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특허 표류기
이가라시 쿄우헤이 지음, 김해용 옮김 / 여운(주)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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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업과 같은 전통 분야의 산업들은 이미 성장의 한계에 다달았다는 분석이 많다. 언론들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무한정 늘어날 것이라 설레발을 치지만 연구에 따르면 벌써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 버렸다는 지적이다. 더이상 파이는 늘어나지 않는다. 그 때 활로를 뚫어줄 것이라 기대되는 분야가 바로 '바이오 산업'이다. 대표적인 차세대 유력 분야인 바이오 산업은 과연 그에 걸맞게 왕성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2007년 3조 7천억이었던 바이오 산업이 2011년엔 6조 6천억의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한국만 해도 이러하니 전세계적으로 보자면 얼마나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을까? 안 봐도 비디오다. 사실 바이오 산업은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 수익 대부분이 '특허'를 통해 보장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먼저 '특허'를 가지고 있어야 수익의 현실화를 도모할 수 있다. 덕분에 우리 인체 곳곳이 특허의 대상이다. 그 중 인간의 유전자는 특허를 얻기 위한 각축전이 가장 치열하다. 한 마디로 우리 몸 자체가 바이오 산업에서 보자면 특허의 전장터인 것이다.


 이가라시 쿄우헤이의 '인체특허 표류기'는 그러한 현실의 단면과 그 그늘을 추적하는 책이다. 원래 그는 NHK의 다큐멘터리 PD로 2001년에 '인체 특허'란 제목으로 유전자 특허와 관련된 산업의 명암을 그려내 일본의 문부과학대신상을 받은 바 있다. 이 책은 그 내용과 그 이후의 것까지 포함하여 한 권의 내용으로 정리하여 펴낸 것이다.



 유전자가 뭐길래 특허 때문에 그 난리가 나는 것일까 생각하실 분들을 위하여 잠깐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해 본다면 이러하다.


 'CCR5'란 유전자가 있다. 나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는 저 혼자 에이즈를 인간에게 감염시킬 수 없는 모양이다. 세포 표면에 있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하는데 바로 그 도움을 주는 것이 'CCR5' 유전자라 한다. 이 유전자는 우리들 세포 표면에 있다. 문제는 HIV와 이 CCR5가 정확히 들어맞아야 우리 몸 안으로 HIV가 들어와 에이즈를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HIV와 CCR5를 열쇠와 열쇠구멍으로 표한한다. HIV가 열쇠라면 CCR5는 열쇠구멍이다. 열쇠와 열쇠구멍이 제대로 들어맞아야 문이 열리듯이 HIV와 CCR5도 제대로 들어맞아야 HIV는 우리 몸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CCR5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그 형태가 달라지기라도 한다면 HIV는 결코 우리 몸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이즈로 부터 해방되는 길은 간단하다. 열쇠구멍이 되는 CCR5를 바꿔버리면 되는 것이다.


사실 에이즈 치료 연구는 그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CCR5' 유전자는 과학자들 혼자서 찾아낸 것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한 사람의 자발적 신고로 이루어졌다. 그 장본인은 바로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스티브 크론이란 화가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성적 성향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같이 에이즈에 감염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은 감염되지 않는 것을 기이하게 여겼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자신에게 있을 것이라 생각한 그는 자발적으로 연구소를 찾아가 자신의 혈액을 제공했다.


 그 제공된 혈액 덕분에 연구팀은 에이즈 치료의 획기적 대안을 제공할 'CCR5' 유전자를 찾은 것이다. 만일 에이즈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다면 그 수익은 천문학적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발견할 수 있게 제공했던 당사자인 스티브 크론은 그 수익을 하나도 얻지 못한다. 특허권자에 자신의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스티브 크론에게 그런 건 상관 없었다. 그가 혈액을 제공했던 것은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에이즈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인류 때문이었으니까. 자신의 혈액으로 많은 이들이 에이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되면 그것으로 그는 만족했다.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 연구소의 기업이 'CCR5'의 특허권을 독점해버렸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된 수익은 오직 그 기업만의 것이며 다른 연구소가 더 좋은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 그것을 연구하려고 해도 그 기업은 특허권을 이용해 막을 수 있다.


 스티브 크론의 바람과는 반대로 오히려 특허권이 인류가 에이즈로부터 해방되는 길에 장애물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같은 어둠을 정말로 잘 보여준 사례가 있다. 그것 역시 유전자 특허권 때문이었는데 바로 'BRCA1'이란 유전자다. 여성이라면 알지도 모르겠다. 안젤리나 졸리 때문에 유명해진 유전자이기도 하다. 2013년 5월 14일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미국에서 있었다. 브래드 피트의 아내이자 '툼레이더'로 유명한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암도 아니면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원인이 바로 'BRCA1' 유전자 때문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유방암으로 투병하다 죽었다. 안젤리나 졸리는 그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받았는데 그녀에게 BRCA1이란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유방암이나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저의 경우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87%이며, 난소암에 걸릴 가능성은 50%라고 했습니다.(P. 136)


 그 때문에 그녀는 스스로 유방을 절제했다. 사실 BRCA1 유전자의 발견은 유방암으로 고통받거나 고통받을 지도 모를 여성과 소수의 남성들에게 환영할만한 소식이었다.(책에 따르면 남성도 유방암으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남성의 4% 정도는 유방암에 걸린다고 한다.) 특히나 잠재적 유방암에 있어서는 획기적이었다. 유전자 검사로 BRCA1이나 BRCA2 유전자 존재의 확인 유무를 통해 안젤리나 졸리처럼 유방암의 가능성을 손쉽게 점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유전자의 검사가 거센 환영을 받을 것은 당연해 보였다. 유방암의 소멸이라는 장밋빛 미래도 멀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헛된 희망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특허권 때문이었다.


