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간 사자 -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 수록 도서, 개정판 동화는 내 친구 7
필리파 피어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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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공상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던 시절을 떠올린다. 아무리 멀리 가도 결국 다시 내가 돌아올 곳은 늘 같았다. 현실에서의 내가 아무리 작고 힘이 없다고 해도 내 공상 안에서 나는 마음껏 세상을 유랑했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로 전 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 온 필리파 피어스의 동화를 개인적으로도 좋아한다. 보통은 한 권의 책에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학교에 간 사자>는 표제작인 ‘학교에 간 사자’를 포함한 아홉 가지의 짧은 이야기들이 모인 동화책이다.


어린아이들이 아주 짧은 공상 속에서 모험을 떠나는 모습은 기발하게 그려진다. 때로는 아이를 나도 그 안에서 함께 안아주고 싶게 한다. ‘무지무지 잘 드는 커다란 가위’라는 짧은 동화에서 아이의 감정은 눈에 확실히 보인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에 대한 마음이 모든 걸 다 자르는 가위를 받아 집 안의 모든 물건을 자르게 한다. 하지만 곧 다시 되돌려놓고 싶어 울고 마는 아이를 다시 달래주는 것은 친절한 어른이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접착제를 주며 대신 가위를 받는 모습은 아이의 미운 마음까지 가져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게 한다. 물건들이 잘리거나 다시 붙이는 장면에서 아이의 감정 역시 찢어졌다가 다시 아문다. 또 다른 단편 ‘도망’에서 실수로 이웃 아주머니의 빨랫감을 망쳐놓고 놀란 마음에 집으로 가려다 길을 잃어버리고 마는 아이의 모습도 공감을 일으킨다. 실수를 할 수 있으니 어린이가 아닌가. 우연히 시장에서 엄마의 목소리에 얼른 모습을 드러내며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아이, 그런 아이를 달래기 위해 어른들이 몰려든다. 무한한 친절이다. 무해함 그 자체다. 너무나 작고 늘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가 있어 학교에 가기 싫었던 여자아이는 사자를 만나 함께 학교에 간다. 나중에는 사자가 없어도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렵지 않은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은 많은 아이들이 속으로 바라는 이야기일 테다. 친구를 찾아 나서고, 작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우연히 비밀을 공유하게 된 아이의 모습들은 특별하지 않아서 더 사랑스럽다.


분명 그렇게 어린 시절을 지나왔음에도 자주 망각한다. 그때는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그래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때가 많았다. 다행히 생각으로는 안 되는 것이 없었다. 나는 어디든 가서 많은 환대를 받고 사랑을 받는 여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내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잠이 들기 전에는 자주 죽음 이후를 생각하기도 했다. 영혼이 있다면 얼마나 높이 떠올라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죽음이 무섭지는 않았다.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만나는 하루들이 더해지면서 아이들의 말에 놀랄 때가 있다. 호의, 믿음, 행복 같은 단어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올 때 나는 감탄한다. 있어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아이들의 생각들이 진주나 보석보다도 더 소중하다.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어른이니, 나는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책을 읽으며 짐작할 뿐이다. 어린이의 세계에서 완벽한 해피 엔딩 대신 어느새 집에 돌아오고, 따뜻한 수프를 먹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고 깜박 잊어버린 것. 완벽한 해피 엔딩보다 그저 따뜻한 수프 (실은 커피)를 먹을 수 있는 마지막이 오히려 행복한 결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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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에이션 루트 - 2024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마쓰나가 K 산조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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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낯선 단어만큼 나에게는 산의 풍경은 모두 낯설다. 표지의 산과 하늘 그림 위로 빨간색으로 경로가 그려져 있다. 이 빨간 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하타가 회사 동료로부터 산으로 오르기를 권유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는 등산을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잘 지내보려는 노력으로 마쓰우라 씨와 다몬 씨등 이미 등산을 즐기던 동료들과 함께 산에 오른다. 평소 지내던 곳에서 벗어나 자연을 느끼는 하타 씨의 모습에 독자들은 대부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똑같은 날을 벗어나기를 늘 염원하는 건 같구나 하는 생각을 말이다. 바쁜 일상, 해야 하는 일들에 치이고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이 흘러갈 때마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느낀다. 그 앞에서 흔들리고 마는 우리의 모습이 하타 씨에게도 보인다.

