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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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을 읽었다. 300페이지 가량의 책인데 180페이지 가량 읽었으니 읽었다고 하기도 뭐하고 안 읽었다 하기도 뭐하고 읽다 말았다고 하면 뭔가 섭섭하고 들춰봤다고 하면 아깝고 해서 그냥 읽었다,로 퉁치기로 하자. 시몬 베유의 이름을 제대로 본 건 복도훈 평론가의 페이스북에서였다. 한강 소설가의 <소년이 온다>에 대한 감상평을 하면서 시몬 베유의 이름을 언급했다. 당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의 저자 성해영 선생님께 신비주의 강의를 듣고 있던 터라 신비주의 관련 텍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여서 시몬 베유의 이름이 강하게 각인되었다. 이후 불 같이 타오른 만큼 빠르게 꺼져버린 관심으로 인해 한 동안 잊고 지냈다가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김연수 소설가 편에서 시몬 베유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보고 바로 도서관에 가서 <중력과 은총>을 빌렸다.

 

 중력. 존재를 밑으로 끌어당기는 힘. 은총. 신적 세계로의 상승운동, 도약.

 

 누가 소설은 성공담이 아닌 실패담을 다룬다고 했던가. 수많은 실패들 중 실패로운 실패, 실패다운 실패, 실패스러운 실패들을 모아놓은 소설장르답게 소설 제목으로 하강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몰락하는 자(토마스 베른하르트) 

 전락(알베르 카뮈)

 어셔 가의 몰락(애드거 앨런 포)

 낙하하다(황정은)

 추락(존 쿳시)

 

 그런 실패담을 다루는 문학을 몰락 이후의 첫 번째 표정이라 정의한 신형철 평론가의 <몰락의 에티카>까지. 이 매력적인 실패담의 리스트에 빠트릴 수 없는 한 작품을 만났다. 필립 로스의 전락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1. 본능적으로 연기해도 마스터피스였던 사이먼이 연기하는 법을 까먹는다. 연기능력을 상실한다.

2.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다.

3. 자신의 동료 연극배우의 딸과 사귀기 시작한다. 사이먼이 그녀의 외모를 여성적으로 꾸미기 시작한다.

4. 딸은 레즈비언이고, 그녀의 직장상사 격이었던(대학 학장) 여성이 배신감을 느껴 여자의 부모에게 둘의 연애사실을 꼰지른다.

5. 부모는 사이먼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력이 있으며, 나이차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둘 사이에 작은 균열을 낸다.

6. 사이먼과 사귀는 도중에도 여성과 성관계를 즐겼던 딸과 사이먼이 호텔 바에서 만난 여성을 꿰어 성관계를 맺는다.

7. 사이먼이 아이를 가질 계획을 꿈꾸기 시작하고 병원에 다녀온다.

8. 딸이 사이먼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9. 딸이 떠나고, 사이먼은 권총으로 자살한다.

 

 <전락>은 '왕년'에 잘나갔던 배우 사이먼의 전락을 다룬 소설이다. 그가 전락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마력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예술적 직관과 육감이 뛰어난 예술가를 보곤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존의 예술체계와 문법을 벗어난 새로운, 그러니까 '예술적'인 것을 뚝딱 만들어내는 사람을 보면 타고났다, 선천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평가와 함께 '천재적'이란 수식을 붙인다. 예술적 능력이 노력에 비례하지 않고, 재능에 크게 빚지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참고로 에디슨이 말한 1% 영감과 99%의 노력은 노력이 영감보다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영감이 노력보다 중요하다, 1%밖에 안 되지만 이게 나머지 99%를 좌지우지한다는 뜻의 말이라고 한다,고 누군가 설명했다). 하늘이 내린 재능을 어느 날 하늘이 다시 거두어간다면 이 인간이 겪어야 할 삶의 낙차는 지상과 하늘 간 거리보다 작지 않을 것 같다. 천사는 추락하면 지상으로 떨어지지만, 인간은 추락하면 추락한 채로 지상에서 살아야 한다. 천부적 재능이 사이먼에게 지상에서 허구적 높이를 갖게 해줬다면 재능이 사라지면서 그가 누렸던 온갖 명성과 지위는 총체적으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에게 남은 거라곤 쇠약한 육체와 지난 날의 명성이 남긴 배설 같은 돈뿐이었다. 이 돈을 어린 여인에게 쏟아부어 존재에 한복판에 생긴 공동空洞(서울시에서 집중적으로 재배되고 있는)을 메꿔보려 했으나 대부분의 균열이 그렇듯 원상복귀는 불가능했다. 아무리 인간이 날고 기어도 시간의 불가역성 앞에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사이먼의 무기력한 전락을 관찰하면서 새삼스레 떠올렸다.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자신이 망할 것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확실한 전락이 아닌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 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될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스스로의 전락을 향해 다가가는 전락, 아무 것도 할 수 없음만을 할 수 있는 완전한 무능. 자신을 신의 자리로, 혹은 신을 자신의 자리로 끌어내려 '대결'하는 큰 인간/영웅이 아닌 있는지 없는지도 확실치 않은 신에게 버려진 작은 인간. 

