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 - 2016 영광군민 한책읽기운동 선정도서 선정, 아침독서 선정, 2013 경남독서한마당 선정 바람그림책 6
이세 히데코 글.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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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잘 모르는 얘기인데,

난 한때 첼로를 했었다.

아니, 잠깐 첼로를 만졌었다.

아니, 그보다... 하고 싶어 했었다...가 정확한 표현이겠다.

대학 신입생 때 우연히 듣게 된 미샤 마이스키에 홀딱 빠져서,

어느날 그때 돈으로 거금 10만원을 주고 연습용 첼로를 사서는

혼자 '낑낑'거리고 '끙끙'거리고 '앵앵~♬'거리다가 끼고 잠들기를 여러날,

드디어 소리가 나와주셨고(어렸을적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조금씩 했었다.)

하늘이 주신 천부적인 자질을 그냥 썪힐 수 없어 전공을 첼로로 바꿔야 하는게 아닌가 잠깐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ㅋ~.

남동생이 계획에도 없던 작곡과에 대학 원서를 써서 걔네 학교와 온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바람에...

한 10개월을 혼자 '낑낑'거리고 '끙끙'거리고 '앵앵~♬'거리던 첼로를, 접었다.

 

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과거의 추억에 연연하거나 오지도 않은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현실에 대략 만족하고 안주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희망사항 되시겠음~--;)

고작 마흔 몇 해를 살아온 인생이고,

첼로를 했던 건 고작 10개월이기 때문에,

돌이켜 감상에 젖는 일 따위는 결코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로든) 영향을 끼치긴 했나 보다.

그때 그렇게 잘라냈거나 가라앉혔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던걸 보면 말이다~--;

 

친구가 '이세 히데코'의 책 몇권과 함께 <천개의 바람, 천개의 첼로>를 '참 좋다'면서 선물로 주었던게 한참 전의 일이다.

선물을 받으면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현하는게 '인지상정'인데...

추억이라도 들추어낼까 봐 그랬는지,

들추어내면 상처를 헤집게 될까 봐 그랬는지,

상처를 헤집어 통증을 들쑤셔낼거라고 생각해서 였는지,

아팠던 경험이 있는 사람 마냥,

책이 칼이라도 되는양 지레 겁먹고 한쪽으로 치워놨었다.

그런데, 이 책은 상처를 헤집는 책이 아니라...치유, 힐링이 되는 책이었다.

세상에, 책이...또, 그림이 힐링이 될 수 있다니 좀 놀라웠다.

 

'이세 히데코'는 좀 독특한 이력을 가진 화가 겸 그림책 작가이다.

1949년 홋가이도 출신으로 그니의 남편은 르포라이터란다.

증학교 졸업 후 도쿄로 상경해서 첼로를 배웠웠고,

도쿄예술대학을 졸업했고,

프랑스에서 1년간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우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재원(才媛)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니는 서른 여덟 살때 눈병으로 오른쪽 시력을 잃는다.

열세 살때 첼로를 배우고,

미술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갈 정도로라면,

집안이 어렵거나 제때 손을 못써 눈병을 고치지 못했을리는 없을텐데 말이다.

오른쪽 시력을 잃은 것이, 그니의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물을 보는 것은 어쩜, 눈이 아니라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첼로의 음을 읽어내고 연주하는 것 또한 어쩜, 눈이 아니고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눈으로 보는게 다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거니까,

아니,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느끼고 온몸으로 통과해 내야...

그려낼 수 있고, 연주할 수 있는 거니까 말이다.

 

요즘 힐링(healing)이라는 말이 대세다.

자기치유, 자체치유라는 뜻을 담고 있는 힐링(healing)이라는 말은 '아프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따위의 말들은 동병상련의 위로는 될지언정, 처방이나 치유 또는 힐링(healing)의 개념은 아니다.

 

자신이 아파보지 않고서는 상대의 아픔을 헤아릴 수 없다.

자신이 직접 겪고, 온몸으로 통과해 내지 않고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앎'이 아니라 단순히 백과사전에 나오는 지식의 나열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니의 책이, 그림과 글이 힐링(healing)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니가 온몸으로 직접 겪고, 온몸으로 직접 통과해 낸 알음 앎의 과정을 담담히 담아내고 표현해 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아이는 내가 연습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곡을 술술 켰다.

힘이 넘쳤지만, 왠지 화를 내는 것 같은 연주였다.

 

"네 첼로 소리는 꼭 강아지 소리 같더라. 앙앙거리는 게."