등산 모임은 어느새 회사 내 산악 동호회로 자리 잡히게 되고 후지키 상무가 사임 예정을 앞두고 합류할 때 메가 씨도 함께 한다. 메가 씨는 회사 직원들과 교류 관계를 맺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이 할 일만을 해 나갈 뿐이다. 다만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는 확실히 일을 해낸다. 메가 씨가 이날 보여 준 등산 경로는 하타 씨와 다른 직원들에게도 낯선 길이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었고 그만큼 험해서 나뭇가지를 헤치고 가거나 높이 자란 풀에 시야가 막히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마쓰우라 씨의 입 밖에서 처음으로 '베리'라는 단어를 듣는다.

베리에이션 루트. 베리 루트라는 표현도 쓴다고 한다. 평범한 등산로가 아닌 길, 요컨대 파선 루트라 불리는 고난도의 숙련자용 루트나 폐지된 길을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명확한 정의는 없지 않으려나. 좀 진귀한 루트를 두고 베리에이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또는 정해진 루트가 아니라서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없는 계곡이나 능선을 따라가거나, 지형도를 보고 올라갈 수 있을 법한 곳 또는 오히려 못 올라갈 법한 곳을 나아가는 등 루트를 완전히 무시하고 산행하는-" 그런 걸 포함해서 베리에이션 루트라고 지칭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 49p

그야말로 남들이 흔히 가는 다져진 길의 등산로가 아니다. 산의 경치를 보고 여유롭게 산책하듯 올라가는 길도 아니다. 오히려 남들이 가지 않기에 위험할 수도 있는 길을 '개척'해 나간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홀로 조용히 올라가는 메가 씨를 하타 씨는 이해하지 못한다. 후키지 상무가 사임되고 회사의 분위기는 매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느낌으로 바뀐다. 하타 씨는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직장에서 다시 잘리지 않기 위해 원하지는 않지만 회사 사람들의 모임에도 자리한다. 자신에게는 아내와 딸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옳다고 믿어 왔기에 자신의 일, 자신의 태도가 정답이라도 믿는다. 하지만 메가 씨는 회사의 방침에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그런 모습이 하타 씨에게는 불안했을지 모른다. 그가 신경 쓰이고 걱정되기도 하는 것은 하타 씨 내면에도 메가 씨처럼 자신의 소신을 따르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메가 씨와 한 번 더 베리 루트를 다녀온 하타 씨는 크게 앓고 다행히 회사로 복귀하지만 메가 씨는 그 사이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타 씨는 메가 씨와 다시 연락을 할 수도 만날 수도 없다. 그가 빌려주었던 것은 여전히 집 안에 처박혀 있을 뿐이다. 회사 일을 하는 하타 씨는 변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내 메가 씨의 흔적을 찾아다닌다. 옷을 가볍게 갈아입고 스스로 베리 루트를 가는 하타 씨의 모습이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내면의 파동을 일으킬까.

하지만 저걸 철석같이 믿으면 위험해. 길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법이지. -112p

뭐, 어쨌거나 난 내 할 일을 할 뿐이야. -119p

눈에 보이는 것만을 따라가는 것보다 스스로 판단을 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산을 오르는 이야기이지만 그 산의 또 다른 경로, 베리에이션 루트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늘 안정적인 길만을 고수하는 나에게는 이 길은 위험 그 자체이다. 새로운 길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메가 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고정되어 보이는 길, 똑같아 보이는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도 결국 우리에게 맞는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가는 길 안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기를 바란다. 내가 할 일을 해나가는 것은 그저 주어진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아도 된다.

