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츄 -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 암실문고
발튀스.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윤석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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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찾는 것. 잃는 것. 상실이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상실이란 단순히 자신이 짐작하지도 못했던 기대를 막 충족했던 그 관대한 순간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한 순간과 상실 사이에는 항상 무언가가 있는데, 조금 어설프긴 하지만 그걸 소유라고 칭해야 하겠군요.

그런데 상실이 아무리 잔인한 것이라 해도, 상실은 소유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상실은 소유의 끝입니다. 상실은 소유를 확인해 줍니다. 결국 상실이란 두 번째 소유일 뿐이며, 그 두 번째 소유는 아주 내적인 것이며, 첫 번째와는 다른 식으로 강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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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세요:저는 그대로 저이며, 발튀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상은 무척 견고하죠. 다만 고양이가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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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서문 중에서

많은 작가들이 사랑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서문이 있다기에 '무조건 이건 읽어야 해!'라며 이 책을 고대하며 기다렸지요. 진한 에메랄드 색깔을 배경으로 하고 까만 판화 같은 그림만이 표지에 있을 뿐이었고, 작은 이 책을 감싼 종이에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고양이 그림책'이라는 부제가 쓰여 있어요. 살짝 넘겨본 책의 내지에는 작은 판화 그림들이 설명 없이 한 페이지에 한 개씩 새겨져 있을 뿐이었어요. 그리고 앞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서문이 여러 장에 걸쳐서 쓰여 있었지요. 서문을 읽고 나서야 릴케가 왜 서문을 적었는지, 애정이 왜 그리 듬뿍 담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천천히 넘겨보는 그림은 이제 그냥 그림을 넘어서서 까만 그림이지만 발튀스의 모습을 같은 눈높이로 하려고 마음의 눈높이를 맞추게 되었죠.

발튀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발타사르가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난 고양이 미츄를 집에 데려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모습들을 판화로 새겼어요.

어린아이였던 발튀스는 우연히 만난 고양이 미츄를 데리고 와 함께 지내기 시작하였어요. 미츄의 모습을 아버지는 그림으로 남기기도 하였고 미츄가 장난을 쳐서 집안이 난장판이 되기도 하는 모습은 웃음이 지어지게도 하죠. 하지만 갑작스러운 이별이 발튀스앞에 다가왔던 거예요. 그 이별은 '상실'의 또 다른 한 모습이고 그런 상실은 소유의 또 다른 끝이라고 릴케는 이야기하죠. 릴케는 그에게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발튀스의 마음을 온전히 들어줄 수 있는 이었던 것 같아요. 발튀스가 열 세 살에 드로잉 집 <미츄>를 출간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죠.

상실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생각보다도 '상실' 다시 곁에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강하게 와닿습니다. 막연함에서 이제는 마치 그 상실이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두려움마저 드는 거지요. 그럼에도 그 순간은 찾아오고야 맙니다. 의연해질 수는 없을 거예요. 그 상실을 마주함에 있어서는 쉽게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오기도 힘들겠지만, 여전히 상실 후에 존재한다는 것. 더 견고하게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에서 또 다른 위안과 안도의 한숨을 내어 봅니다.

생각보다 자주 이 책을 들여다보게 될 것 같아요. 미츄가 장난을 치는 모습이나 아픈 발튀스의 머리맡에서 걱정스레 바라보는 모습, 발튀스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오는 모습들이 쉽게 잊히지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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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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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작가의 글이에요. 모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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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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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숨을 느긋하게 한껏 들이마시며 아름답고 우아한 다리를 쭉 뻗었다. "옳고 그름." 그녀가 말했다. "난 옳고 그름을 믿어요." 그런 다음 만족과 여유가 묻어나는 한숨을 내쉬며 조금 더 깊은 곳에 있던 얘기를 꺼냈다. "흥미진진할 거예요. 재미있을 거예요. 그리고 인생의 일부가 될 거예요, 크로 영감님." 그것은 그녀로서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 말을 하는 동안 노인은 이빨을 빨았으며, 워윅 디핑의 소설책에는 분홍색 불빛이 아른거렸다.

