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군함도 세트 - 전2권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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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도록 쉽게 끝낼수가 없었던 소설이었습니다.

우리네 이야기였으니. 그럴 수 밖에요.

군함도에 한정되어서, 어떻게 2권이나 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읽어나가면서, 생각지못했던 이들의 이야기들에.

그저 피해자인 우리의 입장만으로 끝나지 않는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기 소설이 시작되면서는 시대적인 연도나 날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만

후반부에 가면서 후쿠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그 상황에서만은

정확한 날짜와 시간. 세밀한 묘사를 하고 있기에 얼른 넘어가고 싶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인물들은, 초기 소설이 시작되면서부터 친한 이들의 하시마섬 (군함도)을 탈출하는 것을 바라보며

끝까지 보이게 되는 명국을 비롯하여

이름이 너무 아름다워서 더 슬픈 운명에 놓인 여인인 금화,

금화의 뼛조각을 평생 몸에 지니고 죽을때마저도 놓지 못한 우석,

친일파의 아들이나 자신의 기개, 신념만은 놓지않았던 올곧은 지상,

지상의 아내이자 친일파의 반대입장에 있던 치규의 딸 서형,

서형의 오빠이자 독립활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떠난 태형과

그의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아들이 자랑스럽던 치규와

그저 아들이 평범하게 밭을 갈며 곁에 있길 원하던 어머니.

그리고 일본인이지만 지상을 한 사람으로써 도와주고 이해하던 나까다와 그의 아끼꼬.

일본의 군인으로 불려가 작전이라는 이름 하에 어린 나이에 죽는 아끼꼬의 남동생.

지독하게 친일파의 입장에 서갔던 많은 이들.

일본인과 조선인.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그들의 솔직한 속내들과 감정들.

그와 같게 혹은 상반되게 드러낸 행동들과 그로 인한 많은 결과들.


쉽게 읽혀갈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읽어야만 했던 소설이었습니다.



마치 발을 헛디디기나 하듯 마음이 지상에게로 넘어지던 날을 서형은 잊지 않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던 저녁 무렵이었다. 지상은 샘밭 앞 소양강변의 하얀 모래밭을 바라보면서 말했었다.

"아름답게 살고 싶어. 난 그렇게 살거야."

"그게 어떤 건데요?"

"새처럼 나무처럼 풀처럼 사는거. 저 강물처럼 사는 거. 나 때문에 남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삶.

새나 나무는 저 자신을 위해 남을 괴롭히지 않잖아."

73p


어떻게도 피할 수 없는, 그랬다,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손아귀가 자신을 움켜쥐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행렬에 끼여 앞으로 나아가며 옆사람의 몸에 부대끼면서, 지상은 한 발 한 발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그는 고향을 떠올렸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그리고 형, 형이 있었지. 이 항구를 제 발로 드나들었을 형이다. 그래, 두려워 말자. 형이 밟았던 항구를 이제 나도 밟는다고, 그렇게 생각하자.

101p


우석이 허공을 바라보듯 고개를 들더니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다.

서럽구나. 조선의 아들들아. 그러나 꺾이진 말아. 휘고 늘어지더라도 꺾여선 안 된다. 살아남아라.

118p


"세상은, 우리가 다 함께 사는 게 세상이다. 나한테는 남의 일이지만 그 사람한테는 손톱 밑에 가시만 끼어도 아픈 거, 그게 세상이다. 남의 일이냐 내 일이냐, 남의 탓이냐 내 탓이냐, 그렇게들 사니까 우리가 이 모양인 거다. 남의 일이 아니라 그게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거다."

우석을 바라보는 금화의 눈이 반짝인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건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은 무릎 꿇고 살아서는 안 돼. 그렇게 해서는 살 수도 없고, 그러니 싸워야 해. 싸워도 함께 싸워야 해."

우석의 선명한 콧날을 바라보면서 금화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놀래라.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고개를 든 금화의 눈길이 우석에게 얽혀들었다.

192p


"봐라, 면면히 흘러가는 거. 세상이 어떻게 요동쳐도 아이들은 태어난다. 아이들은 태어나고 우리네 사는 일도 면면히 흘러간다."

