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명저 70권

간략한 지침서
최소한 이것만은 꼭 읽어보자
책을 선정할 때 도움이 될까..해서 주문한 책
그래도 나름 접했던 책이 있다니 반갑기도하고
앞으로도 읽어야 하는 책들의 무한함에 더 설레이기도 하고
시대별로 일단 정리되어 있어 지침서로는 딱 좋다

반면에 혹 읽은 고전들이 있다면
이 책은 정말 부족한 정보들이다
몇몇 책들의 간략한 설명은 진짜 요약본이기 때문이다

항상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순서도 엉망이고
무엇보다 부족한 시간에서 나름 현명하게
다양한 책을 접하기 전 만나야 하는 책으로 선정했기에
그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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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8-30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즘 이런 책들이 많은 것 같아요.
니즈는 많은데 딱 많에 드는 지침서 같은게 없는 것 같아요. 좋은 밤 되세요~

이뿐호빵 2020-08-30 23:48   좋아요 1 | URL
ㅎㅎ많은 고전들을 섭렵하기는 그 방대함에 제가 못 따라가는...약간 낚인 것 ㅋ같지만 참고하기엔 괜찮은 것 같아요
굿밤 되세요~
 
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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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두 번째 희곡 <심판>

전생과 환생의 이야기로 200페이지 남짓한 책


무대, 수술실과 천상법정

등장인물, 아나톨 피숑(피고인)
카롤린 (피고인 측 변호사)
베르트랑 (검사)
재판장 (가브리엘)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아내에게 충실했고 ,
좋은 가장, 좋은 카톨릭 신자, 좋은 직업인
나름 잘 살았다고 자부하는 아나톨 피숑

하지만

폐암으로 3년간의 투병 생활을 한다. 그리고
그는 오늘 병원 수술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휴가철의 절정인 8월15일,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두 명의 외과 의사들의 일상적인 대화는 갠적으로 불편한 기억을 상기 시킨다. 수술 침대에 놓인 육체가 단지 고깃덩어리에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그런 불쾌한 대화들 )

죽음 후 그는 나름 잘 살았는지 천국 티켓행을 확보하고 천국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받아 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우여곡절 끝에 받아 들이게 된다. 이제 그는 환생 여부를 위해 심판을 받게 된다.

천상 법정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된 아나톨 피숑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그가 살아 왔던 지상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법정은 그의 지나온 삶을 하나씩 따져가며 평가한다.

그의 수호천사이자 변호를 맡은 카롤린
그의 구형을 맡은 검사 베르트랑
뭔가 허술하고 정신없어 보이는 재판사 가브리엘

운명의 장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카롤린과 베르트랑은 전생의 부부였다.
이들은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애증관계다.
(사랑하고 증오하고)
또 아나톨 피숑의 지상에서의 직업은 판사였다.
천상 법원에서 지상의 판사였던 사람과 천상의 판사가 만난 것이다. (공통점 바쁘게 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하고 그러면서 내린 오판들에 대해 어쩔 수가 없다 고의가 아니다 )

그의 삶의 여정들
잘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선택들, 신의를 지키면서 거짓보다 진실을 가깝게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닥 잘 살았던 삶도 아니었다.
직설적으로 이는 용기보다 비겁함을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편안함을 선택한 결과들이었다.

‘‘인간들은 자신의 행복을 일구기보다
불행을 줄이려고 애쓴다 ‘‘

그를 변호한 카롤린의 말이다.
거시적인 관점보다 미시적인 코앞의 것에 충실한 삶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말한다.

천상 법정에서 아나톨 피숑은 다시 ‘삶의 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다음 생을 살기 위해 리셋 작업에 들어가고 그는 처음부터 다시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심판을 받고 형을 구형 받은 아니톨은 자신의 구형에 대해 불복한다

지상에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다시 무지해지는 삶은 싫다.
삶은 언제나 두렵다
천국에서 항소란 없다.
게임 오버 상태에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만 있을 뿐
그런데 다시 똑같은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또 똑같은 삶을 반복할 것이다. 아나톨은 안다. 그래서 제안한다. 천국의 재판관이 되고 싶다고.

환생을 포기한 아나톨 피숑은 과연,
뒷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그건 읽는 분의 몫으로 ...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속 유머는 실소를 자아낸다.
그리고 그가 숨겨논 방대한 의미들을 찾는 재미도 있다.

예를들면..
무대를 설명하면서 나오는 ‘붉은색 태피스트리‘는 과거 색의 빈곤기(인공염료가 나오기전)에 붉은 염료는 아주 귀한 염료였다. 그래서19c 이전 위엄과 부를 상징하는 색이기도 했다. 또 대천사가 손에 들고 있는 저울에서
기독교의 가브리엘, 이집트의 오시리스를 융합시켰다. <사자의서>를 연상하게 하는 깃털과 심장으로 죽은자를 심판하는 재판관 오시리스.(양심으로 상징되는 심장의 무게는 깃털보다 가벼워야 한다. 이때도 착하게 살아야 되는 것은 진리였다)

그의 책은 무겁지 않아서 좋다. 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다.
유쾌하게 다가와서 기분좋게 와닿는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처럼 머리를 깨우는 각성제 같다.
이 책이 지금 내 손에 있는 이유조차 생각하게 된다.
연관성 없는 것에 또 억지로 의미부여 중인가 생각도 들지만 지금의 현실과 너무나 가깝게 관련되어지는 건 분명 억지는 아닌 것 같다.
작가는 시대를 살면서 자신의 책에 그 시대를 녹인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또 한 번 느낀다.
그가 사는 프랑스의 사회문제가 한 나라의 국한된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결국엔 우리나라 문제이기도 하다.
책 속에 녹아 있는 많은 풍자를 봤다.

