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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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2010년부터 매해, 한해동안 발표된 중단편소설 중 빛나는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에 수여하는 상인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여한 작품을 엮어낸 책입니다.


2017년은 임현의 [고두]가 대상으로 실렸습니다.


수상작
대상 임현 · 고두(叩頭)
최은미 · 눈으로 만든 사람
김금희 · 문상
백수린 · 고요한 사건
강화길 · 호수―다른 사람
최은영 · 그 여름
천희란 ·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처음부터 이야기하자면, 저에겐 꽤나 생소하고 굳이 드러내고 싶지않던 성에 대한 것들이 완벽히 과감하게 드러나있어서 놀랬고, 그것이 최은미작가의 [눈으로 만든 사람]에서는 극대화되어서 뒷 장으로 감히 넘어갈 용기가 들지 않았어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고 모든것의 시작인 성이 묻혀지고, 그게 당연하다는 이 나라의 인식에서 살아온 나로써는 꽤나 불편한 감정이 들었지요. 헌데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보니, 그 다음 작품들도 생각보다 불편한 감정보다는 조금은 편해진 감정으로 읽어나가게 되고 심지어는 얼른 끝이 보고싶어서 넘기는 걸 멈추지 않으려했죠.



<책 속 밑줄>


[고두]

나는 이후로 연주를 주목했단다. 수업중에 그 유복한 여학생을 보는 척, 연주를 보았지. 엎드린 등을. 피로에 잠긴 시선을, 무엇 하나 애쓰지 않는 지루함 같은 것을 보았다. 물론 그 일이 아니었더라도 연주는 눈에 띌 만한 학생이었다. 16p


모든 일에 항상 의구심을 가져야 한단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말아라. 나쁜 것은 나쁘고 우리는 올바르다, 그런 확고하고 안정된 자세, 양팔저울 같은 거. 평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버린 상태, 더이상 흔들리지도 않고 다른 쪽으로 다시 기울어질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바로 그 상태. 자기가 그런 지경에 있다는 걸 도무지 인정할 줄 몰라. 그러면서 맞다고만 하는 거야. 그냥 다 안다고. 알 수 있는 거라고. 몰라? 어떻게 그걸 몰라? 오히려 상대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들. 그것이야말로 윤리적인 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란다. 20-21p


나를 비난하고 싶겠지. 비열하고 졸렬한 인간이라고 욕하며 세상에 진실을 밝히겠다고 정의로운 척 떠들어대고 싶은 거 아니니? 그런데 다들 그래. 다들 그러고 사는 거거든. 들키지 않을 만한 허물은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거든. 그러면서도 정작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는 몰라. 26p


하지만 연주가 온전히 자기 삶을 책임지는 사람이었음을, 자기 말만 하면서 자신을 설득하려 드는 수많은 사람들을 묵묵히 감내하며 외로움 속에서 스스로를 꽤 오랫동안 단련해온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 '나'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니까 사실 이때 '나'의 확고한 세계관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43p


- 사실 대놓고 욕하고 싶은 '나'라는 존재였어요. 윤리 교사와 학생의 불건전함. 이미 그것만으로도 불편한 감정이지만 그건 어찌되었든지간에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윤리 교사"라는 직업 역시 이 문제를 도드라지게 부각시켜주는 것이고 그런 이미지를 만든것도 세상의 편견이었으니깐요. 무엇보다 서로간의 사랑은 직업을 떠나서 이미 그것자체로 생각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선 서로 교감되는 사랑도 아니었고.(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냉소적인 문체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합리화 시키려는 느낌을 받았지요.


임현의 「고두(叩頭)」는 모든 이타적인 행동에는 이기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는 비틀린 윤리의식을 가진 윤리 교사의 육성을 통해, 한 인간의 자기기만이 얼마나 지독한 수준에 이를 수 있는가를 역으로 드러내 보인다. “집요함으로 마치 소설의 육체를 쌓듯” 성실하게 써온 줄만 알았던 임현에게서 “노련함까지 발견”했다(소설가 하성란)는 평을 받으며 대상을 수상했다.

 자기기만이란 표현이 옳았네요. 정말 지독하게 자기기만적인 태도를 보이더군요.


[눈으로 만든 사람]

"아영아, 민서 삼촌이랑 니가 만든 눈사람, 없어진 거 아니야. 그냥 모습이 변한거야."

"너무해. 너무해."