 BRCA1과 BRCA2의 특허권이 모두 '미리어드'라는 미국의 한 벤처 기업에게 있었던 것이다.(참으로 이상하게도 대부분 유전자의 특허권이 이런 벤처 기업들에게 있다.) 그 기업은 재빨리 이 유전자의 특허권을 미국에서 인정받았고 그 특허권을 바탕으로 바로 독점권을 행사했다. 그 유전자를 소재로 한 모든 연구는 중지되었고 유전자 검사 또한 미리어드가 지정한 병원에서만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비용 또한 유관 기관에게 천문학적인 액수를 요구했다. 그 모든 건 당연히 환자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리어드는 획기적인 치유로 나갈 수 있었던 진로를 탐욕과 독점으로 망쳐버린 대표적인 사례였다. 특허권엔 이런 어둠이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어둠이 막대한 수익을 보장한다. 그것도 언제까지나. 그러니 바이오 기업들은 앞다투어 이 어둠을 소유하려 달려든다.


 여기서 우리는 스티븐 크론의 분노에 찬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유전자는 누구의 것입니까? 그것은 '인류 전체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유전자 특허를 취득한 사람이 그것을 독점해도 괜찮을까요? (P.24)


 이 책이 진짜로 말하고 싶은 것도 바로 이것이다. 누군가의 독점으로 오히려 치유에 장애가 되는 유전자 특허권을 과연 이대로 내버려두어도 될까하고 묻는 것이다. 유럽과 일본은 여기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다. 이 유전자 특허권에 앞장서고 미리어드와 같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지적재산권을 만들고 그것을 널리 유포시키려 애쓰고 있는 미국이다.


 생명체에 대해 특허권을 가장 먼저 인정한 것도 바로 미국이다. 1972년 6월에 그 일은 일어났다.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연구원이었던 인도인 아난다 차크라바티는 당시 잦은 유조선 사고로 바다가 원유에 오염되자 그 원유를 미생물을 통해 정화할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원유를 분해하는 미생물을 만들었는데 바로 그 미생물의 특허를 신청한 것이다. 처음 미국의 특허를 관리하는 특허상표청은 그 신청을 기각했다. 당시 특허법 101조는 특허의 대상을 어디까지나 생물이 아닌 조성물이나 제조물에만 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계에 없었던 것을 새로 발명한 것은 인정되었지만 미생물이 생물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음으로 기각되었다. 차크라바티는 항소했다. 특허항소법원은 차크라바티의 손을 들어주었다. 특허의 강조점을 생물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없은 것을 만들어낸 것에 두었기 때문이다.


 미생물이 생물이라는 사실은 특허법의 목적으로 보아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P. 164)


 그들은 결국 이렇게 판결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미생물은 특허법 101조에 따라 특허의 대상이 된다. 심리의 대상이 된 미생물은 제조물 또는 조성물에 해당한다.(P. 165)


 이렇게 하여 세계 최초로 생명에 대한 특허가 인정되었다. 그들은 생명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모두 특허의 대상으로 해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유전자와 같은 생명 특허는 거침없이 확장되어갔다. 지금은 그 권리가 더욱 넓혀져 과정 일체에 포괄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기본특허까지 인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더욱 나아가 약의 조합과 투약 방법까지 특허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뜨겁게 공방 중이기까지 하다.


 유전자는 발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 신체에 본래 있던 것으로 발견의 대상이다. 약의 조합이나 투약 방법 역시 발명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허의 대상으로 삼으려 치열하게 로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름아닌 독점을 통한 고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특히 바이오 산업에 있어 하나의 특허권엔 반드시 기다란 암울의 그림자가 뒤따르므로 여기엔 상세한 권리의 바운더리가 만들어져야 하지만 정작 문제를 일으킨 미국은 수수방관이다. 사실 그들의 관심 영역도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끊임없이 유포하고 주장하고 있는 지적재산권이야말로 미국의 가장 커다란 수익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득에 점점 눈이 멀어 무분별한 특허권의 남용이 가져올 위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방치되어서는 안되는 위험이다. 왜냐하면 질병은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 특허권에 따르는 위험은 언젠가 결국 우리 모두의 위험이 된다. 더구나 바이오 산업이 한창 성장 중이다. 이제 우리의 또 어떤 부분이 특허의 대상이 되어 연구와 치료에 어떤 제한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이 같은 위험을 막으려면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다. 특허권을 그가 진정 봉사해야 할 대상인 인류의 공영을 위해 쓰여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정당한 사용을 고취하기 위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내용 자체도 흥미롭지만 결코 모르쇠할 수 없는 문제라서 더욱 귀기울여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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