- 그레이엄 그린 <브라이턴 록> 90P


<사랑의 종말>의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장편 소설이다. 화려한 휴양지인 브라이턴의 한 골목에서 신문 기자 헤일이 죽은 상태로 발견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죽음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자연사'로 인정되고 그가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한다. 그가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당연한데 말이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여인 아이다는 이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의 죽음에 무엇이 숨어있을지 파헤치기로 한다. '옳고 그르다고' 믿는 행위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 사이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식당의 종업원 로즈를 찾아가 진실을 말할 것을 설득하지만 너무나 어린 그녀는 이미 남자를 죽인 소년 핑키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를 위해서라면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들겠다고 말한다. 그 죽음 하나를 두고 핑키에게 다가오는 현실은 냉혹하다. 믿을 수 없는 사람들과 죽음으로 인도한 죄를 저지른 자신을 향한 압박감이 핑키를 옥죄어 온다. 그가 건장한 젊은이나 중년의 남성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핑키에게 어리다고 이야기하고, 그의 미래를 위해 '남들처럼' 살아가자고 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멀리 앞을 내다보기 힘든 핑키에게는 그 모든 모습은 그들의 두려움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용감하다고, 이 죽음이 미스터리로 남아있지 않게 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한다.

핑키가 따르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소년은 자기는 그 동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꾸며 댔다. "난 종교에 관심이 없어. 지옥...... 그건 그냥 있는 거야. 지옥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어. 죽기 전에는." (186p)

핑키와 로즈는 끊임없이 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이 지은 죄들에 대해서 물러서지 못할 것임을 안다. 로즈는 물론 그를 사랑한 것뿐이지만 핑키가 부정하는 진실을 정확히 바라보고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핑키가 가장 두려워한 존재는 로즈였을 거다.

7시 30분 미사에서 돌아오는 사람들과 8시 30분 아침 예배에 참석하러 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은 그들을 스파이처럼 훔쳐보았다. 그녀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을 멸시하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구원이 있고, 자기에게는 핑키와 지옥의 벌이 있는 것이었다. (400p)

"나는 적어도 네가 모르는 것 하나를 알고 있어. '옳고 그름'을 분간할 줄 알지. 그건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아."

로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여자 말이 맞았다. 그 두 단어는 로즈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띠지 못했다. 그 두 단어의 맛은 더 강렬한 음식인 '선과 악'에 의해 소멸되어 버렸다. 여자는 자기가 모르는 선과 악에 대해서는 로즈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로즈는 핑키가 악하다는 것을 산술적인 수학처럼 분명히 알고 있었다-따라서 이 경우에 핑키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411p)

처음에 유난히 책 이름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록인지 룩인지, 브라이턴은 또 무엇인지 싶은 생각으로 여러 번 앞표지의 제목을 다시 읽었다. 본문에서 스쳐 지나가듯이 브라이턴 록이 막대 사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끝까지 먹어도 그 사탕 안의 '브라이턴'이라는 글자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보이인다. 그리고 그런 브라이턴 록 막대 사탕처럼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핑키의 모습을 내세워 말하고 있는 것을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서야 인정하였다. 한 번쯤은 그도 망설였다고 믿는다. 그가 순식간에 공격을 당해 죽을지도 모를 정도로 아픔을 느낄 때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당당하고 강해 보이려 애쓰던 핑키가 그때만큼은 두려워서 모든 것을 멈추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기를 품은 그는 그 독기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독기가 자신을 대신해서 말해준다고 생각하면서.

