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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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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화 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박정희에 대한 선망이다. 그의 출세작이자 가장 성공적인 팩션으로도 알려진 '영원한 제국'이 사실은 박정희를 비호한 작품이라는 것은 이제 알려질만큼 알려진 바이다. 그 때 이런 말을 듣고 설마했던 사람들도 다음에 그가 박정희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인간의 길'을 내놓았을 때 역시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뭐, 이건 별로 감춰진 사실도 아니다. 그가 당당하게 자신의 그러한 선망을 공표하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건, 굳이 과거의 전력을 들추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 보다는 그의 작품에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어떤 신념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또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작품인 이 '지옥설계도'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기 있기에 부러 언급하는 것이다.

 

  그 신념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보다 강한 인간이 약한 인간들을 선도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단순히 말해서 그에겐 '엘리트 주의'가 있다. 박정희에 대한 선망은 바로 그러한 신념이 구체적 모습을 얻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그는 철인에 의한 통치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라고 말했던 플라톤의 후계자다. 그 철인의 역할을 이 작품 '지옥설계도'에서는 '강화인간'들이 맡는다. 이름 자체에서 바로 그의 신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은데 아무튼 이 소설을 주로 이끌어가는 주체들인 강화인간들은 영화 '엑스맨'의 뮤턴트들 처럼 원래 태생이 그런 것이 아니라 약물의 의해 인위적으로 강화된 인간이다. 그것도 몸이 약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 죽게 된다. 그래서 강화인간은 그리 많지가 않다. 일종의 '어 퓨 굿맨', 즉 '소수의 정예들'이라 할 만하다. 강화인간이 엘리트 주의가 신체화된 표현임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단서다. 이들은 이름 그대로 보통 인간들을 훨씬 상회하는 능력들을 보여준다. 엑스맨으로 치자면 '매그니토' 급인 자우얼이란 중국인은 중국 정부에 의해 처음 강화 인간으로 육성된 자로 무지렁이 산골 농부 청년에서 삽시간에 세계 자본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천재가 된다. 또한 역시 액스맨으로 치자면 '프로페서 X'라 할 수 있는 한국인 이유진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더구나 그는 집단 최면을 걸 수 있는 능력도 있다. 구태여 이 둘을 매그니토와 프로페서 X에 비유한 것도 사실 이 둘이 그 둘과 비슷한 능력 그리고 성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단 자우얼은 매그니토가 자력의 힘으로 금속을 마음대로 움직이듯이 세상의 돈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그에겐 야망이 있는데 그건 강화인간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능력이 떨어지는 약한 인간들이 강화인간들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건 매그니토의 신념 그대로이고 또한 그가 오로지 외부적인 것만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자우얼 역시 돈이라는 외부적인 것 밖에는 못 움직인다. 반면 이유진은 그야말로 '프로페서 X' 다. '프로페서 X'가 텔레파시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움직이듯이 그 역시 그러하다. 또한 뮤턴트와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오로지 지배만을 고집하는 매그니토에 반발하여 인류와의 조화와 공생을 추구하는 '프로페서 X' 처럼 이유진도 그것을 추구한다. 그는 이것을 위해 자우얼에 반대하여 강화인간을 주축으로 하는 '공생당'을 만든다. 그 공생당의 핵심 맴버이기도 한 캘빈에 따르면 공생당은 다음과 같은 것을 추구한다.

 

 

 "천만에, 우리의 관심은 오직 행성에 있어. 인류의 대다수가 가난해졌고 자존심과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렸어. 지구 환경은 점점 악화되고 행성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왔지. 그런데도 이 행성의 미래에 관한 결정들은 어떤 정부보다도 많은 돈을 주무르면서 돈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인간들, 선거에 의해 뽑히지도 않는 인간들에 의해 내려지고 있네. 우리는 이 구조를 바꾸려는 거야."(P. 49) 

 