264p


하시마를 빠져나온 나를 살려준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일본에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밥을 먹게 해준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사람답게 만났기 때문이다. 미움도 사랑도 아니다. 다만 사람과 사람으로 만났기 때문이다. 사람다움, 그게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가치가 아닌가.

2부 413p


2부 후반부에 가서는 원폭투하 이후의 모습들이 너무나 세세하게 그려져서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웠습니다.

일본인, 조선인 누구 하나 가리지않고 모든 사람이 그저 한 번의 빛 이후에 보게 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구요.

이 부분을 본 날은 한참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기도 했지요.


군함도에서 살아가며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그럼에도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던 조선인들의 모습.

탈출하고 나서의 삶 역시 끊임없는 징용공으로써의 삶.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죽음의 앞에 선 이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그들의 인신공격적인 말투와 태도로 일관하는 다수의 일본인들.

그것에 개의치않고 한 사람으로써 일본인을 대하게 되는 우리네 사람들.

'죽음 앞에서조차.' 라는 말이 절로 입안을 맴돌기도 하더군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역사속에서 우리가 보여야 할 태도에 대해,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꼭 읽어야만하는 역사 소설입니다.


http://naver.me/5ksERe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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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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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한참동안 넘겨보지 못한 책이었어요.

첫 장을 읽자마자 왜 이제서야 보았을까라는 후회와 함께, 첫 장부터 이 책은 내 마음에 와 닿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도대체 이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류시화 시인은 꽤나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져서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산문집은 사실 미리 예상하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아마 첫 장을 넘기기까지 오래 걸렸는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저 그림이 뭘 의미하는걸까? (그림책 공부를 하면서, 표지 하나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게되는 습관이 생긴것같네요)

왜 사람의 모습이 새에 함께 겹쳐져 있는걸까?

 

이런 생각으로 첫 장을 펼치게 되었고, 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제목 그대로 나온 이야기는 중후반부에 나오게 되었죠.

이번 산문집의 모든 이야기들이 류시화시인이 겪거나 들은 일화들을 이야기해주고, 그 이야기들에 보태어서 류시화 시인이 얻은 지혜를 풀어놓는 형식이었어요. 얼핏 제가 적거나 하는 문구들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인듯 보이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기계발서에 흔히 나오는 이야기로 보여질지도 모르지요). 그 이야기들을 함께 읽게되면 우리가 흔히 겪는 일상에서도 찾을 수 있는 지혜이고, 그래서 더 확! 와닿게 되리라 믿어요.

 

삶은 자주 위협적이고 도전적이어서 우리의 통제 능력을 벗어난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 때 우리는 구석에 몰린 소처럼 두렵고 무력해진다. 그럴때마다 자신만의 영역으로 물러나 힘을 고르고, 마음을 추스리고, 살아갈 힘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숨을 고르는 일은 곧 마음을 고르는 일이다. -15p

 

제일 처음, 저에게 와닿았던 내용이었죠.

아직은 젊다면 젊은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가장 많은 생각이 들었던것이. 참 생각만큼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 모든 게 생각했던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사실, 그 "생각대로", "생각했던대로" 라는 것 역시 제가 원한 바람들인데 그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좌절하고 자책하며 지내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야말로. 두렵고 무력해짐을 느끼죠. 여기서 말한 소이야기는 투우 경기장의 소 이야기예요. 숨을 고르며 자신의 체력을 다시 가다듬는 장소가 있는데 그 장소에서 숨을 고르면 어느 투우사도 쉽게 소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거죠. 그래서 소가 그 곳에 가기전에, 혹은 가지못하게 하려는 투우사의 이야기. 어쩜 이 세상, 삶이라는 것이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해요. 숨 고를틈 없이 몰아부치기도 한다구요. 하지만 그럴때마다 자신만의 영역을 꼭 찾아내어 물러나서 숨을 골라야 다음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는 거예요. 이게 진리이죠.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다. 모든 과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의 여행을 방해한다. -201p