사실 이 소설의 흐름만큼 조금씩 보이는 죄에 대한 이야기는 이야기가 흐르면서도 부지불식간에 떠오른다. 그들은 구원을 바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거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죄를 꼬인 실을 풀듯이 조금씩 풀어낼 수는 없을까 생각하지만 핑키에게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게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도 어떻게든 그들이 결국 회한에 빠져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길 바라는 나는 전형적인 행복 추구형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핑키가 바다에 빠지고 나서야 모든 게 끝났다는 안도감의 한숨을 쉬며 책을 덮을 수 있었던 것은 또 하나의 잔인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 것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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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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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펜에서는 다시 신랄한 독설이 새어 나온다. 이 신랄함은 얼마나 아둔하고 생기 없는 것인가.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사랑의 마음으로 글을 쓰겠다. 그러나 내가 사랑의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다면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랑을 잃어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문득 반들거리는 타일을 입힌 탁자 표면 너머의 그에게서 뭔가를 느꼈다. 그것은 사랑 같은 심각한 감정과는 거리가 먼, 아마도 불행을 함께 나누는 동지애 정도일 듯싶은 감정이었다. 내가 헨리에게 말했다. "자넨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건가?"

- 그레이엄 그린 <사랑의 종말>

제2차 세계대전 무렵의 런던을 배경으로 소설가 모리스 벤드릭스와 세라 그리고 그녀의 남편 헨리 마일스 세 사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철저한 모리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로 모리스와 세라의 사랑, 헨리의 사랑, 이별, 죽음, 회상을 마주하는 감정을 '모리스'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모리스는 헨리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 위해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그의 아내 세라를 만난다. 세라는 그 이유를 알면서도, 모리스 역시 그 이유로 시작한 관계임을 알면서도 둘은 사랑이라고 믿는 순간을 경험한다. 담담하게 그들의 관계가 탄로 날 위기를 넘기거나 사랑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이는 세라에게 모리스는 불안을 느끼고 자신이 사랑받는지 계속해서 의심한다. 그가 알게 된 그녀의 감정은 이미 그녀가 죽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죽은 이후가 되어서야 그가 발견한 그녀의 행적에서 그는 그녀가 끊임없이 '신'을 향해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려 했음을 알게 된다.

나는 과거의 그때를 그냥 내버려 두고 싶었다. 왜냐하면 1939년의 일을 쓸 때면 나의 모든 증오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증오는 사랑이 작동시키는 분비샘과 동일한 분비샘을 작동시키는 것 같다. 심지어 사랑이 초래하는 행동과 동일한 행동을 초래한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배우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한 사람이 질투 많은 유다였는지 아니면 비겁한 베드로였는지 그들의 행동만으로 알 수 있겠는가?

- 그레이엄 그린 <사랑의 종말> 47~48p

그는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랑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증오의 기록에 더 가까울 것이다"라고. 사랑이 끝나고 절망, 후회, 슬픔이 아닌 증오와 종말을 이야기한다. 왜 그는 종말을 말하는 것일까. 세라가 왜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교회로 갔고, 그녀가 죽고 나서 신부님이 찾아와 세라는 세례를 받길 원했고, 화장이 아닌 땅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끊임없이 남은 이들을 설득하려 했을까. 그녀의 사랑을 뒤늦게 확신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남자는 상실 앞에 목놓아 울지 않는다. 이제는 중년이기에 그 상실을 받아들이는 한편 세라의 남편이었던 헨리가 무너지지 않게 그 곁을 지킨다. 이상한 관계라고 생각할지 모르고, 더군다나 모리스가 흔쾌히 한다는 느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상실을 함께 경험해 낸다. 그러니 이것은 애도의 기록이고 상실을 경험하는 모든 이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새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증오이자 사랑의 감정인 이 기록(글)이 다시 여러 질문을 명쾌하게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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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열차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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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삶이 또다시 무너질까 두려워서 가장 겁이 나는 부분들을 애써 모르는 척했다. 사는 나라가 달라졌어도 술에 대한 사랑은 달라지지 않은 아빠, 화를 내고 우울해하는 엄마, 계속되는 아빠와 엄마의 싸움. 나는 모든 게 잘 되길 바랐다. 그래서 메이지를 품에 안고 귀에 대고 속삭이며 달랬다. 어떤 새도 나의 노래하는 새, 너만큼 달콤하게 노래를 부르지는 못해. 메이지가 울음을 그쳤을 때 나는 그저 안도했다. 메이지는 광산에서 위험을 경고하는 카나리아와 같았는데,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고아 열차> 45p

