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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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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가 주는 낭만

여수 밤바다~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는
밤바다가 주는 로맨틱한 로맨스
낭만 + 낭만
설렘+설렘
1+1
의 절정의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전화를 건다

사랑이란
그런 로맨티시즘에 빠져
무작정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여수 밤바다의 조명은
과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다
그래서 더 낭만적인 감성이 끼어들지 않았을까

화려한 야경의 절정이 있는 곳
부산의 밤바다들~
마치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초록 등불‘ 같다
잡을 수 없는 흔들리는...
그 황홀함에 자신을 잃어 버린다

여수 밤바다는 아직 여유가 있다
모든 감정이 소중해지는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정리되지 않은 아기자기함이 살아 있다
주눅들지 않은 정겨움이 있다

아직은 끼어들 수 있는 여백이 있는
여수 밤바다~
사랑하는 이들
낭만에 취해 감성에 취해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
생각나는 이
.
.
.
나도 모르게
여수 밤바다를 흥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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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8-15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우 아름다워요!

이뿐호빵 2020-08-15 22:45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사진 찍는 기술이 미흡해서 ...
눈에만 담았네요~

초딩 2020-08-15 23:02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전 첫 번째 사진 특히 좋아요 ㅎㅎㅎ
좋은 밤 되세요~

이뿐호빵 2020-08-1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좋은밤되세요~
 

20세기 대표적 사상가

그 자신이 아픔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

참혹했던 시간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절망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존재의 의미를

저술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
그가 창안한 ‘로고테라피‘ 실존적 분석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혼란스러움을
그는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에 집중했다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실된 강제수용소의 참혹한 상황에서도
별것 없는 것에서 자신의 시련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밖에서 오는 운명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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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김시식지(김始殖池)

ㅡ우리나라 최초 김 양식의 시작
광양 김시식지

목적지 여수를 향해 자동차 바퀴는 열심히 굴러갔다.
올여름 휴가는 무조건 ‘당일치기‘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여파도 있지만 아이들의 방학이 들쑥날쑥이다.
일정도 일정이고 여러가지 이유가 겹쳐 무리하지 않고 최선의 방법은 2시간 남짓 ‘당일치기‘가 가능한 곳을 찾아 조용히 다녀오는 것이었다.

여수 밤바다가 보고 싶었다.
충동적이지만 떠났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이제는 여행을 떠날 때 계획이란 걸 세우지 않는다.
뭐, 귀찮은건 기본이고 계획 잡으며 이래저래 검색하고 하는 것은 예전에 할만큼 했다고 말하고 싶다. 10년의 가족여행 장기 프로젝트가 끝난지 몇 년이 지났다. 이제 여행은 무작정 떠나고 가면서 알아보는 식이다. 지나가다 궁금하면 방향을 트는 과감한 여유는 이미 오래전 초월한지라 시간에 쫓기는 여행은 멀어진지 오래다.

광양을 거쳐 여수로 향하던 도중 우연히 ‘이정표‘에 적힌 ‘김시식지‘라는 표지를 보았다. 김서식지도 아니고 김시식지...
궁금해 핸들을 돌렸다.

광양 ‘김 시식지‘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을 김을 양식한 김여익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자그마한 김에 대한 역사관이다.
지금은 낯설지만 과거 광양은 김을 양식하며 생계를 이었다고 한다. 그런 광양의 지금은 광양 제철소가 광양을 먹여 살리고 있다.

과거의 김이 먹여 살린 광양과 현재의 광양 제철소의 ‘쇠‘가 먹여 살리는 광양은 아이러니하게도 金으로 먹고 산다 .

아주 작은 역사관,
그냥 지나치면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곳에서 ‘하루 인연‘을 만났다.
꼭꼭 숨어있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신 문화 해설자님, 호기심에 잠시 들리고자 내린 곳에서 만난 소중한 시간이었다.
책에서 읽을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은 너무나 흥미로웠고 많은 질문이 오가면서 ‘광양‘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이미 ‘여수‘는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다보니 어느새 해설자님의 열정이 이것저것, 구석구석 모든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계셨다. 별 것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저 가볍게 들리고자 한 곳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접하고 깨닫게 되었다.

