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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2016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ㅣ 브런치 시리즈 2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5년 9월
평점 :
우리의 역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서양의 역사 혹은 중국, 일본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더 많이 읽는구나 하는 생각이 가끔 죄스러움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죄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역사책들을 들춰보게 되는 까닭은 '역사' 고유의 공통성을 발견하는 기쁨이 작지 않기 때문이며 타국의 역사 혹은 우리와 무관한 세계의 흐름이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언제나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첫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단추를 전부 풀어서 다시 끼우기 시작하지 않는 한 단추와 단추 구멍은 짝을 이루지 못한다. 설사 첫단추를 잘 끼웠다고 해도 중간에 하나나 둘쯤 잘못 끼운다면 마찬가지로 짝이 맞지 않게 된다. 역사는 말그대로 지나간 시간의 기록이다. 또한 사실인 동시에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모호한 것이기도 하다. 때로는 사실과 전혀 다른 거짓이 역사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역사를 대할 때 정말 중요해지는 것이 균형 감각이 아닐까 한다.
개인 혹은 집단이라고 해도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균형이라고 적기는 했지만 그것 역시 태생적으로 한계를 품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균형 감각이 더 중요해진다. 역사가는 때로는 누구보다도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역사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E. H. 카의 말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느 나라의 역사도 한 권의 책에 담기에는 그 지면이 너무나 부족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세계사를 한 권에 담는다는 것은 무수한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적인 역사가가 아닌 이들의 역사서는 그 신뢰성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전문가가 비전문가보다 낫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세계사 브런치>의 저자 정시몬은 자칭 '간서치'다. 책을 읽는 것을 통해, 당연히 뒤에 따라올 사유를 통해 자신만의 관점과 기준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확립한 사람처럼 보인다.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성과물들을 내놓는 독서가들에게는 늘 감탄하게 된다. 이미 읽어본 경험이 있기에 뒤에 읽게 될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수월하고 편안하게 느껴질 저작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구성도 흥미롭다. 지금까지 읽었던 서양사에 대한 책들은 대부분이 번역서였다. 번역서를 내면서 굳이 원전의 본문을 영어나 한자, 일본어로도 적어두는 경우는 많지 않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번역을 미심쩍어하는 이들에게 확인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번역된 문장의 느낌과 원서의 느낌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며,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표현을 오히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작은 역시 고대 문명부터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인도를 두루 순회한다. 고대 문명의 특징은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이 아닌 서양에서 동양 혹은 동방이라 부르는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서양의 문명이 우월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늘 날카로운 일침을 가하는 '사실'이 바로 고대 문명의 발상지다.
그러다 그리스와 로마가 세계사의 주무대가 된다. 물론 그리스와 로마가 주목 받게 된 것은 현재 세계 정세의 주도권이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에 있다는 시각에서 볼 때다.
고대 문명과 그리스, 로마를 돌아 저자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다. 현재 중국의 위상은 주목할 수밖에 없을만큼의 위치까지 떠올랐다.
중국을 돌아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프랑스와 영국, 아메리카의 혁명까지를 훑어 내려오면 거의 지금에 이르게 된다.
고대부터 근대까지를 돌아보며 여러 원전을 담고 그 이야기를 들려준 저자는 현대에 주목할만한 역사서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고대 문명이나 그리스, 로마의 이야기. 거기에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가볍게 읽어내려왔다. 고민도 없었고, 기억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그러다 현대의 역사서 가운데 인도의 초대 총리인 네루가 썼다는 『세계사 편력』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책을 읽은 보람을 비로소 찾았다고 생각했다. 읽어볼만한 책을 소개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브런치'란 가벼운 식사다. 이 책에서 체계적이고 자세한 역사의 기술을 기대한다면 애초에 번짓수를 잘못 찾아온 셈이니 다른 책을 찾아 읽기를 권한다. 가볍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롭다는 의미다. 앞에서부터 읽어도 좋고, 뒤에서부터 읽어도 좋은 책이기도 하다.
앞에서부터든 뒤에서부터든 상관없이 관심 있는 부분만 훑어가며 원전을 찾아 읽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테니 취향껏 취할 일이겠다.
무겁지 않게, 익숙한 말로 읽는 세계사 책은 분명 신선했다. 하지만 읽는 동안 어떤 것 하나가 계속 마음에 걸려서 풀리지 않는 기분을 느꼈다. 서문에서 저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고 적었다. 적어도 내게 이 말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 상고사》에 적은 말로 기억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처칠이 한 말이라고도 하는 말이다. 이 말이 마음에 걸렸던 건 다른 게 아니라 저자가 읽었을 무수한 역사서 가운데 '조선 상고사'는 들어있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해도 사실 억측에 가까운 뉘앙스의 문제이기에 고작 "좋으나 싫으나 중국의 변방국으로서 삶과 문화를 일궈 온 한국을 비롯한"이라는 표현때문에 그랬다는 식의 말이 얼마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스스로도 의문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가 언제나 중국의 '변방국의 위치'에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비록 지금은 작고 작은데다 그나마도 갈라져 있지만 하나의 도시국가가 유럽을 지배하기도 했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상상할 수 없다고는 못하겠다.
역사에 크게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 작다고 과거에도 작았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에는 늘 의문을 품고 있다. 서양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우월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집트나 인도의 유물들이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미국의 어디쯤에 있다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적었지만 그것은 약탈이고 도둑질이지 유산의 보호와 같은 허울 좋은 명분으로 온전히 정당화될 수도 없다.
이 책은 상당부분 대세, 혹은 기정사실이라는 측면에서 쓰여졌다고 본다. 그런 시점 혹은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론을 내놓을 생각은 없다. 분명 그것이 현재의 정세이고 사실이기에 현재의 관점에서 봤을 때 틀렸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고백해야겠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불편함이 하나 더 있었는데, 우리말로 쓰였기에 더 이해하기 수월해야 할 내용이 종종 더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다양한 어휘를 풍부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방대한 독서의 증거이고, 나름의 체계와 이론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사고의 결과물이다. 그 점은 존경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틴에이저 시절'과 같은 표현은 사실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저자인 정시몬 씨는 '곤두박질'과 '곤두박이'를 구분해서 쓸 정도의 국어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솔직히 나로서는 사전을 찾아보기 전까지 두 표현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시쳇말부터 외래에까지 때로는 외계어까지 등장하는 역사서가 낯설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끝내 적응하지 못했음을 토로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외국인이 쓴 책들보다 더 외국인이 쓴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자잘하고 사소한 것들을 떠나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원전들은 한 번씩은 읽어보고 싶은 것들이다. 잘 쓴 세계사 책을 볼 때마다 우리 역사의 공백을 더 깊이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하게 읽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