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 여자와 아이도 바로 따라할 수 있는 가정상비 재난매뉴얼
성상원.전명윤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8년 전, 대구 지하철 객차 안에 있던 50대 남자가 휘발유가 든 페트병에 불을 붙였다. 다행히 지하철이 정차한 덕분에 승객 대부분은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반대편에서 열차가 진입해 정차한 것이 문제였다. 그리로 옮겨 붙은 불길은 객차 안에 있던 승객들의 인명을 무참하게 앗아갔다. 사망자 192명, 부상자 148명의 대형 참사였다.


이 사건에서 아쉬웠던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하철 기관사의 미숙한 대처가 많은 사상자를 낳은 원인인 건 틀림없지만, 그 객차에 방화관리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없었던 것도 문제였다. 모든 지하철 객차에는 소화기가 있으니 그걸 집어 들고 뿌렸다면 웬만한 불길은 잡을 수 있었을 거다. 또한 연기는 옆으로는 잘 안 퍼져도 위로는 금방 올라가는 속성이 있으니 지하철 선로를 따라 다음 역으로 대피했다면 질식해 죽는 일은 없었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객차 안에 일어난 불길에 놀라 달아나기 바빴고, 또한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고만 했는데, 이는 재난에 대한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난 예방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예컨대 극장에서 화재시 도망칠 비상구 위치를 말해줄 때 관객들은 대부분 애인과 대화를 하거나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비행기에서 미모의 스튜어디스가 비행기가 떨어질 때 행동요령을 가르쳐 주고 있을 때, 남자들의 시선은 그저 스튜어디스의 얼굴과 가슴에만 가 있을 뿐 그걸 새겨듣는 이는 드물다. 심지어 집 안에 소화기 하나 갖추지 않은 집이 천지에 널렸는데,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등 숱한 재난을 겪어온 나라의 사람들치곤 지나치게 태평한 거 아닌가? 이게 6.25라는 국난을 겪어서 웬만한 재난은 재난으로 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 대부분이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여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좀 달라질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딴지일보에서 오랜 기간 재난 관련 글을 쓰던 성상원님이 여행작가 전명윤님과 같이 <거의 모든 재난에서 살아남는 법>을 내놨으니, <공공의 적> 강철중의 표현대로 “좋은 기회지 않은가?”


저자가 딴지일보 기자라는 선입견은 잊어버리자. 이 책은 정말이지 재난에서 살아남는 방법만을 보기 쉽게 요약해 놨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재난이란 것들이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이라 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라든지, 깊은 물에서 수영하다 쥐가 났을 때, 아이가 음식물을 먹다가 숨을 못 쉴 때 등등은 살다보면 한두 번씩은 다 겪는 일이지 않을까? 더 중요한 건 저자들이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대충 쓴 게 아니라는 거다. ‘들어가는 말’에 나오는 것처럼 이 책은 소방안전협회 교수, 응급의학 전문의를 비롯한 수많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고, 해외여행에 관한 부분은 16년째 해외에서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전명윤 씨가 집필했다니 믿어도 된다. 예를 들어 건물이 무너져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휴대폰을 통해 연락을 취하려 할 테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최소한 몇 시간 정도는 전화가 폭주해 통화가 어려울 수 있단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배터리는 충분하나 안테나가 뜨지 않을 때는 휴대전화 전원을 일정한 주기로 끄고 켠다. 붕괴사고가 나면 통신사에서 사고 인근 지점에 기지국을 추가로 배치한다(21쪽).”

이 때 자기 소변을 먹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지만, 그건 절대 해선 안되는 일이란다. “바로 속에서 탈이 나고 탈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니 말이다. 누군가가 물에 빠졌을 때 무리하게 직접 구조를 시도해선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 거다. 하지만 이럴 때 생수통의 내용물을 비우고 마개를 막은 후 던져주는 게 도움이 된단다.

“1.8-2리터 플라스틱 통이면 성인남자 2명이 뜰 수 있을 정도의 부력이 생긴다(89쪽).”


책 후반부에 나오는 여행 관련 재난 대처법은 해외여행이 활성화된 요즘 시대에 반드시 숙지해야 할 것들이다. 여행 중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올 초 이집트처럼 여행지에서 소요가 일어났을 때, 아플 때, 물건을 분실했을 때, 성폭행을 당했을 때 등등은 여행객이라면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것들이잖은가? 개방적인 네덜란드에 갔다고 해서 대마초를 피우고 싶을 때, 이 책에 나온 다음 구절을 떠올리며 참도록 하자.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인은 현지법 외에 국내법의 적용을 받는다.(194쪽)”

우리나라는 대마초를 금지하는 나라라는 건 다들 아시겠지만, 다음 구절도 꼭 기억해 두자.