많은 변화가 없을 거라고 믿는 중년 시기가 나에게도 다가온다. 그 변화 없는 길은 권태로움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묵묵히 내 길을 스스로 판단하고, 내 할 일을 해 나가며 그 권태로움 마저도 길 위에서 만나는 동료처럼 '어이 왔나'하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 베리에이션 루트처럼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는 것과 안정된 길을 가는 것. 둘 중 무엇이 옳은지는 각자의 판단에 남겨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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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너는 특별해! - 2단계 문지아이들 29
가브리엘레 하이저 지음, 카타리나 요아노비치 그림, 권세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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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어린이 책 중 하나인데 야곱의 기울어진 몸에 온순한 눈빛이 보고 싶었다. 표지의 그림은 ‘온순’한 눈빛과는 다르지만 내가 느낀 그는 분명 온순함과 다정함에 더 가깝다. 주위의 앨버트로스와 다르게 부리에 꽃을 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날지 못하지만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이 독자에게 생각해 보라고 책을 펼치기 전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엘다와 요하네스의 애정 안에서 야곱이 태어났다. 하지만 보통의 앨버트로스라면 날개를 펼치고 바람을 느끼며 비행을 하고 잠수를 하며 물고기를 잡는 연습을 해야 하는 시기에도 야곱은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바람, 바다, 큰 소리들을 두려워하고 몸을 웅크릴 뿐이다. 야곱을 본 이웃들은 여러 말을 건네고 그것은 엘다와 요하네스에게 상처로 몸 깊숙이 박힐 뿐이었다. 끝내 날지 않는 앨버트로스, 야곱을 두고 앨버트로스 사회에서 많은 결정을 내리는 ‘원로들’은 그는 앨버트로스이기 때문에 무조건 날아야 한다고 말하며 벼랑 끝으로 데려간다. 겨우 부탁하여 원로들은 야곱에게 1년의 시간을 주기로 한다. 그리고 엘다와 요하네스는 야곱을 날기 위해 도움을 구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 사회에서 누구든지 꼭 날아야 한다는 불문율은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흔히 이 사회에서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정상’처럼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 우리의 눈은 금방 색안경을 쓴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은 이유의 시작점이다. 일반인과 다르면 비정상으로 분류를 하고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버린다. 보통과 다른 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원로들의 행동에 우리가 분개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것이니까. 야곱의 노랫소리, 다정함, 책임감들을 아는 이웃들이 결국 오랫동안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한 원로들에게 반기를 든다. 그들이 원로들을 막아서며 한 말들은 이 한 마디로 시작하였다. “야곱은 우리 곁에 머물러야 한다.” 정상적인 기준들을 넘어서서 야곱이 존재만으로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비록 멀리 날지 못하고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이 힘들지만 그것이 생을 저버리게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사회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완벽한 모습을 찾는 것은 더 어렵다. 자신이 정상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조차 한 부분만큼은 비정상에 가깝다. 결국 모든 존재는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불완전함을 서로 포용하면서 맞춰가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위로와 공감의 연대가 형성된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에서 오는 결핍을 망각하기도 한다. 그러니 결국 마지막에 야곱이 행복해하며 다른 앨버트로스들과 어울리며 지내는 장면에서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야곱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한 것처럼 결핍은 다정하게 포용하며 ‘함께’의 삶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작은 사회에서 그들 나름의 애쓰는 삶을 보내는 어린 독자들도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포용하는 관대함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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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7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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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는 늑대와 매서운 눈빛으로 한곳을 응시하고 있는 늑대의 모습으로 ‘야성의 부름’이라는 제목을 표현하고 있는 표지가 인상적이다.

야성 : 자연 또는 본능 그대로의 거친 성질

벅은 산타클라라에서 저택의 모든 영역을 마음대로 누빌 정도로 편안한 삶을 지냈다. 하지만 정원사의 조수였던 매뉴얼이 돈을 구하기 위해 몰래 벅을 팔아버리면서 벅의 삶은 엉키게 된다. 편안하게 자신의 생존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 그는 살아내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고 싸워야만 한다.

1897년 알래스카의 클론다이크 지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향했다. 일확천금을 노렸고 벅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인간들의 탐욕함은 더 잔인하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이 더 이상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인지한 때는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을 깨달은 때다. 인간의 매질은 자신이 길들여져야 함을, 엄니의 법칙은 같은 개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자비한 본능을 일깨워야 함을 의미했다. 벅은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교활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게 도둑질을 하고 우두머리였던 스피츠를 몰아내기 위해 개들 사이를 엉망으로 만들며 스피츠와 싸워 이기기까지 한다. 그는 야성을 드러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지나친 사람들은 그저 ‘주인’에 지나지 않았다. 썰매를 끄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사람들은 채찍을 휘두르길 주저하지 않았고 몽둥이로 무자비하게 내려칠 뿐이었다. 그들에게 썰매를 끄는 개들은 그저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여러 번 주인은 바뀌게 되고 마지막에는 너무나 지칠 정도로 학대당하고 일어나기를 포기하였을 때 존 손튼을 만난다. 존 손튼은 몸을 날려 벅을 구하고, 벅은 존 손톤에게 완전한 사랑을 배운다.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기꺼이 내놓을 정도로 충성을 다한다. 존 손톤이 보여주는 것은 벅이 처음 느낀 ‘사랑’이었다. 처음으로 인간의 사랑을 느꼈을 때 동시에 그는 먼 숲속에서 야성의 소리,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벅이 변하는 모습은 진보한 것일까. 혹은 퇴보한 것일까. 어느 누구도 벅이 위대한 개라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문명의 세계에서 멀어지며 본성을 찾아가는 벅을 보고 어느 누가 퇴보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또한 벅과 함께한 개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군상을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힘이 강한 우두머리였지만 결국 자신의 자리를 넘겨줄 수밖에 없는 스피츠, 자신의 마지막 숨을 토해내면서까지 썰매를 끌려고 했던 데이브, 다정했던 스킷과 닉의 모습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벅은 다양한 인간, 개들을 만나면서 야성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몸 안에 흐르는 피가 야성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그가 존 손톤의 애정 어린 사랑을 받으면서도 숲속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이끌려 회색 늑대를 만나게 되는 장면은 쉽게 잊을 수 없다.

