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
최진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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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이제 다른 노자를 보여주마.

 

지금까지의 노자는?

 

지금까지 노자를 어떻게 대해왔는지를 살펴보자.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은 인문학을 단편적인 지식으로 외우기 바쁘다”(6) - 노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노자 하면 누구의 해석이 어떻고 또 다른 누구는 그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고, 외우기 바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그런 해석을 줄줄이 꿰면 노자를 잘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이 책은 생각하는 노자, 아니 노자를 통하여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저 남의 해석을 따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남이 써 놓은 노자 해석을 읽고 노자를 알았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노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노자와 도덕경을 훑어가면서,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한다.

 

노자 이해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 책은 그래서 노자의 해석, 아니 노자를 이해하는데 있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경지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것은 이 책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는데 저자는 이 책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하나는 노자의 사상을 중국사유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래서 노자를 해석하려는 단계를 벗어나 노자 사상의 기반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는 점이다.

 

결국 그런 저자의 시도는 지금까지의 노자 이해에서 벗어나도록 만든다.

 

그렇게 노자를 뒤집어 봄으로서, 저자는 우리로 하여금 노자를 읽으면서 그저 남의 해석을 따라 가는 그러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 책을 통하여 생각의 틀을 깨는 정신적 자유를 회복하고, 진정한 덕성, 진정한 행복을 가까운 일상 속에서 만나기를 촉구하고 있다. (7)

 

노자 이해의 첫걸음 - <, , >

 

저자는 노자를 설명하기에 앞서 중국의 사상이 어떻게 발원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게 바로 <, , >의 개념이다. 그 것을 설명하는 그를 따라가 보자.

지금껏 여러 책을 읽었지만, 사상의 발전으로서 <, , >를 이렇게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럼 저자의 설명을 따라, 한번 정리해보자.

 

먼저 신의 개념이 등장한다.

<인간이 신을 섬긴다는 것은 인간 자신을 이해하는 매개로 혈연보다는 훨씬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지위를 갖는 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30)

 

논의를 편하게 하기 위해 설정한 그의 뒤를 따라가 보자. 중국의 은나라나 주나라의 천()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상을 천명(天命)이라 한다. 하늘은 인간에게 천명(天命)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하늘의 뜻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천명은 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래야만 천명의 지배력으로 만들어진 계급의 차이, 권력구조 등등이 정당성을 가지고 항구적으로 유지 될 수 있기 때문(31)이다.

 

그런데 천명을 받은 것은 은나라라고 생각하던 당시, 아직 천명을 받지 않은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문제가 된다. 바로 천명을 거스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럴 때 이것을정당화하기 위하여 등장한 개념이 바로 덕()이다. 즉 덕이 있으면 천명이 오고, 덕을 읽으면 천명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덕이란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덕이란 개념으로 은나라의 멸망과 주나라의 건립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신의 뜻, 즉 천명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내적인 힘을 가지게 되는데, 이게 바로 덕이다.(33)

 

그럼 예는 어떻게 등장하는가?

당시에는 제사가 매우 중요한 행사로 여겨졌다. 제사를 통하여 신의 뜻을 알고 인간의 기도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정화된 마음의 상태가 먼저 준비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담보하기 위한 절차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예()라고 했다. 즉 예는 덕을 지키거나 회복할 수 있는 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32)

 

그런 <, , >의 개념을 토대로 하여 중국의 사상은 발전하기 시작한다.

 

천명론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 - 공자와 노자

 

도는 그러한 천명을 극복하려는 인간이 만든 매우 인간적인 범주의 개념이다. 도가 천명을 극복하려면 천명에 있는 문제점, 즉 비의성과 임의성 그리고 주관성을 극복해 투명성과 객관성 그리고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후의 중국사상은 도를 중심에 놓고 인간의 길을 걸어가려는 모든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 속에서 이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하게 되었다.(72) 그런 토대위에 천명론을 극복하고 인간의 길을 세우기 위한 사상가들이 출현했으니 그 대표적인 사상가가 바로 공자와 노자이다.

 

이런 기본 배경을 가지고 노자의 사상이 출현했다고 저자는 노자를 시작한다.

 

노자의 기본 사상 - 관계론적

 

노자는 이 세계를 본질론적이 아니라 관계론적으로 보고 있다...

