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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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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커다란 순무, 어려운 아보카도지만 만약 내가 제목을 짓는다면 하루키가 좋아하는 달리기와 고양이가 합쳐진 궁극의 조깅코스, 장어집 고양이라고 짓고 싶은데 전혀 연관성이 없다. 뭔가 상큼하게 한국판이 제목을 잘 뽑은거 같지만 바다표범의 키스는 읽고나니 니글니글하다.

 

제목은 수필집에 있는 제목들이다. 원제 역시 마찬가지로 앙앙에서 연재된 글 52편으로 이루어졌다. 전편 무라카미 라디오는 까치에서 나온 책으로 삽화가 빠져있다. 읽을때는 허전함을 느낀다거나 그런건 없었지만 좋아했던 수필집이라 닳도록 읽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읽고 있으면 하루키와 수다떤다는 느낌이 있다. 언제가 하루키 수필집에서 뜨게질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한적이 있는데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

 

글이 짧기 때문에 읽는 상대도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건지 내가 하루키를 좋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글을 읽고나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맞아 그래그래, 하면서 스스로 맞장구를 치거나 아 그렇구나, 공감하거나 심각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이 미덕이다.

 

아무튼 무라카미 라디오를 읽었을때 삽화 없이 읽었지만 이번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는 삽화가 그대로 있어 어쩐지 무라카미 라디오 시즌 1도 삽화가 있는 상태에서 읽고 싶어, 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처음 삽화를 접했을 때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에 익숙해져서 영 적응이 안됐다. 그리고 조금은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동판화로 작업을 한 것이라고 한다. 동판화라 인식하고 다시 보니 신기하고 예술품같은 느낌이 들고 여백의 미가 느껴져 좋았다.

 

책의 내용은 하루키가 애정을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만 써서인지 힘도 많이 들어가있지 않고(하긴 에세이인데 힘을 주면 쓸 필요는 없다) 읽는 사람도 힘을 주며 읽지 않을정도의 말랑말랑함이 있다. 책에 관한 이야기,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 그밖에 작가나 기타등등-

 

게다가 책 말미에는 코멘트같은 것이 있는데 그 코멘트 중에 하루키 핸드폰 고리가 스타벅스 미니컵 모양 스트랩인데 신칸센에서 두고 내렸다는 코멘트가 있는데 그 글을 읽고 언제가 동생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는데 스타벅스에서 줬다는 스타벅스 미니컵 모양의 핸드폰고리를 달라고 해서 내 핸드폰고리에 달아놓았다. 빠심!

 

그 코멘트 위에 있는 글인데 '이제 그만둬버릴까', 라는 내용은 비틀즈의 멤버들이 레코드사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툇짜를 맞았는데 코메디 음반을 주 업무로 하는데 조지 마틴은 '좀 거칠긴 하지만 묘하게 마음을 끄는 데가 있다'는 이유로 그들과 계약을 한다.

 

하루키 역시 '당신 작품에는 상당히 문제가 있지만 뭐 한번 해보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비틀즈와 계약한 사람도 그렇고 하루키의 작품을 뽑은 심사위원도 그렇고 문제는 있지만 역시 중요한것은 어떻게 끄는 가?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요즘 내 화두와 맞물려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건 비틀즈는 멤버들은 자신들과 계약할 사람들을 계속 찾아다녔다는 것과 하루키는 써서 냈다는 것일 것이다. 결국 노력하자라는 평범한 생각으로 마무리를 졌지만- 어째서 이런 글에 코멘트로는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

 

모든 글들이 그래서 오히려 뚱단지 같아 읽기에 재미가 더해진다. 책을 좋아했다 라는 에세이 말미에는 제법 진지하게 글을 썼지만 말미에는 야쿠르트의 다나카 히로야스가 방망이를 잡는 법은 고양이가 꼬리를 세우고 돌리는 것 같더군요로 마무리. 언제가 임창용 이야기도 해줄까?

 

비채에서는 이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냈는데 팬으로서는 그런 잡문집이 상당히 기쁘고 좋았지만 두께감 덕분에 들고다니면서 읽기는 불편하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는 두께도 적당하고 하드커버라 함부로 들고다녀도 겉 표지가 구겨질 염려도 없고 딱 좋다. 특히 지하철에서는 긴 이야기보다는 짤막한 이야기가 적당한데 지하철에서도 읽기 좋은 수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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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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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김연수와 하루키는 꽤 공통점이 많다. 우선 아마추어 러너라는 것,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들을 번역했다는 것. 이것도 공통점이라 해야할지 당연한것이라고 해야할지 소설가라는 것이다. 또 한번 공통점을 찾는다면 이렇게 결국 러너의 일상에 대해 에세이를 썻다는 것.