 

 필립 로스가 그려낸 전락의 초상. 그는 프랜시스 베이컨의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초상처럼 균열이 없어 보이는 평화로운 일상에서 지옥을 포착해내고, 사실적으로 묘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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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따라 살기 - 유리 로트만과 러시아 문화 현대의 지성 157
김수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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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일과 2일, 양일에 걸쳐 <책에 따라 살기> 강연을 들었다. 12월 1일은 한예종에서 추계특강으로 강연을 했고, 12월 2일은 서강대 근처 문화공간 숨도에서 심보선 시인, 정혜윤pd/작가, 김남시 교수, 박성도 뮤지션과 함께 북콘서트를 했지만 강연보다 오히려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겹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반복을 통해 이해 증진 및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다(6장과 7장에 이 '차이와 반복'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책이 나오자마자 도서관에 신청해 강연 전에 입고된 상태였지만 연체기간이 끝나지 않아 책을 읽지 못한 상태로 강연을 들었는데 오히려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고, '책에 따라 살기'란 주제를 책의 부제에 해당하는 유리 로트만과 러시아 문화의 프리즘을 통과하지 않고 생각해본 다음에 책을 읽어 대화적 독서가 원활히 진행되었다. 물론 순서가 바뀐다고 해서 대화적 독서가 불가능해지는 건 아니지만 10월경 홍대북페스티벌에서 책에서도 인용되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저자 사사키 아타루가 참여한 컨퍼런스에서 '책읽기는 혁명이다' 명제에 꽂혀 '책에 따라 살기'란 명제를 (말하자면) 사사키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조적으로 <책에 따라 살기>/로트만의 관점이 좀 더 흥미롭게 읽히는 효과는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8세기 표트르 대제가 서구 유럽의 문화를 러시아에 갑자기 이식해 러시아를 개조하는 바람에 러시아인들은 자국에서 이방인이 되어야 했다고 한다. 페테르부르크는 그 과격한 실험의 장이었고, 여기서 도스토예프스키와 고골의 인물들이 잉태되었다. 러시아는 서구 기독교의 3원론적 세계관(천국-연옥-지옥)과 달리 연옥이 없는 2원론적 세계관에 따라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는 데 있어 과거와의 단절로 미래로 곧장 나아가는 극단적이고 과격한 면모를 보여줬다. 책의 제목이 된 2005년에 발표된 논문의 부제는 러시아적 문화 유형의 매혹과 위험인데 이 급진성/과격함에 양가적 면모(매혹과 위험)을 보여준다. 

 러시아에서 문학은 문학 이상의 무엇이라고 한다. 정치, 법 등 사회의 다른 분야의 몫을 문학이 모두 감당하는 기형적 면모는 표트르 대제의 개혁이라고 하는 역사적 맥락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러시아의 비평가 벨린스키는 푸시킨을 러시아의 모든 것(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는데), 이런 느낌의 찬사를 하기도 했다. 푸시킨은 결투에 휘말려 최후를 맞았는데 김수환 교수님에 따르면 푸시킨의 인기가 너무 높아진 데 위협을 느낀 황제가 술수를 써 푸시킨을 처리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또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서 모교에서 교양강의를 했을 때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는데 인상 깊어서 옮겨적는다.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을 하고 있는 철학과 학생이 김수환 교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교수님, 러시아 문학,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을 읽다 보면 여기에 니체가 있고, 쇼펜하우어가 있고 다 있는데, 제가 러시아 철학자 이름은 한 번도 못 들어본 것 같습니다. 러시아에는 철학자가 없는 건가요?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 대답했다고 한다) 그건 말이지. 러시아는 철학도 문학으로 하는 나라라서 그래. 