 

"문제는 물병의 무게가 아니라, 그대가 그것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는가이다. 과거의 상처나 기억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래 들고있을수록 그것들은 이 물병처럼 그 무게를 더할 것이다."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오래 전에 놓아 버렸어야만 하는 것들을 놓아버려야 한다. 그 다음에 오는 자유는 무한한 비상이다. 자유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온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204p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과거에 연연해지 지내왔는지 모르죠. 그냥 흔히 이야기하면서도 "예전엔.." "저번엔.." "~그랬는데!!" 라는 말들이 꼭 들어가는걸 보면 얼마나 많이 과거를 생각해오는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그 모든 기억들을 안고 가기 때문에 쉬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현재는 또 다른 미래의 과거이니,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데도 과거에 대한 미련이 꼭 남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이 순간의 여행을 즐기기위해선 과감히 과거를 놓아버리는 노력이 필요하겠어요.

 

사실 많은 방법들이 넘쳐나는 요즘에 자기계발서의 많은 이야기들이 와 닿고, 그대로 해야만 하는 것 같고. 그래서 책을 읽을 때 꼭 뭔가 중요한 걸 찾아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조금은 삭막해져가는 독서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가벼이 읽어내려던 책에서 오히려 생각지못한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 것은 그래서겠지요.

요즘 제 독서 방향에 대한 생각에서 삶을 살아갈 때 지혜를 발견한 것 같아서.

 

인용은 많이 쓰지 못하겠어요. 이야기들도 함께, 모두 읽어질 때 온전히 이해가 되고, 마음이 동하기 때문이니깐.

 

쉬이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지만, 조금 천천히 읽어나가도 좋을 책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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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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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2010년부터 매해, 한해동안 발표된 중단편소설 중 빛나는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에 수여하는 상인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여한 작품을 엮어낸 책입니다.


2017년은 임현의 [고두]가 대상으로 실렸습니다.


수상작
대상 임현 · 고두(叩頭)
최은미 · 눈으로 만든 사람
김금희 · 문상
백수린 · 고요한 사건
강화길 · 호수―다른 사람
최은영 · 그 여름
천희란 ·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처음부터 이야기하자면, 저에겐 꽤나 생소하고 굳이 드러내고 싶지않던 성에 대한 것들이 완벽히 과감하게 드러나있어서 놀랬고, 그것이 최은미작가의 [눈으로 만든 사람]에서는 극대화되어서 뒷 장으로 감히 넘어갈 용기가 들지 않았어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고 모든것의 시작인 성이 묻혀지고, 그게 당연하다는 이 나라의 인식에서 살아온 나로써는 꽤나 불편한 감정이 들었지요. 헌데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보니, 그 다음 작품들도 생각보다 불편한 감정보다는 조금은 편해진 감정으로 읽어나가게 되고 심지어는 얼른 끝이 보고싶어서 넘기는 걸 멈추지 않으려했죠.



<책 속 밑줄>


[고두]

나는 이후로 연주를 주목했단다. 수업중에 그 유복한 여학생을 보는 척, 연주를 보았지. 엎드린 등을. 피로에 잠긴 시선을, 무엇 하나 애쓰지 않는 지루함 같은 것을 보았다. 물론 그 일이 아니었더라도 연주는 눈에 띌 만한 학생이었다. 16p


모든 일에 항상 의구심을 가져야 한단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말아라. 나쁜 것은 나쁘고 우리는 올바르다, 그런 확고하고 안정된 자세, 양팔저울 같은 거. 평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버린 상태, 더이상 흔들리지도 않고 다른 쪽으로 다시 기울어질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바로 그 상태. 자기가 그런 지경에 있다는 걸 도무지 인정할 줄 몰라. 그러면서 맞다고만 하는 거야. 그냥 다 안다고. 알 수 있는 거라고. 몰라? 어떻게 그걸 몰라? 오히려 상대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들. 그것이야말로 윤리적인 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란다. 20-21p