이런 문장은 어찌보면 쉽게 쓰여진것 같지만,

직접 첼로를 켜보지 않고는,

이렇게 첼로에 감정을 이입하는 첼로 연주자의 감정을 읽어내는게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혼자 열심히 소리를 내려고 하지 않아도 된단다."

할아버지가 조용히 웃으며 옆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느끼면서 연주하면 돼."

 

 

위 문단은 <천개의 바람, 천개의 첼로>라는 이 책 속의 아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 전반에 대입시킬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다시 한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자기 계발'이 아니라 '자기 치유', '자체 치유'라는 뜻을 담고 있는 '힐링(healing)'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지하게 자기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눠보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수도 없고, 맞추어 나가기도 힘들다.

 

다시말해, 내가 아파봐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고,

내 눈이 보이지 않아 봐야,

눈 이외의 다른 감각들을 일깨워 온몸과 마음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 보고, 느끼고, 그려 내고, 연주할 수 있는 것이다.

 

아픔이나 고통 따위는 없으면 좋겠지만,

그런 감정들을 통하여 우리가 한뼘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니...

어쩌겠는가?

삶 또는 자연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듯,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겪어내고 통과해 나가는 수밖에~--;

 

인디언들에게 친구란 말은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한다.

 

나에게 이 책을 권해준 친구는,

나름 아프거나 고통 받아봤을테고...

아마도 이 책을 통하여 치유, 힐링(healing)을 경험하였나 보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건...

내 슬픔이나 아픔 또는 고통을 자기 등에 나눠 함께 짊어져 주려는 그 '마음'이다. 

지휘봉이 움직이고, 조용한 공연장에 천 개의 첼로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진다.

노래하는 소리, 높은 소리, 낮은 소리, 서로 합쳐지는 소리들, 빠르게, 느리게, 부드럽게, 힘차게,

앞으로 나왔다가 뒤에서 받쳐준다. 사람들이 온몸으로 귀를 기울인다. 천 명이 첼로를 켠다.

다가왔다가 물러가는 파도 같은 첼로의 활, 바람이 되어 스치고 지나가는 첼로 소리ㆍㆍㆍㆍㆍㆍ.

치유, 힐링(healing)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였을 때 의미가 있다.

그리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지의 여부는 본인의 경험의 내재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치유 또는 힐링(healing)이 현실을 외면하게 하거나 현실의 도피처라면 '자기계발'이라는 허울 좋은 독이 될 수도 있다. 힐링(healing)의 자리에 '책' 또는 '친구'를 넣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의 치유 또는 힐링(healing)은 단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그 행위만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마냥 상대방을 통하여, 나의 현실 또는 현위치를 제대로 반영하고 투영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겠다.

 

 

 

중언부언, 말이 길었다.

참 좋다.

참 좋은데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일독을 권할 밖에...~--;

 

한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여 오후내내 전화기를 붙잡고 수소문을 한 끝에,

몸이 안 좋다는 얘기를 몇 다리 건너 건너 전해 듣게 되었다.

어찌 어찌 전화번호를 따서,

왜 그렇게 되도록 연락이 없었냐고 다그치자 이 친구 한다는 말이...

내가 편한 친구가 아니라, 이쁜 것만을 보이고 싶은 친구란다.

옆에서 전화 통화 내용을 가만히 듣고 있던 우리 아들이 툭 한마디 던진다.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네. 우린 그런 사이를 경쟁자라고 불러, ㅋ~."

나는 지금 그 친구가 몹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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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3-01-12 23:48   좋아요 0 | URL
글 참 아련하고, 달콤 쌉싸름하고, 아프고 끝내 생각을 많이 하게 하네요.
이 책 저자와 출판사는 양철님께 고마워해야할듯. 쫀득쫀득한 호기심을 발라놓는 글, 즐감합니다.^^*

마녀고양이 2013-01-13 11:59   좋아요 0 | URL
와, 아들의 통찰력으로 인해 댓글을 달게 되네...
그러게, 예쁜 것만 보이고 싶은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경쟁자라고 생각되는걸.
하지만 궁금하여 오후 내내 전화기 수소문을 한 그대는 참 예쁜 사람이네요, 나는 그렇게 못하는 걸. ㅠㅠ

힐링이라... 그냥 뜻 말고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어감이 참 예쁘지 않아?
부드러우면서도 H의 칼칼함이랄까 단아함이랄까 상쾌함이랄까, 난 이 단어 자체가 참 예쁘더라.

같은하늘 2013-01-17 01:25   좋아요 0 | URL
이 책 찜하고 선물은 해봤지만 아직 보지 못했는데...
이 글을 보니 다시 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