그의 유머러스함에 실소를 내 뱉었지만 지금의 현실과 마주한 나는 많이 씁쓸하기도 하다.
다행히 책과 함께 온 유리잔에 시원한 아이스커피와 함께한 시간이 나름 위안을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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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주는 3번의 즐거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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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힘 - 미래의 최전선에서 보내온 대담한 통찰 10
고장원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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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진화할 것인가 퇴행할 것인가

˝성형에 버금가는 유전자‘조각‘ 수술이 성행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기 아주 애매한 상황
뭔가를 단언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 주는 상황 유전공학을 이해한다면,
왜 이런 질문과 답에서 ‘아버지인 듯 아버지가 아닌 듯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는 일단 친족 상속권과 재산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의 업무 영역이 더 넓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무슨 말이냐 할지도 모른다.

300년 전에 죽은 누군가의 생식세포나 체세포가 냉동보관되고, 그 세포들로 합성한 정자를 자신의 난자와 결합시켜 임신한 여인. 그녀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는 당연 300년 전에 죽은 이다. 이는 자신의 후손을 위해 다시 한 번 유전공학을 이용해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유전학자들의 개입이 필요하다.
자신을 태어나게 한 부모라는 개념에서 보면 생물학적 아버지와 어머니뿐만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한 유전공학자의 개입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의 보편적인 생각으로는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초래할 수 있는 문제는 늘 돈에 관련한 사건 사고가 될 것이다.

유전공학으로 인한 혈족관계에 대한 상상은 1970년대에 폴란드의 과학소설 작가 스타니스와 프 렘이 내놓은 것으로 당시는 허무맹랑한 판타지로 생각될 지 모르지만 앞으로 30-40년 후면 실감나게 될 것이라 예언아닌 예언을 했다. 지금 이 판타지가 실현 가능한 시대를 맞고 있다. 2003년 과학자들은 이미 인간 게놈지도를 완성했다. 그리고 이제 유전병 치료를 위한 많은 시도는 여러 분야에서 그 잠재력을 보이고 있다. 이제 가족이라는 개념도 달리 해석해야 될지 모른다. 기괴한 가족관계는 일상적일 수도 있고 막장 드라마의 요소는 이제 어색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의 발전이 가져다 준 혜택과 그 경계에 부딪히는 윤리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야 되는 SF소설과 영화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닌 것이다.

현대의 유전공학은 동물의 DNA에 인간의 것을 뒤섞어 종간 경계도 무시하는 중간자적 존재를 탄생시키는 일도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생체 이식 수술‘에 관한 기사문을 보았던 기억이 다시 살아난다.

뇌 이식에 관한 기사와 그 수술에 자원한 러시아의 컴퓨터 과학자 이야기는 솔직히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미국의 테슬라의 창시자 일론 머스크의 도전은 바이오 기업에서 설치류를 대상으로 하지만 뇌 이식을 위한 사전 단계의 실험을 위해 당국에 허가를 요청했다는 기사 등

반인반수가 등장하는 영화, 다른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SF의 힘은 유전공학이라는 과학적 진보에 앞서 여기서도 부의 격차는 불공평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책을 보면서 가장 관심사인 유전공학 chapter
여기서도 꽤 많은 생각들이 자리잡는다.

다음 chapter는 우주개발이다.


SF장르를 좋아한다.
과학소설과 과학영화가 주는 많은 여지와 여운을 좋아한다. 그리고 매우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잔혹함이 적나라하게 노골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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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식단이란


어느순간 바쁘다는 핑계로 내 몸에 아무거나를 막 집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늘어난 몸무게는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정도가 되었다. 몸무게 변동이 거의 없었던지라 체중에 그닥 신경쓰지 않고 살았었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어느새 슬금슬금 쌓인 지방이 감당불가다. 그래서 요즘 살면서 첨으로 ‘다이어트‘라는 단어에 관심이 간다.

잘 먹고 운동하기

나에겐 쥐어짜도 생길까 말까한 의지가 바로 ‘운동‘이다.
여지껏 꾸준히 실천한 운동이라곤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숨쉬기‘ 운동이며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이 다였다. 운동의 필요성을 알지만 쉽지 않은 움직임은 유독 여기서 게으름를 피운다.
차라리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싶어 마음 먹은게 요즘 유명한 ‘간헐적 단식‘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군것질부터 끊고 과다탄수화물의 섭취를 줄이는 방식으로 식습관을 다시 개선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러던 차에 눈에 들어온 책들은 식사에 관한 책이며 비만에 관한 책이었다.

