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던 복수의 밤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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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들을 읽으면 '참 한결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늘 두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과거요, 다른 하나는 복수다. 이것이 다른 미스터리 작가와 구별되는 야쿠마루 가쿠만의 독특성이기도 하다. 그는 언제나 과거에 발목이 잡힌 이들을 그린다. 그 과거란 누군가의 범죄로 인해 혈육을 잃었거나 자신의 삶이 망가진, 한 마디로 상실과 상처로 얼룩진 것이다. 야쿠마루 가쿠의 인물들은 늘 거기에 잡혀 있다. 과거의 덫에 걸려 현재도, 미래도 제대로 누릴 수 없다. '끔찍한 범죄 피해자들의 삶이란 그렇다. 범죄를 당했을 때 이미 자신의 모든 시간 또한 거기에 봉인되어 버린 것이다.' 마치 이것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생생하게 전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 복수 또한 중요해진다.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정의를 세우리라 기대하는 법질서가 특히나 범죄 피해자들에겐 아무런 의지도, 위안도 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범죄가 가져온 비극의 상처는 다른 것으로 풀 수 없고 오직 가해자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결자해지(結者解之)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들은 늘 이 언저리를 맴돈다. 그래서 그의 소설들을 단적으로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은 다른 범죄 소설과 달리 철저하게 피해자를 중심에 둔다고. 최근 형사 정책학에선 형사 정책을 마련하는 근간에 피해자의 삶을 중점적으로 보호하는 '피해자학'이라는 게 주목받고 있는데, 야쿠마루 가쿠는 그 '피해자학'을 소설로 쓰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독자에게 범죄로 인해 커다란 상처를 받은 인물을 주시하라고 한다.

 누군가의 악의로 삶의 모든 빛을 빼앗기고 그 먹먹한 어둠 속에서 내내 신음하고 절규하고 있는 한 영혼을 보라고 말이다. 사실 우리는 피해자의 삶을 자주 간과한다. 범인이 체포되면 그것으로 범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끊을 때가 많다. 정작 우리가 더 많이 헤아리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 범죄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의 삶인 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야쿠마루 가쿠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원래 당연히 기울여야 했을 방향으로 우리의 관심을 인도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번에 나온 2016년작, '기다렸던 복수의 밤'은 그 전해에 나온 '돌이킬 수 없는'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작품이다.

 여러 면에서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과거에 발목이 잡힌 이가 나오고 그 인물이 복수의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게 똑같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은 타인의 복수를 대리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고, '기다렸던 복수의 밤'은 제목처럼 복수를 스스로 집행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이것은 인물에게 다른 갈등을 가져 온다. '돌이킬 수 없는'는 과거를 끊고자 하는데 그럴수록 더 질기게 달라붙는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고, '기다렸던 복수의 밤'은 거꾸로 무수하게 이제는 과거와 단절하라는 요구와 유혹이 자신에게 쏟아지지만 정작 자신이 도저히 그럴 수 없어서 괴로워한다.

 전자는 타인의 비극을 추체험하면서 그 앞에서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은 없는가를 묻지만 후자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비극이 낳은 무저갱 속에 갇혀버린 자에 대해서 그를 구원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책임의 형태가 좀 더 명확해지고 개인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주제가 이어지기에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소설은 30년 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으로 삶이 모조리 망가져 버린 가타기리 타츠오를 대상으로 하여 다섯 명의 화자가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 다섯 명이란 첫 번째는 30년 전 사건이 일어난 볶음국수 집의 주인이자 가타기리의 유일한 친구인 기쿠치 마사히로 이고 두 번째는 가타기리를 도와주려 하는 변호사 나카무라 히사시이며 세 번째는 30년 전 사건으로 영영 헤어져 버린, 지금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만이 남아 있는 가타기리의 딸 마츠다 히카리이고 네 번째는 30년 전 사건에서 기쿠치 아내에게 시비를 걸다가 결국 가타기리에게 칼을 맞아 버린 가와지리와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여성인  모리구치 아야코이며 마지막은 가타기리 타츠오와 묘한 인연을 맺어버린 아라키 세이지이다.


 이 다섯 명의 고백을 통해 얼굴 한 쪽엔 표범 문신이 있고 왼손은 의수이며 그런 몸으로 30년 내내 편의점 강도를 비롯하여 갖은 범죄로 교도소를 들락날락 거린 탓에 어디를 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가타기리 타츠오의 생애란 게 정말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가 밝혀지는 것이다. 또한 그 것을 통하여 소설은 우리가 커다란 비극 때문에 오늘 살아야 할 이유를 잊어버린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넌지시 일러준다. 다음과 같은 말로써...


 "아라키 씨 덕분에 그 친구분이 변할 수 있었던 걸까요?"

 "글쎄요. 다만 자신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한 누구나 변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p. 287)


 그러고 보니 나도 군대 훈련소 있을 때, 너무나 힘들었는데 나약해지려 할 때마다 그런 나를 보고 실망할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각오를 새로이 하던 기억이 난다. 나를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한, 우리는 버티고 이겨나갈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좌절할 때는 정녕 우리에게 아무도 없을 때다. 소설은 누군가에게 그런 한 사람이 되어 줄 것을 청한다. 복수를 기다리는 밤을 보내는 그가 그 밤에서 뛰처나와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한 대낮의 환한 햇살을 껴안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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