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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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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투사이신 스테판 에셀님께서는 이 책이 얼마간 잘 팔린 이유에 저렴한 책값이라는 것도 들어있을 것이라 적고 있지만

난 아니오. 표지를 가득 메운 분노하라라는 제목에 끌린 것 뿐이오!

 

간단히고 뭐고 없이 본문은 20쪽 분량의 짧은 글이다.

 그리고 본문은 내겐 조금 난해했다.

 나치? 마르크스? 금융가? 프랑스.

 음, 알듯 말듯하니 간질간질 감질나게 하다가 끝이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분노하라!'라는 본문보다 메일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인터뷰가 실린 부분이었다.

 이 부분에서 본문의 난해함을 찬찬히 풀어준다.

 궁금증과 답답증을 앞에서 일게하고 나중에 찬찬히 이야기해주는 형태에 약이 올라 '분노'할 뻔 했으나(후훗)

 90이 넘는 나이까지 불의와 폭력에 대해 '분노하기'를 멈추지 않는 진정한 투사다운 면모에 존경하는 마음을 가질 밖에.

 

처음에 '분노하라'는 제목이나 '투사'라는 표현때문에 '스테판 에셀'님을 급진적이고 격렬한 투쟁가로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평화를 사랑하고 비폭력을 주장하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투사라는 것을 아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 사회적으로 경악과 분노를 일으키고 있는 청소년들의 자살 사건들. 

 그들을 자살로 몰아갔던 것은 괴롭힘 뿐 아니라 무관심이기도 했다.

 불의에 분노할 줄 알고, 부정에 목소리를 높이며, 폭력에 반대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

 

당장에 세계적 이슈들에 목소리를 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맞닥드리는 '분노'해야 할 것들에 순수하게 '분노'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정말 간절하다.

 참을 것을 강요받았고, 눈을 돌려 외면할 것을 배웠으며, 귀를 막고 입을 닫아 '나'만을 위하는 것을 익히기도 했다.

 강자들의 논리에 반하는 것은 언제나 '무모'한 행위였고 그것은 세계적 규모든 동네 규모든 클래스 규모든 진리나 다름 없었다.

 

지난해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시위자'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분위기다. 추세다.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 물결이다.

 우리는 정당한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표현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짧은 책이었지만 그 속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분노하라'고 하지만 결코 폭력을 옹호하지도 부추기지도 않는다. 

 진정 분노해야 할 것,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던 시간을 갖게해준 책이었다.

 

 

격분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납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희망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경우에, 격분 탓으로 그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31쪽 (격분은 폭력을 부른다.)

 

하지만 알아두십시오!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다음에 타인들의 폭력성향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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