 

<......그의 다양한 주장들이 .... 그 기본적 세계관의 표현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세계관과 주장들 사이의 유기적 연관성들을 이해하는 안목 속에서 노자의 사상을 바라보아야 함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126-127

 

이런 생각의 발상이 지금까지의 노자 이해에서 벗어나, 노자를 새롭게 보는 저자의 시도이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노자를, 새로운 노자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 책의 위치와 의미

 

이 책은 최진석 교수의 노자 관련 책으로서 (나에게는) 세 번째 책이다.

다른 두 권은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이다.

또 다른 책으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있는데, 그 책은 노자를 전면으로 내세운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생각들의 맹아(萌芽)가 들어 있으니, 관련 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165쪽의 덕이란 무엇인가라는 장에서 언급된 내용은 이 책 31쪽의 덕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어쨌든 노자 관련 책으로 그래서 이번이 (나에게는) 네 번째인데, 이 책은 그의 노자에 관한 생각의 결정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전의 책들이 해석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그러한 해석의 배경 내지는 해석하게끔 되는 기본적 생각들을 더 철저히 보여주는 데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그 책을 읽으면서 문장만 읽고 그 행간의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래서 나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었으니 위의 세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볼 계획이다. 그러면 최진석 교수의 노자에 관한 생각 - 행간까지도 - 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니 혹시 최진석 교수의 노자를 이제 처음 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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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과 함께 하는 청소년 인문학
도홍찬 지음 / 글모아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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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심연 속으로

 

1. <데미안>을 속속들이 파헤치다

 

<데미안은 분명 우리를 곤란에 빠트리기도 하면서 유혹하는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영혼과 접속하면 신기로운 삶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익숙한 것들이 달리 보이고, 내면의 깊숙한 샘물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7)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을 그렇게 밝히며, ‘자신의 내면을 깊이 응시하면서 자기의 길을 찾아 나서기를’(7-8) 권하고 있다. 그런 방법으로 저자는 익숙한 <데미안>을 기존과는 다른 시각으로 살펴본다.

 

실상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떠오르던 것들, 이것이던가 저것이던가 궁리는 하면서도 정확하게 짚어보지 못한 것들이 있어 아쉬웠던 기억들을 가지고 고전을 대하고 있다. 아무래도 전문가의 입장이 아니기에 그랬다. 헤세의 <데미안>도 그 중의 하나이다.

 

또한 그뿐만이 아니다. <데미안>을 읽었으니 다 이해되고, 그 속에 있는 생각들조차 다 파악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정도는 있는데, 막상 이 책을 열어 읽어보니, 그것 조차도 오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저자가 드러내 보여주는 것들에 비하여 나의 인식은 멀어도 한참 멀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도 어찌보면 책읽어 누릴 수 있는 소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데미안> 속으로 한걸음 더 딛게 만들어준다. 표피적이고 피상적인 이해, 그게 평소에 <데미안>을 읽었던 모습이라면 이 책은 그러한 경지에서 이끌어내 저 심연, <데미안>의 깊숙한 곳으로 인도하여 주는 책이다.

 

저자는 분야별로 <데미안>을 속속들이 파헤치는데, 그 잣대가 다음과 같은 8가지이다.

 

1. 두 세계, 가족에 벗어나다/돌아가다

2. 카인, 앎의 강자가 되다

3.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종교의 이유를 묻다

4. 베아트리체, 사랑을 주다

5.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자기가 되기 위해서

6. 야곱의 싸움, 행복을 성취하다

7. 에바 부인, 관계의 의미를 알려주다

8. 종말의 시작, 죽음으로 다시 살다

 

2. 그래서 더 깊은 곳으로

 

그런데 저자는 비단 <데미안>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데미안>을 분석하기 위해 동원한 다른 자료들은 또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런 자료들을 통해서, 일단은 <데미안>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인생 자체를 이해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이 책이 제목에서 밝힌 바와 같이 책의 주 대상이 청소년인만큼,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으나, 그런 것이 반드시 청소년에게만 한정시킬 이유는 없다. 성인들도 얼마든지 이 책을 통하여 그런 인생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일례로, 소크라테스가 말한 사랑이라는 개념을 한번 들어보자. 풀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사랑론을 들은 다음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들은 사랑의 얘기를 펼쳐놓습니다. 그에게 사랑이란 무엇을 향한 사랑이고, 결핍된 어떤 것을 채우기 위한 사람입니다. 완전히 갖춘 자는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체와 영혼은 항상 결핍 상태에 있기 때문에 사랑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147)

 

또한 청소년들을 위한 도구로는 각 장마다 <생각하고 같이 이야기해 봅시다><더 알아봅시다>라는 항목을 마련하여, 혼자서만 읽는데 그치지 않고, 그룹 토론등을 통하여 더 깊은 생각, 그리고 더 넓은 생각으로 유도할 수 있게끔 하고 있으니, 그 활용의 폭이 다른 책보다 더 넓다 할 것이다.