오늘 또 한번의 소중한 ‘하루 인연‘에서 시작된 이야기
‘각성‘은 계획에 따라 일어나는게 아니라고 하더니 정말 뜻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났다.

오래전 구미 답사에서 웃으면서 들었던 이야기

넓은 바다에 사는 거북이
바같세상을 보러 나오려다
바다에 둥실 떠 다니던 구멍 뚫린 널판지에
목이 끼여 세상을 볼 확률로 만난다는
‘하루 인연‘

이 ‘하루 인연‘은 어찌보면 참으로 귀한 인연이다. 그리고 선택받은 인연이다.
드문 확률에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인연이 하루 인연인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시작된 동행은 매시간 꽉찬 열정으로 한 여름의 강렬한 태양보다 더 뜨거운 시간이었다.

아주 작은 역사관에서 만난 ‘하루 인연‘의 소중한 시간은 살면서 또 한 번의 깨달음을 던져준다. 나와 관계 지어진 세상 모든 것들의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뜻하지 않는 곳에서 찾아오는 뜻밖의 즐거움은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배움의 기쁨은 그 여운이 길기도 하다.

깊이깊이 새겨진 기억은 나를 문득문득 행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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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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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게 요구되는 법이다


톨스토이, 러시아가 낳은 대문호, 위대한 사상과 , 혁명의 거울, 휴머니스트, 사회 비평가 하나의 수식어로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 할 정도로 많은 수식어가 그의 위대함을 말해주고 있다.

<안나까레니나>는 그의 재능이 한창 절정에 달해 있을 때 집필 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책은 많은 이에게 읽힌 고전 중의 고전이기도 하다.
안나와 레빈의 이야기가 두 축을 이루면서 겹겹히 전개 된다. 이렇게 이야기들은 적잖은 페이지를 자랑하는 벽돌 책이 되었다.
고위 공직자의 아내인 안나, 다른 남성과 사랑에 빠지면서 비극적 운명을 맞는 이야기
연모하던 귀족 영애에게 청혼하여 이상적인 가정을 이뤄가는 농촌 귀족 지주 레빈의 이야기들

결혼, 가정의 불행과 행복의 문제, 당시 러시아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 그 시대를 사는 개인들의 내적인 방황을 생생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책은 ‘톨스토이‘의 모든 사회적, 윤리적, 종교적 고민들이 집약된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이라 불린다.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는 고전 소설을 다시 읽는 다는 것은 끈기가 필요하다. 어떤 계기가 있지 않음 개인적으로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안나까레니나> 역시 너무나 유명한 고전이며 영화나 뮤지컬 등 다수의 작품으로 소개되어 내용면에선 익숙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책은 분량 또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읽는 내내 안나와 레빈의 삶에 빠져들었다. 전자책이라는 매체의 아쉬움은 책의 초반 몰입을 떨어뜨리는 걸림돌이 되었지만, 점점 인물에 집중할수록 몰입의 장애는 사라졌다.

이 책을 편애하는 동안, 틈틈히 읽던 다른 책들의 집중도는 떨어지고 주변부로 잠시 밀려나기도 했다.
대부분의 고전, 학창시절 의무감에 의해 읽었던 책들은 거의 감흥이 없는 형식적인 맥락만 파악한 책들이다. 그래서 나에게 고전들이란 몇 개를 제외한 책 말고는 거의가 사전같은 존재로 남았던 것 같다. 없으면 안되고 꼭 있어야 하는 책, 그래서 나의 머리 한 켠에 묵직하게 자리는 잡고 있지만 쉽게 건드리지 않는 책이 되버린 것이다.
<안나까레니나> 또한 그런 책이었다. 그저 가정을 버린 한 여자의 불행과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레빈의 시간만을 기억하며 톨스토이의 두꺼운 고민들을 몇 줄로 요약하며 지내왔었다. 하지만 다시 읽는 지금, 놀라움이다.
안나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곤 하고 레빈의 결혼생활에서 나의 시간들이 보인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가슴으로 들어왔다.

