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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최연소 나오키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작가, '아사이 료.'

 '누구'는 그에게 그런 타이틀을 가져다 준 장본인 격이 되는 작품이다.

 아사이 료는 이미 저번에 나온 그의 데뷔작,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로 만나 본 적이 있다. 약관의 나이에 발표한 그 소설은 마치 그의 고교 생활을 회상하기라도 하듯 각자 동아리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을 통하여 어떤 삶이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것 보다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뭔가 시도라도 하는 것의 중요성, 삶은 그렇게 어떤 것이든 열심히 도전하고 노력하면서 의미를 만들어 가는 것임을 말해주는 작품이었다.

 

 이번에 만나 본 그의 두 번째 소설 '누구'도 읽어보니 말하려는 주제가 크게 첫 작품의 노선과 틀리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특별히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 이들을 소설의 주요 인물들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전작에서 동아리 활동에 열심인 아이들을 천착했던 이유와 이어지는 것 같다. 동아리 활동은 일단 자신이 선택했다는 것에서 일률적으로 정해진 정규 교육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즉 동아리 활동, 거기에는 비로소 '나'라는 자신이 잔뜩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건 부모나 학교가 규정해주지 않은 스스로 선택한 삶이다. 첫 작품의 아이들은 비로소 발견한 자신만의 트랙을 힘껏 달려가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취업 전쟁에 뛰어든 '누구'의 존재들도 다르지 않다.  이제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첫 관문인 '취업'은 그야말로 지금까지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시험당하거나 증명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청춘들이 비로소 그것을 검증받거나 인정받게 되는 계기이다. 그러니까 전작에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참된 자아의 발견이라는 트랙의 출발선 앞에 섰던 이들은 이 소설에서 지금까지 달려온 나라는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성적표를 받게 되는 것과도 같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사실 첫 작품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시험, 혹은 관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듯 하다.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라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그 소설 중 한 에피소드에서 어떤 친구는 기리시마가 배구 동아리를 그만두는 바람에 그가 뛰었던 센터 자리에서 드디어 뛸 수 있게 되는데 그토록 되고 싶었던 자리였던만큼 기쁨도 잠시 느꼈지만 사실 그 보다는 과연 자신이 거기서 기리시마만큼 할 수 있을지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해서 그 아이는 갈등한다. 과연 이 자리를 맡아야 할지 아니면 포기해야 할지. 그러고 보면 이 소설에 실린 모든 에피소드들의 주인공들이 지금 막 자신에게 닥쳐온 어떤 계기들 앞에서 피하느냐 맞부딪히느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기로는 그냥 기로로만 그치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모습에 실망할 수도 또는 만족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즉 거기서의 선택은 하나의 존재 증명이다. 지금까지는 그저 관념으로만 존재했던, 어쩌면 그렇게 관념으로만 존재할 수 있어저 진짜 자신의 가치보다 좀 더 과대포장이 가능할 수 있었던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과연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 진정한 모습이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혹은 평가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사이 료가 이 소설 '누구'의 등장인물들에게 '취업 전선'이라는 일종의 시험을 가져온 것은 그런 의미다. 그동안 자기가 어느 정도의 그릇인지 한 번도 적나라한 테스트를 받아보지 못했던 이들에게 과연 자신이 진짜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동화 백설공주에서 나왔던 늘 진실만 말한다는 거울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대학 생활 내내 학업 보다는 락밴드 활동에 열심이었던 고타로나 그와 한 방을 쓰면서 연극 활동에 열심이었던, 이 책의 화자이기도 한 다쿠토나 고타로와 같은 동아리면서 고타로와 사귀는 미즈키나 그녀와 우연히 같이 취업 활동을 하게 되는 고타로와 다쿠토가 사는 방 바로 윗 층에서 다카요시와 동거하고 있는 리카 모두. 

 

  그래서 이 소설이 옮긴이의 말대로 정말 호러 소설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호러 소설이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범람한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든 남들에게 보일 수 없는 비밀을 들킬 지 모른다는 것에서 오는 공포가 아니라 완전히 적나라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평가받게 되리라는 바로 거기서 공포가 온다는 말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그런 상황이란 공포이지 않을까? 그래도 조금은 괜찮은 존재로 포장되고 싶은 바람이 누구에게나 있듯이 적나라하게 자신의 모든 것이 발가벗기듯 드러나게 되는 상황만큼 견디기 어려운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남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게 되는 자신의 참모습이라면 더더욱. 그러고보면 뉴질랜드의 원주민들이 번지점프를 진정한 성년이 될 수 있는 통과의례로 정했다는 것은 꽤나 적절한 것 같다. 까마득하게 높은 낭떠러지에서 달랑 줄 하나만을 발목에 매고 뛰어내리기 전에 아래를 내려다보는 공포는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이 남김없이 발가벗겨져 적나라하게 보여질 때이 공포와 비슷할 테니까.

