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티튜트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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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에 발표된, 스티븐 킹의 '인스티튜트'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작년에 이 책이 미국에서 나왔을 때, 입소문이 좋아서 우리나라에도 나오길 기다렸던 작품인데 기대한 것보다 빨리 나와서 더 반가웠다. '인스티튜트'는 단순하게 시설이라는 뜻으로 스티븐 킹은 이 작품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샤이닝의 후속작인 '닥터 슬립'에서 한 번 다뤘던 초능력자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구현하고 있다. 그건 총 2권에 걸쳐 펼쳐지는데, 난 그 중 1권을 읽고 이 리뷰를 쓰고 있다.



 먼저 총평부터 하자면 근래 읽은 스티븐 킹 작품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 중 하나였다. 전체적인 느낌은 '닥터슬립'과 '쇼생크 탈출'을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이걸 하나씩 설명하자면 먼저 이 소설이 두 명의 인물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는 것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소설의 포문을 여는 인물로 전직 경찰인 팀 제이미슨이고 다른 하나는 아닌 밤 중에 홍두깨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손에 납치되어 '시설'에 감금된, 초능력을 가진 열 두살의 소년 루크 엘리스다. 1권이 끝날 때까지 이 둘은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1권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2권에서 이 둘이 만나고 루크가 팀 제이미슨의 보호를 받을 것은 명백해 보인다. 이러한 팀과 루크의 관계는 '닥터 슬립'에서 팀의 말대로 '서로 등을 긁어주는' 조력 관계였던 대니와 아브라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다 그들을 위협하는 '닥터 슬립'의 트루낫 역시 이 소설 '시설'과 유사하게 '스팀' 착취라는 그들의 목적을 위해 초능력이 있는 어린 아이들을 납치, 감금한다. 원래 루크는 잠재적 염력 보유자인 TK로 분류되어 시설에 수용되었지만 나중엔 TP인 텔레파시 능력도 가지게 되는데 이 또한 뛰어난 텔레파시 능력이라 할 수 있는 샤이닝을 지녔던 아브라를 생각나게 만든다. 이런 까닭으로 난 '닥터 슬립'을 연상했고 '쇼생크 탈출'을 생각했던 건 '인스티튜트' 1권 후반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아이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결국엔 폐기 처분되고 말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 루크가 IQ 수치 자체가 무의미한, 누구보다 뛰어난 천재적인 두뇌로 전략을 짜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움직여 '시설'을 탈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어보시면 이런 궁금증이 하나 드실지 모르겠다.

 왜 스티븐 킹은 소설의 시작을 하필이면 팀 제이미슨으로 한 것일까? 사실 팀은 1권에서 비중이 그리 크지 않으며 이야기의 순서를 바꿔서 루크가 듀프레이에 왔을 때 1권 앞부분에 나온 그의 이야기를 시작해도 별로 어색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렇게 팀의 얘기로 시작했다가 뚝 단절하고 갑자기 인물과 배경을 확 바꿔서 루크의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어색해 보이는데, 스티븐 킹은 왜 이런 인상을 주는 위험마저 무릅쓰면서 지금과 같은 구성을 취한 것일까? 난 여기에 이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며 그것이 이 소설, '인스티튜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소설의 핵심이 되는 '인스티튜트', 즉 '시설'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자. 스티븐 킹은 2장 '똘똘이'에서 루크가 시설에 납치, 수용되는 과정을 그린다. 루크는 앞서 말했듯 엄청난 천재로 이미 한 해의 등록금이 하버드대와 맞먹는 영재 전문 교육학교 브로더릭에서도 손꼽히는 존재다. 그는 겨우 열 두 살의 나이로 미국의 SAT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다.


저희 학교에는 영재들이 있습니다. 사실 브로더릭 재학생의 50퍼센트 이상이 영재죠.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루크는 달라요. 로크는 포괄적이에요. 한 분야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그렇습니다.(P. 81)


 