 이 말을 일부러 인용한 것은 또 하나의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왠지 나는 여기서 왜 이인화가 강한 소수에 의한 지도체제를 원하는지 그 이유를 보게되는 것 같다. 이 말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로 자본가 계급에 대한 원망이다. 바로 이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즉 현재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본가 계급 자체에 대한 경멸이 거꾸로 그 자본가 계급을 발 아래 두고 마음대로 휘둘렀던 박정희에 대한 선망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가 싶은 것이다. 아무튼 이 소설은 그렇게 크게 이 자우얼과 공생당 그리고 강화인간을 제거하고 싶은 인류의 대립 구도로 전개된다. 이것은 그야말로 엑스맨적 구도와 흡사하다. 물론 이 소설은 강화인간들이 전면에 나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공생당의 설립자 이유진이 살해된 이유와 그 범인을 추적해가는 미스터리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엑스맨에 있어서는 지배냐 아니면 조화냐의 구도였지만 '지옥설계도'는 자본과의 타협이냐 아니면 새로운 가치 질서의 수립이냐의 구도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그런데 왜 제목이 하필이면 '지옥설계도'일까 궁금하실 것 같다. 사실 제목의 지옥은 진짜 지옥은 아니다. '매트릭스'처럼 가상 세계의 지옥이다. 먼저 왜 이런 세계가 등장하게 되었는지 말하는게 순서일 것 같다. 이 세계는 이유진이 죽을 때 만들어졌다. 앞서 이유진의 능력에 대해 말했듯이 그는 집단 최면 능력이 있다. 그런데 이 능력은 의식적으로 뿐만아니라 특히나 자신의 생명이 위협당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발휘되기도 한다. 그렇게 이유진이 살해당할 때 그의 능력이 무의식적으로 발휘되어 버렸다. 그런데 공생당의 강화인간들은 강한 텔레파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모두 이유진의 능력을 수신해 버렸다. 그게 의식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기에 이유진의 집단 최면 능력을 텔레파시로 수신받은 공생당의 강화인간들은 모두 그 정신이 이유진이 만든 최면 세계에 갇혀버린 것이다. 즉 식물인간 같은 처지가 되어 정신만은 이유진이 설계한 최면 속 세계에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 세계의 이름이 바로 '인페르노 9'이다. 영원한 꿈만 꾸는, 그렇게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그들을 다시금 깨우기 위해서는 그 세계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열쇠가 필요하다. 이유진은 미리 그 열쇠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지옥설계도'다. 소설은 이렇게 이유진을 죽인 이유와 범인과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지옥설계도'를 찾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제목에 지옥설계도가 전면에 나온 것은 사실 이 소설이 인터넷 게임인 '인페르노 9'을 위해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후기에 있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소설과 게임이 동시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그 게임의 설정이 어떠하고 추구하는 세계관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프롤로그라고도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아예 '인페르노 9'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삽입되어 있는데 게임에 구현될 세계가 대략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게 될런지 짐작케 한다.(수십페이지에 걸쳐 인페르노 나인의 연대기를 말해주는 부록까지 있다.) 그렇게 게임을 위해, 게임과 융합된 소설이기에 제목이 '지옥설계도'가 된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왜 일부러 저런 복잡한 설정으로 굳이 인페르노 나인을 끌여들였는지 이해가 된다. 공생당 당원들이 집단 최면으로 인페르노 나인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 한 마디로 우리가 온라인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은유다. 이렇게 한 것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인페르노 나인이 그냥 가상세계가 아니라 게임적 세계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굳이 게임적 세계를 드러내는 것은 여기에 참여하는 자들의 면면 때문이다. 게임적 세계임을 드러내는 이 '인페르노 나인'엔 과연 누가 들어가는가? 강화인간들이다. 보통 인간들 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들만이 들어간다. 또한 그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자본으로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려하는 자우얼에게 맞서 공생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지구를 구원하려는 자들이다. 작가가 원하는 이상적인 강한 인간의 모습이 투영된 존재들. 그들만이 인페르노 나인에 참여할 수 있다. 이만큼 말하면 눈치채셨을 것 같다. 맞다. 작가는 게임에 참여하는 자들의 존재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하여 굳이 인페르노 나인에 들어가는 절차를 복잡하게 설정하고 강화 인간이라는 존재들을 가져온 것이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인류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존재들은 소수의 정예들 뿐이다.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능력으로 무장한. 인페르노 나인은 그런 자들만이 올 수 있는 세계이다. 그러니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말라!'