 

3. 사족 - 아쉬운 점

 

- 책의 판형이 청소년용으로는 너무 작다

요즈음 책의 추세, 그리고 청소년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판형을 조금 더 키웠으면 좋았을 것이다.

 

- 인용된 자료들에 대한 불친절한 안내

인용된 자료들이 <데미안>을 비롯하여 많이 있는데, 대부분 책 제목만 밝혔을 뿐이다. 출판사 이름과 쪽 수 정도는 밝혀 더 많은 부분을 참고하도록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 한자 오기도 보인다.

예컨대, <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절대적인 선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악마성을 존재의 일무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양가(量價)적 세계관 (선과 악의 양쪽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다.> (273)에서 양가(量價)적 세계관양가(兩價)적 세계관의 오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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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나라
김나영 지음 / 네오픽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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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나라 - 영화 한편을 읽었다.

 

영화 한편 보고 갑니다.

 

<야수의 나라>가 도착했다. 김나영 장편소설, 인터파크도서 K- 오소어워즈 공모전 5회차 당선작이다. 저녁을 먹고 그 책을 손에 잡았는데, 다 읽고 잘 수밖에 없었다.

끝이야 해피엔딩으로 마감하겠지만, 주인공 재휘와 선영의 발걸음이 무척 궁금해지는 장면들의 연속이어서 도저히 중간에서 그 흐름을 끊을 수가 없었다.

해서 다 읽었는데,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흡입력, 몰입도

 

문장이 깔끔하다.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글은 오로지 스토리의 진행을 존재한다.

글 속에서 주인공인 재휘와 선영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우연으로 엮여진 인연이 되고 그 인연이 소설 전편을 이끌고 가는 동력이 된다.

이런 기막힌 우연, 인연이라니!

 

무릇 모든 소설은 그런 우연을 얼마나 교묘하게 짜깁기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작가의 문장력은 그런 우연을 우연이라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고 달리는 바람에, 우연으로 점철된 작품의 식상함과 인위성을 잘 이겨냈다고 하겠다.

 

그래서 책을 덮으면서, 주인공들이 야수의 나라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을 축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도가 좋았다.

 

이야기 전개가 기기묘묘하다

 

그래서 이야기의 중간에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넘길 것이다.

선영이 분명 아버지 오사장의 복수를 하긴 할 것인데, 그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

뭐 게임에서 이겨서 복수한다면, 그것은 정말 식상함의 대명사일 것이고, ‘그럼 어떻게?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데?‘하는 궁금증을 지닌 채, 끝까지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결국, 오사장 등의 복수를 속 시원하게 하는데, 그것을 작가는 끝까지 보여주지 않다가, 독자들이 , 이제는 글렀구나...선영이도 결국하며 체념하는 순간에 비장의 묘수를 보여주는데, 그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런 소설일수록 해피엔딩이 반갑다.

 

어떤 소설들은 작가에게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심산인지, 이런 종류의 소설조차 비극으로 끝내고 마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을 빌려 이야기를 해 보자면, 끝 장면에서 재휘가 강회장이 휘두른 칼에 찔려 죽게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 엔딩 신을 재휘의 유골을 들고 바닷가로 향하는 장면으로 한다거나, 아니면 (이제 다섯 살 난 ) 아이 - 그 것도 머리를 예쁘게 딴 여자아이 - 의 손을 잡고 납골당에서 휘재의 영정사진을 보고, ‘이 아이를 보세요, 잘 컸어요. 이제 컸다고 아빠를 보고 싶어해요,’ 라는 신파조의 대사를 남발하는데...

