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 : 박정희 vs 마오쩌둥 - 한국 중국 독재 정치의 역사
박형기 지음 / 알렙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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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들은 궁금하다. 독재자인 박정희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인기를 누리는 것일까? 이것은 과연 합당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고 기껏해야 그런 작위적인 환상의 연장에 불과한 것일까? 저자 박형기는 <머니 투데이>에서 오래도록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문제를 담당한 언론인이다. 그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너무 국내적인 시각에만 머물러 있다고 여겼다. 이제 그것을 국제적인 시야로 넓힐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중국을 끌여들여 평가해 보기로 했다. 그것도 박정희와 똑같은 독재자인 마오쩌둥과 덩샤오핑과의 비교를 통하여.

 마오쩌뚱의 유명한 말이기도 한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는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은 총 세 가지 부분에 걸쳐 세 명의 독재자를 비교한다. 첫 번째 부분은 필부의 몸에서 최고 권력을 장악하기까지의 과정이고 두 번째 부분은 박정희가 가장 내세우고 있는 업적인 경제 부문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 별로 업적이 없는 마오쩌둥은 생략되었다. 그런데 독재는 장악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지속이다. 마지막 부분은 어떻게 그 권력을 지속시켰는 지를 비교한다. 이야기 형식인데다 서술은 평이해서 이해 못할 부분은 없다. 334페이지라는 다소 적은 분량으로 세 명의 독재자 이야기를 담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슨 일을 했던가를 제대로 습득하기에 족한 책이라는 것이다. 혹시 박정희나 마오쩌둥 그리고 덩샤오핑에 관심이 있었고 좀 쉽게 알게 해 줄 책을 찾고 있었다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적절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머니 투데이>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행여나 오른쪽으로 편향된 서술이지 않을까 우려된다면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더없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으니. 애초에 이 책이 나오게 된 것도 남유진 구미시장이 박정희를 '반신반인'라고 부른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정말 '반신반인'인지 한 번 제대로 따져보자는 심정으로 말이다.


 권력의 쟁취과정에서는 잘 몰랐던 박정희의 만주 군관 학교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한 일본은 만주를 제대로 지배하기 위해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고 모자라는 인력을 조선인으로 채울 계획을 세웠다. 만주의 장악을 위한 인력 수급인만큼 그냥 조선인은 대상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할 수 있는 자들만이 대상이었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친일자들이 만주로 몰려들었고 청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의 친일 청년들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보다 일본군 장교가 되는 것이었다. 장교가 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일본 육군 사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만주에 있는 군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일본군 장교가 되어 출세하려는 야망이 강했던 박정희는 일본 육군 사관 학교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은 합격 요건이 엄격했다. 일단 박정희는 나이 제한부터 걸려버렸다. 때문에 비교적 입학 자격이 허술한 만주 군관 학교에 들어간 것이다.(여기도 나이 제한 때문에 한 차례 낙방해 박정희는 모병 담당자에게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라는 혈서를 써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입학한 후인 40년에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한다.) 


 만주 군관 학교는 졸업하면 만주군에 편입되는데 만주군의 주요 임무는 독립군 소탕이었다. 같은 시기 '유신 시절 박정희의 저격수'로 유명했던 장준하와 김준엽은 일제에 징병되었지만 일본 부대를 탈출했고 독립군이 되기 위해 6천리 길을 걸어갔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박형기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박정희는 큰 칼을 차고 싶어서, 즉 군인으로 출세하고 싶어서 만주로 갔고, 만군 장교로서 일본  제국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알뜰하게. 일제에 견마의 충성을 다했을 뿐이다.(p. 53)


 다소 이야기가 길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어떤 분위기인지 짐작케 하기 위하여 조금 무리를 해 보았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박정희와 마오쩌둥 그리고 덩샤오핑에 대한 일화들을 들을 수 있다. 더하여 정치적 격변기의 우리나라 모습도 아우를 수 있다. 이를테면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것은 원래 만주를 지배했던 기시 노부스케의 만주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본받은 것이라든지 개인청구권을 포기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만 더 커지게 만든 굴욕적인 한일 조약을 체결하게 된 뒷배경이라든지(덕분에 박정희 정권은 자금 3억불과 차관 5억불을 일본으로부터 지원받았다.) 독일로부터 빌린 돈 5천만 달러를 상환할 능력이 없어 우리나라의 광부와 간호사들의 임금을 담보하게 되어 63년부터 15년간 모두 7만 9천명의 광부와 1만여 명의 간호사가 서독으로 가게 된 사연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그 중 '65명의 광부와 44명의 간호사 그리고 8명의 기능공이 현지에서 사망했다. 외로움에 시달려 자살한 수도 광부 5명, 간호사 19명이었다.' 라고 책은 밝히고 있다.) 물론 베트남전 파병이나 그들의 희생으로 건설된 경부고속도로도 빼놓지 않는다.


 이렇게 박정희와 그 때의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니 영화에 '국제시장'이 있다면 책엔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차이가 있다면 영화가 아련한 과거의 향수로 덧칠한 것을 이 책은 벗겨내어 그 객관적 진실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어 준다고나 할까. 어쨌든 좀 더 소상히 그 때의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여기에 더하여 중국의 이야기까지(이렇게 쓰고 보니 박정희 분량만 상당할 것 같다는 인상을 줄 것도 같은데 그렇지 않다. 세 명이 차지하는 분량은 고른 편이다.).


 아무래도 대상이 대상이다 보니 뭔가 덧붙이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냥 결론만 이야기 하는 것이 읽는 이나 나를 위해 나을 것 같다. 그렇게 결론만 이야기한다. 꽤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고 판단에 있어 좀 더 객관적인 자리로 데려가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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