 

또 끈질기게 공통점을 말하자면 나란히 알라딘 에세이 세번째 추천도서로 선정되었다는 것! 또 다시 끈질기에 말하자면 하루키 단편소설이나 엽편에 등장하는 코끼리가 김연수 산문집 일러스트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역시 끼어맞추기려나?

 

김연수의 단편소설을 여러편을 읽었지만 장편은 마지막까지 읽지 못했다. 굳빠이 이상이나 그 외 여려편들, 심지어 집에도 몇권의 책을 샀지만 끝까지 읽지 못했다. 왜 일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나의 근성의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호감은 가는 작가였다. 전에 김연수 작가의 강연을 들은적이 있는데 그때도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하루키와 관련된 우선 하루키도 아마추어 러너니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싶었지만 꾹 참았다.

 

사실 나는 제목에 조금 불만이 있다. 지지 않는다는 말, 음 과연 이 본문과 관련이 있는 말일까? 어쩐지 청춘 자기계발서같은 느낌이 든다. 지지 않겠다는 오기에 관해서는 전혀 없는거 같은데 오히려 '어쩌다가 나 같은 사람도 달리게 됐는가?' 의 첫 서문을 제목으로 했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달리기가 주된 내용이니까.

 

달리기가 주된 내용이래도 그에 관련된 작가의 살아온 인생에 대해 담겨져 있다. 지난 청춘에 대해서도 어린시절 그리고 최근에 대해서도. 읽다보면 올해, 지난 해 이렇게 적혀 있지만 2007년도나 2010년도 까지 있는걸보면 그동안의 글들을 모은 느낌이 들었다. 들었다가 아니라 그런 글들인데 그래서인지 여유가 느껴져 좋았다. 오로지 '마라톤'이라는 글만 있었더라면 조금은 빡빡한 느낌이 들기도 했을텐데 말이다.

 

나는 달리기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아마 어린시절 억지로 달리기를 강요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시 초등학교때 10시만 되면 전교생은 전체 운동장을 들었다. 생활체육의 일환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억지로 운동장을 들었다. 게다가 나는 운동부여서(운동을 잘해서가 아니라 구색을 맞추기 위해 선생님이 억지로 넣었다) 운동장 10바퀴를 돌았다. 그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달리기를 싫어하지만 못뛰지는 않는다. 뛰는 재미를 알았다면 계속 달리기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하루키 수필집을 읽고나서 나도 한번 뛰어볼까? 하는 마음은 조금 생기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처자가 마을을 뛰어다닌다라는 라는 인식은 "쟤 왜저래?" 인식 밖에 되지 않는다. 차마 그 시선을 뚫고 뛸 마음도 없고 용기도 없다.

 

그런데 이 수필집을 읽고나니 한번 뛰어볼까? 하는 마음이 조금 들기도 한다. 달리기는 자신과의 싸움이며 한계를 느낄 수 있는 체험이다. 특히 마라톤이라는 긴 레이스는 남과의 경쟁보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근성이 부족한 나에게는 지구력을 기를 수 있는 좋은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자꾸 마음에 핑계가 생긴다.

 

그렇다고 이 산문집에는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강연을 듣고 참 유머러스하다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글도 그렇다. 한번 더 읽기 바라며 쓰는 글은 재미있게 읽었다. 다 읽고 다시 뒤부터 있는데 다시합창합시다라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타이즈에 관한 부분도 재미있게 읽었다. 어린시절에 관한 이야기도. 어쩐지 작가들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다 재미있다. 우울했었던 이야기라도 재미있었던 이야기라도 내가 겪지 않아도 공감대가 형성이 된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라도. 기억과 추억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나는 고독이 별로 슬프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고 좋지도 않고 어쩐지 나와 잘 맞는다라는 생각을 했다. 혼자있는것이 편할때가 있는데 작가가 말한 내향적인 성향과 잘 들어 맞는다. 기억과 추억에 관한 부분은 조금 슬펐다. 내가 추억이라고 생각했었던것들이 사실 그냥 기억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슬퍼졌다. 아니야 사실 그건 추억인지도 몰라,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여행에 관한 부분도 있는데 소심한 나로서는 작가의 용기(?)가 대단했다. 나는 여행전부터 근심이 많은터라 좋은일이 벌어질거야- 라는 생각은 전혀하지 못한다. 도둑맞으면 어쩌지? 시간이 안맞으면? 차를 놓치면? 길을 잃으면? 이라는 생각에 여행전부터 꼼꼼히 뒤지다 결국 지쳐서 여행따위는 가고싶지 않아 포기하거나 여행지에 가서는 실망하기 일쑤다. 하지만 나도 작가가 조언한 주문처럼