 

이 소설은 애당초 그럴 생각이 없어 좋았다. 그래서 두 주인공이 닥쳐오는 위기들을 얼마나 슬기롭고 용감하게 극복해 나가는지! 그래서 그런 장면을 만날 때마다 독자들은 십년 체증이 내려가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작가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해피엔딩이 반가운 것이다.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장면, 실제 인물은 아니지만 축복을 빌어주고 싶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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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국사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 역사
신채호 지음, 김종성 옮김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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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책을 읽을 때에, ‘내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읽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의미있는 책을 접한다 할지라도, 그런 질문을 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이 책 <조선 상고사>는 이런 질문을 하면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책이다. 왜 이책을 읽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 없이 읽는 사람에게는, 이 책은 혼동만 가져다 줄게 뻔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왔던 주류학계의 역사지식으로는 이 책에서 느끼는 괴리를 그리 쉽사리 극복할 수 없을 것 같기에 그렇다. 그런 혼동과 괴리를 극복하기위해서는 반드시 그런  질문을 하면서 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하면서 읽어보았다.

 

<신채호>이며, <조선상고사>인가?

 

먼저 신채호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가져야 한다. 그가 누구인가? 그가 누구이기에,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책을 썼으며, 이 책은 우리 역사학계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을 하여야 한다.

 

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 이 책에 소개된 그의 프로필을 잠시 인용한다.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이다.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신광식(申光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단재(丹齋),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등이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는데, 13세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어 신동으로 불렸고, 19세에 성균관에 입학해서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된다. 같은 해 장지연(張志淵)황성신문시일야방성대곡을 쓰고 투옥되자, 그의 뒤를 이어서 논설위원으로 활동한다.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었고, 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광학서포에서 발행한다. 1907년 신채호는 비밀결사 단체 신민회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선다.

 

그런 사람이 바로 신채호다. 그러면 그가 저술한 이 책 조선상고사는 어떤 책인가?

<조선상고사>는 독립운동으로 10년 실형을 받고 뤼순감옥에서 투옥 중인 신채호가 1931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일보>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엮은 것으로, 신채호가 순국한 지 12년이 지난 1948년에 출간되었다.

단군시대부터 백제부흥운동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1총론에서 제11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까지 모두 11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보충설명을 덧붙인다. 신채호는 어떤 사람인가? 

 

안재홍은 그를 가리켜 가부(可否)가 분명하다'고 했다. 그런 그이니 그의 앞에 놓인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시세에 따르지 않고 당파를 따지지 않고, 다하여 민족을 가르지 않았다. 그는 사실에 입각한 바른 역사를 기술하려고 애썼다.

 

여기에서 애를 썼다는 것이 공연한 말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앉아서 사료를 뒤적일 때에 그는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땅을 직접 밟아보고 관찰하였다. 그게 바로 신채호가 역사를 위하여 애를 썼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호사가의 취미생활같은 유적답사가 아니다.

 

그 상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비가 부족해서 능과 묘를 모두 구경하지 못했고, 그래서 전부 몇 개가 되는지 세어보지 못했다.>

 

<현지의 일본인이 탁본해서 파는 광개토왕릉비문의 가격만을 물어보았고.....>

 

< 그 오른 쪽에 있는 제천단을 붓으로 대강 그려서 사진을 대신하였다.> (51)

 

그런 정황으로 보아, 그가 재정적 형편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역사를 바로 정리하기 위하여 발로 뛰어다니며 확인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게다가 수중에 돈이 없으니 사료가 될만한 자료를 구입하지 못하여 마음 아파하는 그의 모습이, 바로 이런 책을 쓰기에 적합한 인물이라 할 것이니, 그런 인물이 쓰는 역사야말로 진짜 역사일 것이다.

 

그런 가부가 분명한 신채호가 우리 역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게 바로, <조선상고사>이다.

 

신채호가 썼기에, 이 책 <조선상고사>가 의의가 있는 것이다. 가부를 분명히 하는 그가 썼기에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파당을 지어 자기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서로 끌어주며 밀어주면서 학파를 유지하기 위해, 역사 기술하기를 손바닥 뒤집기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이 책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조선상고사>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런데, 딱 한가지 문제가 있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라는 책은, 읽을 수는 있으나, 내용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개개인의 성향이나 공부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역사의 가르침이 그렇게 되어 왔길래, 그래서 우리가 그런 서술에 익숙해져 있길래, 이 책을 읽는 데는 낯설고 어색한 부분이 많이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그렇게 길러졌기 때문이다.

 

다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조선상고사의 문제점을 인용해본다.

.

조선상고사원문은 지금의 우리말과 큰 차이가 있어 내용을 이해하며 읽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 다음 단계는 과연 이 책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얼마만한 접근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내용도 낯설은데, 그 내용의 서술하는 언어마저 현대인들에게 접근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면, 그 책 내용을 이해하려는 노력 이전에 책을 읽어가다가 중도포기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제 문제는 과연 어떻게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이 책을 번역했는가로 요약이 된다.

