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1~2 세트 - 전2권 (리커버 특별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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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구정 연휴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세상에 흠뻑 빠졌습니다. 1000 쪽이 넘는 이 책을 3일 만에 읽었습니다. 개인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저는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주인공이 거주하는 집, 행동 패턴, 듣는 음악, 먹는 음식, 만나는 사람 등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하나의 큰 가상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주인공이 사는 오다와라 교외의 산머리에 있는 집을 머릿속에 만들었고, 주인공이 타고 다녔던 차인 빨간색 푸조 205 해치백과 도요타 코롤라 왜건, 주인공이 마셨던 시바스 리갈 위스키를 구체적으로 상상했습니다.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보내는 일상, 그림 교실을 가야 하는 요일, 주인공이 요리해서 먹는  것도 머릿속에서 기억하고 연상했습니다. 주인공이 즐겨 들었던 슈베르트 현악 4중주 13번 작품 번호 D.804 <로자문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도 스트리밍 서비스 앱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 이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아무 목적 없이 살아가는 주인공은 우연히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그림을 발견한 후 주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연달아 사건(이벤트라고 할지)을 경험합니다. 이 사건들이 서로 어떻게 연계되었는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잘 이해를 못 했습니다. 아마도 좀 더 많은 사유가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연달아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해 끊임없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제가 가장 관심 있었던 것은 주인공의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아내에게 직접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주인공은 무작정 짐을 챙겨서 여행을 떠납니다.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 화도 내지 않은 채로 떠납니다. 2달 동안 자동차로 홋카이도를 떠돌아다닙니다. 일주일 정도 홋카이도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삿포로 시내와 몇 개의 관광지를 제외하고, 지극히 평온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은 어떨까요? 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것도 싫어합니다. 하지만, 책 몇 권 들고, 좋아하는 음악 몇 곡을 챙겨서 무작정 떠나 보고 싶습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며칠 동안 지내고 싶습니다. 언제 돌아올지 계획이 없는, 다시 돌아오고 싶을 때 비로소 돌아오는 여행은 어떨까요? 사람들은 짧게는 4일, 길게는 2주 정도 여행을 갈 때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마치 한 번 여행 간 곳은 두 번 다시 안 간다는 원칙을 정해 놓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구경하고, 사진 찍고, 밥 먹고, 이동하고, 다시 구경하고, 사진 찍고, 밥 먹고, 이동하기를 반복하죠. 물론, 이런 여행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일정과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혼자 떠나는 여행은 과연 어떨지 궁금합니다. 


주인공은 여행을 마치고, 산속에 있는 집에 머무릅니다. 다시 혼자만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책에서 주인공이 산속에서 혼자 생활하는 모습을 단조롭게 그립니다. 집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이유는 일주일에 두 번 그림 교실을 가고, 마켓에서 장을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평상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지만, 밤에 잠이 안 오면 새벽까지 안 자고, 늦잠을 자기도 합니다. 누구 깨워 주는 사람도 없고, 자명종도 없습니다. 오로지 본인의 생각대로 움직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리고, 음악을 듣고 싶으면 듣고, 책을 읽고 싶으면 읽고, 배고프면 요리를 합니다. 그때그때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입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어떨까요? 제 인생에서 이제까지 혼자 살아본 기간은 2 개월 정도입니다.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신나기도 하고, 들뜬 마음도 가졌습니다.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싱글 라이프를 흉내 낼 계획도 세웠습니다. 진정한 고독과 내면의 세계에 직면해야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끝나고 집에 왔을 때의 공허함, 집에 혼자 있는 동안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데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끝내 아무것도 못하고, 쇼파에 앉아 있으면서 느꼈던 무력감 등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고독을 느끼고 싶었지만, 외로움을 느꼈고, 내면의 세계에 직면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의 산속 생활과 가장 큰 차이는 회사를 다니면서 세상과 접촉을 유지하면서 혼자 사느냐입니다. 6개월, 아니 일년 정도 산속에서 혼자 산다면, 어떨까요? 무엇인가를 이룬다는 목적 같은 것 없이 말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몇 줄 정도로 발생한 사건들을 나열하면서 정리 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에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저처럼 책을 읽으면서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상상을 하는 재미를 미리 망치면 안 되니깐요. 이러한 가상의 세계는 책 읽는 사람마다 약간씩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본문 중에서 아래 문장은 특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일상을 조용히 돌아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 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치에 맞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난다.(p.94 ~ p.95)


결국, 이 책의 주제는 가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 중 맨시키라는 인물이 가장 부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맨시키를 부러워하지 않는 주인공도 부럽습니다. 많은 사건 전개를 통해 결국 도착한 곳은 인간다운 삶, 일상의 즐거움,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나게 합니다. 

아직 채 여운이 가시지 않습니다. 가끔 주인공이 혼자 살았던 그곳으로 가서 주인공처럼 생활을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장미의 기사>를 들으면서 시바스 리갈 한 잔을 하면서 말이죠.


2019.2.8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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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19-03-09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곱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꼭 써야겠다는 글이 있었는데, 그리고 오래 어쩌다보니 발효시키는 중인데, 해서 또박또박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타락시아 2019-03-10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감사합니다. 나중에 글 쓰시면 꼭 읽어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