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용사전 - 국민과 인민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적 인민 실용사전
박남일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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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용(御用). 원래는 임금이 쓰는 물건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정부를 위해 일하는, 혹은 권력자의 뜻에 영합하는 이나 행동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대로 정부가 사용하는 물건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말은 변한다. 언어에 대해서라면 방귀 좀 뀐다는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사물이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초기의 논리를 철회하고 언어의 의미란 그저 놀이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만큼 정해진 의미가 없는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말의 의미라는 것이다. 언어학자로 후일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소쉬르도 말하지 않았던가. 말이란 그저 그릇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렇게 기표라 일컬어지는 시니피앙와 의미가 되는 시니피에는 딱히 들어맞지 않고 상황에 따라 분리된다. 그러므로 말해진 바로 그 단어에 우리는 집착해서는 안된다. 말의 진짜 의미는 오로지 맥락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오늘 문참극 사퇴를 두고 한 새누리당 의원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친일의 의미로 말하지 않은 것은 국민이 다 안다고. 국민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데 한 방송국이 악의적으로 부정적인 것만 강조해 보도한 것이라고.  누가, 어떤 국민이 그렇게 이해하는가?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발언에 대해 성토했는데.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는 것인가? 물론 그럴 것이다. 그동안의 새누리 행태로 보아 그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국민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하든 그저 좀비처럼 묻지마 지지하는 이들일테니까. 오로지 새누리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를 보내는 이들만이 그들에겐 국민이다. 그 외는 다 종북이고 좌파이며 미개인에다 (한기총의 조광작이란 사람이 말했듯이) 백정이다.


 하지만 이런 맥락적 이해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생물학자들이 말하듯이 인간의 두뇌란 참으로 귀찮은 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란 깊이 헤아리기 보다 바로 보여지는 그 표면만 포착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다시 말해, 이런 맥락적 이해를 하자면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수사학'이다. 아시다시피 수사학의 전문가들이었던 '프로타고라스'는 당시의 엘리트들이었다. 말을 못하면 관직에 진출하지 못했던 시대라 당연했다. 소위 출세를 하고 싶은 그리스 시민들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수사학을 배워야만 했다. 이렇게 배우고 갈고 닦아야만 하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말은 헤아림의 대상이 아니라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만 들리면 먹이가 있건 없건 침을 질질 흘리듯이 그저 즉각적인 인식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말은 이성의 영역에서 감성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들뢰즈는 언젠가 말했다. 지금의 시각 중심의 문화가 계속 지속되면 사람들은 머리가 텅 빈 바보가 될 것이라고. 즉 '무사유'의 시대가 도래하리라 내다보았다. 사람의 뇌는 귀찮은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인간의 두뇌는 당연하게도 말보다 그림을 선호한다. 보기 좋은 것을 먼저 취하려 든다. 지나친 시각에 대한 선호는 인상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그렇게 감성의 사회가 도래했다. 외모중심사회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사람이 속하고 뒤에 놓여진 커다란 삶이라는 맥락은 싹둑 잘려나가고 오로지 지금 보이는 모습만이 전부가 된다. 타인만이 아니라 사회도 그렇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도와주세요'란 구호를 보라. 사람들은 그것이 나온 맥락,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도와주었을 경우 따르게 될 여파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도와달라'는 말에 표를 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한 총리가 헌정 사상 초유의 유임이라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상황에까지 직면하고 말았다. 상식이 있다면 TV 화면을 붙들고 '오호통재라'를 외칠 수 밖에 없다. 이건 세월호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능욕이 아닌가!


 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도대체 왜 빙산의 일각 밖에는 보지 못하는가? 수면 아래 더 커다랗게 존재하는 말의 맥락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타이타닉과 같은 꼴이 날 뿐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만 보고 무시하고 지나가려다 그 아래에 있는 커다란 빙산에 부딪혀 그만 침몰하고만 타이타닉.


 박남일의 '어용사전'을 보았을 때, 난 정말 이 책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하다고 보았다. 같은 말이지만 처한 계급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나온 말의 의미들이 사전적 정의는 아니다. 그렇지만 읽는 우리들은 이 사전의 의미에 공감하며 그것이 진실임을 안다. 왜냐하면 우리들 역시 새누리 의원이 인터뷰에서 국민을 말할때 느껴지는 것처럼 비록 박남일처럼 매끄럽게 언어로 빚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실상 그 말하는 언어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는 이미 맥락적으로 이해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어용사전'의 의미들은 그들의 상황과 말투 그리고 행동들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맥락적으로 파악한 의미들인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 막연히 냄새를 맡았던 것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으로 교언영색에 불과한 그들의 언어를 교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책은 이념 같은 것을 떠나서 보아야 한다. 우리 자체가 얼마나 말의 표면적 의미나 사람이나 사물의 인상에만 집착하고 있으며 또한 진정한 판단이란 오로지 모든 측면을 아우를 수 있는 맥락적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책 자체가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맥락적 이해를 위한 하나의 훈련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기꺼이, 그것도 아주 열렬하게 추천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이 훈련을 했다. 거기에 비한다면 이 책의 한 권 값은 그저 시시한 부담에 불과하리라. 꼭 좀 벗하시고 달리 볼 수 있는 눈을 많이 가지는 것만이 진정 우리를 자유케 하는 길임을 느껴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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