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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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관한 6개의 단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소설의 제목은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다. 맞다. 모차르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로 그 곡, '밤의 소야곡'이 제목인 것이다. 이사카 고타로 최초의 연애 소설집이라 한층 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이 책의 제목이 하필이면 바로 그것이 된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것이 사랑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의미는 소설에서 한 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해진다.


 "저번에 말이야, 애를 재우고 있는데 바람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거야. 시끄러운 소리는 아니고, 조용했는데 계속 들리는 거야."

 "무슨 얘기야?"

 "아까 했던 얘기 말인데, 결국 만남이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게 뭔데?"

 "그때는 뭔지 몰라서, 그냥 바람 소리인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깨닫게 되는 거야. 아, 그러고 보니 그게 계기였구나, 하고. 이거다, 이게 만남이다, 딱 그 순간에 느끼는 게 아니라.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거."

 "작은 밤의 음악처럼?"

 "맞아, 그거." (p. 35)


 그러나 이것이 꼭 사랑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사실 이 책을 연애소설집이라고 하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보다 훨씬 더 넓어보인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가 보다 근본적인 면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인생에 대한 태도 같은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생의 의미란 언제나 그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뒤늦게 발견되는 것이니 순간 순간에 너무 좌우되어 일희일비 하지말자가 이 소설에 실어 보내는 작가의 진심인 것이다.



 이러한 태도의 필요성은 첫 단편 '아이네 클라이네'부터 나타난다. 그 단편의 주인공 사토는 길거리에서 설문 조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사토의 회사는 원래 인터넷 조사가 전문이었다. 그런 회사의 직원인 사토가 회사가 결코 하지 않았던 설문 조사를 하게 된 것은 후지마란 직장 선배가 아내와 뜻하지 않게 별거하는 바람에 성질이 나 그만 자신의 책상을 발로 차는 바람에 마침 사토가 그 때 들고 있었던 커피를 서버에 엎질렀고 그 때문에 데이터가 몽땅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후지마 선배는 그 일로 휴직을 하고 커피를 엎지른 죄 아닌 죄로 그는 그만 이렇게 결코 자신이 하리라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인 설문 조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삶은 이렇다. 뜻하지 않은 때에 전혀 예측할 수 없던 곳에서 타격을 가한다. 마치 나심 하메드가 날리는 요상한 펀치처럼.


 "오언은 이따끔 요상한 펀치를 날리거든. 경험이 어디까지 통할지 모르겠네."

 "요상한 펀치?"

 "허리를 뒤로 젖히거나 뒤로 물러나면서 묵직한 펀치를 날리거든. 예전에 일세를 풍미했던 나심 하메드처럼."

 "그게 누군데? 나흐트무지크?"

 "그건 누군데?" (p. 306)


 여기서 작가는 왜 나심 하메드의 이름을 마치 나흐트무지크처럼 들렸다고 쓴 것일까? 바로 그것이 제목에 담긴 의미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 나심 하메드의 특기였던 어디서 올지 모르는 요상한 펀치처럼, 인생의 어떤 순간도 정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랬기에 6개의 단편엔 모두 그런 순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토록 미래가 기대되었던 청순 미녀가 왜 가장 한심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남편을 택해 스스로 퇴색해 버렸는지, 또 원치 않았던 만남을 그저 소개해 준 이에 대한 예의로 계속하고 있었을 뿐인데 오히려 그것이 삶의 단 하나의 사랑을 가져다 준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경멸해마지 않았던 아버지가 뜻하지 않았던 우연의 인연으로 달리 보게 된다든지 거기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많이 괴롭혔던 동창을 우연히 만나 복수를 할지 말지 기로에 섰는데 자신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복수가 이뤄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 단언할 수 없었던 순간들은 그들의 10년 후를 다루는 마지막 단편인 '나흐트무지크'에 가서야 비로소 전모가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순간의 펀치가 시합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권투 선수이자 세계 챔피언이었던 오노는 성공과 실패를 오르락 내리락 했던 자신의 삶을 마치 단번에 정리라도 하는 것처럼 이렇게 고백한다.


 "하지만 살다보면 무엇이 전환점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긴 하죠."(p. 321)


 바로 이 말에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되도록 삶을 여유롭게 대하자는 이사카 고타로의 조언이 말이다. 그러므로 정말 이 소설이 그의 연애소설이라고 한다면 그 연애란 바로 자신의 삶과의 연애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은 그 연애에 있어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사랑에 서툰 아이처럼 조급해하지도 말고, 불안해하지도 말며 그저 사랑하는 모든 순간에 충실하라고 말이다. 아마도 그가 이렇게 조언하는 것은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도 크게 한 몫 했을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로 일본인은 날로 극우가 되어가는 아베 정권 아래에서 극심한 걱정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작가는 이 소설로 조금은 걱정과 불안을 잊고 삶을 껴안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조언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무작정 긍정할 경우 아베로 인해 더 크게 돌아올 위험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긍정과 여유가 문제가 있는 것에 대한 무관심과 무사유가 되도록 해서는 안되고 그와는 반대로 더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로 나아가게 만들 필요가 있다. 바로 거기에 대해 작가는 타자의 삶에 보다 많은 관심이란 방법을 내세우는 것 같다. 6개의 단편들이 모두 다른 이들의 삶으로 채워지고 타자의 입장에서 그런 삶에 관심을 갖고 호기심을 풀어 가는 것으로 이뤄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으로 보인다. 흔한 바람 소리가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가 되었던 것이 들었던 이의 깊은 관심과 반복된 생각 때문이었듯이 말이다.


 재밌는 소설이었다. 이사카 고타로의 이야기 구성하는 솜씨가 꽤나 능숙해졌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네번 째 단편 '메이크업'이 그랬다. 현재와 과거, 대화와 기억을 교차시키는 기교가 뛰어났다. 그런데 제목이 재밌다. 이중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단편 주인공이 화장품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기에 '메이크업'이 화장을 뜻하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때 자신을 괴롭히는 이에게 복수를 할까 말까 하는 이야기의 측면에서 보자면 '메이크업'이 복수한다는 의미에서 보상을 뜻하기도 하니까 말이다.그러고 보니 단편의 제목이 모두 이중의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이 역시 모든 삶엔 우리가 모르는 이면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어떤 순간이 삶의 전환점이 될지 모른다는 주제를 형상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작가가 공들인 티가 난다. 그래서 더 만족스럽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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