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상인의 지혜 인간사랑 중국사 5
리샤오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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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했었다. 상인의 '상'자가 왜 하필이면 '상' 나라의 '상'자일까? 까닭이 있더라.

 알고보니 슬픈 역사의 결과물이었다. 중국 고대 왕조인 상은 결국 주나라에게 망한다. 나라가 망했으니 특히나 상나라의 귀족들은 더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었다. 그들은 농사도 지을 줄 몰랐고 이렇다할 수공업 기술도 가지지 못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는 뜻이다. 하여 그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이기도 한 장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주나라에서 직업적으로 장사를 했던 이들은 대부분 이렇게 상나라 사람이었다. 그래서 장사하는 이들을 오늘도 '상인'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인간사랑에서 중국사 시리즈 다섯번째로 나온 '중국 옛 상인의 지혜'를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이다.


 제목처럼 이 책은 중국의 상인 역사를 담고 있다.

 모조리 담는 것은 아니고 사마천의 '사기' 중 '화식열전'을 저본으로 하여 강의하는 형식의 책이다. 아니나 다를까 원래 중국의 국영방송 cctv에서 강연했던 내용이라고 한다. 어쩐지 알기 쉽고 요점 정리가 잘 된 것 같더라니. 사기를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화식열전'은 열전의 거의 마지막에 나온다. 순서가 그렇게 된 것은 아마도 상공업을 경시하던 당대 가치관의 반영으로 보인다. 한나라에서도 상앙이 실시한 '중농억상' 정책은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었으니까. 사실 이렇게 상공업의 역사를 기술한 책조차 '사기'와 '한서' 밖에는 없다. 역사적으로는 '화식열전'이 최초의 기록이다. 어쩌면 이건 궁형을 당한 사마천의 울분이 낳은 반골 기질 탓인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그는 상공업을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으로 여겼고 춘추전국시대 말기부터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모두 52명의 상공업인의 역사를 '화식열전'에 기록했다. 제목의 '화식'이란 재화의 '화'자와 불어날 '식'의 결합으로 재화가 쉼없이 늘어난다는 것으로 상인으로 성공한 자들을 뜻한다. 그러나 52명 모두가 상세히 기술되는 것은 아니고 그 중 10명만 자세히 기록할 뿐 나머지는 간략하게 정리하거나 이름만 올린 경우도 있다.


 아무튼 중국정법대학 교수인 저자 리샤오는 여기서 '화식열전'에 기록된 상인들을 통해서 오늘날의 상인들이 본받으면 좋을만한 것들을 중심으로 들려주고 있는데 '화식열전' 맨 앞에 나오는 주나라의 강자아(흔히 강태공이라고 잘 알려진)부터 한나라의 복식까지 7명(상성으로 추앙받는 범려는 무려 두 챕터를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과 전통적으로 국가의 중요한 치부책이었던 '염철(소금과 철)'에 따로 한 꼭지를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인물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인물이 활약했던 당대 상업환경과 그 이유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짚어주기에 꽤나 얻는 게 많고 그래서 읽는 맛이 제법 나는 책이다. 대표적으로 중국 영화에서 친구를 말할 때마다 듣게 되는 '붕우'가 실은 상행위에서 나온 말이었다는 것과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관포지교'가 단순히 우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실은 사람을 경영하는 CEO의 자세를 보여주는 일화였음을 아는 것은 느낌이 새로웠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여 말하자면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범려였다.

