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클럽 반올림 65
김혜진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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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춰진 것, 완성된 것은 단단하고 투명하여 유리와 같고 나무와 같은 공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서늘하게 묵직한 공을 두 손에 쥐고 이제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가 있다. 그 이야기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과 끝났던 것을. 이렇게 아름다웠던 것을. 그렇게 잊기로 했던 것을.

깨어졌으니까 버리려고 했던 거야, 효은아.

.

그래요, 오데뜨. 지금이 그때인가 봐요. 마주해야 할 때.

나는 깨졌다 다시 맞춰진 흔적이 남아 더욱 아름다운 그 유리 나무 공을 바닥에 내려놓고 돌아 나온다. 문 안의 세계가 내가 살 곳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문을 닫지는 않는다. 열어 두기로 한다.

김혜진 <프루스트 클럽> 266p


스무 살의 윤오가 회상으로 다시 꺼내는 열일곱 청춘의 시절 이야기예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누군가 그랬지요.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말 중 하나예요. 청춘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그때의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아픔을 그 한 마디로 '견디라'라고 강요받는 느낌이어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되어버렸어요. 윤오도 그 말을 듣는다면 똑같이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전학을 와서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 윤오는 책을 읽는 것만큼은 멈추지 않았지요. '기댈 수 있'고 '평온한 날들'이라고 생각하는 윤오의 속마음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궁금해하기 보다 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기를 선택한 거죠. 그런 윤오가 어느 날 우연히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골목길로 걸음을 옮기고, 카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그날 도서관에서 한 소녀를 만나지요. 티 없이 맑아 보이는 소녀와 함께 그 카페로 다시 걸음을 옮기고 그때부터 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서사가 펼쳐집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이름이 그대로 간판의 이름으로 걸린 작은 카페입니다. 카페로 내려가는 계단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곳인 것처럼 느껴져서 저는 좁고 허름해 보이는 계단을 일부러 더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여자 주인은 자신을 '오데뜨'라고 불러 달라고 하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스완이 사랑한 여자의 이름이에요. 그리고 이 둘은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보자며 '프루스트 클럽'을 만들어 약속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흔한 독서 동아리의 모습 같지만, 이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도 하고 상처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효은이라는 친구도 함께하면서 성인이 된 윤오가 '잃어버렸던 시간' 속을 함께 보내게 되죠.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꼭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오래전에 8권에서 멈추었어요. 기억이 흐릿해서 이제 조각난 일부분만 떠올릴 수 있네요. 처음 읽을 때 길고도 긴 문장에 놀라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내용도 생각보다 재밌었어요. 형이상학적인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결국 한 사람의 기억 속 이야기였기에 어쩌면 윤오가 '프루스트 클럽'에서 나눈 수많은 이야기, 시간, 온기들을 기억하는 것과 어울리기도 하네요. 이번에는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이제는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전보다 조금 더 길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이전에는 읽고도 크게 동요되지 않았을 문장에 이번에는 오래 머물렀어요. 오데뜨가 한 말이었죠.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지 마. 상처를 가지고, 그것 때문에, 더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도 있어. 나이 든 사람들의 주름처럼. 어쩔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면, 말끔히 지워질 것 같지 않다면, 그걸로 아름다운 흉터를 만들도록 해. 상처가 아무는 것은 그 후에 달린 거니까. 그럴 수 있어."