 

 

 

<김종성 번역, 역사의 아침 출간>인 이 책인가?

 

나에게는 두 권의 <조선 상고사>가 있다. 신채호의 저작임은 분명하나, 번역자가 다른 책이다. 그러니 이 책들을 읽으면서 부득불, 다른 번역본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하에서, 이 책이라 함은 김종성 역으로 역사의 아침에서 출판된 책을 말하며 비교가 되는 다른 책은 밝히지 않겠다.)

 

1. 먼저 이런 부분을 읽어본다.

 

[그 결과 도깨비도 뜨지 못한다는 <땅 뜨는 재주>를 부리어, 졸본을 떠다가 성천 혹은 영변에 갖다 놓고, 안시성을 떠다가 용강 혹은 안주에 .....] (31)

 

여기에서 <땅 뜨는 재주>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는지? 물론 그 뒤의 문장을 계속해서 따라 읽어가다 보면 무슨 의미인지 감이 오지만, 그 말 자체로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땅을 삽으로 떠서 퍼서 - 옮긴다는 말인지?

 

그러나 이 책을 보면 그게 훨씬 이해가 빨리 온다.

 

[그들은 도깨비도 흉내 못낼 땅 옮기는 재주를 발휘했다. 졸본을 들어다가 성천 혹은 영변에 놓고, 안시성을 들어다가 용강 혹은 안주에 놓고....] (30)

 

2. 정확한 번역은 어떤 책?

 

의 문화적 강보에서 성장한 일본이 X 가 되지 않은 이유, (27)

 

이 책에서 이 글을 읽을 때에 X’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의아했다. 왜 갑자기 X 란 부호가 등장할까?

그러나 그 의문은 바로 풀렸다. 그 다음 페이지에 그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명에 의하면, “X”는 일본이 보기에 불온한 표현이기 때문에 삭제됐을 것이다. 문맥을 고려할 때, 신채호가 신하(臣下)라는 표현을 사용하려다가 고의로 혹은 실수로 거하(巨下)라고 썼고, 의도를 알아차린 총독부가 하()자만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28)

따라서 X 는 총복부에서 글자를 삭제했다는 표시이다. 그 것을 이 책에서는 분명히 해 놓고 있다.

 

한편 그에 대한 번역이 다른 번역본에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아의 문화의 강보에서 자라온 일본이 아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던 것이 현재는 그리 되어 있지 않은 사실과 ...>(28)

 

다른 번역본에 의하면 신채호와 일본 총독부간의 줄다리기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신채호가 바른 역사를 기록하기 위하여 애쓴 그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3. 현대화된 문장

 

다른 번역본이 그대로 직역하는 바람에 고어체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데 비하여 이 책은 그러한 고문체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현대의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예컨대 이런 번역을 대비해 보자.

 

 

 

<그 후에도 어느 정도 노력했지만 나는 몇 걸음도 더 진보하지 못했다. 그 원인을 국내의 역사 독자들에게 하소연하고자 한다.> (50)

 

다른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그 이후 어느 정도 열심히 노력한 적도 없지 않으나, 그러나 진척된 것이 촌보(寸步)도 되지 못한 원인을 오늘의 국내 일반 독사계(讀史界)를 통하여 앙소(仰訴)하고자 한다.> (48)

 

앙소하고자 한다.’ 어찌 금방 이해가 되는지?

 

4. 역자의 수고가 반영된 부분

 

그런데 의아한 것이 있다.

다른 번역본은 “<서곽잡록>(저자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음 - 원저)”(48) 라고 되어 있는데, 이 책에는 이문홍의 <서곽잡록>”(50)으로 되어 있다.

 

이는 왠일인가? 역자는 그러한 부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 책의 우수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감방 안에서 사료를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점이다. 감옥에서 이용할 수 있는 사료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채호는 자신의 기억에 상당부분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신채호는 기억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사료 기록을 100% 완벽하게 기억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의 사료 인용은 완전하지 못하다.> (9)

 

그래서 신채호가 설령 그 책의 저자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했을지라도 역자의 연구 끝에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어 이 책을 더 완벽하게 만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이 다른 번역본보다 진일보한 것이라 판단이 된다.