잭 런던은 책의 첫 시작에 앞서 아래와 같은 글귀를 실었다.

“방랑을 향한 오랜 동경이 약동하며,

관습의 사슬에 분노하자,

야성의 피는

다시 동면에서 깨어난다.“

금광이 발견되지 않았고, 매뉴얼이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벅은 그대로 문명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을지 모른다. 독자들은 벅이 마주한 야생의 삶, 인간들의 무자비함에 눈살을 찌푸린다. 벅이 존 손톤을 만나기 전까지, 차라리 저택에서 나오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벅이 야성의 삶을 받아들이고 독자들도 벅이 온전한 자신을 발견했다고 믿는다. 그것이 차라리 벅에게는 필요한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벅도 물론 문명의 세계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성의 본능이 문명의 세계를 벗어난 의미를 찾아 주었다. 비록 그는 다시 생존하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고 굶주리기도 하고 죽을 위기를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야생의 형제들과 나란히 달리며 울부짖는다. 문명은 벅에게 관습의 사슬이었다. 아늑함이 모든 생명들에게 과연 좋은 것일까. 야생으로 남거나 돌아가는 것에 우리는 관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우리들이 당연시하는 많은 것들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아는 것. 세상과 마주해 오롯이 선 자신이 아무리 외롭게 여겨져도 온전한 자신을 발견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벅이 보여준 야성의 부름에 응하는 모습은 우리 안의 삶에의 애정과 본능을 부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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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모으는 사람 풀빛 그림 아이 27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모니카 페트 글,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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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수많은 생각들로 가득할 때면 꼭 찾아서 읽는다. 표지의 남자는 허름한 옷을 입었지만 눈은 빛나고 입가에는 미소 짓고 있다. 그의 머리 위, 어깨 위, 배낭 안 개구쟁이 같은 모습의 그림들이 그가 모으는 생각들이다.

그의 이름은 ‘부루퉁’씨.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그가 하는 일은 생각들을 모으고 그 생각들이 뿌리내려 아름다운 선율로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는 수많은 생각을 모으기 위해 조용한 거리에 멈추어 서서 귀를 기울이는 그의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그가 듣는 수많은 생각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생각들은 그의 휘파람 소리에 약속이라도 한 듯 그에게로 달려온다. 빠르게 날아오거나 때로는 느린 속도로 날아온다. 그 생각들을 집으로 데려와 정리하고, 한숨 쉴 여유를 준다. 씨앗으로 내려지기 위해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가 모은 생각들이 어느 하나 똑같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하는 수많은 생각들은 쌍둥이처럼 꼭 맞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생각들이 모여 다양한 색으로 발현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선율이 만들어진다. 부루퉁 씨는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들이 다르다고 등을 돌리는 대신 관대하게 포용하길 바랄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들을 수용하면서 우리들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는 아주 엉뚱한 생각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있을 수 있을까?’ 멍하게 있으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것 같아 멍하게 앉아 있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머릿속에는 내가 멍하게 앉아 있다는 것부터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 들려오는 소리, 내 눈에 보이는 사물들이 떠올랐다. 생각 없이 1초라도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로는 생각들을 잡념이라고 일컬으며 내가 하는 일에만 집중하길 바란다. 그래야 해야 하는 것들이 끝날 테니까. 그러다 보면 그 잡념이라고 부르던 것들은 갑자기 손에 쥔 모래알이 손 틈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때 한 생각이 뭐였을까 떠올려보려 해도 이미 늦었다.

생각들을 너무 과소평가하거나 귀찮아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좋은 생각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욕심, 탐욕, 일탈, 거짓 같은 생각들이 떠올라 머리를 흔들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그것들마저 결국 나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인정하면 된다. 자주 떨쳐 내려는 수많은 생각들을 잊고 싶지만 그럴 때는 종이 위에 내려놓으면 어떨까. 사춘기 시절 종이에 마구 적어 내려갔던 수많은 생각들이 지금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어 더 그립다. 또다시 후회하기 싫은 생각은 종이 위에 손을 올려두게 한다. 흔히 많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런 세상을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우리 안의 수많은 생각들이 어떤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낼지 보지 못하는 것이 더 안타깝다. 그러니, 마음껏 생각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나도, 지금 종이 위에 손을 올려 생각을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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