백아영은 오후가 되어서야 진정이 됐다. 강윤희는 백아영과 함께 흑미를 드라이어로 말려 유리병에 담았다. 그리고 냉장고에 넣었다. 냉동실에는 강민서가 빚어놓고 간 김치만두가 남아 있었다. 강윤희는 다음해 겨울에도 강민서와 교자상에 둘러앉아 만두를 빚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 날이 다시 온다고 해도, 그때까지 강민서가 견뎌야 하는 시간들에 대해 강윤희는 알 수 없었다. 80-81p


인간이란 게 원래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왜 이러고 사나 싶으면서도 다들 그러고 산다고 말하면 될까. 아니, 사태의 경중과 가해자와 피해자와 상상과 현실과 남녀의 차이가 다 지워진 이 수상항 항등식에 그렇게 순순히 동의해서는 안 된다. 저 참혹한 삶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차곡차곡 엉켜왔는지를 우리는 보았지않나. 87p


- 도저히 뒷 장으로 넘어가지 못할정도로 꽤나 불편한 감정으로 읽혀진 작품이었어요.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상처로 인해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오며,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이. 현실속에서 결국 자신만의 성에 대한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니. 더군다나 백아영의 성 조숙증에 있어서의 생각과 태도. 남편과의 불편한 이견들. 끝이 나고 더 끔찍했고 몸서리쳐질 정도였어요. 


최은미의 「눈으로 만든 사람」은 섬짓하리만치 담담한 문체로 가족이란 외피 속에 숨어 있는 폭력과 비윤리성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혈연으로 얽혀 빠져나갈 길 없는 불순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상]

송은 희극배우가 확실히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냐쁘냐면 지운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옛일을 완전히 매듭짓고 끝내고 다음의 날들로 옮겨온 흔적이 없었다. 그의 날들은 그냥 과거와 과거가 이어져서 과거의 나쁨이 오늘의 나쁨으로 이어지고 그 나쁨이 계속되고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어차피 나빠질 운명인 것이다. 선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선택되는 것이다. 107p


-워낙 바로 앞의 작품이 강하게 와 닿아서인지 앞과는 다르게 조금은 편히 읽어내려 간 것 같아요. 아니, 솔직히 얘기한다면 '문상'이라는 자체에 익숙하지 않아서일지도요. 물론 문상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 죽음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관계에 대해서도 저에겐 아주 강하게 와 닿지는 않아서일거예요.


「문상」은 서울에서 대구로 문상을 다녀오는 여정을 통해 더이상 만날 수 없는 관계에, 나아가 죽음에 얽혀 ‘폭력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죄책감을 묘사하며 진한 페이소스를 선사한다.

 [고요한 사건]

물리적 성질이 달라 합류 지점을 지난 뒤에도 각자의 흰빛과 검은빛을 유지하며 나란히 흐른다는 남아메리카의 두 강줄기처럼, 서로 섞이는 법이 없었다. 그나마 내게 공부를 잘하는 재능이 있었고, 그것이 전학 간 뒤 처음 본 중간고사에서 증명되었기 때문에 나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는 그룹 과외에 속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그들과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이 달랐다. 135p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해지와 어울리는 것을 탐탁지 않아했지만 상위권 성적을 변함없이 유지했으므로 대놓고 나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나를 좋은 사립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왔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넌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말들은 끈끈하게 내 발바닥에 들러붙어 어디든 걸을 때마다 쩍쩍,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138p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한 장면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으니까. 155p


- 개인적으로 가장 현실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작품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아이의 교육을 위해 고등학교를 선택하고 이사를 가고, 혹은 아이의 주변 환경을 위해 이사를 가고. 물론 주변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위적인 인간관계를 위해서겠죠. 아파트와 달동네의 완벽하게 다른 아이들과 환경속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주인공이 안쓰럽게 느껴지고 그런 선택을 한 부모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그러지는 말았으면 하는.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살아가게 될 주인공의 씁쓸한 인정까지.


백수린의 「고요한 사건」은 재개발될 허름한 동네에서 근사한 장면들을 포착해내는 심미안을 지닌 화자의 성장담을 통해,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삶이 윤리적인 판단을 압도하거나 삭제하는 순간에 대해 말한다. 

 

[호수-다른 사람]

물을 가로지으며 그가 내게 다가왔다. 어두운 그림자가 내 머리 위를 덮었다. 그의 몸에서 호수의 냄새가 났다. 물속에서 꽉 지고 있는 물건의 촉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무척이나 딱딱했다. 그 순간, 그가 내게 말했다.

"내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해요?"

