우리들도 누구도 살인하지 않았다. 다만 아이히만처럼 우리들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고 때문에 정의롭지 못한 구조에 순응하고 그 피해자들에게 무관심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다윗의 옆에 서서 골리앗과 싸울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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