-김혜진 <프루스트 클럽> 177p

어른이 되면 상처받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제가 이제는 상처받기 싫다고 숨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 아이들이 또 다른 저의 모습인 것 같아서 아이들 뒷모습에 한참 시선을 두게 됩니다. 아이들은 아프게 하고 생채기 나는 마음을 피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멀리 거리를 두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조금씩 상처를 다시 보듬고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결과로 자신을 이끌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그게 어떤 모습이든, 언제까지나 저는 이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미래 옆에 서서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마음에 함께 동참하실 수 있다면, 이 책을 건네고 싶습니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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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논술 신문 - 스스로 읽고 생각하며 논리력을 키우는
오현선 지음 / 서사원주니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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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독서 논술 교사로 25년째 활동 중인 오현선 선생님의 새 책이다. 그녀가 이 일을 시작하며 만난 아이들은 그 시간이 더해질수록 이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 성인이 되기까지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아이들을 보낼 준비를 마음속으로부터 하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눈에 밟힐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 책도 그런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서도 더 세찬 학업의 바람 앞에서 너무 심하게 사시나무 떨듯이 떨지 말라고 전해주는 마음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히 생각한다.

6가지 주제로 아이들에게 시사를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이들이 5학년 되어서 생각보다 아주 많이 부담을 느끼는 사회가 전면에 드러나 있다. 하지만 제목을 보면 아마 아이들도 부담과 두려움을 조금은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려동물, 사향, 초등학생 범죄, 안락사, 사이버 불링 등 지금도 우리 사회 내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문제들이 나오고 아이들도 관심을 가지고 충분히 이야기를 하고 싶을 내용들이다. '그러니, 친구들이여 너무 무서워하지 말거라.'라고 미리 다독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뒤 이어서 경제, 과학과 환경, 교육, 국제, 문화생활로 이어진다.

각 글의 처음에는 '세 줄 요약'을 두었으니 독자로 받아들이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세 줄 요약이라고 간단히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 짧은 글에 '문제 상황', '논제'가 들어가 있으니 말이다. 논술이라고 부르는 '주장하는 글'은 흔히 '토론'의 순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나도 늘 아이들에게 말해 주곤 한다. 여기서도 그 흐름을 확인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전면에 보이는 글은 글의 시작에 있는 '세 줄 요약'의 자세한 설명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물속으로 들어가듯 입수하면 되겠다. 왜 이 주제로 인한 논쟁이 존재하는지, 여러 전문가의 의견이 나오거나 실제 한국 정부가 하고 있는 것들을 설명하거나 해외의 사례도 가져오기도 하면서 하나의 키워드를 통해 아이들이 부담 없이 접근하지만 너무 얕지 않게 빠져들 수 있게 한다. 주장 글 적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이 책 안의 글들을 좋은 예시로 삼아서 본다면 자신의 글에도 조금 더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쓸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쉽게 풀어 이야기한다고 해도 중요한 핵심 용어의 정리를 빠뜨릴 수 없다. 글의 다음 순서로 어휘 알기와 기사 이해를 통해 조금 더 이해되도록 확인하고 '오늘의 사설'과 생각 정리하기로 흐름이 이어진다. '오늘의 사설' 부분이 아이들은 가장 흥미로워할 것 같다. 여기 책에서는 표현하지 않지만 내용을 본다면 논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모두 살펴볼 수 있게 구성을 했기 때문이다. 딱딱한 찬성과 반대라는 용어보다, 아이들에게는 더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갈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한 오현선 선생님의 노력, 배려가 돋보인다.

책을 읽고 여유가 된다면 질문에 답한 내용을 엮어 단 몇 줄로라도 글로 써 보세요. 그간 내가 알던 것은 사실이 맞는지, 우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문을 가져야 하는 것은 없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을지도 몰라요. 생각이 정리되면 세상을 보는 힘이 부쩍 자랄 거예요. 입시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다소 힘들고 분주한 삶 속에서, 이 책이 부담스러운 숙제가 아니라 행복한 읽을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현선 선생님