<<식사에 대한 생각>>

평범한 식사가 사라진 식단의 ‘양극화‘

건강 불평등을 일으키는 요인 중 하나인 패스트푸드 음식들
지역마다 나는 식재료의 음식과 고유의 음식이 사라지고 있다.
전 세계인의 비슷한 식사는 이제 비슷한 입맛으로 바뀌어간다.
넓어진 선택권으로 이제 우리의 식사를 대체할 음식들이 많다.
매일 끼니 걱정은 못먹는 굶주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먹느냐‘에 따른 걱정이다.
풍요속의 빈곤은 이럴 때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지.

‘‘음식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흘러넘쳐서 우리를 괴롭힌다. 속이 텅 빈 풍요다.˝

지금도 나는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다. 일상의 많은 고민들 중 식사의 고민도 무시할 수 없는 고민거리다.

현대인에게는 식사시간 조차 사치로 치부된다.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식사시간은 이미 접어둔 것 같다.
‘훌륭한 식사‘가 의미하는 것이 뭘까.
식사 준비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동력이 든다. 하지만 요즘은 이 모든 것을 줄일 수 있는 간편함에 익숙해져 간다.
지금 세대의 식문화는 배달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고 모든 절차는 사라진 채 포장된 음식을 소비한다.
내가 먹은 음식에 대한 인증샷은 필수처럼 되버린지 오래다. 그래서 sns상의 음식들이 다양한 것 같지만 결국에 비슷비슷한 음식들로 채워져있다. 먹지 않아도 먹은듯, 맛들이 짐작되는 음식들을 먹고 사는 것 같다.
식사를 같이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넘어 sns상의 사람들의 소통을 플러스한 현대인의 식사시간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 차원을 달리하는 시간이 된다.

˝음식이 곧 정체성이라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일 다중인격자다˝

식품 트렌드가 만들어 낸 변화와 문제

‘‘식재료의 변화와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이야기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브런치가 있는 카페로 가면서 새로운 음식에 대해 상상한다. 소셜 미디어가 우리 식생활에 너무나도 강력한 영향을 갖게 되면서 온라인은 나누고 싶은 음식들이 즐비하다. 그러면서 플레이팅을 위한 각양각색의 야채들과 과일들 흩뿌려 장식한 꽃잎들 sns가 만들어낸 유행이다.‘‘

이제는 전 세계인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이웃처럼 알 수 있다.
인간은 늘 식사와 관련해서 네오포비아(neophobia,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와 (neophilia, 새로운 것을 향한 사랑)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다고 한다.

퀴노아 종자의 소유권 문제, 식량 주권의 문제

아보카도, 이 낯선 과일이 언젠가부터 우리 식탁이나 마트에서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보카도 재배지 멕시코에서 생산량은 세 배나 늘었고 이는 산림 파괴와 지나친 물 사용으로 이어졌다.
식품 트렌드의 문제는 세계의 음식 소비 패턴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게 된다. 그러면 식재료를 더 많이 재배해야 하고 재배 경작지를 위해 산림을 파괴해야 한다는 문제를 낳는다. 무엇보다 생산자들의 고통은 그들이 부유해져도 위험에 처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변화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에 대해 따져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오늘날 식품 트렌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쁜 현대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즐거움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규칙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문제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책은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진짜 음식이 무엇인지조차 잊은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고 있다.

칼로리에 ‘가치를 입히는‘ 기업

우리가 먹는 음식은 예전보다 다양해진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을 만드는 식재료는 점점 단일화되어 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단일품종으로 대량 생산되고 그 식재료에 익숙해진 맛은 다른 품종의 재배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경제적 이유로 돈이 되는 것만 생산하게 된다.

건강한 음식에 대한 생각

완벽한 건강한 음식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건강한 음식과 건강하지 않은 음식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인이 집착하는 것이 ‘영양소‘이다. 그래서 식탁위에는 영양제가 골고루 구비되어 있다.

˝식탁에서 행복해지려면 음식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완벽한 식사를 위한 집착은 일상의 괜찮은 식사를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우리 앞에 놓인 음식의 이름을 알고 우리 입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의식하는 것이 좋은 시작일 수 있다.˝

이는 더욱 균형 잡힌 쪽으로 뱡향을 틀게 만들 것이다.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한 이해는 음식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의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식사시간을 위해 무언가를 투자해야 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원재료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생각은 적어도 바른 먹거리를 위한 노력이다. 원래 기름진 음식과 육류를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요근래 인스턴트 음식과 패스트푸드를 다량 섭취하는 나, 왠지 내 몸에 죄책감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소소하지만 별 것 없던 집밥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고칼로리 저영양의 식탁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되었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를 음식으로 한끼 때우는 식의 식사가 나의 삶의 질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에 대해 반성했다.

마지막으로 평범하고 그럭저럭 꽤 괜찮은 식단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먹거리 하나로 파생되는 사회 문제가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 또한 무시 못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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