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무엇인가 2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2
파리 리뷰 지음, 김진아.권승혁 옮김 / 다른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김창완 밴드가 부른 노래 중에 '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란 곡이 있다.

비슷한 가사와 멜로디가 반복되는데 후크송도 아닌것이 은근 중독력이 있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내가 왜 이 노래를 흥얼거리나 하고 곰곰 생각해보니,

김창완의 목소리가 따뜻한 것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노래 가사가 주는 무한 위로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1954년생, 우리나이로 62세인 그는 꺼벙이 안경을 끼고 아무렇게나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한 채로,

그가 제일 잘 하는 노래를 통해서,

우리에게 강요하거나 호소하지 않고,

그 날은 그 날이었고 오늘은 오늘일뿐이라고...

미리 알수있는건 하나 없고
후회 없이 살 수 있지도 않아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지만
다 겪어봐야 알 수 있는게 있지

라고 읊조리고 있다.

 

ㆍㆍㆍㆍㆍㆍ동시대 작가들이 쓴 책은 점점 덜 읽고, 옛 작가들이 쓴 책을 점점 더 읽게 되었거든요. 20세기 작품보다는 19세기 작품을 훨씬 많이 읽었습니다.ㆍㆍㆍㆍㆍㆍ열다섯이나 열여덜 살일때는 앞으로도 살 날이 많다고 느끼지만, 쉰 살이 되면 살날이 제한되어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2권, 222쪽,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책이 내게 그렇다.

내가 열두살에 읽던 책이 다르고,

열여섯에 읽던 책이 다르고,

서른에, 마흔에 읽었던 책이 달랐으며,

앞으로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예순까지 산다면 그땐 또 다른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단출해지는 삶을 살기로 선택했으니,

어쩜 지금까지 읽었던 책이나 앞으로 읽게 될 책들 중에서,

또 다시 읽는 책들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책의 내용은 그대로여도,

책을 읽는 나와 책을 읽고 받아들이는 내가 변할테니까,

또 책과 내가 만나게 되는 외적인 상황과 내적인 상황-느낌이나 생각 따위 등도 따라 변하게 마련일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구상 이렇게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과 내가 만나게 된다는 것은,

평면적인 책과 평면적인 내가 만나는게 아니라,

공감각적인 책과 공감각적인 내가 만나게 되는,

여러번의 씨줄과 날줄이 겹쳐지는 대단히 복잡한 만남인 것이니 지금 이 순간 감사해야 겠다.

 

1953년 창간된 미국의 문학잡지<파리 리뷰>에서 250여명의 소설가를 그동안 인터뷰하였다.

이 책은 그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좋아하는 36명을 추리고 추려낸 <작가란 무엇인가>에 맞춤처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이 글의 처음에서 김창완을 언급한 것은 이 잡지 <파리리뷰>와 나이가 비슷해서 였다.

나이가 비슷한게 무슨 상관인데 할 수도 있겠으나,

김창완이 와닿은 것은 따뜻하고 편안한데 은근히 배어나오는 여유가 무한 위로가 되었기 때문인데,

그걸 다른말로 바꾸면 연륜쯤되겠다.

 

<파리리뷰>의 작가 인터뷰 또한 단발이 아니고,

여러번에 걸쳐서 이뤄지기도 하고,

10여년동안 지속된 사람도 있고,

여러국가를 넘나들며 인터뷰가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건 작가가 성장하고 작가의 가치관이나 사상의 변화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겠다는 불굴의 신념이 없었다면,

그런 의미에서 작가와 일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와 신뢰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이뤄낼 수 없었던 성과이겠다. 

 

사실 이 책이 처음부터 나의 관심 도서는 아니었다.

난 작가는 작품으로 얘기하면 그만인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터뷰 집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었다.

