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군주론 - 이탈리어 완역 결정판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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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아벨리에게 끌린다는 것은 굶주렸다는 증거다.

 꿈꾸는 세상이 그다지 원대하지 않는데도 마음을 기대고 싶은 이상이 도무지 나아가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행보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급히 먹는 떡이 체한다지만 기다려도 너무 기다렸다. 보이는 세상이 미치도록 답답하여 화병으로 죽지 않으면 기다리다 굶어죽을 판이니 체증 따위가 뭐가 두렵단 말인가? 제발 한 발짝이라도 좋으니 뭔가 가시적인 결과 좀 보여줘. 그래야 내가 이 허기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참을 수 있지 않겠어? 군주론을 읽는다는 것은 그런 마음이다. 그렇다고 군주론에 나오는 '군주는 빼앗은 땅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면 이전 지배자의 친족을 남김없이 학살해야한다'는 말까지 동의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어쨌든 지독한 허기가 군주론으로 이끈다. 그런데 정작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게 된 것도 그의 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공자와 비슷한 데가 있다. 공자처럼 그 역시 공명심이 강했고 공자가 유세했듯이 일선 정치의 무대에 서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공자와 마키아벨리, 둘 다 현실정치에 대한 지독한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 허기가 공자에겐 '논어'를, 마키아벨리에겐 '군주론'을 가져다 준 것이다. 하지만 나아간 곳은 달랐다.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비슷했다. 모두 혼돈의 도가니. 중국의 춘추전국으로, 이탈리아는 교황, 나폴리, 밀라노, 베네치아, 피란체 등의 5대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평안과는 거리가 먼 시절. 바깥을 둘러보면 지금만큼이나 갑갑증이 몸 가득 차오르던 시절이었다. 누구나 안정을 바라던 그 시대에 공자도, 마키아벨리도 어떻게 하면 안정을 얻을 수 있는가 생각했다.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고민이었으나 도출한 대안은 달랐다. 공자나 마키아벨리나 사람을 보는 시선을 같았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 사익추구의 경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공자는 칸트적인 데가 있었다. 자신의 이익만 우선하려는 경향을 막으려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했고 그러자면 무엇보다 그 누구의 이해로 기울지 않는 불편부당이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칸트처럼 하나의 당위로써 중용적인 '인'을 가져왔다. 한 마디로 높은 이상을 통해 사익 추구의 경향을 '예'라는 틀로 스스로 억압하게 만들어서 한데 묶으려는 것이었다. 공자는 사람들이 그 정도는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이 똑똑하다면 무엇이 정말 자신을 위하는 길인지 현명하게 선택할 테지. 공자는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달랐다. 마키아벨리는 공자가 사람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보았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공자를 만나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바보야, 그래도 문제는 이익이야! 사람은 말이지, 죽는 것보다 자기 재산 뺏기는 것을 더 싫어한다고!"


'사람은 아버지의 원수보다 재산상의 손실을 더 오래 기억 한다'


 마키아벨리는 사람이 중심이었다. 그는 당위로는 절대 사람을 자신이 원하는 물가로 인도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당나귀를 끌고 가기 위해 당근을 눈앞에 보여주듯이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 그 습성을 잘 이용하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사람들을 그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깊이 헤아리는 것. 그것이 마키아벨리에겐 '현실'이란 것이었고 정치의 바탕이었다. 인사가 만사요, 사람에 대해 제대로 통찰하면 만사불여튼튼이었다. 군주론이 정치 논문(그는 '로마사 논고'에서 군주론을 논문이라 부른다.)임에도 한비자처럼 처세술의 용도로도 읽히는 것은 이런 관점 탓이다.


 허기는 자주 조급증을 낳는다. 그건 그대로 '군주론'에 영향을 미쳤다. 이것이 더욱 현실적이 된 것은 그의 조급증이 한몫했다. 그는 빠른 결과를 원했다. 사실 공직을 바라고 쓴 글이기도 해서 더 그랬다. 이상은 알콜 램프로 라면을 끓이는 것과 같았다. 그런 시간이라면 마키아벨리는 물론이고 군주론을 읽는(그가 염두에 두었던) 줄리아노 디 로렌초 데 메디치조차 하품할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수출해야 하는 품목에 대한 PT처럼 현실 가능한 것을 알기 쉽게 요점 정리해서 알려줘야 했다. '군주론'은 그런 스타일의 책이고 그에게 이것은 '단기 계획'이었다. 그는 늘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말했다. '군주론'은 대망의 목적을 위한 단기적인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가 바라는 대망의 진정한 모습은 '로마사 논고'에서 구체화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리가 군주론을 읽는 것은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너무나 답보적인 보다 평등한 세상을 향한 이상들에게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여주려고 하는 것인데.(우리라고 한 것이 성급한 일반화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마음이 나 하나는 아니라는 바람으로 굳이 써 본다.)