책의 서두에서 이미 직접 글로 남기신 것처럼, 나 역시 아이들에게 지금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 부담과 알아야 하고 해석해 내야만 하는 과제가 아니길 바란다. 청소년기가 되면 점점 자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도 바깥세상이 궁금해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을 아이들이 어쩌면 누구보다도 더 예민하게 세상의 소식을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께 고민하는 어른이 있고, 그것이 무슨 문제이든 결국 스스로를 지켜내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책이 부담이 아니라, 그 힘을 만들게 해 주는 수많은 징검다리라는 것을 언젠가는 알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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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간 사자 -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 수록 도서, 개정판 동화는 내 친구 7
필리파 피어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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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공상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던 시절을 떠올린다. 아무리 멀리 가도 결국 다시 내가 돌아올 곳은 늘 같았다. 현실에서의 내가 아무리 작고 힘이 없다고 해도 내 공상 안에서 나는 마음껏 세상을 유랑했다.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로 전 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 온 필리파 피어스의 동화를 개인적으로도 좋아한다. 보통은 한 권의 책에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학교에 간 사자>는 표제작인 ‘학교에 간 사자’를 포함한 아홉 가지의 짧은 이야기들이 모인 동화책이다.


어린아이들이 아주 짧은 공상 속에서 모험을 떠나는 모습은 기발하게 그려진다. 때로는 아이를 나도 그 안에서 함께 안아주고 싶게 한다. ‘무지무지 잘 드는 커다란 가위’라는 짧은 동화에서 아이의 감정은 눈에 확실히 보인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에 대한 마음이 모든 걸 다 자르는 가위를 받아 집 안의 모든 물건을 자르게 한다. 하지만 곧 다시 되돌려놓고 싶어 울고 마는 아이를 다시 달래주는 것은 친절한 어른이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접착제를 주며 대신 가위를 받는 모습은 아이의 미운 마음까지 가져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게 한다. 물건들이 잘리거나 다시 붙이는 장면에서 아이의 감정 역시 찢어졌다가 다시 아문다. 또 다른 단편 ‘도망’에서 실수로 이웃 아주머니의 빨랫감을 망쳐놓고 놀란 마음에 집으로 가려다 길을 잃어버리고 마는 아이의 모습도 공감을 일으킨다. 실수를 할 수 있으니 어린이가 아닌가. 우연히 시장에서 엄마의 목소리에 얼른 모습을 드러내며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아이, 그런 아이를 달래기 위해 어른들이 몰려든다. 무한한 친절이다. 무해함 그 자체다. 너무나 작고 늘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가 있어 학교에 가기 싫었던 여자아이는 사자를 만나 함께 학교에 간다. 나중에는 사자가 없어도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렵지 않은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은 많은 아이들이 속으로 바라는 이야기일 테다. 친구를 찾아 나서고, 작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우연히 비밀을 공유하게 된 아이의 모습들은 특별하지 않아서 더 사랑스럽다.


분명 그렇게 어린 시절을 지나왔음에도 자주 망각한다. 그때는 모든 것이 불분명했다. 그래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때가 많았다. 다행히 생각으로는 안 되는 것이 없었다. 나는 어디든 가서 많은 환대를 받고 사랑을 받는 여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내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잠이 들기 전에는 자주 죽음 이후를 생각하기도 했다. 영혼이 있다면 얼마나 높이 떠올라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죽음이 무섭지는 않았다.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만나는 하루들이 더해지면서 아이들의 말에 놀랄 때가 있다. 호의, 믿음, 행복 같은 단어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올 때 나는 감탄한다. 있어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런 단어들이 떠오르는 아이들의 생각들이 진주나 보석보다도 더 소중하다.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어른이니, 나는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책을 읽으며 짐작할 뿐이다. 어린이의 세계에서 완벽한 해피 엔딩 대신 어느새 집에 돌아오고, 따뜻한 수프를 먹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고 깜박 잊어버린 것. 완벽한 해피 엔딩보다 그저 따뜻한 수프 (실은 커피)를 먹을 수 있는 마지막이 오히려 행복한 결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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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에이션 루트 - 2024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마쓰나가 K 산조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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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낯선 단어만큼 나에게는 산의 풍경은 모두 낯설다. 표지의 산과 하늘 그림 위로 빨간색으로 경로가 그려져 있다. 이 빨간 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하타가 회사 동료로부터 산으로 오르기를 권유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는 등산을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잘 지내보려는 노력으로 마쓰우라 씨와 다몬 씨등 이미 등산을 즐기던 동료들과 함께 산에 오른다. 평소 지내던 곳에서 벗어나 자연을 느끼는 하타 씨의 모습에 독자들은 대부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똑같은 날을 벗어나기를 늘 염원하는 건 같구나 하는 생각을 말이다. 바쁜 일상, 해야 하는 일들에 치이고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이 흘러갈 때마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느낀다. 그 앞에서 흔들리고 마는 우리의 모습이 하타 씨에게도 보인다.