 즉흥적인 답변이었지만 나중에 곰곰 생각해봐도 이것보다 적절한 답변이 없을 정도로 탁월한 답변이었다는 김수환 교수님의 자평이 있었다는 후문... 

 

 '책에 따라 살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풀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현실적인 삶이 있고 책에서 이상적인 삶을 그린다. 우리는 현실을 이상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반대다. 이상, 책이 중심이다. 러시아인은 이상을 현실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아니면 이렇게 표현하는 건 어떨까? 현실이어야 하는 현실에 맞춰 현실인 현실을 개혁한다고. 러시아 정신의 정언명령과 당위는 신이 아닌 책/문학에서 비롯되었다. 나도 이 러시아적 문화 유형의 매혹과 위험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유용성/교환의 논리로 책읽기를 보기 시작하면 당장 책을 집어치우고 싶은 생각까지 들지 않지만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현실주의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지상에서 한 두 발짝 떨어져 공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사랑하는 스승은 '중요한 것은 시가 불모의 세계에 대해 유용한 결과물을 내놓는 식으로 세상과 거짓 화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불모의 세계가 지닌 불모성을 '무용한' 예술적 형식으로 드러내는 정직한 시적 자의식을 강인하게 견지하는 일이다.'라고 적은 바 있으나 그게 문자 그대로 실현하기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정직한 시적 자의식을 강인하게 견지하는 일' 요즘 주문처럼 외우면서 살지만 이러다 진짜 인생 X되는 거 아닌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인 건 아닌가 두려움과 불안이 공포의 얼굴로 육박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 현실주의적 노선으로 선회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에 하루하루 좀 더 노력하는 것말곤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반대로 이론 없는 실천처럼 세계의 복잡한 구조에 대한 탐구 없이 '단순한 것이 명쾌하고 좋다'는 태도로 눈에 보이는 가시적 효과에 천착하는 데 현혹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실천이 필요한 순간에 뒤로 꽁무니를 빼거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우유부단하게 중립을 지키는 소극적/회피적 태도가 아니라  자기확신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인 옳음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이 부분과 관련해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을 드렸다(12월 1일에 엄청난 열기로 질문공세가 이어져 질문의 기회를 잡지 못했고, 2일에 겨우 발언권을 얻을 수 있었다). 질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론과 실천을 하나인 건 알겠는데 책상 밖을 벗어나지 않고 이론적 실천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학습한다면 실존적 자아가 실천보다 이론의 길을 자연히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이론과 실천이 하나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실천의 우위를 염두에 두고 한 질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어쨌든 우문에 현답을 받아 큰 도움이 되었다.

 답변의 골자는 지하실에 처박혀 있던 주인공에게('지하로부터의 수기') 도끼를 쥐어주기까지('죄와 벌')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지하실에서 고민하고 사색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도끼를 쥐어주고 찍어버리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었을 거라고.

 

 2부 영화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지만 개인적으로 하이라이트는 3부 6장과 7장이었다. 로트만과 바흐친. 시와 소설... 대화. 심보선 시인이 <눈앞에 없는 사람>에 수록된 <the humor of exclusion>의 탄생비화(?)에 대해 설명해주시면서 '대화는 존재에 선행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사사키 아타루 식으로 표현하면 그 말을 '들어버린 것입니다'). 로트만의 기호계, 사유하는 구조, 김수환 선생님의 다른 저작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들끓었다. 평소 막연하게 하던 생각이 이론의 언어로 논리적으로 정리될 때의 쾌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어떤 이론의 '인증'을 받지 않은 잡생각의 잡함 - 이를 테면 타자성을 극대화해 나만의 독창적 사유로 발전시킬 수 있는 사유의 근력과 근지구력을 향상시키는 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에 따라 살기. 후속작이 빨리 나오길 응원해본다. 대화의 수행적 성격. 어떤 결정적 균열을 포착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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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사용법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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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편지라 그런지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사진을 찍었어. 네가 유럽여행을 하고 있을 땐 네가 어디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상상하기 시작하면 저절로 글이 써졌는데 동안거에 들어갔다는 네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나로선 상상이 잘 안 돼서 그런 가봐. 런던, 파리, 부다페스트에서 배낭여행하는 여름보다 한국 사찰에서 안거하는 겨울이 내겐 더 현실감이 없는 계절이라서 너와 나 사이에 불가능한 시차가 놓인 건가봐.