 

  소설 '누구'의 취업 활동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가져온 것이다. 그러니 번지 점프대 위에 올라 선 사람들이 그렇듯이 당연하게도 두려움 속에서 회피하려는 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있게 뛰어드는 자로 나뉘어지기 마련이다. 사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들 그 사이의 스펙트럼 중 어느 한 곳에 위치한다. 아마도 이 소설을 읽으면 그 중 하나와 닮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더구나 일본 대학생의 취업 활동은 우리나라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 취업 활동을 겪어본 이들에게는 더욱 생생한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때의 자신은 어떻게 치뤄냈는지, 그리고 거기서 무엇을 느꼈는지 또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읽어보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이 가지는 장점이 있는 듯 하다. 아사이 료는 이 소설에서 현재 일본 젊은이들이 하고 있는 구직 활동을 가감없이 그대로 재현하는데, 정말 소소한 것까지 재현해서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다., 바로 그 상세한 리얼리티가 그대로 비슷한 리얼리티 속에서 구직활동을 했었던 우리의 경험을 환기시켜 더욱 나 자신의 모습을 대입해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바로 그것을 위해서 아사이 료는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감수성 넘치던 문장들까지 포기해가며 지극히 건조하고 담담한 필치로 그려갔던 것은 아닐까 싶다. 작가는 읽는 독자의 공감과 동일화를 원할수록 기교를 자제하기 마련이다. 기교는 문장 자체에 몰입하게 만들어 정작 읽는 자기 자신을 잊게 하기 때문이다. 만화에서 독자들을 캐릭터에게 더욱 동일화시키기 위해서 그 형태를 단순화시키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작품을 아사이 료의 일보 전진이라고 여긴다. 분명 그는 현실 속으로 더 깊이 들어왔고 주제는 비록 전작과 비슷하지만 그 선명성에 있어서는 독자 자신의 경험을 환기시킴으로써 더욱 높였기 때문이다. 과연 이 작품은 전작보다 훨씬 더 강하게 마음을 울린다. 특히 후반에 가서 밝혀지는 비밀들은 정말 나도 모르게 어떻게 살고 있나 진지하게 되새기게 만든다. 표면은 비할데 없이 건조하지만 그 아래에는 어떤 뜨거운 용암 같은 것이 흐르고 있는 소설이다. 이렇게 느껴지는 건 마지막에 쏟아내는 말들이 참으로 호되게 신랄해서인데 때문에 그것을 읽노라면 아사이 료가 동시대의 젊은이들에 대해 얼마나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지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뜨겁다. 안타까움 속에 벼리된 절절한 호소를 담은 가슴이야말로 마라톤을 완주한 심장처럼 뜨거운 법이니까.

 

 열기만큼 쉽게 전염되는 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 역시 어느 순간 당신을 감응시킬지도 모르겠다. 회피하기만 하는 당신, 도전 보다는 늘 순응만을 택했던 당신이라면 더더욱. 이 소설엔 현대 젊은이들의 소통 필수품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전면에 나서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다. 얼른 현 세태의 충실한 반영으로 보이지만 짐작 되기에는 그 속내는 다른 곳에 있는 듯 하다. 어쩌면 아사이 료는 일종의 아이러니함을 보여주기 위해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실시간 업데이트할 정도로 요즘 세대는 자기 표현에 충실하지만 정작 자신을 현실 속에서 정말로 드러내야 할 때는 꼬리를 말고 움츠러드는 것을 빗대어.

 

 말하자면 이 소설은 현실에 대해 방관자로만 있는 것을 스스로 쿨하다고 착각하며 현실로 뛰어들어 깨어지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얄팍한 껍질 속에서만 고집스럽게 머무르는 모든 입만 살은 관찰자 청춘들과 수동적인 청춘들에게 보내는 따끔한 질책이다. 한 마디로 눈가리고 아웅하지 말라는 거다. 자기를 미화시키는 환영의 안대는 벗고 직시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백마디 말보나 한 번의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그런 소설이다. 그래서 뜨겁다. 당신에게도 이 열기가 전염되기를...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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