 

'이제부터 내게 어떤일이 생길텐데, 그 일들은 내가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일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로 놀라지 말자. 마음대로 넘겨짚지 말자. 인간성을 믿자'

 

10월에 여행을 갈까 생각만 하고 있는데 이 조언을 새겨봐야겠다. 하지만 인간성을 믿자, 라는 자체가 큰 모험이자 정말 복불복 주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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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언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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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추천도서로 김영하 작가의 랄랄라 하우스와 권정생 작가의 빌뱅이 언덕을 두권을 받았는데 어떻게보면 참 상반되는 책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가와 동화작가라는 타이틀을 떼더라도 읽고 있으면 한쪽은 스타벅스느낌이고 한쪽은 별다방 느낌이었다. 실제로 스타벅스에서 누군가 랄랄라 하우스를 읽고 있을 것 같고 별다방에서는 권정생 작가의 말투로 느긋하게 인생에 대한 이야기 혹은 유년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을것 같다.


나는 권정생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른다. 강아지똥이라는 동화책은 읽은적이 있다. 워낙 유행이었고 내용도 짧다. 아, 이런 똥(?)으로도 순수하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구나 감탄했다. 우리때도 몽실언니는 인기 있었지만 그런 우울한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았다. 권정생은 그냥 동화작가였고 덧붙이면 이미 고인이 된 동화작가였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추천도서에 넣고 싶었지만 일부러 피했다. 어쩐지 뻔할지도 모르고 노인의 잔소리정도로 치부했다. 전혀 모르는 작가지만 나는 그렇게 외면했다. 그래도 이 책을 받고 난감했다. 일부러 만나기 싫어 피했는데 어쩔 수 없이 마주친 느낌. 그래서 어색하게 안녕하고 이 상황을 모면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편견이 아주 심한 사람이다.

 

하지만 작가의 동화이야기,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읽는 순간 반해버리고 말았다. 일부러 만나기 싫어 피했는데 어쩔 수 없이 인사하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내가 이 사람을 오해했구나 친하게 지내고 싶다, 라고 발전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올리면서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니 슬퍼졌다. 사야할 책들이 많아질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소설과 다르게 수필을 읽으면 그 사람의 성품이 느껴진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땐 별로지만 수필을 읽고나서 좋아하게 되었다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그 사람의 생각과 성격을 안 다음 책을 읽으면 책의 내용이 더 집중되고 더 쉽게 이해가 된다.

 

강아지똥도 마찬가지다. 권정생 작가만큼 낮은곳에서 생활했던 사람이 있을까? 빌뱅이 언덕은 작가가 손수 지은 집이 있는 언덕이다. 권정생 작가는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었고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작가하면 왠지 대학은 나온거 같고 지식인같지만 이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분은 자신이 배울 수 있으면 얼마든지 배웠고 돈을 작정하고 벌려고 했으면 벌었을 것이다. 강아지똥, 몽실언니하면 바로 떠오르는 분이시니까. 하지만 이 분은 욕심내지 않으셨다.

 

이분의 종교는 기독교이다. 요즘 종교에 대해 자유롭다하지만 유독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아마 교회의 사치와 허세 그리고 괴로울정도로 옆의 사람을 지치게 하는 전도활동, 그리고 마치 하느님이 소원자판기마냥 기도하면 뚝딱 이루어질것처럼 말하거나 단순하 자신의 기도를 위해 믿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작가는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태를 비판한다. 작가가 기독교인 이유는 예수가 꽃을 사랑하고 새를 사랑하는것처럼 사랑하고 싶어서이다. 예수의 마음을 느끼고 싶어서, 라는 말이 찡해왔다. 또 가난에 힘들어하는 학생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착하게 살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

 

착하게 살 권리, 의무도 아니고 권리라고 말하는 부분,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작가에게 호감이 가고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내가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상황과 작가가 어린 학생들에게 위로하거나 작가의 고민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나와 많이 비슷해서 공감이 갔다. 그리고 작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학생들도.

 

작가는 어린시절 일본에서 가난하게 생활하다가 해방 후 조국에 찾아왔지만 역시 고향에서도 가난하게 산다. 설상가상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결핵까지 걸리고 걸인으로 떠돌이 생활도 했다. 마치 먼 이야기같고 정말 우리나라 이야기 맞아? 라는 생각일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특히 거지 생활을 하는 중 쓴 시에서 이런 글귀가 있다.