 

 


 

 

 

 

우리 홍대에서 가로등색이 왜 주황색인지 얘기했던 거 기억나? 그때 난 백열등보다 경제적이지 않을까 하는 추론을 했고 넌 고개를 끄덕여줬어.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 김호영 선생님의 조르주 페렉 특강(11.17)을 들어간 한예종 건물 5층에서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밝히는 가로등을 내려다보고 그날의 내 말에 왠지 모르게 부끄러움을 느꼈어. 빈곤한 상상력과 메마른 감성을 들킨 기분이 들었거든. 난 가로등을 기다림의 색이라 불렀고, 명명의 이유를 묻는 네게 제대로 답하지 못했어. 나무탁자 위에 놓인 비닐봉지와 가로등처럼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들, 일렬로 늘어선 자동차들 옆을 지나가는 한 남자, 내 시야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횡단하는 비행기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봤던 1분여의 시간, 이 모두를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그날 상수동의 이리카페에서 너의 수행공동체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에 실릴 네 글을 봐주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원근법의 가상의 깊이와 입체파에 대해 을 풀고, 이문재 시인의 시를 보여줬던 걸로 기억해. 2년 전 이곳에서 <자고 있어 곁이니까> 북콘서트로 그때 정말 빠져 있었던 김경주 시인을 만났고, 그날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지인들과 이야기하는 김경주 시인을 발견하고 네게 저 분이 <내 워크맨 속 갠지스>를 쓴 그분이야알려줬던 기억이 나. 그리고 그때 네가 읽은 시가 이거였지, 아마.

  

 

 

 

<사랑이 나가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손을 잡았다 놓친 손

빈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랑이 나간 것이다.

조금 전까지는 어제였는데

내일로 넘어가버렸다.

 

 

 

사랑을 놓친 손은

갑자기 잡을 것이 없어졌다.

하나의 손잡이가 사라지자

방안의 모든 손잡이들이 아득해졌다.

캄캄한 새벽이 하애졌다.

 

 

 

눈이 하지 못한

입이 내놓지 못한 말

마음이 다가가지 못한 말들

다 하지 못해 손은 떨고 있다.

예감보다 더 빨랐던 손이

사랑을 잃고 떨리고 있다

 

 

 

사랑은 손으로 왔다.

손으로 손을 찾았던 사람

손으로 손을 기다렸던 사람

손은 손부터 부여잡았다.

 

 

 

사랑은 눈이 아니다.

가슴이 아니다.

사랑은 손이다.

손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아직 손을 잡지 않았다면>

 

 

 

아직 손을 잡지 않았다면

아직 어린 시절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다면

그대는 아직 그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대가 싫어하는 음식이 뭔지 모른다면

지금까지 자기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면

그이는 아직 그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날카로운 첫 키스가 첫 단추가 아니라

첫 키스는 서툰 기습 같은 것이다.

사랑은 손에서 시작한다.

사랑은 손이 하는 것이다.

손이 손을 잡았다면

손이 손안에서 편안해했다면

그리하여 손이 손에게 힘을 주었다면

사랑이 두 사람 사이에서

두 사람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두 손은 서로의 기억을 가지려 한다.

열 개의 손톱이 모두 그이의 얼굴로 보일 때

손금에서 꽃 피고 별 뜨고 강물이 흐를 때

그리하여 그대가 알고 있는 그이의 이야기와

그이가 알고 있는 그대의 이야기가 같아질 때

그때부터 둘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헤어질 수 있는 자격은 그때서야 생기는 것이다.

먼 훗날, 아주 먼 곳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렇다고 후회하지도 않으며

추억할 수 있는 권한은 그때서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네가 사랑을 손으로 시작한다고 해서 이 시를 보여주고 싶었어. 영혼이 닮은 사람과 느낌이 통하는 일은 황홀한 경험이니까. 그리고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네게 한 시인이 걸어온 구도의 내력을 잠시나마 소개해 응원해주고 싶었어. “외로울 때면 양치질을 했다는/젊은 스님이 생각났다가 내 삶 안으로 들어온 건 네 모습이 겹쳤기 때문일까? 물론 너도 아직 수행자가 너의 길인지 확신하지 못해 다른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지만 흔들림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네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그동안은 네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함께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비포 선라이즈, 김일두>), 함께 좋아하게 된 것을 발명하기도 하고(<나의 자랑 이랑>). 반대로 내 얘기만 해서 그런지 너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난 많이 무지한 것 같아. 그래도 올해 내가 사귄 최고의 친구를 소개해주고 싶은데 괜찮겠지?