나를 비난하고 싶겠지. 비열하고 졸렬한 인간이라고 욕하며 세상에 진실을 밝히겠다고 정의로운 척 떠들어대고 싶은 거 아니니? 그런데 다들 그래. 다들 그러고 사는 거거든. 들키지 않을 만한 허물은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거든. 그러면서도 정작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는 몰라. 26p


하지만 연주가 온전히 자기 삶을 책임지는 사람이었음을, 자기 말만 하면서 자신을 설득하려 드는 수많은 사람들을 묵묵히 감내하며 외로움 속에서 스스로를 꽤 오랫동안 단련해온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 '나'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니까 사실 이때 '나'의 확고한 세계관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43p


- 사실 대놓고 욕하고 싶은 '나'라는 존재였어요. 윤리 교사와 학생의 불건전함. 이미 그것만으로도 불편한 감정이지만 그건 어찌되었든지간에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윤리 교사"라는 직업 역시 이 문제를 도드라지게 부각시켜주는 것이고 그런 이미지를 만든것도 세상의 편견이었으니깐요. 무엇보다 서로간의 사랑은 직업을 떠나서 이미 그것자체로 생각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선 서로 교감되는 사랑도 아니었고.(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냉소적인 문체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합리화 시키려는 느낌을 받았지요.


임현의 「고두(叩頭)」는 모든 이타적인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는 비틀린 윤리의식을 가진 윤리 교사의 육성을 통해, 한 인간의 자기기만이 얼마나 지독한 수준에 이를 수 있는가를 역으로 드러내 보인다. “집요함으로 마치 소설의 육체를 쌓듯” 성실하게 써온 줄만 알았던 임현에게서 “노련함까지 발견”했다(소설가 하성란)는 평을 받으며 대상을 수상했다.

 자기기만이란 표현이 옳았네요. 정말 지독하게 자기기만적인 태도를 보이더군요.


[눈으로 만든 사람]

"아영아, 민서 삼촌이랑 니가 만든 눈사람, 없어진 거 아니야. 그냥 모습이 변한거야."

"너무해. 너무해."

백아영은 오후가 되어서야 진정이 됐다. 강윤희는 백아영과 함께 흑미를 드라이어로 말려 유리병에 담았다. 그리고 냉장고에 넣었다. 냉동실에는 강민서가 빚어놓고 간 김치만두가 남아 있었다. 강윤희는 다음해 겨울에도 강민서와 교자상에 둘러앉아 만두를 빚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 날이 다시 온다고 해도, 그때까지 강민서가 견뎌야 하는 시간들에 대해 강윤희는 알 수 없었다. 80-81p


인간이란 게 원래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왜 이러고 사나 싶으면서도 다들 그러고 산다고 말하면 될까. 아니, 사태의 경중과 가해자와 피해자와 상상과 현실과 남녀의 차이가 다 지워진 이 수상항 항등식에 그렇게 순순히 동의해서는 안 된다. 저 참혹한 삶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차곡차곡 엉켜왔는지를 우리는 보았지않나. 87p


- 도저히 뒷 장으로 넘어가지 못할정도로 꽤나 불편한 감정으로 읽혀진 작품이었어요.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상처로 인해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오며,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이. 현실속에서 결국 자신만의 성에 대한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니. 더군다나 백아영의 성 조숙증에 있어서의 생각과 태도. 남편과의 불편한 이견들. 끝이 나고 더 끔찍했고 몸서리쳐질 정도였어요. 


최은미의 「눈으로 만든 사람」은 섬짓하리만치 담담한 문체로 가족이란 외피 속에 숨어 있는 폭력과 비윤리성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혈연으로 얽혀 빠져나갈 길 없는 불순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상]

송은 희극배우가 확실히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냐쁘냐면 지운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옛일을 완전히 매듭짓고 끝내고 다음의 날들로 옮겨온 흔적이 없었다. 그의 날들은 그냥 과거와 과거가 이어져서 과거의 나쁨이 오늘의 나쁨으로 이어지고 그 나쁨이 계속되고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어차피 나빠질 운명인 것이다. 선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선택되는 것이다. 107p


-워낙 바로 앞의 작품이 강하게 와 닿아서인지 앞과는 다르게 조금은 편히 읽어내려 간 것 같아요. 아니, 솔직히 얘기한다면 '문상'이라는 자체에 익숙하지 않아서일지도요. 물론 문상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 죽음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관계에 대해서도 저에겐 아주 강하게 와 닿지는 않아서일거예요.


