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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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2월 22일

 지리산에서 함께 별을 보던 날로부터 931일째 되는 날, 수정은 살해당했다. 열여섯의 나이였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지. 우진의 인생에도 가장 어둡고 긴 밤이었다. (p. 38)


  세상에 이처럼 가혹한 삶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잘 자요 엄마'로 유명한 미스터리 소설 작가 서미애의 신작,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의 주인공 우진의 삶이 그러합니다. 어려서는 부모님을 잃고 어른이 되어서는 자기 삶에서 가장 빛나던 별이었던 외동딸을 범죄로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밤이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소설은 이제 겨우 밤의 끝에 다달았나 싶었던 우진이 또 한 번 참혹하고 기나긴 밤을 맞게 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딸 아이의 상실과 암 발병까지 겨우 이겨온 아내가 갑자기 투신 자살을 한 것입니다. 우진의 눈 앞에서 아내는 '왜 이렇게 날 구차하게 만들어'라며 우진을 원망하면서 눈을 감습니다. 그렇게 우진의 삶에서 모든 빛이 사라졌습니다. 자신 역시 스스로 삶을 마감할 것을 결심한 우진은 아내의 장례식 동안 내내 입고 있었던 상복의 주머니에서 분명 누군가 몰래 집어 넣은 쪽지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게 우진을 다시 한 번 살아가게 만듭니다. 쪽지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거든요. 딸 아이를 죽인 진범은 따로 있다고.


 딸 아이의 사건은 범인이 잡혀 이미 재판까지 끝난 상황입니다. 어이없게도 딸 아이가 살해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딸 아이와 같은 고등학생이었던 세 명의 가해자 남자들은 봉사활동과 교육 수강 명령만 받았습니다. 가해자 부모들이 병원 원장등 뒷배가 든든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진범이 따로 있다니, 누가 넣었는지도 모르고 진실인지도 알 수 없지만 우진은 딸 아이의 사건에 정작 당사자였던 자신이 진실을 밝혀야 책임을 사법부에게만 맡기고 너무 수동적으로만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가해자들을 만나 직접 파헤쳐 볼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돌연 이야기의 화자가 바뀝니다. 재수생인 이세영으로 말이죠. 그녀 역시 삶의 빛을 잃어가는 참입니다. 재수생이어서가 아니라 가정이 파탄나고 있기 때문이죠. 부유하지만 세영의 가정엔 사랑이 조금도 없습니다. 모두가 이기적이고 자신의 삶만 소중합니다. 한창 사랑을 받아야 할 시기에 손톱만큼의 관심도 받지 못하니 삶이라는 게 그저 피곤하기만 할 뿐 아무런 애착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다 뜻밖에 전혀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도 우진의 딸을 죽였던 가해자 중 한 사람을. 그를 피해 무작정 달아나던 세영이 우연히 근처에 있던 차에 오릅니다. 그 차는 우진이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세영과 그것을 알아채고 죽은 딸이 생각난 우진은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바다까지 함께 동행하기로 합니다. 그러다 우진은 우연히 세영이 자기 딸 사건을 맡았던 검사의 딸이라는 걸 알아내고 그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고자 납치했다는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의 화자는 세영의 아버지, 검사로 바뀝니다. 지금 그는 검찰을 그만두고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아내에게 넌더리가 나 이혼하게 된 그에게 자신의 삶에 단 하나 남은 빛이 세영밖에 없었지만 그만큼 신경써 주진 못합니다. 늘 뒤늦게 후회만 할 뿐이죠. 그러다 우진에게 그런 문자를 받은 것입니다. 그는 우진의 협박에 따라 세영을 만나러 왔던 가해자 집을 찾았다가 그가 이미 목에 칼을 찔려 시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의도치 않았던 납치에서 살인으로 급변한 사건은 우진을 비롯한 모두를 뜻밖의 진실 앞으로 데려갑니다. 알려진 진실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은 일단 세 가지 점이 인상적입니다. 하나는 한 번 잡으면 끝까지 내처 읽게 만드는 이야기의 몰입력. 다른 하나는 반전.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실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놀랍도록 생생한 묘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이 다른 두 가지 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딸과 아내를 잃은 우진의 삶에 대한 묘사는 정말 상실의 탄내를 흠뻑 맡게 만들더군요. 읽으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삶이 이렇겠구나 하고 얼마나 많이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럼 아픔의 묘사가 바탕이 되었기에 우진이 세영이가 자기 딸 사건의 담당 검사 딸인 것을 알자마자 납치라는 거짓 문자를 보낸 것도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힐 수 없습니다만 마지막의 선택도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감히 미스터리도 미스터리이지만 그 아픔에 대한 심리 묘사만으로도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묘사가 이 소설이 정말 독자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것, 그러니까 가족이란 무엇이고 가족을 위해 우리가 진정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 스스로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보게 만드니까요. 분명 이 소설을 읽고나면 한 번쯤 자신의 가족이나 주위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아다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연유가 있더군요. 서미애 작가 자신이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책의 말미에 있는 작가 자신의 말에 따르면 최근에 그녀는 소중한 오빠를 잃었다고 하니까요.  다시 말해 작가 자신이 '별이 사라지던 밤'을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그 밤의 시간과 그것을 관통해 나오며 겪었던 것을 이 소설에 그대로 투영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겪은 것을 토대로 자아내는 것만큼 피부에 와 닿는 묘사도 또 없을테죠. 


 저는 서미애 작가의 다른 작품을 본 일이 없습니다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와 이토록 마음의 결을 잘 나타내는 작가라면 그녀의 다른 작품도 만나보고 싶어지는군요. 아직 별이 사라지지 않은 운 좋은 분들에게 지금 있는 별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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