 

  그는 아까 잠깐 언급한 프랑스의 소설가 조르주 페렉이야. 사실 페렉의 <잠자는 남자>를 예전에 사놓고 읽지 않았는데 올 9월에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실험문학 집단 울리포 회원인 미국의 소설가 다니엘 레빈 베커와 울리포프레스를 운영한 적 있는 한유주 소설가가 울리포와 페렉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서 그때 관심에 불이 붙었어. 모음 e만 쓴 소설과 모음e를 빼고 쓴 소설의 작가라니! 그의 정신세계를 탐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마침 김호영 선생님의 페렉 특강소식을 알게 되면서 <잠자는 남자>, <인생사용법>, <W 혹은 유년의 기억>, <겨울여행/어제여행>,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을 차례로 읽었어. 처음엔 똑똑함을 바탕으로 구성을 복잡하게 하고, 현학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일 거라 예상했는데 아니더라고. 오히려 마음이 아주 따뜻한 사람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었어. 페렉은 사실 유대인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양친을 모두 잃은 경험을 했어. 그래서 <잠자는 남자> 같은 작품을 보면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주는 않는 이방인의 정서, 절대적 고독이 느껴지는데 자서전적 성격의 <W 또는 유년의 기억>을 쓰면서부터 내면의 큰 공허를 거의 극복해냈다고 해. 상처를 세상에 내보이고 상처 입은 그 자체의 자신을 긍정함으로써 어두운 그늘에서 환한 빛의 세계로 간 거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페렉의 대표작이기도 한 <인생사용법>인데 지상 8, 지하 2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아니 차라리 각 방과 방 안에 있는 사물들, 건물 자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인생사용법>의 주요 서사는 바틀부스라는 인물이 세계일주를 하면서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퍼즐장인 윙클레가 퍼즐을 만들고, 그 퍼즐을 바틀부스가 죽을 때까지 맞춰보지만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인데, 난 바틀부스와 윙클레도 좋았지만 내 아이가 아닌 그의 아기를 지워버리기 위해 당신을 도와야했던 그 잔혹한 아이러니. 단 몇 시간 동안이지만 우리가 남편과 아내 행세를 했던, 하지만 당신이 알타몽 부인이 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내가 가르델 씨가 되어 부부 행세를 했던 그 잔혹한 아이러니에 대해서 생각했던 시릴 알타몽의 인생과 르브랑 샤스텔 교수에게 원고를 쉼표 하나까지 베껴몇 년 간의 노고와 공적을 빼앗긴 베르나르 댕트빌 의사의 인생에 특히 빠져들어 읽었던 기억이 나. 너는 누구의 이야기에 매혹될지 궁금하네(너는 인생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어?)

 

  <인생사용법>이 세상이 나오기까지 십 년 정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해. 그 엄청난 관찰과 노력의 결과물이 인생사용법 작가노트로 공개됐다고 해. 독자들을 작가노트를 통해 <인생사용법>을 쓰는 데 사용된 규칙들을 찾아 읽으면서 게임공략집이나 문제해설집을 읽는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싶어. 하지만 그 지적 추리가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란 점에서 독자들은 인상 짓는 게 아닌 미소를 머금고 페렉과 대화했을 거야.

 

 

  

 

  

이 그림들이 뭔가 싶지?(^^) 인생사용법은 99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돼 있는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밑에서 위로 1장씩 넘어가는 게 아니라 체스의 행마법을 이용해 별자리 같은 궤적에 따라 장을 진행하고 각 장마다 라틴제곱 사각형 도표를 이용해 어떤 색깔을 쓸지, 어떤 작가를 인용할지를 계산했다고 해. 참 일부러 생고생하는 이상한 작가지?(^^) 근데 이 점이 페렉의 사랑스러운 점이라고 느껴. 우리 일상에 너무 흔하게 존재하거나’ ‘너무 친숙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낯설게, 다시 말하면 새롭게 만나게 해주기 위해 페렉이 일부러 이런 것 같아. 그리고 현대사회에서는 경쟁이 치열하다 못해 과열됐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내라는 명령이 강하게 작용하고, 게으름을 경멸하는 분위기가 팽배한데 페렉은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것들과 쓸데없어 보이는 것에 천착하는데 그게 은근히 해방감을 주는 것 같아. 교환논리에서 한 발짝 비껴서 삶의 잉여적 부분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아름답게 느껴지거든. 우리가 처음 만난 해남 미황사의 청년출가학교에서도 그런 불교적 가르침을 많이 받았던 것 같은데 내 경우엔 일상에 매몰돼 다 잊고 사는 것 같아.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눈이 멀어 일상의 사물들을 얼굴 없고 이름 없는 묘지들로 만들어버린 눈 먼 자의 삶’.