나의 글은 늘 지극히 사적인 글이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해왔고, 모든 이야기들은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결국 우리들에게까지 이어지게 하며 공공연하게 우리의 감정에까지 들어오게 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의 감정으로 그들을 들이기 전에 늘 나는 긴장감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끝내 그 노력이 소용없을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아픔과 슬픔 앞에 거리를 두고 싶고 초연해지고 싶은 마음인 거다. 결국은 나의 몸과 온 신경이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될 것을 안다.

표지 속 아이의 뒷모습이 고아 열차에 몸이 실린 채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이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대변할 수 있을까. 책을 덮고도 이 생각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 소설에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에서 뉴욕으로 불확실하지만 어쩌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으며 건너온 비비언 데일리의 삶과 열일곱 살 소녀 몰리 에이어의 아무도 믿지 않기로 하였던 삶이 교차되며 그려진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854년부터 1929년까지 이른바 '고아 열차'라고 불리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태운 기차가 동부 도시에서 중서부의 농촌까지 운행되었다. 아이들은 어딘지 모를 역에 열차가 멈춰 서면 나란히 서서 어떤 어른들이 자신을 데려갈지 모를 운명에 자신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온화하고 다정한 가족의 품으로 들어갈지, 그저 노동이 필요한 가정에 들어가 노예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며 살아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큰 저택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노년의 비비언은 그 고아 열차에 몸을 실었던 한 소녀였고, 자신의 운명이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할머니가 남겨주셨던 작은 목걸이에 의지하기며 차디찬 복도 위 매트리스에서 겨우 잠을 청하기도 하고, 차라리 추운 거리를 맨발로 뛰쳐나올 정도로 잔인한 삶을 마주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를 다정하게 안아주고 그녀의 삶을 지켜주려 한 사람들이 있었고, 칼날과도 같은 환희(71p)를 느꼈던 찰나의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으로 품어왔기에 지쳐 쓰러지거나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을 거다.

시간은 줄어들기도 하고 넓게 퍼지기도 해. 무게가 일정하지 않아. 어떤 순간은 머릿속에 머물고 다른 순간들은 사라져버리지. 태어나서 스물세 살 때까지의 세월이 나라는 인간을 만들었는데, 그 뒤로 거의 칠십 년을 살고 있다니 참 말도 안 되지. 그 칠십 년은 네가 한 질문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시간인데 말이다.

-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고아 열차> 256p

외부로부터 자신을 굳게 걸어 잠그려던 소녀와 오래된 짐을 정리하던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테이프를 다 감을 정도로 오래 지속되어 올수록 몰리는 알지 못할 안도감을 느낀다.

더치가 피아노로 내게 말을 걸고 있고, 나는 꿈이라도 꾸는 듯 그의 말을 알아듣고 있는데, 나는 과거와 단절된 채 외로움이 사무치는 여행을 하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낯선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말을 하지 않아도 내 심정을 아는, 나와 똑같은 아웃사이더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 크리스티나 베이커 클라인 <고아 열차> 331p

비비언과 몰리의 주위에는 어른이 있었고, 그들의 존재 자체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다정한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계속 들여다보려고, 그리고 그것에서 시작된 노력들은 의지로 변환되어 갔다. 이방인의 삶이었고, 아웃사이더라고 지칭하던 삶이었던 그들의 삶이 만나 서로를 다정하게 연결하기 시작하였다. 그 다정함이 따뜻하고 단단해서 고아 열차라는 역사에서 실제로 존재하던 것과 그 그늘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야만 했던 수많은 삶을 만나는 것이 가슴 아플지라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의지'라는 단단함을 쥐어 잡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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