 

어머니

 

배가 너무 고픕니다.

 

얼마나 고팠을까.

 

전쟁의 피해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적날하게 표현했다. 동화에서는 모를까 수필에서는 전혀 가감이 없었다. 그래서 슬펐고 살아남은 작가가 대견했다. 작가의 주변에선 젊은 시절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보다 다 어린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시대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더더욱 암울했다.

 

이 책에는 강대국에 대한 증오 적날하다. 그리고 그 강대국 편에 있는 하느님도 싫어한다. 세계 2차대전에 쓰인 폭약보다 6.25전쟁에 쓰인 폭약이 더 많다고 한다. 우리의 논리가 아니가 강대국의 논리에 따라 분리되고 결국 전쟁까지 하게 되었으니 작가는 그것에 대해 슬퍼한다. 왜냐하면 전쟁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피폐해지고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작가는 고구마 가게에서 일을 한적이 있는데 주인은 몰래 속여 팔라고 한다. 자신은 정직해서 가게에 일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거짓말을 시킨다.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 주인은 몰래 스파이까지 보내 작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하는지 체크하고 만다. 사는 것에 바빠 서로를 속이고 의심하고 작가는 이런 상황이 슬픈것이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모두 가난 속에 살다가 일찍 돌아가셨다. 정말 작가는 살아남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이 모든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살아간다. 마치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거 같아서 마음이 푸근해졌다. 왜 떠나신 다음에 이 분을 알아버린건지 화가 났다. 생각해보면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작가에 대해 몰랐을 것이고 작가의 생각과 또 좋은 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좋은 보양식을 먹은듯한 착각이 들었다.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풍부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복음서나 성약성서같은(실제로 둘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느낌이 들었다.

 

종교가 기독교인만큼 하느님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나처럼 편견을 갖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만약 이런 종교인들이 많았더라면 지금의 기독교가 그렇게 박해받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대로 기독교인은 권정생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년동안 교회 종지기로서 살아가신 선생님.

 

그분은 자신을 내세워 본적이 없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때는 목사님에게도 단호하게 말한다.

 

당산나무 이야기도 신선했다. 당산나무는 단순한 신당수가 아니고 백성이 모이는 곳 백성이 집결하는 곳 또 자연보호에도 관련이 있는 나무라 칭했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에서는 싫어할만한 내용인지도 모른다. 더 앞서 작가는 포교보다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촌소식에 대해서도 간간히 적고 있는데 점점 현대화되어가는 농촌에 대해 슬퍼하고 또 농촌일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보며 슬퍼하신다. 나는 시골에 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공감이 갔다. 지금은 옛날처럼 일을 많이 하지 않고 어린시절 내 이야기를 하면 옛날 이야기같은 반응을 보인다. 읽는 내내 하지만 선생님 그래도 저는 욕심이 너무 많아요, 죄송해요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안동 톳제비는 처음 듣는 단어인데 도깨비의 일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는 주로 일본 도깨비이다. 오히려 한국 도깨비가 더 낯설다. 톳제비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싸움을 걸어 씨름을 하거나 못된 장난을 치는 도깨비. 작가는 이런 잃어버린 한국의 식물들, 단어들을 안타까워하셨다.

 

글을 쓰는 내내 작가에서 선생님으로 표현하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작가로서가 아니라 인생 스승으로서의 선생님으로 다가왔다. 역시 아쉽다. 살아계실때 알았으면 더 좋았을껄, 그 전에 책을 더 읽어 둘껄 하고 말이다.

 

작고 하신지 5년이라고 한다. 낮은 곳에서 생활하고 오히려 그걸 편하게 생각하신 선생님. 존경하고 또 존경하며 다시 한번 맛있게 책을 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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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 하우스 -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 개정판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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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갑자기 김영하의 수필이 그리웠다. 그래서 중고책으로 포스트잇을 구입해서 읽었다. 생각해보면 포스트잇도 그렇고 랄랄라 하우스도 그렇고 최근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쩐지 최근의 이야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먼일도 어제일처럼 느껴진다는데 조금은 우울해진다.