 꼭 그런 세상이 오리라 믿는 우리가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 같아서 말이다. 점점 가빠져오는 호흡 때문에 아예 포기해버릴까 싶다가도 현실정치의 교본이라는 여기서 라면 행여 스포이트처럼 방울방울 떨어지더라도 그 물로 지독한 갈증을 조금이라도 달랠 것 같아서.


 어쨌거나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책이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술술 읽히니까. 이해하는 데 가장 적은 뇌세포와 시간을 요구하길래 읽었다. 솔직히 번역이 얼마나 정확하나 따위는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원래 번역에 까다로운 편도 아니고. 그저 원문의 의미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술술 읽히는 번역이라면 '장땡'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허기는 해소할 수 있었냐고?


 하나는 얻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람을 너무 과대평가 하지 말라는 거.

 그러고 보니 재확인이다. 그렇지 않아도 허기는 깨닫게 한다. 사람은 결코 멀리 내다보지 않는다는 것을(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알지만 하지 않으려 한다는 거다. 뭐가 옳은 지는 알지만 내게 손해가 되기 때문에 안 한다는 뉘앙스다. 그런 의미에서 공자는 죽을 때까지 유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는 옳은 걸 안다면 행동하리라 생각했지만 여보세요,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거든요.) 사람은 그만한 그릇이 못된다. 역사 속의 몇몇 영웅들 때문에 무량할 것 같지만 어불성설! 그러면 이런 분통터지는 세상이 되지 않았겠지.


 그러고 보니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


 군주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릇 백성이란 다정하게 다독이거나 아니면 철저히 제압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이다. 사람은 작은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을 꾀하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보복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법이다. 부득불 백성에게 피해를 끼칠 경우 그들의 보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철저히 제압할 필요가 있다.(P. 74~75)


 지금 우리가 당하는 그대로가 아닌가. 습관처럼 해외 유람하시는 저 위의 천상천하 유아독존하시는 분도 군주론은 읽었나보다.

 그러면 이런 말도 좀 새겨두실 것이지.


 공화국 체제 하에서는 군주국에 비해 더 큰 활력과 증오, 더 큰 복수심이 작동한다. 과거의 자유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결코 잠자코 지낼 수 없기 때문이다.(P. 97)


 아니면 그 뒤의 말에 더 집중하기로 하셨나?


 가장 확실한 방안은 그런 체제를 말살하는 것이다.(P. 97)


 진짜라면 소름이 쫙!

 그러면 이런 말도 좀 읽었다면,


인간은 해롭게 생각된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은혜를 입으면 더욱 고마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백성은 자신의 지지로 보위에 오른 군주보다 이런 군주에게 더 우호적이다. 군주는 다양한 방법으로 백성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다만 하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원칙은 군주는 늘 백성을 자기편으로 삼아두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역경에 처했을때 속수무책의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P. 134)


 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요. 절반이 아니라. 그것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데.


 그러니 이런 말은 더욱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네요.


 군주는 앞서 언급한 선한 품성을 구비하지 못할지라도 마치 이를 구비한 것처럼 가장할 필요가 있다. 장담컨대 실제로 그런 뛰어난 품성을 구비해 행동으로 옮기면 군주에게 해롭지만 구비한 것처럼 가장하면 오히려 이롭다. 자비롭고, 신의 있고, 정직하고, 인정 많고, 신앙심이 깊은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리하는 게 좋다.(P. 195)


 적어도 자기가 한 약속은 지키는 척이라도...


 그리고 이런 말도...


 군주가 증오의 대상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탐욕스럽게도 백성의 재산과 부녀자를 빼앗는데 있다. 대다수 백성은 군주가 그들의 재산과 명예를 훼손하지 않는 한 대략 자족하며 살아간다. 군주의 경계 대상은 소수의 야심 많은 귀족들이다.(P. 199)


 어쩌다 리뷰가 이렇게 되었나? 군주론의 말들이 너무나 현실적이라 나도 모르게 지금의 현실에다 이입해버렸나 보다. 냉정해질 수가 없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인데 그럴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좋은 리뷰 쓰는 것은 애당초 포기했다. 읽을 때부터 분통, 푸념, 넋두리의 짬뽕이 될 것을 알았다. 그런 시대니까. 제정신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 시대니까. 그러니 이 리뷰로 군주론이 어떤지 가늠하려 하지 말라. 직접 읽고 스스로 군주론의 초상화를 그리는 게 좋겠다.


 부록으로 이탈리아의 역사, 군주론의 출현배경 및 그 용어 설명, 거기에 군주론과 관련한 서한을 비롯 마키아벨리의 삶과 사상 그리고 군주론의 인명사전까지 거의 책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차지하는 두툼한 부연 설명이 있으니 그게 이 글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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