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묘보설림 2
루네이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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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산업화라는 말은 인간미라는 말이 거세된 말처럼 느껴진다.

산업화라는 이미지는 내게 숨쉴틈 없는 바쁨과 휘황한 불빛의 이미지이지만 배면엔 지치고 힘들어하는 노동자의 얼굴이 붙어 있어 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더 이상 인간적인 걸 기대해서는 안되는 시대라는 말과 동의어처럼 느껴진다.

씁쓸할 뿐이다.


산업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고 신분의 이동이 있었으며 생활터전이 바뀌었다는 건 굳이 먼나라의 세계사를 들쳐보지 않고서도 충분히 알 수있다.

농자지천하대본, 농업을 국가 산업의 근간으로 삼던 나라에서 공업을 바탕으로 분골쇄신, 산업화를 이룩해 낸 대한민국의 역사만 봐도 산업화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정서를 바꾸어 왔는지 보면 된다.

산업화로 인해 겪어 내야했던 정신적 아노미 현상은 산업화를시도한 나라라면 어느 나라나 이런 현상에 대해 사회문제가 대두되고그런 문제를 다룬 문학이 있다.


자비는 대기아를 견뎌내고 산업화 시대를 몸으로 겪은 시골 소년 천쉬성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온 가족이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쉬성의 아버지 결단에 따라 마을을 떠나 도회지 삼촌의 집으로 향하지만 도중에 가족과 헤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삼촌에 기대어 겨우 공업학교를 졸업한 쉬성이 취직한 공장은 페놀을 생산하는 전진화학공장이었다.


"페놀에는 독이 있지만 매일 페놀과 함께하면 몸이 적응해서 괜찮아. 그러다가 퇴직을 하면 페놀이 없어져 암이 생기는 거야."

쉬성의 사부 말이다.

암이 안 생기게 퇴직하지 말라는 쉬성의 말에

"나는 반평생을 일했어. 하루도 빠짐없이 밤낮으로 일했지. 퇴직을 안 하면 아마 지쳐 죽을 거야."

라고 답을 한다.

이 대목에서 좀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였지만 고단한 노동자의 얼굴과 열악한 작업환경이 떠오르면서 선문답같은 사부의 대답이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구나 싶었다. 

노동자의 삶은 어디서나 팍팍하고 녹록치 않고 위태롭기까지 하다. 알면서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이 있고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쉬성은 격랑속에서  결혼을 하고 동료를 떠나보내고 우연한 행운도 잡게 되지만...


루이네는 사회주의 중국이 개방개혁으로 자본주의의 물결을 타면서 변하는 가치와 혼란을 담담한 문장으로 표현해 냈다.

감정의 고조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누구의 편도 아닌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일어났던 일이니 다만 전달할 뿐이다라는 마음으로 쓴 것 같았다.

후기에 보니 아버지가 설계를 하던 사람이었고 루이네도 공장이 삶의 터전이었던 사람으로 부자의 삶이 이 소설에 함께 녹아 있음 읽었다. 청춘 대부분을 공장에서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들 덕분에 '공장소설가' '성장소설가'의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는 린제이는 자본주의 경쟁시대에 들어선 중국의 성장과 아픔을 [자비]에 담았고역사와 삶에 자비로워야 우리는 비로소 자신에게 자비로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문득 신경숙의 [외딴방]이 생각났다.

결이나 문체ㅡ어느것도 닮지 않았지만 경쟁이 살아남는 유일한 수단인 산업자본주의 세상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선택 해야 했던 건 죽음 아니면 변함없는 노동자라는 사실에서 두 소설이 잠깐 오버랩 되었다. 산업화 속에서 어느새 산업형 노동자들로 변해버린 삶의 방식과 생각이 안타까웠다.


중국의 문화혁명을 다룬 소설은 더러 읽었지만 중국이 선택한 자본주의 산업화 속의 노동자 소설은 처음이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공명이 커지고 이렇다할 충격적인 사건이 없음에도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자비]는 글항아리의 중화권 현대소설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시리즈들 속에 낯익은 소설가는 없지만 이 책으로 인해 시리즈들이 모두 궁금해지고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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