「문상」은 서울에서 대구로 문상을 다녀오는 여정을 통해 더이상 만날 수 없는 관계에, 나아가 죽음에 얽혀 ‘폭력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죄책감을 묘사하며 진한 페이소스를 선사한다.

 [고요한 사건]

물리적 성질이 달라 합류 지점을 지난 뒤에도 각자의 흰빛과 검은빛을 유지하며 나란히 흐른다는 남아메리카의 두 강줄기처럼, 서로 섞이는 법이 없었다. 그나마 내게 공부를 잘하는 재능이 있었고, 그것이 전학 간 뒤 처음 본 중간고사에서 증명되었기 때문에 나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는 그룹 과외에 속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그들과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이 달랐다. 135p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해지와 어울리는 것을 탐탁지 않아했지만 상위권 성적을 변함없이 유지했으므로 대놓고 나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나를 좋은 사립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왔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넌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말들은 끈끈하게 내 발바닥에 들러붙어 어디든 걸을 때마다 쩍쩍,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138p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155p


- 개인적으로 가장 현실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작품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아이의 교육을 위해 고등학교를 선택하고 이사를 가고, 혹은 아이의 주변 환경을 위해 이사를 가고. 물론 주변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위적인 인간관계를 위해서겠죠. 아파트와 달동네의 완벽하게 다른 아이들과 환경속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주인공이 안쓰럽게 느껴지고 그런 선택을 한 부모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그러지는 말았으면 하는.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살아가게 될 주인공의 씁쓸한 인정까지.


백수린의 「고요한 사건」은 재개발될 허름한 동네에서 근사한 장면들을 포착해내는 심미안을 지닌 화자의 성장담을 통해,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삶이 윤리적인 판단을 압도하거나 삭제하는 순간에 대해 말한다. 

 

[호수-다른 사람]

물을 가로지으며 그가 내게 다가왔다. 어두운 그림자가 내 머리 위를 덮었다. 그의 몸에서 호수의 냄새가 났다. 물속에서 꽉 지고 있는 물건의 촉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무척이나 딱딱했다. 그 순간, 그가 내게 말했다.

"내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해요?"

나는 천천히 그의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203p


- 마치 추리소설, 심리소설을 처음 읽는 것마냥 도저히 멈추지 않고 넘겼습니다. 정확한 결말은 굳이 내지 않았지만, 굳이 내 멋대로 해석하고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굳이 따지고 싶지 않구요. 여성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의 약자로써 갖게되는 불안감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사실적으로 드러내서. 솔직히 이상한 희열마저 느껴졌어요.


「호수―다른 사람」은 여성의 일상을 잠식한 위협을 범죄 스릴러의 문법으로 생생하게 재현해낸 여성소설이자, 그러한 삶 속에서 한껏 예민해진 여성들의 불안감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심리소설로서 읽는 즐거움과 묵직한 생각거리를 동시에 던져준다.



[그 여름]

고친 안경을 쓰고 수이의 얼굴을 봤을 때 이경은 처음 안경을 맞춰 썼던 때를 떠올렸다.

뿌연 갈색인 줄 알았던 나무가지에는 회색의 가느다란 줄무늬와 흰 동그라미 무늬가 있었고, 가지 위로 돋아난 이파리들은 흐리멍덩한 녹색이 아니라 여린 잎맥이 뻗어나가는 투명한 연둣빛이었다.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지만 바닥이 돌고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 때의 기분을 이경은 수이의 얼굴을 보면서 똑같이 느꼈다. 215p


