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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5년 1월
평점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성석제가 동인문학상을 받았을 때, 안티조선 사이트에는 성석제를 비난하는 글들이 여럿 올라왔다.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인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동인문학상을 왜 받느냐는 것.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성석제는 한번도 안티조선 측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게다가 그는 전업작가다. 직장에 다니면서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며, 다른 문인들처럼 문창과 교수 타이틀도 없다. 자기가 책을 써서 밥벌이를 해야 한다. 황석영 쯤 되는 거목이 아니라면, 전업작가가 동인문학상을 거부한다는 건 그 밥줄을 놓아야 한다는 뜻이 될지도 모른다. 더구나 상금으로 내걸린 5천만원은 얼마나 큰 돈인가. 그런 사정도 감안하지 않은 채 무조건 “왜 상을 받냐”고 하는 건, 그 대의가 아무리 옳다 해도 지나친 행위다. 공선옥이 동인문학상을 거부했을 때, 안티조선 회원 5천명이 나서서 “우리 저렇게 훌륭한 일을 한 공선옥의 책을 두권씩만 사주자” 같은 일을 한 적도 없다. 1만권만 팔린다면 안티조선을 선언할 동기부여는 충분히 되는데 말이다. 그런 일도 안하면서 작가가 동인문학상을 받을 때마다 “왜 받아?”라고 비아냥대기만 하는 게 과연 정당한 일일까.
성석제는 재치있는 소설들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작가다. 하지만 올해 나온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는 특유의 발랄함이 다소 주춤하고, 진지하고 성찰을 요하는 단편들이 주를 이룬다. 제목부터 무거운 표제작은 물론이고, 먼 친척의 사망을 다룬 <잃어버린 인간>, 그리고 <소풍> 또한 이 범주 안에 든다. 새로 부임한 또라이 서장을 다룬 <만고강산> 정도만이 과거 성석제 스타일을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 그러고보니 <황만근>에서 극에 달했던 만연체 문장도 이번 책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설의 재미가 떨어진 것은 아닌지라 순식간에 읽어내려갈 수 있었으며, 읽고 난 뒤의 여운도 오래 남는다.
이문열이나 이인화처럼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는 작가도 있지만, 성석제는 그런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극중 인물의 입을 빈 다음 구절은 성석제가 올바른 판단력을 가진 작가-적어도 내게는 올바르다는 소리다-임을 말해준다.
“우리는 박정희가 어떤 인간인지 안다. 그 사람, 타까끼 마사오라는 자는 해방 전에 만주에서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 때려잡던 일본 관동군에 있다가 해방되고 나서는 여순사건 때 빨개이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같은 빨개이들을 일러바치고 살아남은 사람이다. 형인가 하는 사람도 빨개이로 총에 맞아죽었다. 나중에 빨개이 때리잡는다 카는데 그기 다 지가 뒤가 구린께 하는 수작 아이겠나...중앙정보부 맨들어가이고 간첩 잡는다고 억울한 사람을 얼매나 잡았나”
아전인수인지 모르겠지만, 다음 말은 현재 추진 중인 과거사법에 대한 작가의 지지로도 읽힌다.
“왜정 때 나쁜 짓 한 놈들은 뒤질 때까지 떵떵거리미 살고 독립운동 한다고 굶고 병들고 쫓기댕기던 사람은 죽는 것도 제명에 옳기 죽지도 못하고 말이라”
성석제의 책이 많이 팔려서 돈을 많이 벌기를, 그래서 먹고 사는 고민 없이 열심히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