 

페렉은 이를 일상적 실명과 일상적 폭력이란 개념으로 설명하더라고. “‘일상적 실명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을 뜻함. 페렉이 보기에, 일상적 실명의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일상이 우리에게 가하는 폭력, 즉 우리로부터 지각과 의식을 빼앗아가는 일상의 폭력이다. 현대 사회에서 일상의 폭력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페렉은 일상의 폭력의 근저에는 바로 유사성의 폭력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았다. ‘유행이 그 대표적인 사례. 유행과 같은 유사성의 폭력은 우리를 일정한 유행, 사회적 함의, 집단적 경멸에의 종속으로 이끈다. 또한 유행은 우리의 일상적 행위들의 대부분에 개입하면서 개인적인 것, 독창적인 것의 상대적인 가치 저하를 가져오고, 그 가치들의 화석화를 유도한다. 즉 유행은 존재들 사이의 또는 사물들의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들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키거나 사라지게 만드는데, 이것은 곧 일반화의 폭력이자 표준화의 폭력에 다름 아니다.”(김호영, 조르주 페렉과 일상의 글쓰기 - 사물에서 삶으로)

 

이에 맞서 페렉은 사물에 대한 세세한 묘사와 명명을 통해 일상적 실명과 폭력으로부터 삶의 색체를 되찾아온다고 생각해. 밥 한 숟갈에서 살아온 삶에서 살아갈 삶으로 이행하는 순간을 포착하는 김훈 소설가의 시선처럼 작고 사소한 것 본연의 형()과 색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놀이하는 인간페렉에게 허무에 맞서 의미에 천착하는 게 아니라 무의미를 온전히 껴안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사랑을 발명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 ‘의미의 질병이 점점 심해져 일상에서 여유를 잃어버렸던 내게 제대로 노는 법을 가르쳐준 고마운 친구 페렉. 김호영 선생님의 글을 옮길게.

 

일상-하부의 것(infra-ordinaire) : '우리 일상에 너무 흔하게 존재하는 것, 너무 친숙해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뜻함. 페렉의 글쓰기는 친숙하지만 낯선 일상의 사물들과 공간들을 묘사하기에 주력한다. 너무나 평범하고 흔해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버렸거나 잃어버린 일상의 요소들을 찾아 기술하기. 페렉이 즐겨 시도했던 일상의 사물들에 대한 집요한 열거와 세밀한 묘사는 평소 경시되던 사물들의 의미와 뜻밖의 공간들을 발견하게 해준다. 즉 우리의 시선의 무의식의 지대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필연성을 드러내줌.”(김호영, 조르주 페렉과 일상의 글쓰기 - 사물에서 삶으로)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내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이 어떤 삶인지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지만 서두르지 않고 싶어. 느리지만 꾸준히 성실하게 걷다 보면 걸어온 길로 말미암아 걸어갈 길이 자연히 열리지 않을까 믿고 싶어. 이 글이 네가 페렉이란 퍼즐을 푸는 데 길잡이가 되길 기원하며 이만 줄일게. 총총.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우리는 아마도 퍼즐의 최후 진리라 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무엇인가를 추론하게 될 것이다. 퍼즐이 지니는 외적인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퍼즐은 혼자 하는 놀이가 아니다. 퍼즐을 맞추는 이가 수행하는 각각의 행위는 퍼즐을 제작한 이가 이미 행한 행위다. 그가 몇 번이고 손에 쥐어보면서 검토하고 어루만지는 각각의 조각, 그가 시험하고 또 시험하는 각각의 조합, 각각의 모색, 각각의 직관, 각각의 희망, 각각의 절망은 타인에 의해 이미 결정되고 계산되고 연구되었던 것들이다.“(인생사용법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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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1~9 완간 박스 세트 - 전9권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미생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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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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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들의 병기창 - 발터 벤야민의 문제의식
문광훈 지음 / 한길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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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을 읽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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