 

그런데, 엊그제 무라카미 하루키가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을 들으니,

"상대국의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더라도 '그만큼 사죄했으니 이제 됐다'라고 (상대국이) 말할 때까지 사죄할 수밖에 없다.ㆍㆍㆍㆍㆍㆍ 역사 인식 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제대로 사죄하는 게 중요하다. 사죄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작가란 작품을 낳는 엄마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작품에 이렇게 저렇게 영향력을 미치게 마련이고,

그게 작가의 그것이 '고스란히'가 되든 '반어법'으로 비춰져 '전혀'가 되든지 간에,

작가의 그것이 개입되는 것을 배제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때,

작가마다 자기가 만들어 내는 등장인물의 자율성을 놓고 제각각 다른 견해를 피력하는게 아니러니 컬 했었다.

 

누군가는 꿈이나 책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행동을스스로 결정한다고도 하고,

등장 인물의 고삐를 쥐고 있지만 유동적이라고 표현하는 작가가 있고,

나보코프나 모리슨 같은 경우는 매우 단호하게 등장인물의 자율성에 대해 경고한다.

 

이게 만약 우리나라에서 쓰여지거나 우리나라 작가의 책이었다면,

등장인물의 자율성을 놓고도 일치를 보지 못하면서 '작가란 무엇인가'란 제목을 다냐고 툴툴거렸을텐데,

이 책에서는 작가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달라서 발상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신선했고,

나름의 견해와 가치관을 구축하여 그 작가만의 고유한 캐리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밀착 조명할 수 있어서 였는데,

그것이, 바로 60여년이란 기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파리리뷰>만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작가와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삶을 대하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도 같은 것이겠다.

 

누군가는 '내 삶의 주인공은 나야.'하는 생각으로 매순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가 하면,

누군가는 관계와 연대를 중요시하여, 상대방과 내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삶이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니 거스를 수 없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인터뷰 내용들이 다 맘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작가란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니까 말도 잘하는 사람들일거다 싶었던 나의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적어도 '말을 이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위배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말을 조리 있게 잘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횡설수설인 사람, 용두사미인 사람, 멀티테스킹을 하느라 산만한 사람도 있었으며,

본인이 작가로서 얼마나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는지 모르지만, 상대를 낮추어보고 무시하는 작가도 있었다.

(번역 상의 문제인지, 어투 자체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상대에 대한 존중 내지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먼저 배워야 하는게 아닌가 싶어 아쉬웠다.

 

작가는 신이 아니고, 작가이기 전에 인간이라는,

그러기에 온갖 종류의 인간 군상을 다 만날 수 있다는, 당연하지만 좀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며 자위할 밖에~--;

 

내 선입견이 무너진 또 하나가 있었는데,

글을 쓰는 작가들은 필 충만하고 감성적일 것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말이고 글이란 것은 삶 속에서 생생한 것이므로,

머릿속에서 상상만으로 쓰여지거나 탁상공론으로 점철된 글은  생명력이 길지 않았음에 미루어 볼때,

(잘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들이야 말로,

발은 땅바닥에 딛고 서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거기서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키우는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필 충만하고 감성적일거라는 데서 파생되어,

이들이 하나같이 글을 잘 쓰는 것은 타고난 예술적 감각이나 이 분야의 천재성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작가들은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글을 쓰고 있었으며, 또 다른 작가가 쓴 글들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노력없이, 분투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예술가들의 창작이라는 측면과 관련하여, 약물이나, 약물 중독을 논외로 할 수는 없다.

 

백과사전식 지식을 자랑했으며,

환각제의 영향을 받은 의식을 탐구한 것으로 되어있는, 올더스 헉슬리의 경우,

인터뷰에서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식으로 잘라 말하고 있는데 좀 아쉬웠다.

 

반면 스티븐 킹의 경우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약물중독이 걸렸었음을 시인하고,

술을 끊고 담배를 제한하며, 꾸준히 알코올의존자 모임에 나가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란 무엇인가 '특별한 사람들'이라거나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동안은 신(god)까지는 아니어도 선각자나 구루 정도로 생각했던 작가도 있었던게 사실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작가들도 작가들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점이 크게 와닿았다.

