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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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로의 여행>이라는 첫 장에 뭄바이 역에서 만난 젊은 쿨리(짐꾼)와의 에피소드는 눈을 부비게 만들었다. <<인도방랑>>의 처음 100여 페이지와 <<광대 샬리마르>>의 후반 100여 페이지를 동일한 시기에 읽었는데, 기차로 달려가 환상적으로 객차 안으로 들어가 후지와라 신야에게 최고의 자리를 맡아 준 젊은 쿨리의 모습에서 바로 광대 샬리마르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여 두 번째 에피소드인 <잘 있거라, 카시미르>에서는 처음에 인도 뉴델리에 도착한 후 첫 번째 여행목적지로 카시미르를 선택한 얘기가 소개되는데, 카시미르.. 카슈미르. 아니, <<광대 샬리마르>>의 본향(本鄕)이잖아!  


놀라운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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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샬리마르
살만 루슈디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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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자 마자 샀고 읽었다. 450여 페이지까지.
그리고는 5~6개월이 지나 그 다음부터 623페이지까지 그제서야 마무리를 지었다.

루슈디의 스토리텔링은 놀라웠다. 꽤 긴 시간을 훌쩍 뛰어 넘었는데도 다시 책을 들고 한 두 페이지를 읽자 전에 읽었던 것들이 모두 마치 어제 읽었던 것처럼 생생히 떠올랐다. 이런 건 드문 일인데…

멈춘 것은 소설 탓이 아니었다. 누구 말처럼 두 어깨에 곰 몇 마리가 걸터앉은 듯 바쁜 업무 때문에 이 책을 더 읽어 나갈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은 소파에 반쯤 누워 읽을만한 그런 게 아니라 단단한 나무의자에 앉아 허리를 곧추 세우고 읽어야 할 것 같은 종류의 소설이다.

화자의 목소리가 처음엔 걸렸다. 비평하는 목소리. 약간은 판사 같은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루슈디의 자의식의 과잉으로 보여 거북했다. 아, 신문기자의 기사 같기도 하다.

카슈미르의 파치감, 부니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기서부터다. 이 소설이 마음에 들기 시작한 것은. 마치 마법의 마을처럼, 어렸을 적 외할머니네 동네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하지만, 노스탤지어는 짧았다. 곧바로 들이닥치는 시대의 광폭함. 미친 듯 굴러가는 광란의 바람이 이 카슈미르의 촌까지 덮쳐버린다. 황폐화되는 파치감은 곧바로 폐기되어 버려지는 인간성의 한 예시가 되어버린다.

이 마을, 파치감의 운명과 똑같이 부니, 샬리마르, 막스 그리고 카슈미라는 스러져간다. 시대의 키워드는 전쟁, 살육, 분열, 욕망, 민족, 이데올로기였고 그 미친 폭풍우는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모든 이에게 각자의 어리석음만을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미친 시대였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그리고 우리는.

끝나지 않는 싸움으로 막을 내리는 작품의 결말이 모든 것들을 암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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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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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에서 시작해 몬태나를 거쳐 캘리포니아 바닷가까지 이르는 길.
로드 노블이라고 말할 수 있을 소설.

길은 방향이고 모터사이클의 엔진은 힘이고 크기.
벡터는 몰입을 낳는다. 선(禪)이라 불러도 상관없겠지.

그 길 위에서 달리고 달리며, 주인공은 과거의 자신인 파이드로스의 이론을 끄집어 내어 가치(質)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아니, 야외강의.

이성의 절대 우월주의로는 풀지 못할 것
그럼에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것 중 하나. 이성을, 우리가 어떻게 확장해야 하는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길 위에서
이론을 강의해 나간다.

그가 말한 인식의 순간의 맨 앞.
저기 언젠가 들었던 박상륭의 心所의 시간과 맞닿는 그것.

인식의 문제는 다만 자연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윤리와, 덕과, 기와, 질과, 선과, 가치와, 아레테와,, 뭐라고 말하든 그것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진(眞)은 구조를 위해 봉사하고, 선(善)은 낱개로서의 인간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분리는 분리를 낳을 뿐,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모터사이클 관리법을 매뉴얼만으로는 배울 수 없다는 것.

자기계발서 중 왕이라 할 수 있는 <<7가지 습관>>의 맨 앞. Be Proactive 라는 한 줄.
이 한 줄조차 관련된다.
사건이 중요하다. 객관과 주관이 만나는 그 지점.

삶은 그것일 뿐, 그것 외엔 그 밖의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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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독서 -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여행자의 독서 1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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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누군가가 가는 여행지마다 의식해서 마치 동물이 자기 영역을 표시하듯 오줌 누고 온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기억이 난다. 책과 여행지. 이 두 가지의 관계 속에서 어떤 것이 어떤 것에 영역을 표시할 지는 알 수 없으나, 나도 수시로 책에서 여행지를 여행지에서 책을 읽고 돌아다니길 바랬다. 여행을 자주 못 가 지금은 비록 책에서 여행지를 꿈꾸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낯선 장소에서.. 그 장소와 어울리는 또는 어울리지 않아도.. 어쨌든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비엔나에서 마시면 뭔가 다른 걸 느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읽고 난 책을 내용이 아니라 장소로 기억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은 무엇보다 옳게 내게 다가온 것일지도 모른다.


붉은 색 책 표지, 세로로 쓴 제목, 치마처럼 허리를 두른 보랏빛과 청색이 묘한 사진 띠지, 날씬한 가로 세로 비율, 그리고 한 아름에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책의 부피.. 섹시한 책의 자태.

저자의 독서 취향이나 선택한 여행지 모두 나와 비슷해 즐겁게 읽어 나갔다. 읽었던 소설의 스토리에 대한 너무 많은 미리나름만 피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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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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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리자면 <<칼의 노래>>가 이 소설에서 작가가 ‘기름진 꽃잎이 열리면 바로 떨어져버리는 동시성, 말하자면 절정 안에 이미 추락을 간직하고 있는 그 마주 당기는 무게의 균형과 그 운동태의 긴장을 데생으로 표현하는 일’ 이라고 표현한 말 중에서 그 ‘운동태의 긴장’에 무게중심이 쏠린 작품이었다면, <<내 젊은 날의 숲>>은 ‘균형’에 돌 한 덩어리를 더 얹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에서는 아주 빈번히 반복적으로 질리도록 독자들이 알아채지 못할까 봐서 노심초사하듯 과거와 현재, 광각과 접사가, 안과 밖이, 동물성과 식물성.. 등등이 교차하고 있는데, 은유로서뿐만 아니라 문장의 길이(데이터 量)에서 조차 균형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작품 중,

거기서 북쪽으로 방향을 꺾자, 아득히 흐리고 빈 공간이 펼쳐졌다. 자동차가 단 한 번 우회전함으로써 그렇게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은 막막한 세상이 전개될 수 있었다.

라는 문장에서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우회전’을 했고, 암시에 걸려 최면에 빠진 사람처럼 그녀의 ‘민통선 안 수목원’으로 접어 들었다. 이 부분이 몹시 마음에 든다. 별 문장도 아닌데, 그 ‘단 한 번 우회전’이라는 말이 나만의 성지(聖地)로 들어가게 하는 열쇠어가 된 기분이 든다.

<<내 젊은 날의 숲>>이라는 제목에서도 느끼듯 왠지 회상조여서 맥이 좀 빠진 감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그 ‘균형’은, 치유와 자생으로 가는 여정은, 즐거웠다.

다만, 1인칭 주인공인 ‘조연주’가 여자인데, 목소리는 아무리 봐도 나이 든 남자의 목소리라고 느껴지는 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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