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책을 읽는 사람은 희귀종이다. TV는 더 재미있어졌고, 인터넷은 한번 들어가면 두세시간 날리는 건 기본이다. 출퇴근시간에는 다들 휴대폰만 들여다보는지라 책은커녕 신문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이런 게 아니라해도 학생들은 입시와 취직공부에 목을 매야 한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친해지는 게 우리네 세상이지만, 책을 읽고 나서 같이 얘기라도 나눌 사람이 주위엔 없다. 그런 와중에 나온 <침대와 책>은 책 이야기에 목마른 독서가들을 열광시켰다. "나 어릴 적 이런 책 읽었는데, 그 책은 이 대목이 좋아."라고 할 때 그들은 반가움을 느꼈고, "비가 오면 파전에 막걸리를 먹으며 이런 구절을 떠올리곤 해."라고 하면 그들은 자신의 기억을 대입해가며 깊이 공감했다.


그 책의 저자인 정혜윤 피디가 두 번째 책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문난 책벌레들을 찾아다니며 일합을 겨루는데, 이런 식이다.

고수: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 내 청춘을 장식한 책이다...내가 행복하지 못하니까 세상과 싸우는 거더라.

저자: 그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자신들의 동질성의 실현,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한바탕 꿈이다.

대부분의 무공 대결이 상대를 해치는 것이지만, 책을 매개로 한 대결은 서로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보는 이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끈다. 책의 장면 장면들은 오비완-아나킨의 대결보다 아름답고, <와호장룡>의 대나무숲 결투보다 우아하다.


"진중권이 독서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추천도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맥락 속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30쪽)."는 저자의 말은 저자 자신에게도 오롯이 돌아간다. <침대와 책>에서 그간 읽었던 수많은 책들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맥락과 의미를 만들어낸 저자는 이번 책에서 한층 더 세련된 배치를 통해 읽는 이를 몰입시킨다. "몰락하는 일만 남았"기에 딱 한권의 책만 세상에 남긴 하퍼 리같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저자는 책이 거듭될수록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독서광들에겐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나처럼 문학소년의 시기를 겪지 않은 사람에겐 책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는 이 책이 '서재가 사랑한 책' 1위에 올라간 건 당연한 소치다. 저자의 화려한 무공을 보고 있노라면 젊은 시절 야구만 봤던 내 삶을 되돌리고 싶어지지만, 그게 불가능하니 저자의 세 번째 책을 기다리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련다.


한마디 더. 내용으로 보나, '이진경' '박노자' '공지영' 등의 이름으로 보나 이 책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더해 저자는 자신의 모습을 표지에 싣는 '미녀마케팅'을 펼쳐, 미녀에 약한 독자들마저 끌어들인다. 판매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표지는커녕 책 날개에도 저자 사진을 싣지 못하는 나와 대조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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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27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증이 생기게 하는 리뷰네요.

이매지 2008-07-2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평이 극과 극이더군요.
별 다섯 아니면 별 하나.
그래서 되려 더 궁금해지는 책 ㅎㅎ

Kitty 2008-07-2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매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표지는커녕 책 날개에도 저자 사진을 싣지 못하는 나와 대조되는 점이다. <- 너무나 마태님다운 마무리 ㅎㅎ 잘 지내시죠?

BRINY 2008-07-28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책을 몰아서 사는 월초가 다가오고 있는데.

2008-07-28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8-07-29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어 아닌데, 제가 힌트 안줬어요. 글구 전 페더러가 몰락한 이후부터 테니스가 덜 좋아졌어요...
브리니님/어....이건 순전히 제 견해일 뿐인데, 슬슬 걱정되는데요^^
키티님/호호 제가 저다워야죠 부리스러우면 되겠습니까^^
이매지님/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다 다른 거 아니겠어요
승연님/부끄럽습니다. 그간 잘 계셨는지요..^^

무해한모리군 2008-07-2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책, 서평을 다룬 책은 참 추천하기 어렵고 사람마다 감흥의 정도가 천차만별인듯 합니다. 어떤 형식일지 궁금하네요.. 서점가서 한번 쓱 봐야겠습니다 ^^

세실 2008-07-2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침대와 책은 읽으면서 심드렁했는데 님의 리뷰 읽으니 끌립니다. 찹쌀떡 드신거 아니죠? ㅎㅎ

캐서린 2008-07-3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책을 읽어왔다]라는 책에선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선별해나가는 과정이 상세히 나와있습니다..
그래도 요즘엔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조금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같아
행복하답니다..얼마전만해도 전철에서 책들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들 잠자기바쁜
세상이었는데..그나마 신문이라도 광고지라도 읽을거리를 찾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태우스 2008-07-3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터린 남님/다치바나 씨의 책을 언급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더이다. 읽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한 다독가지만 책을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고 그러는데, 그게 저랑은 안맞더라구요. 앗 별반 중요한 얘긴 아니었구요 근데 요즘에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많아졌나요? 흠, 요즘 전철에선 핸펀만 보던데.... 글구 참 초면인데 안녕하셨어요. 꾸벅. 잘부탁합니다.
세실님/아니어요 침대와 책이 재미없으셨다면 이것도 안읽으시는 게 좋습니다. 이게 더 낫긴 하지만 그 연장선에 있는 거잖아요.
휘모리님/사실 전 장정일의 독서일기보다 더 재밌게 봤어요. 하여간 미리 좀 읽어보시고 취향이 맞는지를 확인하시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숲노래 2008-08-01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똑같은 '유명인사'만 우려먹는 책은 꽤 신물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