등산 모임은 어느새 회사 내 산악 동호회로 자리 잡히게 되고 후지키 상무가 사임 예정을 앞두고 합류할 때 메가 씨도 함께 한다. 메가 씨는 회사 직원들과 교류 관계를 맺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이 할 일만을 해 나갈 뿐이다. 다만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는 확실히 일을 해낸다. 메가 씨가 이날 보여 준 등산 경로는 하타 씨와 다른 직원들에게도 낯선 길이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었고 그만큼 험해서 나뭇가지를 헤치고 가거나 높이 자란 풀에 시야가 막히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마쓰우라 씨의 입 밖에서 처음으로 '베리'라는 단어를 듣는다.

베리에이션 루트. 베리 루트라는 표현도 쓴다고 한다. 평범한 등산로가 아닌 길, 요컨대 파선 루트라 불리는 고난도의 숙련자용 루트나 폐지된 길을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명확한 정의는 없지 않으려나. 좀 진귀한 루트를 두고 베리에이션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또는 정해진 루트가 아니라서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없는 계곡이나 능선을 따라가거나, 지형도를 보고 올라갈 수 있을 법한 곳 또는 오히려 못 올라갈 법한 곳을 나아가는 등 루트를 완전히 무시하고 산행하는-" 그런 걸 포함해서 베리에이션 루트라고 지칭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 49p

그야말로 남들이 흔히 가는 다져진 길의 등산로가 아니다. 산의 경치를 보고 여유롭게 산책하듯 올라가는 길도 아니다. 오히려 남들이 가지 않기에 위험할 수도 있는 길을 '개척'해 나간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홀로 조용히 올라가는 메가 씨를 하타 씨는 이해하지 못한다. 후키지 상무가 사임되고 회사의 분위기는 매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느낌으로 바뀐다. 하타 씨는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직장에서 다시 잘리지 않기 위해 원하지는 않지만 회사 사람들의 모임에도 자리한다. 자신에게는 아내와 딸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옳다고 믿어 왔기에 자신의 일, 자신의 태도가 정답이라도 믿는다. 하지만 메가 씨는 회사의 방침에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그런 모습이 하타 씨에게는 불안했을지 모른다. 그가 신경 쓰이고 걱정되기도 하는 것은 하타 씨 내면에도 메가 씨처럼 자신의 소신을 따르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메가 씨와 한 번 더 베리 루트를 다녀온 하타 씨는 크게 앓고 다행히 회사로 복귀하지만 메가 씨는 그 사이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타 씨는 메가 씨와 다시 연락을 할 수도 만날 수도 없다. 그가 빌려주었던 것은 여전히 집 안에 처박혀 있을 뿐이다. 회사 일을 하는 하타 씨는 변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내 메가 씨의 흔적을 찾아다닌다. 옷을 가볍게 갈아입고 스스로 베리 루트를 가는 하타 씨의 모습이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내면의 파동을 일으킬까.

