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보아 두가지 정도의 연구를 하고 있다.
첫번째는 고고학적 유적에서 기생충알을 찾는 것.
하지만 조선시대 거라면 모르겠지만
이게 습도가 웬만큼 보존되지 않으면 기생충알이 제대로 남아있기 힘들다.
게다가 옛날 사람들은 대체 어디다 화장실을 마련했는지 아무도 모르는지라
여기저기 파봐도 잘 안나온다.

거주지로 추정되는데, 당연히 기생충알은 없었다. 집안에서 일보는 사람은 그당시엔 없었겠지
대충 사막에서 바늘찾는 정도의 난이도,
지난 중간평가 때 "그렇게 해서 기생충알을 찾겠냐"고 심사위원들한테 야단을 오지게 맞았는데,
알도 알이지만 일도 힘들기 그지없다.
엊그제만 해도 1박2일간 전라남도 일대를
천안서 렌트한 차로 누비고 다녔다.
차를 반납할 때 보니까 500킬로가 넘게 운전을 했더만.
동물을 잡기 위한 함정으로 추정. 동물똥에도 기생충이 있으니 흙을 채취해 왔다....
그렇게 운전만 하고 다니니 힘들어 죽겠다.
어머니는 이러신다.
"넌 장똘뱅이냐. 왜 밖으로만 다니냐?"
몸도 힘들고, 알이 안나오니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이 연구가 내년까지니, 2013년부터는 좀 다른 일을 해야겠다 싶다.
작년에는 여기서 기생충알이 와장창 나와줬다. 아마도 이곳이 화장실이었던 것 같다.
구멍뚫린 곳은 흙 샘플을 채취했던 곳.
이곳은 6-7세기 경 백제시대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화장실로 추정된다.
두번째로 하는 연구는 그때도 말한 적이 있지만
멧돼지에서 선모충을 찾는 일.
이것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기생충이 몇 마리 나와줘서 한시름 덜었다.
다만 기생충의 개체수가 그리 많지 않아,
멧돼지를 먹는 사람에 비해 기생충 감염자 수가 적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아는 사냥꾼한테 멧돼지의 다리 근육을 조금 얻어서 검사를 하고
나머지는 그분들이 마을 사람들과 같이 드신단다.
내가 이 일을 안해도 어차피 멧돼지는 잡을 거지만, 멧돼지한테 미안하긴 하다.
"지난 29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멧돼지에 물려 중태에 빠졌던 수렵협회 회원
임모(58)씨가 30일 오전 8시40분께 사망했다."
8월 30일 기사인데, 이분 역시 내가 부탁한 사냥꾼처럼
멧돼지를 잡는 분인 것 같다.
멧돼지를 딱 한번 마주친 적이 있다.
강원도 평창에서 차를 타고 가는데 차 앞으로 멧돼지가 뛰어들었다.
그때 어찌나 놀랐는지.
차에 타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맨몸으로 맞닥뜨렸다면 어쨌을까 암담하다.
아무튼 이 멧돼지 일도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멧돼지 고기가 택배로 배달되어 오면 가위로 잘게 잘라야 하고,
그 다음에 절구로 빻아야 된다.
실험실에 있으면 주로 이러고 앉았다ㅠㅠ
우아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자세.
이걸 완전히 빻은 뒤엔 인공소화액을 만들어 소화를 시킨다.
그러고 난 뒤 세척을 좀 하고, 현미경으로 기생충이 있는지 보는데
물론 내가 혼자 다 하는 건 아니지만
하루에 두마리 하면 팔다리어깨가 다 쑤신다.
이런 멧돼지가 하루에 네마리가 올 때도 있고
다섯마리가 올 때도 있다.
그래도 여기서 기생충 한마리만 나오면 모든 피로가 풀린다.

겨우 찾아낸 선모충의 모습. 영어 이름이 Trichinella spiralis인데
이 사진은 왜 이름이 spiralis인지 말해준다.
아무튼 두 가지 연구가 다 허드렛일에 가까워,
집에 갈 때면 내가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멧돼지 연구는 기생충이 좀 나와서 다행인데,
유적지 조사는 앞으로 두달 안으로 기생충알이 나오지 않으면
결과보고 때 할 얘기가 없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제발, 한개만 나와다오.
작년에 날 구원해 줬던 부여의 회충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