그렇게 말하며 웃는 수이의 얼굴에 두려움이 비친 것 같다고 이경은 생각했다. 수이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가. 자신의 장래일까, 돈일까, 나와의 관계일까, 그 모든 것일까. 수이는 늘 미래에 관해서만 이야기해왔었다. 마치 자기는 과거나 현재와 무관한 사람이라는 듯이 성인이 되면, 대학에 가면 벌어질 미래의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수이는 사 년 뒤의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그것도 한 치의 의심 없이 기다려온 미래에 배반당한 적 있는 수이가. 231p


-생각해보지 못했던, 하지만 생각보다 요즘에 우리 사회에서도 언급되곤 하는 동성간의 사랑. 어쩌면 너무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사랑에 빠진 이경의 시선에서 그려져서. 그게 동성간의 사랑이든 아니든지간에 그 감정에 있어서만은 공감되었던 작품이었어요.


최은영의 「그 여름」은 레즈비언 여성들의, 그 누구의 것과도 다르지 않은 연애와 이별의 장면을 전통적인 서사 속에 맑고 쓸쓸하게 그려낸다.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방으로 가자. 울지 말자고 다짐을 했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방으로 가자. 선생님은 막 잠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입을 연 사람처럼 잠긴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목소리가 한적한 로비를 울릴 때, 저는 암담한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어요. 다정하지 않지만 차갑지도 않은 눈, 속마음을 쉽게 읽을 순 없지만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방으로 가자. 선생님께 의지해 살아온 지난 십오 년간, 제게는 그 말이 곧 선생님이었습니다. 결국 그 말을 따라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이 집에 살게 되었으니까요. 288p


-마지막 편지에서의 반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네요. 심지어 편지의 순서까지 생각하며 읽게 되는 것까지 해설에서 아주 친절히 인도하고 있죠. 여기서도 동일한 동성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것이 어긋난 순간부터. 차마 밝히지 않던 진실, 밝혀질지 혹은 그대로 묻혀질지는 모르겠지만. 용기내서 밝혀낸 진실에서 적지않게 충격을 받았어요.


천희란의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는 한 사람의 어머니이자 한 여성의 연인이었던 인물의 죽음을 둘러싼 언어화되지 않은 진실을 정교한 서사를 통해 직조하며, 아무리 개량하고 각색해도 사라지지 않을 진실, 그것과 함께 연주되는 화해와 불화의 이중주를 들려준다.

 

<내 마음으로>


사실, 모든 작품이 저에겐 쉽지만은 않았어요. 소재 자체도. 절대 내가 그동안 드러내면 안되고 은밀히 대해야만 한다고 여겨왔던 성에 대한 것이었기에 불편한 감정이 앞서기도 했어요. 그리고 절대 허구만은 아닌 현실에도 있을법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심했겠지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감춰온 모든 것이 어차피 내재된 성에서 시작이 되고. 그걸 오히려 불편하다고라도 인식하고 인정하고나니 마음이 편해지는 건 사실이었어요. 자극적으로 와 닿을 소재들이었지만, 이렇게라도 읽혀진다는게 사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편독이 있어 소설, 문학에 있어서는 문외한이었던 저로써는 이 책이 큰 전환점이 되어주리란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다음 9회, 10회. 혹은 이전의 7회, 6회 등..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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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그림읽기 그림책의 그림읽기
현은자 외 지음 / 마루벌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한 달정도의 지혜의 서재 스터디, 그림책 이론의 입문서로 선택되어 읽고 생각을 나눈 책입니다.


책의 표지에서 이 책을 펴내게 된 이들의 생각도 드러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생각이 저의 생각과도 일치하구요.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루어진 새로운 예술형식이다.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이 각각 전달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의미를 이해한다면 그림책을 보는 즐거움과 안목은 훨씬 커질 수 있다.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1. 그림책이란 무엇인가? - 그림책의 개념 / 그림책과 상상력 / 어린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2.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하기 - 기호학적 관점 & 현대문학 이론으로 본 그림책 / 글과 그림의 상호보완적 역할 / 그림책의 시간과 공간 / 글과 그림의 다양한 관계

3. 그림책의 그림 자세히보기 - 그림책의 기본 요소 (선, 모양과형태, 색, 재질감, 공간) / 그림의 구성원리 (조화와 통일감, 다양성과대비, 균형, 움직임, 우세)