 

이 서평의 목적은 그런 사례를 모두 밝히는데 있지 않기에, 여기에 그런 사례를 모두 인용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시라. 그런 사례를 읽어가면서 확인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가 될 것이다.

 

5. 이 책의 또 다른 장점

 

이 책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을 들라하면 당연히 <깊이 읽기>라는 항목이다. 다른 번역본에서는 볼 수 없는 심층적인 이야기를 덧붙여 놓고 있다. 그래서 신채호가 이 책을 통하여 강조하는 점들을 역자는 잘 파악하여 거기에 대한 심층 해설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어가면서 한걸음 한걸음 우리 역사의 바른 모습을 구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하여 얻은 것들

 

1. 회통(會通)이란?

 

<마과회통(麻科會通)>이란 책이름을 국사를 공부하면서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과회통(麻科會通), 정약용이 편찬한 의학책이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정약용은 의사는 아니다. 그 당시 말로 의원은 아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그런 의학책을 저술할 수 있었을까? 바로 그 책 제목에 그 비결이 들어있다. 회통(會通)!

 

회통(會通)이란 말은 국어사전에 <불교>용어로 소개되고 있다.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회통이란 불교용어로 언뜻 보기에 서로 어긋나는 뜻이나 주장을 해석하여 조화롭게 함이란 말이다. 그러니 이 의미만 가지고는 마과회통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릴 수 없다. 그런데 이 책, 조서상고사에서 그것을 알만한 힌트가 보인다.

 

신채호는 <역사의 개조에 관한 의견>에서 그 조건으로 세 가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상호관련성을 규명하라이다. (72)

 

그런데 역자가 상호관련성이라 번역한 원래의 말이 바로 회통(會通)이다. 회통은 그래서 사건 상호간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다. 국어사전적 의미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개념이다. 따라서 이 의미를 마과회통에 대입해 보면, 홍역 치료에 관한 여러 연구들을 모아서 그 상호관련성을 규명해 놓은 책이다. 그런 책이니 정약용이 의원이 아님에도 저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저술할 정도의 목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과 불쌍한 민초들을 위한 의학책을 저술할 정도의 일반의학 지식이 있었다는 것, 또한 무시못할 요소이기는 하다는 점,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2. 소서노에 관한 언급

 

소서노는 우리가 역사 소설로, 또는 역사 드라마로  알게 되고 듣게 되었는데, 정통 역사에서는 언급이 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서노는 역사의 전면으로 등장한다. (176쪽 이하)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 지금껏 감추어진, 또한 굴곡진 우리 역사의 진짜 얼굴 또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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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 속의 사랑과 성 인간사랑 중국사 4
왕이쟈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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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를 관통하는 묘체(妙諦) - '사랑과 성'

 

먼저 짚고 넘어가자. ‘묘체(妙諦)’묘한 진리, 또는 뛰어난 진리를 말한다.

 

우리가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하는 단어, ‘성은 생물체의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심리현상이고 사회적 사건이며 문화의 산물인 동시에 역사적 자취이기도 하다.’(15) 따라서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면서 막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인간사를 관통하는 진리가 숨어있으니, 그것을 묘체(妙諦)라 부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서문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 가지 장애에 부딪혀 왔다. 우선 그것을 설파하는 대목을 서문에서 인용해본다.

 

순치(馴致)에 맞서려는 성

 

<성은 인류와 동물이 모두 가지고 있지만 이제 막 동물과는 경계를 분명히 하려는 () 인간의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동물과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거의 모든 민족은 성에 대하여 갖가지 문명화된 교육을 시도했지만 생명력이 마구 넘치는 성은 오히려 이런 교육에 줄곧 맞서왔다. 모든 민족은, 아니 모든 인류의 성 발전사는 본능과 문명 사이에서 접전을 벌인 갈등과 충동, 타협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15)

 

이러한 전제하에 시작하는 이 책은 중국 문화를 살펴보면서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랑과 성을 까발리고 있다. 어떻게 까발리느냐?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의 소설 (필기소설)에 기록된 글을 탐색하면서 그 안에 사랑과 성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발췌해서, 그 이야기들을 주제별로 분류하고, 그 이야기(‘이야기’)를 먼저 들려준 다음에 저자의 해석(‘이야기 뒤의 이야기’)을 덧붙이는 식으로 책을 끌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사랑과 '에 관한 이야기만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야기 뒤의 이야기를 통하여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각자 시험하기’ - 현대에 이런 일이 있었더라면?

