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이제
다른 노자를 보여주마.
지금까지의
노자는?
지금까지 노자를 어떻게 대해왔는지를
살펴보자.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은 인문학을 단편적인 지식으로 외우기 바쁘다”(6쪽)
- 노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노자 하면 누구의 해석이 어떻고 또 다른 누구는 그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고,
외우기
바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그런 해석을 줄줄이 꿰면 노자를 잘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이
책은 생각하는 노자,
아니
노자를 통하여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저 남의 해석을 따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남이 써 놓은 노자 해석을 읽고
노자를 알았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노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노자와 도덕경을
훑어가면서,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한다.
노자 이해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 책은 그래서 노자의
해석,
아니
노자를 이해하는데 있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경지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것은
이 책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는데 저자는 이 책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하나는 노자의 사상을 중국사유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래서 노자를 해석하려는
단계를 벗어나 노자 사상의 기반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는 점이다.
결국
그런 저자의 시도는 지금까지의 노자 이해에서 벗어나도록 만든다.
그렇게 노자를 뒤집어 봄으로서,
저자는 우리로 하여금 노자를 읽으면서 그저 남의 해석을 따라 가는 그러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 책을 통하여 생각의 틀을 깨는 정신적 자유를 회복하고,
진정한
덕성,
진정한
행복을 가까운 일상 속에서 만나기를 촉구하고 있다.
(7쪽)
노자 이해의 첫걸음
-
<天,
德,
禮>
저자는 노자를 설명하기에 앞서
중국의 사상이 어떻게 발원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게
바로 <천,
덕,
례>의
개념이다.
그
것을 설명하는 그를 따라가 보자.
지금껏 여러 책을
읽었지만,
사상의
발전으로서 <천,
덕,
례>를
이렇게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럼 저자의 설명을
따라,
한번
정리해보자.
먼저 신의 개념이
등장한다.
<인간이
신을 섬긴다는 것은 인간 자신을 이해하는 매개로 혈연보다는 훨씬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지위를 갖는 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30쪽)
논의를 편하게 하기 위해 설정한
그의 뒤를 따라가 보자.
중국의
은나라나 주나라의 천(天)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상을 천명(天命)이라
한다.
하늘은
인간에게 천명(天命)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하늘의 뜻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천명은 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래야만
천명의 지배력으로 만들어진 계급의 차이,
권력구조
등등이 정당성을 가지고 항구적으로 유지 될 수 있기 때문(31쪽)이다.
그런데 천명을 받은 것은 은나라라고
생각하던 당시,
아직
천명을 받지 않은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문제가 된다.
바로
천명을 거스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럴
때 이것을정당화하기 위하여 등장한 개념이 바로 덕(德)이다.
즉
덕이 있으면 천명이 오고,
덕을
읽으면 천명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덕이란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덕이란 개념으로 은나라의 멸망과 주나라의 건립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신의 뜻,
즉
천명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내적인 힘을 가지게 되는데,
이게
바로 덕이다.(33쪽)
그럼 예는 어떻게
등장하는가?
당시에는 제사가 매우 중요한 행사로
여겨졌다.
제사를
통하여 신의 뜻을 알고 인간의 기도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정화된 마음의 상태가 먼저 준비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담보하기 위한 절차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예(禮)라고
했다.
즉
예는 덕을 지키거나 회복할 수 있는 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32쪽)
그런
<天,
德,
禮>의
개념을 토대로 하여 중국의 사상은 발전하기 시작한다.
천명론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
-
공자와 노자
도는 그러한 천명을 극복하려는
인간이 만든 매우 인간적인 범주의 개념이다.
도가
천명을 극복하려면 천명에 있는 문제점,
즉
비의성과 임의성 그리고 주관성을 극복해 투명성과 객관성 그리고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후의 중국사상은 도를 중심에 놓고 인간의 길을 걸어가려는 모든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 속에서 이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하게
되었다.(72쪽)
그런
토대위에 천명론을 극복하고 인간의 길을 세우기 위한 사상가들이 출현했으니 그 대표적인 사상가가 바로 공자와 노자이다.
이런 기본 배경을 가지고 노자의
사상이 출현했다고 저자는 노자를 시작한다.
노자의 기본 사상
-
관계론적
노자는 이 세계를 본질론적이 아니라
관계론적으로 보고 있다...
<......그의
다양한 주장들이 ....
그
기본적 세계관의 표현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세계관과 주장들 사이의 유기적 연관성들을 이해하는 안목 속에서 노자의 사상을 바라보아야 함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126-127쪽
이런
생각의 발상이 지금까지의 노자 이해에서 벗어나, 노자를 새롭게 보는 저자의 시도이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노자를, 새로운 노자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 책의 위치와 의미
이 책은 최진석 교수의 노자 관련
책으로서 (나에게는) 세 번째 책이다.
다른 두 권은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이다.
또 다른 책으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있는데,
그
책은 노자를 전면으로 내세운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생각들의 맹아(萌芽)가
들어 있으니,
관련
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165쪽의
“덕이란
무엇인가”라는
장에서 언급된 내용은 이 책 31쪽의
‘덕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어쨌든 노자 관련 책으로 그래서
이번이 (나에게는) 네 번째인데,
이
책은 그의 노자에 관한 생각의 결정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전의 책들이 해석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그러한 해석의 배경 내지는 해석하게끔 되는 기본적 생각들을 더 철저히 보여주는
데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그 책을 읽으면서 문장만 읽고 그 행간의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래서
나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었으니 위의 세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볼 계획이다.
그러면
최진석 교수의 노자에 관한 생각 -
행간까지도
-
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니
혹시 최진석 교수의 노자를 이제 처음 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