 

오에 겐자부로가 자신을 '쓰고 또 고쳐 쓰는 종류의 작가'라며,

자신의 주요한 문학적 방법 중 하나가 '차이를 가진 반복'이라고 하는데,

이 '차이를 가진 반복'이야말로 자연 그 자체이고 삶의 원천이니까 말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매일 아침 읽을 책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걸 깨달으면서 일어나고, 그게 그의 삶이라고 하는 구절을 읽으며 황홀했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열 두살때 읽었던 책이 다르고, 열 여섯 살때 읽었던 책이 다르고, 오늘 읽는 책이 다르다.

 

나이에 걸맞게 삶이 켜켜이 연륜으로 배어나는 그런 책을 읽고 싶다.

책을 읽는것이 아니라 삶을 사는 것이고 싶다.

 

어렵게 얘기했는데,

매일 아침 눈을 뜨고 햇살을 받고 거닐고 숨쉬고 밥을 먹는 것처럼,

책을 읽는 것도, 나이에 걸맞는 책을 읽는 것도,

매일 아침 눈을 뜨고 햇살을 받고 거닐고 숨쉬고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이어서,

생색내거나 수선부리지 않고,

군데 군데 여백을 만들어 가면서 숨통 트이며 편안하게,

그렇게 그렇게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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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19 23:34   좋아요 0 | URL
1권에서도 누군가 오에 겐자부로처럼 말했었는데ㅎ 역시 작가는 가장 애독자에서 나오는 것인가 봅니다. 제가 궁금한 작가군은 3권에 그나마 많아서 기대돼요 :)

양철나무꾼 2015-04-20 09:35   좋아요 0 | URL
애독자라기보다는 좀 치열한거 같아서,
삶이 다 그렇지만 호락호락한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뭐랄까 좀 아팠어요.
특히 오에 겐자부로는 책을 읽고 작가에 대해 연구를 하는 기간과 글을 쓰는 기간과 나눠 따로 집중 배치하더군요.
그 나이에도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는 자세, 게다가 사회적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작가는 작품으로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접어버렸으면 어쨌을까 싶은것이, 참 배울게 많은 작가더라구요.

웨슬리 2015-04-20 06:30   좋아요 0 | URL
사실 북 리뷰를 읽겠노라 방문하였다가, 김창완 이름 석자에 머물러 그 가벼우면서도 중량감 있는 노랫말에 무덤덤히 심취하였네요. 제 나이대로 살고, 그 외는 의미없음을 생철학화 한 노래. 음악적인 의견을 너머 그 인생살이의 개성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양철나무꾼 2015-04-20 09:4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웨슬리님.
사실 제글은 북 리뷰라기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그때 그때 떠오른 개인적인 느낌을 붙들어두려는 노력에 가까워서 말이죠.

김창완 노래에 대해 적어주신 댓글 속에서 전 귀한 깨달음을 얻어 갖게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꾸벅~(__)

아이리시스 2015-04-23 15:41   좋아요 0 | URL
너무 좋아요 이책은 아직 1권만 읽었는데 더없이 꼼꼼하게 읽게되더라고요. 가볍게 봤는데ㅠㅠ 지난주말 중고샵에서 2권을 봤지만 사진 않았어요 1권도 없으니까. 저는 요즘 보르헤스가 좋은데 2권에 나오더라고요. 뿌리치고 나온다고 흙흙 이별의 아픔을 견디면서 뒤늦게 리뷰라도 읽으며 보내.. 다시 만나러 가겠어요ㅎㅎㅎ

양철나무꾼 2015-04-25 21:16   좋아요 0 | URL
우와~~~~~^^
아이리시스님이다~ㅇ
부비, 부비~^^))((^^
이제 자주 뵐 수 있는 거예요?
헤에~^__________^

아이리시스 2015-04-25 21:19   좋아요 0 | URL
우아 양철나무꾼님이다~^-^ 이제 글도 많이 쓰고 읽으러 올거예요. 좋은 글, 그냥 글도 많이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