 그는 '오월동주'란 고사성어로도 유명한 오나라와 월나라의 대립 시절, 패배해 오왕 부차의 똥까지 먹었던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장본인이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범려가 한 권의 책대로 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계연지책'이다. 그는 나중에 월나라가 기틀을 잡자  '계연의 책략은 모두 일곱가지인데 월나라에선 그 중 다섯가지만 쓰고도 뜻을 이루었다. 나라에서 효과를 보았으니 이제 집안을 다스리는데 쓰리라.'라며 모든 권세를 내려놓고 낙향하는데 월왕이 '그대가 가는 것은 하늘이 이 월나라를 버리는 것과 같으니 제발 여기 남아서 우리 나라를 분할하여 다스리도록 합시다. 만일 그래도 가겠다면 그대의 처자식은 모두 목숨을 잃을 것이오.'라며 붙잡았으나 범려는 뜻을 굽히지 아니하였고 결국 아내와 아이, 하인 몇 명만 데리고 도주한다. 그렇게 거의 가진 것 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그는 염전과 수산물의 무역으로 크게 성공하여 거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돈이나 성공에 연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범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열아홉 해 동안 세 번 큰 돈을 모았지만 또 몇 차례나 가난한 친구와 먼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니까 그가 세 번이나 큰 돈을 모으게 된 것도 사업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돈을 모두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는 벌고 쌓아두는 사람이 아니라 나눠주기 위해 버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돈이란 '계연지책'이 누누이 강조하는 대로 저장의 대상이 아니라 순환의 흐름이었다. 하여 사마천은 그를 '자기가 가진 재산을 어진 덕으로 널리 나누어주기를 좋아한 군자'라며 크게 기렸다고 한다. 범려가 무려 상성으로 추앙받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러고 보니 조선 최고 거상이라 칭했던 김만덕이 생각난다. 중국보다 더 심한 '중농억상'에다 가부장제가 강력했던 조선에서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고아로 태어나 여인의 몸으로 그만한 거상이 된 것도 대단하지만 그렇게 마련한 재물을 모두 백성의 구휼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었다는 것에서 더욱 놀랄만한 인물이었다.


 얻는 것 보다 주는 게 더 어려운 법이다.

 우리나라 최고 부자라는 삼성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상속세를 탈루하고자 전환사채라는 법망의 구멍을 교묘히이용, 단 46억으로 에버랜드를 차지하고 그 에버랜드의 지분으로 삼성을 장악했던 것과 똑같이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을 지배하고자 이번엔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바꿔 그 주식의 가치를 세배나 뻥튀기 해 삼성물산과 무리한 합병을 했다. 언론을 동원하여 합병을 가로막는 헤지펀드 엘리엇을 공격하는 한편 합병만 하면 주식의 가치가 상승하리라 선전했지만 현재 결과는 거꾸로 주가가 추락하는 중이다. 캐나다 연기금을 비롯한 해외 장기 투자자들이 삼성에 등을 돌렸다고도 한다.


 문득 원숭이 잡는 법이 떠오른다.

 구덩이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곡식을 갖다두고 위를 단단한 판자로 덮은 다음 원숭이 손 하나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둔다. 원숭이가 곡식 냄새를 맡고 구멍 안으로 손을 집어 넣어 곡식을 잡는다. 그런데 곡식을 잡느라 움켜쥔 손은 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곡식을 버리면 손은 쉽게 빠져나올 수 있지만 원숭이는 손에 잡은 곡식을 놓치기 싫어 계속 움켜쥐고 있다가 잡힌다는 것이다. 상업이라는 게 이 원숭이와 같지 않을까? 시간 문제일 뿐 움켜쥔 손은 언젠가 화를 부른다. 삼성의 이번 합병은 국제의 신임을 잃었고 그것은 언젠가 타격으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도 과도한 대출을 받아 하루가 멀다하고 불안에 빠져있는 하우스푸어처럼 소유의 집착은 더 큰 고통을 양산한다. 역사에 이름을 올린 거상들은 꼬리인 돈을 쫓지 않았다. 보다 큰 뜻을 품고 내어주는데 힘쓰다 보니 절로 돈이 따라온 격이었다. 절제와 포기 그리고 베품이 사업 확장, 수입 확대 그리고 세습 경영보다 더 중요했다. 바로 눈 앞의 이익이 아니라 보다 멀리 볼 수 있었던 자들. 무엇보다 그런 안목이 그들을 거상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문자 그대로 물질 만능이요, 배금주의의 시대.

 날로 탐욕스러워지고 천박해져만 가는 이 자본의 시대에 부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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