4. 그림언어의 문법 - 개념적 기능(그림속 이야기) / 대인적 기능(그림작가, 독자 그리고 그림) / 텍스트로서의 기능(그림의 배치)

5. 매체 - 매체가 주는 의미 / 그림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매체 (연필, 색연필, 수채화, 아크릴, 구아슈, 콜라주, 판화)


글의 목록에서도 보여지듯이, 그냥 책을 많이 보여주라는 의미의 책보다는 그림책이 가지는 진정한 속 뜻을 이해하게끔 도와주고자 한 책이죠. 그래서 이 책이 너무나 좋구요. 흔히들 그림책을 아이들의 것으로만 치부하지만, 사실은 그림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 어른들을 위한 책을 아이들이 보기 시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순화를 거치고. 또 아이들의 교화를 위해서 시작된 책으로부터 점차 그림책의 역사가 시작된것인데. 그래서 그림책에는 때론 우리가 말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것보다 더 강하게 아이들에게 와 닿게 되는 부분들도 많은것이라 생각되어요.



'어떤 그림양식이 유아에게 가장 적합한가'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질문이며, 유아에게는 심미적 소양을 키워줄 수 있도록 어느 한 가지 양식이 아니라 다양한 그림양식을 보여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림책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그림책 읽기행위를 둘러싸고 이루어진 많은 연구들은 그림책의 본질을 교육 도구로만 간주함으로써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그림책이 갖는 잠재력은 과소평가해 온 것이다.

어린이는 언어학습에 있어서 단순히 언어적 자극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규칙을 설정하고 그것을 계속 수정하면서 능동적으로 언어 학습을 완성해 나간다ㅏ. 이것은 독서에서 독자의 능동적 역할에 초점을 맞춘 로젠블라트의 독자반응이론도 일맥상통한다. 문학작품은 독자와 텍스트의 상호교류 위에서 비로소 존재한다.

24p



또 우리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그림책이 좋으냐 물어보며, 그림책을 고를 때 색감, 형식, 질감 등 많은 것을 생각하지만. '어떤 책이 좋다'는 엄마들의 생각이 그림책을 고르는것에 그대로 반영되고 아이들에게 엄마들의 생각만으로 선택된 그림책을 보여준다는 것은 자동으로 틀에박힌 생각을 만들어내게 되는거라 생각해요. 예컨대 에릭칼의 그림에 대해서도 어떤 엄마들은 오히려 색감이 너무 진하다며 일부러 아이들에게 책을 사줄 때 아예 보게 될 기회마저 박탈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요. (사실 저도 그랬지요. 아주 애기때 사준 에릭칼 그림책을 여전히 찾는 딸아이를 보면서 완전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구요.)



그림책의 글과 그림은 일차적으로 실제를 대신하여 나타내고, 이차적으로 글과 그림 사이의 상호 관꼐를 통해 의미를 생성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그림책을 읽을 때에는 일차적인 기호와 이차적인 기호에 대한 의미 해석이 동시에 일어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글과 그림을 별개의 기호로 읽는 동시에 이 둘이 맺는 관계에 따라 주관적인 해석을 첨가함으로써 그림책의 의미를 만들어 낸다. 일차적 기호로서의 글과 그림은 크게 대응 관계, 상호보완관계, 굴절 관계 등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차적인 기호로 작용한다.

75p



그림책의 독자는 그림책의 그림이 대상의 속성을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저절로 아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림작가와 독자 사이에 그 대상에 대한 공통된 코드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림의 의미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림작가와 독자 모두 어떤 대상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유된 이미지들을 갖고 있기에 그림작가는 그림을 창작할 때 이러한 이미지들을 자신의 목적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하고 배치한다. 그래서 독자가 그림책의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그림작가가 선정한 의도를 읽는 것이다.

79~80p


대부분의 내용이 이론적인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라. 간단히 그림책을 가벼이 여기는 분들에게는 꼭 전하고픈 글들이고 생각들이라 간단히 남겨보는 기록입니다.