 스티븐 킹은 루크의 비범한 면을 주로 학교라는 것과 관련하여 많이 보여주는데, 이건 사실 나중에 나오는 '시설(인스티튜트)'가 독자들에게 일종의 교육 기관처럼 연상되도록 하는 교묘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시설에 납치, 수용된 이들은 모두 학교를 다녀야 하는 나이의 어린 아이들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시설'은 오늘날 미국 교육이 가진 현실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스티븐 킹은 루크가 다녔던 학교, 브로더릭에서 유난히 학생의 뛰어난 능력을 강조하며 그것이 사회를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걸 은연 중에 내비치고 또 루크가 SAT를 치르는 날, 성적이 나쁘게 나온 여학생이 깊은 슬픔에 빠져 나온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건 모두 미국 교육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수월성 교육의 대표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높은 성취만을 강조하며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 하는 것. 스티븐 킹은 '시설'에서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모든 것을 통하여 현재 미국이 하고 있는 수월성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이뤄지는 것들의 진실한 초상은 바로 이것이 아니냐고 비판하는 것이다. 시설의 운영자 식스비 부인을 비롯하여 그 곳의 관리자와 직원들을 아이들의 인권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잃게 만드는 폭력까지 서슴없이 자행한다. 수월성 교육이 능력과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무시하듯, '시설' 또한 자신들이 원하는 기준에 아이들이 도달하지 못하면 폐기해버린다. 


 그는 실험대상이었고 그들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급이 낮은 TP와 TK, 그러니까 분홍색들만 추가로 검사를 받았다. 이유가 뭘까? 그들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일까? 일이 잘못되면 더 쉽게 폐기처분할 수 있기 때문일까?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루크가 보기에는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그는 알 수 없었다. 점들이 사라졌고 아이리스도 사라졌고 점들은 다시 돌아올 지 몰라도 아이리스는 그렇지 않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아이리스는 뒤 건물로 넘어갔고 그들은 이제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P. 281 ~ 2)



  이러한 '시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어른과 아이들의 대립이다. 아이들을 '뒷 건물'로 보내서 자신들의 목적(이건 1권 후반부에서 밝혀진다.)에 보다 유용하게 쓰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시설'의 어른들은 오직 아이들을 통제할 뿐이며 자신들이 세운 질서에 복종할 것만 강제한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자신을 나라에 봉사하기 위해 군인처럼 징집당한 것이며 오늘의 희생으로 나라가 크게 도움을 받을 거라는 둥, 여기서의 생활은 포스터로 '천국에서 보내는 또 다른 하루'라는 둥 듣기 좋은 말을 해대지만 아이들은 속지 않는다.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폭언과 폭행, 바깥 사정을 하나도 알 수 없는 고립과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약물 투입에 대한 공포는 그 어떤 좋은 말로도 포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들이 우리는 납치한 거냐고? 맞아. 우리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냐고? 맞아. 저들이 우리를 어떻게 찾았느냐고? 그건 몰라. 하지만 엄청난 작전일거야. 여기가 이렇게 엄청난 걸 보면. 수용소잖아. 의사도 있고 기술자도 있고 자칭 관리인이라는 사람도 있고... 숲속에 박혀 있는 소규모 병원이나 다름없어.”

(………)

 “도대체 말이 안 돼. 미국에서 이게 가능하다고?” 루크가 말했다.

 “여긴 미국이 아니야. ‘시설’ 왕국이지.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가면 창밖을 내다봐, 엘리스. (·········) 여기처럼 초록색으로 된 콘크리트블록 건물이. 나무에 섞여서 잘 안보이게 하려는 수작이겠지. 거기가 뒤 건물이야. 모든 시험과 주사 투여가 끝난 아이들이 가는 곳.”

 “거기에 가면 어떻게 되는데?”

 이번에는 칼리샤가 대답했다.

 “우리도 몰라.”(p. 151 ~ 2)


 잘생긴데다 시설에 가장 많은 반항을 하여 '시설'에 수용된 여자 아이들에게 많은 흠모를 받는 니키는 이 흐름에 가장 대표적인 존재다. 이러한 니키로 인해 어른과 아이들의 대립 전선은 더욱 선명해지며 어른의 나쁜 면은 한층 더 부각된다. 그 어른들은 입으로 아무리 좋은 말을 내뱉어도 그저 아이들에게 끔찍한 악몽만 선사하는 존재다.


 프리실라가 다시 그의 뺨을 때렸다. 이제 귀가 더 세게 울렸고 루크는 울음을 터뜨렸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시설이 악몽인 줄 알았더니, 몸의 절반이 빠져나간 채로 아무것도 안 보이는 카드에서 뭐가 보이느냐는 질문을 받고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뺨을 맞는 지금 이 상황이 진짜 악몽이었다.(p. 270)

 

