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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忘足履之適也  忘要帶之適也 知忘是非心之適也

                                            -장자, 달생편-

 

 

이 책은  몇 년전 알라딘 서재의 어떤 미모로우신 분이 선물해 주신 책인데,(==>링크)

한동안 잊고 지내다보니, 언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잃어버려 다시 구입하게 되었다.

'자살의 전설'을 보는 동안 내내 떠올라서 내처 읽게 되었는데,

언젠가 읽었던 '페터 회'의 소설들도 생각나는 것이, 역시나 좋았다.

 

이 책의 뒷표를 보면 '죽음과 고통 뿐만 아니라 행복과 '삶의 즐거움'을 아우르는 소설이라고 되어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렇게 긍정적인 소설은 아닌 것 같고,

삶의 연장선 상에 놓여있는 죽음과 고통을, 너무 슬퍼서 오히려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시켜 그려내려 한게 아닌가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감정으로 복잡했다.

책 제목이 왜 '이탈리아 구두'일까를 놓고 여러가지 추측을 했었다.

책의 중간 쯤에,

장자라는 사람이 한 말이었다. "사람들은 신발이 발에 꼭 맞으면 발의 존재를 잊는다."(164쪽)

라는 문장이 등장하는데,

책에서 신발 만드는 장인으로 나오는 '자코넬리'가 이탈리아 로마 출신이라고 한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상적으로만 여겨졌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친구가,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신발을 보면 그 신발의 주인을 정확하게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며,

대단한 것처럼 설레발을 치길래,

나도 그럴 수 있다며 일축한 적이 있었다.

 

난 사람의 필체를 가지고 판단의 준거로 삼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내게 또 한가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게, 그 사람이 신은 신발이다.

 

단지 신발은 필체보다는 덜 정확하게 여겨지는데,

그 이유가 신발을 처음 사서 신었을 경우엔, 많은 것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게 되고,

신발을 선물하는 경우는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랬을 경우 그 사람의 개성이나 습관이 신발에 바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중국의 전족이나 마당발 같은 단어를 봐도 그렇고,

신발이 사람의 개성이나 습관, 성향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만도 없다.

 

신발이 편하면 신발을 신고 있는 발이 편해서 신발을 신었는지 벗었는지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고,

허리띠도 마찬가지로 편하면 허리에 띠를 했는지 안 했는지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살이의 어려움이나, 관계의 허허로움 따위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전제를 하게 되는데,

'아버지가 지금 신은 구두는 발에 대한 모독이에요.' 라는 구절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나는 이 신발을 신을 자격이 있는가, 나는 이 허리띠를 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 를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신발에, 허리띠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게 될때, 우리는 자유로워 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책에서 주인공은  어떤 일을 겪고 스스로를 유폐시키게 된다.

하지만, 이건 하나의 구실일뿐 주인공은 그 이전부터 홀로 외롭게 살아간 사람이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그는,

'추우면 외로움도 깊어진다.(7쪽)'고 하는데,

그의 그것은  들어줄 대상이 없는 독백이라서 한층 춥고 외롭게 여겨진다.

 

창문마다 서로 다른 프로그램에서 내보내는 누더기 소음이 이따금 들려왔다. 외로움이란 사람들이 같은 방송을 시청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세대나 가족은 저녁마다 각각 다른 위성이 보내는 서로 다른 세계에 몰두한다.(111쪽)

그는 외로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 방송을 시청하기 위하여 택한 것은 자기 자신으로,

공감과 소통을 거부하고 단절을 택한 건, 다른 방송 프로그램을 택한 본인의 의지이기도 한 셈이다. 

 

나는 배신당할까봐 두려워 내가 먼저 배신했다. 얽매이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감정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나를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나와 같은 종류의 두려움을 가진 남자들이 많았다.(331쪽)

책 뒷표지에서도 이구절을 만났는데, 그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당신 여전히 몰래 엿들어?"

하리에트가 물었다.

"섬에는 엿들을 대화가 없어."

"내가 전화를 할 때면 당신은 언제나 엿들었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책이나 신문을 넘기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렇게 행동하며 안 듣는 척 하려고 했지. 기억나?"

화가 났지만 그녀 말이 옳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불안하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은 이래로 나는 언제나 사람들의 말을 엿들었다. 닫힌 문에 기대서서 동료나 환자들의 대화를 엿들었고, 카페나 기차에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 대화들 대부분이 거의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사소한 거짓말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원래 그런 건가?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거의 알아채지 못할 만큼의 허위적인 이탈이 반드시 필요한 걸까?(131쪽)

이 구절을 본 후에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연히 듣게 된 '어머니와 아버지가 불안하게 속삭이는 소리'란 것이 '그가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면,

그 후로 그가 엿듣는 버릇을 갖게 된 것을,

자신이 버림 받지 않기 위하여 먼저 상대방을 버리는,

배신당할까봐 두려워 먼저 배신하는, 그 상황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나서,

주인공을 미워할 수 없었던 이유는,

버림 받을까봐 두려워 상대방을 먼저 버리고, 배신 당할까봐 두려워 먼저 배신했다고 해서,

자신의 잘못을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정하고 스스로 유폐시키려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얼음장에 구멍을 뜷고 들어가며,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얼음 구멍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105쪽)'고 하지만,

이것 외의 방법으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이 그렇게 무덤덤하게 살아간다는 얘기도 된다.