“머리카락 한 올만 뽑아서 검사해도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마약의 흔적이 남는다.(195쪽)”


물론 이론과 실제는 다르며, 책을 한번 읽는다고 온갖 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의사들은 응급상황에서 뭘 어떻게 할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의심되는 진단이 떠오르면 그 후부터는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는데, 이건 평소 수많은 훈련을 통해 대처법이 매뉴얼로 저장된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각종 재난에 대비한 훈련을 한다면 상황이 닥쳤을 때 잘 대처할 수 있다. 그렇다고 비행기 추락 같은 걸 훈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책을 여러 번 읽고 머릿속에 행동 요령을 저장해 놓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빌려봐선 안된다. 일단 사서 갖고 다니면서 짬짬이 읽어두자.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지인들의 안전도 책임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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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6-30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려보려고 했는데 마지막에 빌려보지 말래서 찔끔^^ 그런데 전 책 읽으면서 중요한 내용은 메모하거나 문서로 저장해놓으니까 빌려봐도 되지..(뭐래, 찌릿)
좋은 책이에요. 꼭 읽어봐야겠어요. 의학 관련 마태우스님이 추천한 책은 거의 다 사거나 읽었던 것 같아요.

2011-07-01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4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11-06-3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중요한! 책이로군요.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우왕좌왕 하다가 소중한 것들을 잃을 수 있으니까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위험에 대해 무감각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식민지배나 전쟁, 민간인 학살 이런 거 때문일까요??

마태우스 2011-07-01 10:0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요정님 저도 그걸 잘 모르겠더라구요. 소화기가 대부분 아파트 복도에 있는지라 소화기를 찾아서 뿌리려고 할 때는 이미 불이 다 번진 뒤라, 현관 앞에만 뿌리고 만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소화기가 2만원 정도 하는데, 하나씩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암튼...무감각한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민세민석아빠 2011-07-0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철 사고 사진을 보니, 얼마 전에 갔었던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영화 본즈의 촬영무대였다고 하는데 너무 실감나게 지하철이 탈선하고 역이 무너지는 장면을 꾸며 놓아 남들에게 지하철에서 사고가 나면 말이지...라고 훈수를 둘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마태우스 2011-07-01 10:02   좋아요 0 | URL
아. 거기서 훈련하면 되겠군요^^ 근데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다녀오셨군요 와 부럽습니다.

Mephistopheles 2011-07-0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그럼 마태님이 출연하는 한국의 베어그릴스같은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프로그램 진행은 기생충과 연관하여.. 야생이걸 이걸 섭취하면 어떤 기생충에 감염될 수 있다...등등...이렇게요.

위엄돋는기생충 2011-07-09 21:0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설명할때 직접 드시면서

마태우스 2011-07-10 20:28   좋아요 0 | URL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 서민의 기생충 앤 크라이!

위엄돋는기생충 2011-07-11 17:0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그런 프로그램 있으면 정말 유익하고 재밌을거 같아요 언제 방송에 마태우스님 사모님도 함께 동반출연 한번?ㅋ

마태우스 2011-07-11 22:30   좋아요 0 | URL
위엄돋는 기생충님/호홋 집사람은 그런 데 잘 안나가려고 해서 제가 그냥 기생충 몇마리 목에 감고 나갈게요. 울 때까지 기생충 가지고 괴롭히는 그런 프로지요^^

다락방 2011-07-0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알았어요. 제가 네덜란드에 가서 대마초 피면 안되는군요!!!!!
생수통을 던져주는 건, 이 리뷰가 준 살아남는 방법이네요. 생수통 하나에 성인남자 두명을 살릴 수 있다니 말입니다.

마태우스 2011-07-10 20:28   좋아요 0 | URL
근데 그 성인이 저같이 무게가 나가는 사람을 말하는 건진 모르겠더군요 기생충 잡으러 갯벌에 들어갔을 때도 저 혼자만 빠졌거든요

blanca 2011-07-01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이런 생각했었어요. 지난 주 영화 상영되는데 비상구 얘기하는데 아무도 안 보더라구요. 그리고 저는 바보인지--;; 그 방송을 보고 바로 탈출 방법이 떠오르지 않더라구요. 재난교육이라는 것을 받아 본 기억이 없으니 조금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해도 우왕좌왕하고 더 흥분하게 되는 것 같아요. 대구지하철참사 다시 돌이켜 봐도 참 비극적입니다. 다음 역으로 간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할 것 같아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2011-07-10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1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0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7-01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생존의 방법을 나눠주시네요. 꼭 소장하고 새겨 읽겠습니다!!

마태우스 2011-07-10 20:25   좋아요 0 | URL
리뷰계의 거장 마노아님께서 친히 와주시니 감사드리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2011-07-04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0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위엄돋는기생충 2011-07-09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패트병은 정말 유용하네요.ㅋㅋ 발암물질과 환경오염만 일으키는건줄 알았는데...

마태우스 2011-07-10 20:23   좋아요 0 | URL
글게 말이어요 저도 페트병 차에 하나씩 둬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민세민석아빠 2011-08-2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당선작이 되셨네요... 선생님의 글은 마법같은 중독성이 있어 꼭 들러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