이 책을 처음 읽은건 2005년이나 2006년이었을 것이다. 고양이 이야기가 아니었더라면 손에 대지도 않았을 수필집. 내가 고양이를 좋아해서인지 고양이를 좋아하는 작가에게는 관대해진다. 그때 그 표지는 어땠었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재 출판된 표지를 보니 액자로 걸어두고 싶을만큼 앙증맞다. 김영하를 좋아하지 않아도 혹은 활자 읽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책 표지만 보면 마음이 스르르르르 흐물흐물해지면서 어디 한번 읽어볼까? 혹은 읽지 않아도 이 책표지라면 ok이야 라고 할지도. 이런 귀여운 솜방망이를 보고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 너로 정했어. 하면서 책을 펼치는데 읽자마자 비보를 읽고 말았다. 의욕 저하. 내가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었던 이유는 방울이와 깐돌이 때문인데 책 출판 이후 방울이의 소식은 날 슬프게 했다. 랄랄라 하우스 - 방울이, 깐돌이 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충전(?)을 하고 다시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 어쩌면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 이야기로 가득 있다. 하루키식 수필에 익숙하다면 이 짤막한 수필로 가득한 이야기에 흥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도 공감가는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궁금했던 이야기가 많아 즐거웠다. 특히 작가로서의 책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헌책방 이야기는 하루키 수필에도 종종 등장하는 이야기로 작가로서 자신의 책이 헌책방에 있으면 누가 팔았는지 왜 팔았는지 궁금한가보다. 아마 연인에게 통보없이 차여버린 사람의 마음일까?

 

빌게이츠를 증오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악의도 신선했다. 하지만 하드웨어의 고장도 아니고 소프트웨어의 고장은 조금은 다르지 않나? 라는 생각도 하지만 하드가 날라가 윈도우를 다시 깔려고 할때 그 cd의 금액은........cd를 떠나서 다시 새로 까는것일 뿐인데 수리비는 기본 2만원을 받을때....그때의 마음을 생각하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긴 한다.

 

내가 만난 작가들도 흥미 있었다. 나도 허삼관 매혈기를 재미있게 읽어 작가가 궁금했는데 미국 아이오와 창작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가 왔나보다. 작가도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영어를 모른다기에 멀 발치에서만 봤다고 하는데 이 밖에도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여러 작가들이 여러가지 이야기와 강연과 사인회를 통해 소통하는게 재미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별개로 낭독회에 대한 작가의 주장도 있긴 한데 어쩐지 낭독인 긴장이 된다. 아무래도 글자를 틀리는것에 대한 부담감 대화체는 연기하듯이 읽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기타등등. 어쩐지 낭독하는 작가보다 더 신경쓰인다. 아무래도 보수적이면서 소심한 내 성격의 문제인듯 하지만, 익숙하지가 않다.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외국에는 낭독이 활성화가 되어 있다. 트르먼 카포티 소설 중 크리스마스에 관한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은 애초에 낭독을 하기 위해 만든 소설이라고 한다. 애초 소설의 기원은 구비문학이었으니 단순한 사인회보다는 낭독을 통해 소설을 알리고 듣는게 자연스러울것이다.

 

소설의 엔진에 대해서도 공감갔다. 내 주변에서도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책은 시간이 나야만 있는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같은 경우는 시간을 내며 책을 읽지는 않는다. 애초에 재미있으니까, 라는 가벼운 생각이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읽는다거나 버스를 기다리거나 지하철에서 읽는다. 버스 안에서는 책을 조금만 봐도 멀미를 하기 때문에 되도록 지하철을 타려고 한다. 서서도 읽을수도 있고 앉아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거운 책일경우는 고역이지만- 작가는 비싸지만 책을 재있게 읽는 방법으로 그 지역에 나오는 소설을 그 무대에가서 읽는것을 추천하지만 그래도 역시 뒹굴뒹굴 내 방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휴가를 보내는 방법에서도 그렇고. 한국문학이 외국문학에게 밀리는 이유에 대하 박민규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해외문학의 개방을 우루과이라운드와 비교한 것. 나는 고집해서 우리나라 문학을 읽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해외문학쪽을 많이 읽는 편이다. 나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극은 영화에는 쿼터제가 있지만 문학은 아니라는 말이 공감가지만- 이래나 저래나 역시 답은 한국작가가 재미있는 글을 쓰는 수 밖에라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

문학, 영화, 미술, 혹은 엉뚱한 공상들까지 여러 이야기에 대해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야기는 짧은데 나는 버릇처럼 자꾸 대꾸하고 응답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나도모르게 작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뒷부분에는 여행가면서 찍은 사진들이 있는데 나도 떠나고 싶다, 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분명 자랑이야 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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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손보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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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떠나서 젊은작가들작품집이라고 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어요. 가격도 환상이구, 뒤에 보니 1년간 보급판으로 이 가격에 판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많이 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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