하지만 저걸 철석같이 믿으면 위험해. 길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법이지. -112p

뭐, 어쨌거나 난 내 할 일을 할 뿐이야. -119p

눈에 보이는 것만을 따라가는 것보다 스스로 판단을 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산을 오르는 이야기이지만 그 산의 또 다른 경로, 베리에이션 루트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늘 안정적인 길만을 고수하는 나에게는 이 길은 위험 그 자체이다. 새로운 길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메가 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고정되어 보이는 길, 똑같아 보이는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도 결국 우리에게 맞는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가는 길 안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기를 바란다. 내가 할 일을 해나가는 것은 그저 주어진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아도 된다.

많은 변화가 없을 거라고 믿는 중년 시기가 나에게도 다가온다. 그 변화 없는 길은 권태로움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묵묵히 내 길을 스스로 판단하고, 내 할 일을 해 나가며 그 권태로움 마저도 길 위에서 만나는 동료처럼 '어이 왔나'하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 베리에이션 루트처럼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는 것과 안정된 길을 가는 것. 둘 중 무엇이 옳은지는 각자의 판단에 남겨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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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너는 특별해! - 2단계 문지아이들 29
가브리엘레 하이저 지음, 카타리나 요아노비치 그림, 권세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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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어린이 책 중 하나인데 야곱의 기울어진 몸에 온순한 눈빛이 보고 싶었다. 표지의 그림은 ‘온순’한 눈빛과는 다르지만 내가 느낀 그는 분명 온순함과 다정함에 더 가깝다. 주위의 앨버트로스와 다르게 부리에 꽃을 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날지 못하지만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이 독자에게 생각해 보라고 책을 펼치기 전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엘다와 요하네스의 애정 안에서 야곱이 태어났다. 하지만 보통의 앨버트로스라면 날개를 펼치고 바람을 느끼며 비행을 하고 잠수를 하며 물고기를 잡는 연습을 해야 하는 시기에도 야곱은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바람, 바다, 큰 소리들을 두려워하고 몸을 웅크릴 뿐이다. 야곱을 본 이웃들은 여러 말을 건네고 그것은 엘다와 요하네스에게 상처로 몸 깊숙이 박힐 뿐이었다. 끝내 날지 않는 앨버트로스, 야곱을 두고 앨버트로스 사회에서 많은 결정을 내리는 ‘원로들’은 그는 앨버트로스이기 때문에 무조건 날아야 한다고 말하며 벼랑 끝으로 데려간다. 겨우 부탁하여 원로들은 야곱에게 1년의 시간을 주기로 한다. 그리고 엘다와 요하네스는 야곱을 날기 위해 도움을 구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 사회에서 누구든지 꼭 날아야 한다는 불문율은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흔히 이 사회에서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정상’처럼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 우리의 눈은 금방 색안경을 쓴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은 이유의 시작점이다. 일반인과 다르면 비정상으로 분류를 하고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버린다. 보통과 다른 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원로들의 행동에 우리가 분개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것이니까. 야곱의 노랫소리, 다정함, 책임감들을 아는 이웃들이 결국 오랫동안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한 원로들에게 반기를 든다. 그들이 원로들을 막아서며 한 말들은 이 한 마디로 시작하였다. “야곱은 우리 곁에 머물러야 한다.” 정상적인 기준들을 넘어서서 야곱이 존재만으로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비록 멀리 날지 못하고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이 힘들지만 그것이 생을 저버리게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사회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완벽한 모습을 찾는 것은 더 어렵다. 자신이 정상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조차 한 부분만큼은 비정상에 가깝다. 결국 모든 존재는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불완전함을 서로 포용하면서 맞춰가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위로와 공감의 연대가 형성된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에서 오는 결핍을 망각하기도 한다. 그러니 결국 마지막에 야곱이 행복해하며 다른 앨버트로스들과 어울리며 지내는 장면에서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야곱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한 것처럼 결핍은 다정하게 포용하며 ‘함께’의 삶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작은 사회에서 그들 나름의 애쓰는 삶을 보내는 어린 독자들도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포용하는 관대함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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