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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이번에 추천도서로 김영하 작가의 랄랄라 하우스와 권정생 작가의 빌뱅이 언덕을 두권을 받았는데 어떻게보면 참 상반되는 책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가와 동화작가라는 타이틀을 떼더라도 읽고 있으면 한쪽은 스타벅스느낌이고 한쪽은 별다방 느낌이었다. 실제로 스타벅스에서 누군가 랄랄라 하우스를 읽고 있을 것 같고 별다방에서는 권정생 작가의 말투로 느긋하게 인생에 대한 이야기 혹은 유년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을것 같다.
나는 권정생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른다. 강아지똥이라는 동화책은 읽은적이 있다. 워낙 유행이었고 내용도 짧다. 아, 이런 똥(?)으로도 순수하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구나 감탄했다. 우리때도 몽실언니는 인기 있었지만 그런 우울한 이야기는 읽고 싶지 않았다. 권정생은 그냥 동화작가였고 덧붙이면 이미 고인이 된 동화작가였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추천도서에 넣고 싶었지만 일부러 피했다. 어쩐지 뻔할지도 모르고 노인의 잔소리정도로 치부했다. 전혀 모르는 작가지만 나는 그렇게 외면했다. 그래도 이 책을 받고 난감했다. 일부러 만나기 싫어 피했는데 어쩔 수 없이 마주친 느낌. 그래서 어색하게 안녕하고 이 상황을 모면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편견이 아주 심한 사람이다.
하지만 작가의 동화이야기,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읽는 순간 반해버리고 말았다. 일부러 만나기 싫어 피했는데 어쩔 수 없이 인사하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내가 이 사람을 오해했구나 친하게 지내고 싶다, 라고 발전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올리면서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니 슬퍼졌다. 사야할 책들이 많아질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소설과 다르게 수필을 읽으면 그 사람의 성품이 느껴진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땐 별로지만 수필을 읽고나서 좋아하게 되었다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그 사람의 생각과 성격을 안 다음 책을 읽으면 책의 내용이 더 집중되고 더 쉽게 이해가 된다.
강아지똥도 마찬가지다. 권정생 작가만큼 낮은곳에서 생활했던 사람이 있을까? 빌뱅이 언덕은 작가가 손수 지은 집이 있는 언덕이다. 권정생 작가는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었고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작가하면 왠지 대학은 나온거 같고 지식인같지만 이 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분은 자신이 배울 수 있으면 얼마든지 배웠고 돈을 작정하고 벌려고 했으면 벌었을 것이다. 강아지똥, 몽실언니하면 바로 떠오르는 분이시니까. 하지만 이 분은 욕심내지 않으셨다.
이분의 종교는 기독교이다. 요즘 종교에 대해 자유롭다하지만 유독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아마 교회의 사치와 허세 그리고 괴로울정도로 옆의 사람을 지치게 하는 전도활동, 그리고 마치 하느님이 소원자판기마냥 기도하면 뚝딱 이루어질것처럼 말하거나 단순하 자신의 기도를 위해 믿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작가는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태를 비판한다. 작가가 기독교인 이유는 예수가 꽃을 사랑하고 새를 사랑하는것처럼 사랑하고 싶어서이다. 예수의 마음을 느끼고 싶어서, 라는 말이 찡해왔다. 또 가난에 힘들어하는 학생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착하게 살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다.
착하게 살 권리, 의무도 아니고 권리라고 말하는 부분,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작가에게 호감이 가고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내가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상황과 작가가 어린 학생들에게 위로하거나 작가의 고민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나와 많이 비슷해서 공감이 갔다. 그리고 작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학생들도.
작가는 어린시절 일본에서 가난하게 생활하다가 해방 후 조국에 찾아왔지만 역시 고향에서도 가난하게 산다. 설상가상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결핵까지 걸리고 걸인으로 떠돌이 생활도 했다. 마치 먼 이야기같고 정말 우리나라 이야기 맞아? 라는 생각일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특히 거지 생활을 하는 중 쓴 시에서 이런 글귀가 있다.
어머니
배가 너무 고픕니다.
얼마나 고팠을까.
전쟁의 피해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적날하게 표현했다. 동화에서는 모를까 수필에서는 전혀 가감이 없었다. 그래서 슬펐고 살아남은 작가가 대견했다. 작가의 주변에선 젊은 시절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보다 다 어린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시대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더더욱 암울했다.
이 책에는 강대국에 대한 증오 적날하다. 그리고 그 강대국 편에 있는 하느님도 싫어한다. 세계 2차대전에 쓰인 폭약보다 6.25전쟁에 쓰인 폭약이 더 많다고 한다. 우리의 논리가 아니가 강대국의 논리에 따라 분리되고 결국 전쟁까지 하게 되었으니 작가는 그것에 대해 슬퍼한다. 왜냐하면 전쟁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피폐해지고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작가는 고구마 가게에서 일을 한적이 있는데 주인은 몰래 속여 팔라고 한다. 자신은 정직해서 가게에 일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거짓말을 시킨다.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 주인은 몰래 스파이까지 보내 작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하는지 체크하고 만다. 사는 것에 바빠 서로를 속이고 의심하고 작가는 이런 상황이 슬픈것이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모두 가난 속에 살다가 일찍 돌아가셨다. 정말 작가는 살아남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이 모든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살아간다. 마치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거 같아서 마음이 푸근해졌다. 왜 떠나신 다음에 이 분을 알아버린건지 화가 났다. 생각해보면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작가에 대해 몰랐을 것이고 작가의 생각과 또 좋은 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좋은 보양식을 먹은듯한 착각이 들었다.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풍부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복음서나 성약성서같은(실제로 둘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느낌이 들었다.
종교가 기독교인만큼 하느님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나처럼 편견을 갖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만약 이런 종교인들이 많았더라면 지금의 기독교가 그렇게 박해받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대로 기독교인은 권정생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년동안 교회 종지기로서 살아가신 선생님.
그분은 자신을 내세워 본적이 없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때는 목사님에게도 단호하게 말한다.
당산나무 이야기도 신선했다. 당산나무는 단순한 신당수가 아니고 백성이 모이는 곳 백성이 집결하는 곳 또 자연보호에도 관련이 있는 나무라 칭했다.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에서는 싫어할만한 내용인지도 모른다. 더 앞서 작가는 포교보다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촌소식에 대해서도 간간히 적고 있는데 점점 현대화되어가는 농촌에 대해 슬퍼하고 또 농촌일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보며 슬퍼하신다. 나는 시골에 살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공감이 갔다. 지금은 옛날처럼 일을 많이 하지 않고 어린시절 내 이야기를 하면 옛날 이야기같은 반응을 보인다. 읽는 내내 하지만 선생님 그래도 저는 욕심이 너무 많아요, 죄송해요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안동 톳제비는 처음 듣는 단어인데 도깨비의 일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는 주로 일본 도깨비이다. 오히려 한국 도깨비가 더 낯설다. 톳제비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싸움을 걸어 씨름을 하거나 못된 장난을 치는 도깨비. 작가는 이런 잃어버린 한국의 식물들, 단어들을 안타까워하셨다.
글을 쓰는 내내 작가에서 선생님으로 표현하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작가로서가 아니라 인생 스승으로서의 선생님으로 다가왔다. 역시 아쉽다. 살아계실때 알았으면 더 좋았을껄, 그 전에 책을 더 읽어 둘껄 하고 말이다.
작고 하신지 5년이라고 한다. 낮은 곳에서 생활하고 오히려 그걸 편하게 생각하신 선생님. 존경하고 또 존경하며 다시 한번 맛있게 책을 읽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