이야기의 스토리는 너무나 유명해서 말한다는 것 자체가 사족일 것 같다.
내게 다가온 <안나까레니나>는 불륜을 저지른 불경스런 인물도 아니고 자신이 중요했던 이기적인 인물도 아니다. 그저 살려고 발버둥 치는 물 속에 빠진 위태로운 한 인물이었다. 당시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서도 높낮이가 달랐다.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언제나 분명한 남자들은 자유로운 선택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당시 여성으로서는 오로지 수동적으로 상대를 기다려야 되는 것이 처녀들의 미덕이었다. 그래서 여성의 눈에 비친 남성들이란 눈에 보이는 액면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게 요구되는 법이다. 그 진실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기회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을 안고 결혼한 안나에게 결혼생활은 ‘현상유지‘를 위한 그림자 부부로서의 시간이었다. 그녀의 남편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자신의 명예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사람이다. 고위 공직자의 이상적인 결혼의 목적은 이상적인 가정과 자신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는 역할만 강조한 채 평온한 현상유지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도 안나의 불륜으로 인해 원치않게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측은지심‘을 경험하는 감정은 아내를 ‘용서‘하기에 이른다. 그녀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임박한 상황에서 그는 그녀의 고통을 가엾이 여기게 되고 그 옆의 ‘브론스끼‘ 마저 연민의 감정에서 용서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안나가 눈에 들어온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에게 ‘용서‘는 안나에 대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요즘 느끼는 것이지만 관계에 있어서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관계에서 어긋남이란 서로를 이해하는 타이밍이 빗나간 것이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은 모든 에너지를 한 곳으로 집중적으로 쏟아 붓는다. 그래서 주변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사랑의 감정에도 각자가 지향하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 목적이 다르면 이 타이밍은 더 만날 수 없다. 안나와 알렉세이 알렉산드롤비치의 관계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을 읽는 줄곧 이 부부에게 안타까운 미련이 남았다.

몇 년 전에 봤던 영화 <<커피메이트>>가 떠오른 건 안나의 심정을 내가 조금이나마 이해한 뒤였다.
인영과 희수의 관계에서 브론스끼와의 관계가 인영과 남편의 관계에서 안나와 알렉세이 알렉산드롤비치의 모습이 보였다.

˝경건하고 도덕적이고 정직하고 영리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내가 본 것을 보지 않잖아. 지난 8년 동안 그가 얼마나 내 삶을 질식시켜 왔는지,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던 모든 것들을 얼마나 짓눌러 왔는지를 그들은 모르잖아. 내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살아 있는 여자라는 점을 단 한 번도 그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라. 그가 매사에 나를 모욕하고 자기만족을 맛보았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고. 나도 내 삶을 정당화할 길을 찾고자 온 힘을 다해서 애써 오지 않았겠어? 그를 사랑하려고, 이미 남편을 사랑할 수가 없게 되었을 때는 아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겠느냐고! 하지만 때가 되었고, 이제 깨달았어.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일 수 없다는 걸, 나는 살아 있다는 걸, 내 탓이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이런 여자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는 여자로 만들었다는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과 ‘사랑이 필요했던 사람‘
이 불완전한 관계는 이미 ‘사랑‘의 타이밍이 어긋났다.
서로가 이해받길 원하는 여느 부부의 관계처럼 대놓고 싸우지도 못하는 감정은 결국 묵살되었다. 그리고 뜻하지않게도 안나의 사랑은 다른 곳에서 찾아 왔다. 그 사랑은 가시적인 사랑도 아니고 솔직하다. 그동안 몰랐던 설레임과 벅찬 마음을 감줄 수 없는 것은 안나에게는 살기 위한 몸부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관계에서 안나의 사랑은 불경스런 프레임에 갇힌다. 시대적 배경이 안나를 비도적인 여성으로 비추지만, 이런 안나의 사랑을 이해하는 이가 과연 지금도 얼마나 될까. 세상이 변했다고 한다. 여성의 인권이 그리고 지위가 예전에 비해 훨씬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여성성과 희생을 강요한다.