나는 천천히 그의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203p


- 마치 추리소설, 심리소설을 처음 읽는 것마냥 도저히 멈추지 않고 넘겼습니다. 정확한 결말은 굳이 내지 않았지만, 굳이 내 멋대로 해석하고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굳이 따지고 싶지 않구요. 여성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의 약자로써 갖게되는 불안감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사실적으로 드러내서. 솔직히 이상한 희열마저 느껴졌어요.


「호수―다른 사람」은 여성의 일상을 잠식한 위협을 범죄 스릴러의 문법으로 생생하게 재현해낸 여성소설이자, 그러한 삶 속에서 한껏 예민해진 여성들의 불안감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심리소설로서 읽는 즐거움과 묵직한 생각거리를 동시에 던져준다.



[그 여름]

고친 안경을 쓰고 수이의 얼굴을 봤을 때 이경은 처음 안경을 맞춰 썼던 때를 떠올렸다.

뿌연 갈색인 줄 알았던 나무가지에는 회색의 가느다란 줄무늬와 흰 동그라미 무늬가 있었고, 가지 위로 돋아난 이파리들은 흐리멍덩한 녹색이 아니라 여린 잎맥이 뻗어나가는 투명한 연둣빛이었다.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지만 바닥이 돌고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 때의 기분을 이경은 수이의 얼굴을 보면서 똑같이 느꼈다. 215p


그렇게 말하며 웃는 수이의 얼굴에 두려움이 비친 것 같다고 이경은 생각했다. 수이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가. 자신의 장래일까, 돈일까, 나와의 관계일까, 그 모든 것일까. 수이는 늘 미래에 관해서만 이야기해왔었다. 마치 자기는 과거나 현재와 무관한 사람이라는 듯이 성인이 되면, 대학에 가면 벌어질 미래의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수이는 사 년 뒤의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그것도 한 치의 의심 없이 기다려온 미래에 배반당한 적 있는 수이가. 231p


-생각해보지 못했던, 하지만 생각보다 요즘에 우리 사회에서도 언급되곤 하는 동성간의 사랑. 어쩌면 너무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사랑에 빠진 이경의 시선에서 그려져서. 그게 동성간의 사랑이든 아니든지간에 그 감정에 있어서만은 공감되었던 작품이었어요.


최은영의 「그 여름」은 레즈비언 여성들의, 그 누구의 것과도 다르지 않은 연애와 이별의 장면을 전통적인 서사 속에 맑고 쓸쓸하게 그려낸다.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방으로 가자. 울지 말자고 다짐을 했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방으로 가자. 선생님은 막 잠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입을 연 사람처럼 잠긴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목소리가 한적한 로비를 울릴 때, 저는 암담한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어요. 다정하지 않지만 차갑지도 않은 눈, 속마음을 쉽게 읽을 순 없지만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눈빛이었습니다. 방으로 가자. 선생님께 의지해 살아온 지난 십오 년간, 제게는 그 말이 곧 선생님이었습니다. 결국 그 말을 따라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이 집에 살게 되었으니까요. 288p


-마지막 편지에서의 반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네요. 심지어 편지의 순서까지 생각하며 읽게 되는 것까지 해설에서 아주 친절히 인도하고 있죠. 여기서도 동일한 동성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것이 어긋난 순간부터. 차마 밝히지 않던 진실, 밝혀질지 혹은 그대로 묻혀질지는 모르겠지만. 용기내서 밝혀낸 진실에서 적지않게 충격을 받았어요.


천희란의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는 한 사람의 어머니이자 한 여성의 연인이었던 인물의 죽음을 둘러싼 언어화되지 않은 진실을 정교한 서사를 통해 직조하며, 아무리 개량하고 각색해도 사라지지 않을 진실, 그것과 함께 연주되는 화해와 불화의 이중주를 들려준다.

 

<내 마음으로>


사실, 모든 작품이 저에겐 쉽지만은 않았어요. 소재 자체도. 절대 내가 그동안 드러내면 안되고 은밀히 대해야만 한다고 여겨왔던 성에 대한 것이었기에 불편한 감정이 앞서기도 했어요. 그리고 절대 허구만은 아닌 현실에도 있을법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심했겠지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감춰온 모든 것이 어차피 내재된 성에서 시작이 되고. 그걸 오히려 불편하다고라도 인식하고 인정하고나니 마음이 편해지는 건 사실이었어요. 자극적으로 와 닿을 소재들이었지만, 이렇게라도 읽혀진다는게 사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편독이 있어 소설, 문학에 있어서는 문외한이었던 저로써는 이 책이 큰 전환점이 되어주리란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다음 9회, 10회. 혹은 이전의 7회, 6회 등..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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