 

예컨대 이런 '이야기' 한번 들어보자.

'이야기'의 제목은 <각자 시험하기>(330) 인데, 이야기는 이렇다.

<왕국헌은 장가를 들고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아이를 얻지 못했다. 그는 첩실을 들일 작정으로 아내의 동의를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끝내 동의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그는 이 문제를 놓고 아내와 몇 차례나 거듭 의논을 했다. 그러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모르잖습니까? 우리 부부가 각자 상대를 찾아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당신 생각은 어떠신지요?"> (민국초기, 서가, 청패유초)>

 

이 '이야기'가 단순한 이야기로 들리는가? 아니면 그 이야기 속에 무언가 들어있음직 한가?

만약 이 '이야기'를 그냥 단순한 이야기로 넘겨버리면 그것은 한낱 술자리의 음담패설에 불과하겠지만 저자 왕이쟈는 그것을 단순히 이야기로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뒤의 이야기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더 들려주고 있다.

 

<‘각자 시험하기에 나오는 여성은 날카로운 말로 포악한 성 문화의 올가미를 망가뜨리며 반박을 한다. 지난 날 중국 남성들은 가장 큰 불효는 후손이 없는 것널리 대를 이어야 하는 의무같은 그럴듯한 이유를 앞세우며 아내는 물론 많은 첩실을 들였다. 이런 첩실문화에 대하여 여성들은 보통 운명이라고 여기며 받아들였다. 그러나 <각자 실험하기>에서 왕국헌은 혼인한지 오해 되었지만 아직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첩실을 들이려고 하자 그의 아내는 동의하기는커녕 기탄없이 이렇게 말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모르잖습니까? 우리 부부가 각자 상대를 찾아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당신 생각은 어떠신지요?"

과학적인 실증정신에도 부합하는 이 한 마디 타박은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첩실을 들이려던 남편에게 주는 망신일 뿐만 아니라 아들이 없다고 늘 푸대접을 받거나 버림까지 받던 여성이 내 놓은 원망과 분노이다. >(345)

 

생각해보자, 지금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정해보자. 과연 이 부부는 어떻게 처리할까? 위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을 들여서 대를 이으려 할까? 아니면 다른 방법을 강구할까?

당연히 각자 시험하기를 택할 것이다. 물론 각기 다른 상대방을 만나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검사를 통하여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지를 각자 시험해본다는 말이다. 그래서 흠결이 있는 쪽의 문제점을 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위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내의 생각은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당연한 주장을 하지 못하고 그 대신 첩실을 들여 수모를 당하는 여자의 운명(?)을 과감하고 통렬하게 비판한 이야기이다. 그러니 그 이야기이야기 뒤의 이야기없이 읽기만 하면 그야말로 술집에서 생각없이 하는 음담패설로 전락할 게 아닌가?

 

그렇게 이 책은 자칫하면 - 그 이면의 이야기 없이 읽으면 - 시중의 야하고 우스운이야기로 그치고 말 이야기들을 건져내 그 이면의 고함과 신음’(333) 을 보여주는 가운데 중국 문화 속의 '사랑과 성'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들에 대한 다양한 분석 도구

 

이 책은 그래서 그러한 이야기들을 수집한 뒤 다각도의 분석도구를 들이댄다. 그래서 과연 그런 '이야기'가 대표하는 그 당시 사랑과 성의 문화가 어디에서 굴절되고 왜곡되었는지, 그래서 결국은 중국인이 생명의 강인함으로 어떻게 갈등과 충돌 속에서도 상황을 잘 파악하여 자신의 행복에 가장 잘 맞는’(17) 모습을 찾아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만감이 교차하는 불랙홀

색정의 구조분석

중국인의 두가지 성 문화 - 방종과 억압

성별에 따른 권력구조

여성에 대한 육체적 착취

절규와 신음 - 성문화가 폭력으로 통치되는 경우

성과 문화의 타협,

 

'이야기'를 넘어 건전한 담론으로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성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과 성'이란 잣대를 통하여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담론(談論)의 장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결론적 부분에서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발언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사실상 중국이든 서방이든 성문화는 모두 방종과 억압이 드나드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정 반 합의 변증과정을 거치며 이루어졌다. 역사를 돌아보고 과거를 살피면 오늘날 성문화의 무늬 및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비교적 분명하고도 전반적인 이해는 물론 속내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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