결혼이 목적하는 바가 무엇일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톨스토이 그 조차도 결혼의 권태기를 겪었고 힘든 시기를 넘겼다고 한다. 그런 그의 고뇌가 수없이 쌓여 이 책에 고스란히녹아 있다. 그리고 나는 격한 공감과 몰입에 흥분하고 있다.
마흔 중반 필독서, 지금 시점에서 와닿는 이야기는 내가 어느정도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해한 것이 바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젊은 날의 나에게 의미 없었던 것은 당연한게 아닐까

레빈과 키티의 결혼 생활
키티 또한 남성을 바라보는 시대적 관점은 멀리서 자신의 눈에 비친 것에만 의지해야 했다. 그녀의 처음 선택은 ‘브론스끼‘의 매력에 빠져 ‘레빈‘를 거절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선택이 진정 그녀의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투른 감정에 대한 이해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듯이 키티도 레빈에 대한 감정을 뒤에 알게 된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키티와 레빈은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레빈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현실은 그에게 혼란스런 시간이었다. 그 속에서 무던히 자신의 일을 찾고 척척 해 나가는 키티에 대해서도 레빈은 낯설었다.
결혼에 대한 로망을 누구나가 꿈꾸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그래서 결혼 생활이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결혼 후 여자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위해 애쓴다. 둥지를 틀고 살림을 살면서 삶을 터득하면 배워나간다. 키티 또한 마찬가지다. 반면에 레빈은 자신이 생각한 이상에서 점점 멀어지는 현실을 직면해야 했다.

결혼 후에도 여성성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심 남성의 이런 관점은 여우같은 아내를 바라는 심리랑 그 맥락이 같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 그 위대함과 애인처럼 애교섞인 활발함의 여성을 버리지 못하는 심리는 레빈에게도 비춰졌다. 레빈의 혼란스런 감정에서 엿볼 수 있었다.
형의 죽음과 키티의 출산을 지켜 본 레빈은 슬픔과 기쁨이라는 감정도 비슷한 감정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 슬픔도 이 기쁨도 똑같이 삶의 평범한 조건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일상 속에서 고차원적인 무언가를 엿볼 수 있는 틈새라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벌어지는 상황이 힘들고 고통을 수반한다는 점에서도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이성으로는 따라잡을 수도 없는 높은 경지로 영혼이 오묘하게 고양된다는 점에서도 동일했다.˝
(2권,p894)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무시무시한 시간을 보낸 뒤 찾아온 아이.
레빈에게 다가온 ‘아이‘의 존재는 당혹스럽고 낯선 존재였다.
레빈의 사유는 점점 깊어진다. 그리고 일 년 내내 철학책을 읽는다.
무신론자인 레빈은 무언가에 집착하는 삶, ˝그곳에 집착하는 순간 답은 더 멀리 간다는 사실과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 채 삶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들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으며, 그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어떤 일이 더 중요한지도 알게 된다. 삶에서 오는 고민에서 레빈은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점점 안정을 찾게 된다.
결국, 삶 자체가 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엇이 나쁘고 좋은지에 대한 지식들을 통해서, 이러한 지식은 자신이 획득한 것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주어진 것이란 것을 레빈은 깨닫는다.

˝이성의 오만, 이성의 사기˝

유한함과 무한함의 차이에서 오는 삶의 괴리감에서 고민하는 레빈은 삶을 절대로 시시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도덕적 가치관은 공공의 안녕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결코 전쟁을 용납할 수 없는 자세

˝공공의 안녕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는 몰라도 그것의 달성이 오로지 개개인에게 계시되는 선의 법칙을 엄격하게 이행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제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전쟁을 바라거나 주장할 수 없었다.˝

리얼리즘 소설, 너무나 실감나는 묘사에 감정이입 제대로 하게 된다.
마흔 중반에 다시 읽게 된 <안나 까레니나>는 지금 시기에 읽으면 누구나가 감흥이 남다른 책이 될 것이다. 내 나이(마흔 이후) 필독서로 적극 강추하고픈 책이다.

이 책의 첫 문장

˝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하다.˝

이 문장이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불행은 지극히 구체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살면서 겪는 일들이 나에게 ‘고통‘으로 구체화 되어 행복보다 불행으로 더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인생 중 어느 시점, 지금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심오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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