 

남의 얘기가 아닌 바로 내 얘기를 하고 있는 듯 여겨져, 이 책을 읽는 내내 쓰리고 아팠다.

그런데 내 얘기를 하고 있는 듯한 '바로 그'  느낌 때문에 남들이 간과했을지도 모르는 것도 깨달았다.

"사람들은 신발이 발에 꼭 맞으면 발의 존재를 잊는다."는 말의 이면에 있는,

편안 신발을 신을 수 있는 발, 편한 허리 띠를 맬 수 있는 허리 따위와 더불어,

상대방이 나에게 맞는 편안함 만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나는 상대방에게 얼마나 편안한 존재인가 돌이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ㆍㆍㆍㆍㆍㆍ도시에서는 이제 더 이상 별을 볼 수 없잖아요. 난 그래서 여기 살아요. 도시에서 살 때는 어둠과 적막함이 그리웠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별빛이 보고 싶었지요. 무한히 이용할 수 있는 환상적인 자연자원이 이렇게 있다는 생각은 왜 아무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적막함을 숲이나 광석처럼 파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150쪽)

 

"독특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어요. 하지만 늙었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없지요. 우리는 노인들이 유리처럼 투명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노인들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야 하지요. 아버지도 점점 더 투명해질 거예요. 엄마는 이미 투명해졌고."

우리는 말없이 서 있었다.(151쪽)

그렇게 되면, 주인공 딸인 루이제의 이 구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어린왕자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상한 부분도 있었다.

'혈압은 155에 90(9쪽)'이라면 하이퍼의 범주이지 '아무 이상도 없는'게 아니다.

 

군데군데 해석이 껄끄러워서 미루어 짐작해야 했던 구절들이 있었다.

헤닝만켈의 유려한 문장들을 만끽하려면 그가 쓰는 언어를 내가 구사하는게 제일 가까울텐데 싶어 아쉬웠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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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5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6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6-07-26 02:51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어보라는 권유를 저도 꽤 받았는데 아직 못 읽었다는 것을 일깨워주셨어요.
제목부터 괜히 쓸쓸한 느낌이 들어서. 제목에 구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 그럴까요.
˝그분˝은 지금 잘 지내고 계신지도 문득 궁금해지네요...

양철나무꾼 2016-07-26 09:50   좋아요 0 | URL
hnine님, 강추하고 싶은 책인 건 맞는데,
아버님이 기억날 수도 있으니 한참 후에 읽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동안의 쿠르드 발란더 시리즈와는 정서나 어조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듯 해요.

저도 그 분 가끔 궁금한데,
전엔 가끔 안부 페이퍼를 올리시더니, 이젠 바쁘신지 그것도 뜸하시더라구요~--;

날 더운데, 님도 잘 지내시죠?^^


마녀고양이 2016-07-26 14:32   좋아요 0 | URL
여전히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주는 사람˝을 그리워하는구나, 아하하, 나도 여전한데.

알라딘에서 유일하게 말을 놓은 동갑내기 친구인데,
지나치게 소홀하여 미안하오. ^^, 누군가에게 소속되고 싶은 마음과 자유롭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나는, 어릴 때의 간섭으로 인한 영향이 너무 강하여 친밀함의 거리 조절을 잘 못 해서.... ㅠ. 나 8월 2일까지 휴가야, 혹시 나는 시간이 있을까? (코알라도 데리고 나오라는 말은 하지 말고, 그 녀석 고딩이라서 나하고도 외출이 어렵당... ^^)

양철나무꾼 2016-07-27 18:28   좋아요 0 | URL
코알라도 없이 아줌마 둘이 만나서 뭐 하나? 심드렁~(,.)
코알라 많이 컸겠다.

내가 코알라 첨 봤을때가 5학년이었나 그랬지?^^
그런 코알라가 벌써 고딩이니 우리가 안 늙겠어?

난 토욜이나 일욜, 주말이 좋은데...ㅋ~.

마녀고양이 2016-07-28 10:22   좋아요 0 | URL
심드렁~~~ 쳇! ^^

2016-07-26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7-27 18:32   좋아요 1 | URL
저도 님 댓글보면 기분이 마구 좋아져요.
이 동네에 그런 사람들 몇 잇죠?
제겐 님도 그 중 한명이구요~^^

중복인데 치킨 드시려나 삼게탕 드시려나?
전 점심땐 삼계전복죽 먹었구요.
저녁엔 치킨을 먹어야죠.
전 대학1학년 때까지 치킨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그때 명륜동에 있는 KFC를 처음 갔었는데,
그 맛은 가히 환상적이었죠.

이젠 어느 브렌드를 먹어도 그만큼은 맛있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