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군함도 세트 - 전2권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도록 쉽게 끝낼수가 없었던 소설이었습니다.

우리네 이야기였으니. 그럴 수 밖에요.

군함도에 한정되어서, 어떻게 2권이나 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읽어나가면서, 생각지못했던 이들의 이야기들에.

그저 피해자인 우리의 입장만으로 끝나지 않는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기 소설이 시작되면서는 시대적인 연도나 날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만

후반부에 가면서 후쿠시마와 나카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그 상황에서만은

정확한 날짜와 시간. 세밀한 묘사를 하고 있기에 얼른 넘어가고 싶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인물들은, 초기 소설이 시작되면서부터 친한 이들의 하시마섬 (군함도)을 탈출하는 것을 바라보며

끝까지 보이게 되는 명국을 비롯하여

이름이 너무 아름다워서 더 슬픈 운명에 놓인 여인인 금화,

금화의 뼛조각을 평생 몸에 지니고 죽을때마저도 놓지 못한 우석,

친일파의 아들이나 자신의 기개, 신념만은 놓지않았던 올곧은 지상,

지상의 아내이자 친일파의 반대입장에 있던 치규의 딸 서형,

서형의 오빠이자 독립활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떠난 태형과

그의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아들이 자랑스럽던 치규와

그저 아들이 평범하게 밭을 갈며 곁에 있길 원하던 어머니.

그리고 일본인이지만 지상을 한 사람으로써 도와주고 이해하던 나까다와 그의 아끼꼬.

일본의 군인으로 불려가 작전이라는 이름 하에 어린 나이에 죽는 아끼꼬의 남동생.

지독하게 친일파의 입장에 서갔던 많은 이들.

일본인과 조선인.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그들의 솔직한 속내들과 감정들.

그와 같게 혹은 상반되게 드러낸 행동들과 그로 인한 많은 결과들.


쉽게 읽혀갈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읽어야만 했던 소설이었습니다.



마치 발을 헛디디기나 하듯 마음이 지상에게로 넘어지던 날을 서형은 잊지 않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던 저녁 무렵이었다. 지상은 샘밭 앞 소양강변의 하얀 모래밭을 바라보면서 말했었다.

"아름답게 살고 싶어. 난 그렇게 살거야."

"그게 어떤 건데요?"

"새처럼 나무처럼 풀처럼 사는거. 저 강물처럼 사는 거. 나 때문에 남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삶.

새나 나무는 저 자신을 위해 남을 괴롭히지 않잖아."

73p


어떻게도 피할 수 없는, 그랬다,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손아귀가 자신을 움켜쥐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행렬에 끼여 앞으로 나아가며 옆사람의 몸에 부대끼면서, 지상은 한 발 한 발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마음을 다잡으려고 그는 고향을 떠올렸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그리고 형, 형이 있었지. 이 항구를 제 발로 드나들었을 형이다. 그래, 두려워 말자. 형이 밟았던 항구를 이제 나도 밟는다고, 그렇게 생각하자.

101p


우석이 허공을 바라보듯 고개를 들더니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다.

서럽구나. 조선의 아들들아. 그러나 꺾이진 말아. 휘고 늘어지더라도 꺾여선 안 된다. 살아남아라.

118p


"세상은, 우리가 다 함께 사는 게 세상이다. 나한테는 남의 일이지만 그 사람한테는 손톱 밑에 가시만 끼어도 아픈 거, 그게 세상이다. 남의 일이냐 내 일이냐, 남의 탓이냐 내 탓이냐, 그렇게들 사니까 우리가 이 모양인 거다. 남의 일이 아니라 그게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거다."

우석을 바라보는 금화의 눈이 반짝인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건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은 무릎 꿇고 살아서는 안 돼. 그렇게 해서는 살 수도 없고, 그러니 싸워야 해. 싸워도 함께 싸워야 해."

우석의 선명한 콧날을 바라보면서 금화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놀래라.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고개를 든 금화의 눈길이 우석에게 얽혀들었다.

192p


"봐라, 면면히 흘러가는 거. 세상이 어떻게 요동쳐도 아이들은 태어난다. 아이들은 태어나고 우리네 사는 일도 면면히 흘러간다."

264p


하시마를 빠져나온 나를 살려준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일본에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밥을 먹게 해준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사람답게 만났기 때문이다. 미움도 사랑도 아니다. 다만 사람과 사람으로 만났기 때문이다. 사람다움, 그게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가치가 아닌가.

2부 413p


2부 후반부에 가서는 원폭투하 이후의 모습들이 너무나 세세하게 그려져서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웠습니다.

일본인, 조선인 누구 하나 가리지않고 모든 사람이 그저 한 번의 빛 이후에 보게 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구요.

이 부분을 본 날은 한참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기도 했지요.


군함도에서 살아가며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그럼에도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던 조선인들의 모습.

탈출하고 나서의 삶 역시 끊임없는 징용공으로써의 삶.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죽음의 앞에 선 이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그들의 인신공격적인 말투와 태도로 일관하는 다수의 일본인들.

그것에 개의치않고 한 사람으로써 일본인을 대하게 되는 우리네 사람들.

'죽음 앞에서조차.' 라는 말이 절로 입안을 맴돌기도 하더군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역사속에서 우리가 보여야 할 태도에 대해,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꼭 읽어야만하는 역사 소설입니다.


http://naver.me/5ksERe4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