 

 '지옥설계도'는 이 외침을 위한 소설이다. 여전한 엘리트 주의와 엑스맨과 차이나는 구도 그리고 강화인간과 인페르노 나인의 설정은 복잡하게 뒤엉켜 '오늘을 구원할 수 있는 건 기존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가치관만이 가능하다'라는 것을 부르짖으며 여기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다. 그가 게임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뭐 당연하지 않을까? 아직도 우리에겐 게임에 대해선 부정적 시각들이 지배적이니까. 게임은 유희의 마당이요 현실 도피의 통로요 오로지 시간만 낭비할 뿐인 백해무익의 터전이니까. 셧 다운제가 이 모든 부정적 시각들을 체화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필요했을 것이다. 게임을 긍정적으로 여길 수 있는 통로가. 플레이를 하는 데 있어 당당해질 수 있는 이유가. 그리하여 이 소설은 이렇게 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시각이 아닌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게임을 바라볼 수 있도록...

 

 사실 나는 게임에 그다지 부정적이지도 않고 저번 '어번던스' 리뷰할 때 썼던 것처럼 게임이 지금 현실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얼마든지 새롭게 보완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옥설계도'가 이러한 취지인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지옥설계도'도 엄연한 소설인 이상 그것이 얼마나 충실히 구현되어 있는지 또는 설득력있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지는 또 달리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작가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지옥설계도'가 좋은 소설인가 아닌가의 문제뿐입니다' 그리고 '좋은 소설은 어떤 사회 속에서 부대끼고 살아가는 한 사람 인간의 진실된 모습이 그려져 있는 소설'이라고.

 

 명시한 작가 자신의 좋은 소설에 대한 정의에 비추어 말하자면 그렇게 좋은 소설로 보여지지 않는다. 여기서 부대끼는 한 사람의 모습들은 이유진의 죽음을 추적하는 국가정보원 김호 그리고 공생당의 강화 인간들인 이유진, 새라 워튼, 벤, 준경 등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열된 어느 인물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하는 진실된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다. 때로는 너무 짧고 때로는 다른 에피스드들이 끼어들여 산만해서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갈등 혹은 고뇌에 몰입할 여지를 거의 주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엔 이 소설이 너무 디테일하다는 것도 한 몫한다. 아마도 독자들에게 리얼리티를 보다 충실히 하려고 그랬겠지만 정보 기관이나 세계 정세 또는 경제 지식 혹은 이런 저런 이론들이 너무나 세세하게 나열되어 있어 정작 놓치지 말아야 할 인물들의 감정 동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의 관점에서 진행되는데 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그러니까 독자들이 이야기적 흐름을 잡을 수 있게) 순서로 나오지 않고 더러는 마치 두더쥐잡기 게임에서 튀어나오는 두더쥐처럼 나온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산만하게 나와서 더욱 몰입이 방해되었다.(사실 그래서 이 소설을 몇 번이나 리와인드 했는지 모른다.) 여기에 더하여 개인적으로 가장 큰 문제라고 여겼던 것은 정말로 작가가 공생당이 말하는 가치를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새라 워튼의 이야기는 작가가 그것을 믿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지만 후반에 밝혀지는 범인에 대한 술회에서는 어쩐지 스스로도 그런 것을 불신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과도 관계되기에 이런 믿음에 대한 통일성은 꼭 지켜져야 할 것 같은데 읽다보면 어떤 혼돈과 망설임의 지점들이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소설을 소화시키기 어렵게 만들었다. 좀 더 분량을 늘이더라도 인물들의 고뇌가 충실히 드러날 수 있는 긴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보다 유기적으로 결합될 수 있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임과 동시에 진행하느라 어려웠을지도 모르고 그의 말에 따르면 눈깜짝할 시간에 완성된 작품이라니 어쩔 수 없이 잉태하게된 부족함 같기도 하다. 게임을 전혀 새롭게 인지시키려는 시도 자체는 좋았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이 소설을 쓰게 한, 그가 온라인 게임에서 느낀 게임 참여자들의 헌신적인 순교자들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공감시키기 위해서라도 보다 긴 시간을 두고 차분히 숙성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더욱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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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6 0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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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6 2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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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7 2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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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30 0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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