 바로 여기서 우리는 소설 처음에 나온 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초반에 팀과 팀이 뜻하지 않게 하게 되었던 여행 중에 같이 했던 어른들은 '시설'의 어른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설'의 어른들은 초능력을 부려서 더욱 자신들과 다른 타자인 아이들을 무조건 통제하려 들지만 팀과 초반에 나온 어른들은 타자를 통제하지 않는다. 기꺼이 자신의 곁을 내주어 격리하거나 차별하지도 않는다. 그런 어른들 사이에서 팀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여행을 한다. 그 때, 그 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뿐인 여정은 '뒷 건물'이라는 목적지가 명백하게 정해진 '시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여기서 나는 스티븐 킹이 포스터 문구를 통해 인용한 '천국에서 보내는 또 다른 하루'가 얼마나 재치있게 도입한 장치인지 감탄하게 된다. 아마도 소설 초반에서 팀이 노숙자 할머니 애니에게 보인 모습이 아니었다면 난 이 문구를 그냥 단순하게 시설이 아이들에게 하는 흔한 선전문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바로 이 문구 자체에 스티븐 킹이 소설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 집약되어 있었다. ​'천국에서 보내는 또 다른 하루'는 영어로 'ANOTHER DAY IN PARADISE'다. 어딘가 낯익게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이 필 콜린스의 동명 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제목이 같아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스티븐 킹은 분명히 이 노래를 생각하고 그 문구를 가져왔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팀이 노숙자 할머니 애니와 만나는 장면 때문이다. 필 콜린스의 노래 또한 한 남자와 그에게 도움을 구하는 노숙자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노랫 속 주인공 남성은 도움을 호소하는 노숙자 여인을 무시한다. 휘파람을 불면서 아무 말도 못 들었고 자긴 거기 없다는 척을 하며 황급히 떠나버린다. 이런 남자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오직 도구의 모습만 볼 뿐 그 외의 것은 깡그리 무시해버렸던 '시설' 어른들의 모습과 판박이다. 그러나 팀은 다르다. 그는 마을에서조차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는 노숙자 할머니에게 기꺼이 다가가 말을 건네고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그는 필 콜린스 노래 가사처럼 그녀 얼굴의 주름을 보고 그녀가 있는 곳을 본다. 필 콜린스가 이렇게 보고 곁에 있어 준다면 천국일 거라고 노래했던 타자를 향한 전폭적인 열림. 그걸 팀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열려 있고 노숙자 할머니가 열심히 뜨고 있는 거대한 목도리처럼 서로 연결하는 존재다. 그러한 그는 우연의 섭리로 닿게 된 듀프레이 마을에서 야경꾼이 된다. 야경꾼은 마을 순찰을 돌지만 정식 경찰은 아니다. 경찰과 일반인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지만 바로 그 때문에 모두를 연결하며 포용할 수 있는 존재다. 


 야경꾼 자체가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일자리거든요. 적어도 듀프레이에서는요.(P. 51)


 이러한 팀의 모습은 확고한 상하 관계로 이뤄진 조직의 위계 질서 속에서 타자에 대해선 통제와 관리만이 존재하는 '시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소설 '닥터 슬립'에서 타인을 통제하는 것에만 몰두했던 '트루낫'과 타인이 가진 고통과 고뇌의 자신을 전부 열었던 '알콜 중독자 협회'가 그토록 달랐듯이.


 그런데 앞서 '시설'은 아이들에게 오직 악몽만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건 이번 BLACK LIVES MATTER!' 시위에서 알 수 있었던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 들어 더욱 노골화된 미국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악몽을 더이상 안겨주지 않으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해답은 분명해진다.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팀의 길을 따르는 것이란 걸.


 '인스티튜트' 1권은 확실히 재밌다. 첫 장을 넘긴 순간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달음에 읽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몰입감도 넘친다. 그렇지만 재미만이 이 책이 가진 전부는 아니다. 이야기 속에 교묘하게 배치된, '천국에서 보내는 또 다른 하루'와 같은 여러 세부 장치들을 헤아리다 보면 지금까지 리뷰를 써 온 바대로 이 소설이 현재 미국 사회에 보내는 강렬한 메시지 또한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이 '시설'처럼 위험한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한다. '샤이닝'에서 타인을 통제하려는 욕망이 너무 넘친 나머지 자신의 가족마저 살해하려고 들었던(죽음은 절대적 통제 상태이니까 말이다.) 잭 토런스의 저주가 미국 사회 대기에 넘실대고 있음을 목도한 것이다. 스티븐 킹은 '닥터 슬립'에서 했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잭 토런스라는 저주의 유령을 퇴마하려 한다. 닥터 슬립의 대니와 아브라를 통해 했던 것처럼 팀과 루크의 협업을 통해서.


 과연 이 협업이 루크를 납치하기 위해서 부모마저 눈 깜짝하지 않고 비정하게 살해해버리는 살인 집단을 거느리고 오랫동안 아이들을 납치 살해하고도 노출되지 않을 정도로 전모가 짐작되지 않는 '시설'의 위협에 맞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얼른 2권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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