그림책을 해석하지않고 그 표면에 드러난 부분만 보며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하는 방법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 보더라도 또 다르게 해석되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점에서 그림책에도 고전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 고전을 더 오롯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이론이(그림책을 읽는 것)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림책에 관해서 더 새로운 모습들을 보고싶다면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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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곁 - 오늘이 외롭고 불안한 내 마음이 기댈 곳
김선현 지음 / 예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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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의 겉표지와, 창문같이 도려낸 종이 사이로 보이는 명화의 모습.


오늘이 외롭고 불안한 내 마음이 기댈 곳

이렇게 책의 작은 제목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냥, 차분해지는 느낌 그 자체를 안겨줍니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의 두께에 놀랬다가, 안을 열어보고 나서야 왜 그런지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 종이가 아니었고, 내지가 모두 두꺼운 종이였습니다.

아무래도, 명화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함이었겠지요.

명화와 친하지 않지만, 지금 보이는 화가들의 그림들보다 훨씬 따뜻한 느낌들을 안겨주는게 명화이니,

사실 그 자체로도 여러 명화를 접할 수 있으니. 저에겐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때로는 설렘을 주고, 때로는 포근한 담요처럼 따스했던 수많은 그림 중 80여 점의 그림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마음속이 먹구름으로 가득 찬 날엔 눈부실 만큼 환하고 밝은 그림 곁에, 얽혀버린 털실 뭉치처럼 인생이 꼬이는 날엔 담담한 그림 곁에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숨을 돌리며 살아왔습니다.


이 책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책에 펼쳐진 그림들이 그녀들의 얼굴에 작은 미소나마 선물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머리말 중에서


1장 정답은 없지만, 조금씩 답에 가까워지기

-설렘, 연애, 결혼 등 사랑에 관련된 그림과 글들을 담았습니다.

2장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잃지 않기

-친구, 가족, 동료 등 관계에서 나를 지켜낼 그림과 글들을 담아냈습니다.

3장 '내안의 나'와 둥글게 살아가기

-나, 그리고 '내안의 나'와 둥글게 살아가기 위한 그림을 담아냈습니다.

























 


그저, 다른 해석이나 제 감정보다 이 책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너무 아름다워서.

그리고 토닥거려주는 위로의 손길이 좋아서 사진을 몇 장 담아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빨리 달려야 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스스로 원해서 달려가는 것도 있지만 상황이 몰아치면서 달려가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탈길로 가기도 하고 눈이나 비를 피할 틈도 없이 맞고 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인생의 목표들이 이루어지고 삶의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시기들이 옵니다. 이 때 역시 내가 만들기도 하지만 상황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집 안에는 화로나 벽난로가 있을 것 같고 따스한 차나 수프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온몸이 노곤해지면 잠시 잠을 청해도 좋겠습니다. 밖에는 흰 눈이 가득 쌓여 인생을 돌아보기에 좋습니다. 세상의 많은 부분을 덮어버린 하얗고 깨끗한 세상과도 마주할 수 있으니까요. 지치고 힘들게 달려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며 눈이 쌓인 빨간 집에서 우리도 잠시 쉬어가면 어떨까요?


책장을 넘겨가며 어린아이처럼 사랑스러운 그림도 있고, 푸르름이 느껴지는 그림도 있고. 당당한 여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도 있었어요.

하지만, 어떤 그림에선 한참을 바라보기도 하였죠.

특별한 해답이나, 결론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럴때가 있어요.

내 마음을 한번 들어나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물론,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 모두 저에겐 너무 소중하고 너무 힘을 주는 존재들이지요.

하지만, 자신의 감정이 때론 말로 설명이 안될때도 있고.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때가 있어요.

그럴 땐, 가끔 이 책을 펼쳐보며 넘겨서 시선이 멈추는 그림을 바라보고 글을 읽고.

잠시 숨을 골라도 좋을 것 같아요.


바삐 지내온, 아니 바삐 지내오지 않았다해도 이미 많은 시간들과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이 책이 잠시라도 쉼의 시간을 주지 않을까. 감히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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