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의 책 - 독립출판의 왕도
김봉철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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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으면 같이 검어질까 걱정되는, 하지만 유년시절의 어떤 경험과 기억들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 같아 안쓰러웠던, 어머님께는 조금만 더 잘하자 말하고 싶은 사람. 김봉철 작가의 에세이 <숨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이하 ‘숨싶사’)>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다.

책 <작은 나의 책>은 김봉철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다. 첫 에세이가 올해 1월 출판이었는데, 반년만에 두 번째 책이라니. 인터넷에서 검색된 작가 김봉철은 책 속의 인물과 다른 듯 했다. 독립출판의 거장이고, 작가들의 작가라 했다. 진짜? 정말?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믿을 수 밖에. 조금의 의심이 남아있었지만, 첫 책과 이번 두 번째 책의 짧은 출간 시기를 보니. 아, 이 사람 진짜 글밥 먹는 사람인가보다 싶다. 한 마디로 부러움?

<작은 나의 책>은 김봉철의 삶과 그의 독립출판을 버무려 다루고 있다. 첫 책이 그의 인생을 어둡고 음울하게 그려냈다면, 이번 책은 ‘출판’과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녹였다. 나는 이 책으로 크게 두 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독립출판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다. 사실 나도 독립출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생각만 했다) 책을 한번 내고 싶은데, 어느 출판사가 내 글을 덥썩 물어 ‘책을 냅시다’라고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회자되기를 독립출판을 할 때는 자본이 3천만원 정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접었다) 그런데 김봉철 작가는 “자비출판은 (중략) 최소 50부부터 제작 가능하며 100부는 100만원, 200부는 120만원, 300부에 150만 원 정도로 책정되어 있다. (p.48)”고 말한다. (내가 들었던 3천만원은, 나의 출판을 좌절시키려는 음모였던가!) 이 외에도 작가는 책에서 독립출판의 10가지 단계를 설명한다. 글쓰기에서부터 시작해 판형/폰트/제작비/편집/홍보 등 ‘출판’과 관련한 액션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알려준다. 독립출판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아주 유용한 정보라 하겠다.

두 번째는 '작가 김봉철'에 대한 발견이다. <숨싶사>에서는 그가 ‘방구석’에서 써내려갔던 글이 온라인에서 호응을 얻어 책을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번 책에서는 그가 작가로서 ‘글’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온오프라인에서 글과 작가를 동일시하며, 글에 대한 생각을 자신에게 투영하는 독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작가는 “글을 읽는 일은 글쓴이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세계를 독자가 받아들이는 일(p.109)”이라며 “읽는 이는 "글을 통해 지은이를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판단하고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p.109)”고 일침을 가한다. 옳다구나! 맞아, 바로 이거지. 나도 업무적으로 글을 쓰는 일을 하는데, 글을 보여주면 피드백의 방향에 꼭 글을 쓴 ‘나’라는 사람에 것으로 끝난다. 피드백은 받아야 겠는데, 글은 안보고 그 안에서 (독자가)나를 읽어내고 분석하려 하는 것같아 불편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내가 반문하고 싶었던 점이 바로 이것이다. 나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게 읽고 그것을 저자의 생각이나 삶으로 단정지어버리는 태도.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위안도 받고 결심도 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마찬가지의 잘못을 저지르지는 말자’라고.

본인의 삶을 영화로 표현하자면 어떤 장르라고 생각하시나요? (p.181)

책의 마지막은 뭐랄까.. 너무 근사하다. 김봉철 작가다운 마무리다. 한 독자가 북토크에서 자신의 삶이 어떤 장르일 것 같냐고 물었단다. 작가는 '스릴러'라 답한다. 나도 해당 질문을 했던 독자처럼 그가 이렇게 답할거라 예상했는데, 웬걸 그의 설명, 너무 근사하다. 그의 대답을 읽으며 떠올린 생각은 이렇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스릴러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 그것도 하드코어 스릴러. 그걸 얼마나 빨리 드라마로 만드는지가 한 사람의 역량(또는 멘탈, 마음, 정신 등등)관리 아닐까?’라고. 나의 삶은 스릴러와 로맨틱코미디 중간 지점 어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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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의 비밀 연대 - 위기의 시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향한 새로운 시선
페터 볼레벤 지음, 강영옥 옮김, 남효창 감수 / 더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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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신도시'에는 대개 키 작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아직 묘목들이 충분히 자랄만큼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해가 지났을까? 산책하다 만난 나무들은 더 키가 줄어들어 있었다. 벌레가 먹은건지, 관리하시는 분이 험상궂은 모양으로 가지치기를 해두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해를 가려주는 근사한 그늘은 아직 내가 사는 '신도시'에는 요원한 일인 것 같다.

"나무는 다른 종들과 싸워야 할 뿐만 아니라 같은 종 내에서도 빛, 물, 영양물질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한다. 손상되지 않은 숲을 찾으려는 이 싸움에서 산림감독관들은 경제림을 조성하는 등 자연에 개입하고 있다. 산림감독관은 스스로를 심판관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숲 해설가이자 생태 작가인 페커 볼레벤은 책 <인간과 자연의 연대>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자연과 인간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도록 한다.

책은 '자연'에 대한 선입견의 오류를 여러 가지 예시로 짚어준다. 예를들면, 벌목이 있다. 보통 숲 속 나무를 베어 사용하는 것은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는 것이 있다. 나무를 '그대로 두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숲에서 나무를 베어 사용할 경우, 그 자리에서 또 나무가 자라 충분히 재생가능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은 자연 입장에서는 큰 손해다. 만약 그 나무를 베어내지 않을 경우 잎, 뿌리, 열매 등의 부산물들이 토양과 결합돼 양분이 되고 이것은 '바이오 매스'라고 생물량을 보존하기 때문이다. 즉, 벌목을 하는 행위는 바이오 매스의 총량을 단 시간에 제거하는 것이며 이것은 숲의 입장에서는 그 배에 해당하는 회복시간이 필요한 행위다.

책은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이야기한다.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는 자연의 생리를 생태학적 분석한 저자의 지식이 이어진다. 하지만 일부 독자들은 다소 '환상적'인 이야기라고 느낄지 모르겠다. 책이 말하고 있는 바는 너무나 명확하고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으로 하여금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지속가능성을 염두한 활용이 불가피한 인류에게 자연을 '그대로' 두는데서 나아가 혼연일체가 되라는 말처럼 읽혔다. 그리고 책 중반 뉴질랜드 카우리나무 부분은 흥미롭다. 나이가 많고 거대한 침엽수 '카우리나무(Kauri)'그 현재 생명이 위태롭단다. 다름아닌 그 원인은 '한국에서 유입된 균류가 이 나무의 뿌리부터 시작해 나무 전체를 파괴(p.117)'하고 있다며 책은 말한다. 한국에만 서식하는 균류를 한국인 관광객이 신발을 통해 뉴질랜드로 가져가 카우리나무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우리는 아직 자연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며 인간과 자연의 연결과 공존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삶에서 자연과 관련해 고민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제대로 '관계' 맺을 수 있도록 한다. 책을 통해 '자연의 훼손'이 '자연보존'의 반대급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보다도 오히려 '자연과의 연대'가 답이 될 수 있다. 자연은 경외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일부라는 사실, 그것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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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인사이트 - 넷플릭스는 어떻게 파괴적 혁신의 상징이 되었나?
이호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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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의 나의 시간은 세 가지로 나뉜다. 운동하기, 책 읽기, 운동하며 넷플릭스 보기. 그 중 가장 선호하는 것은 세번째다. 운동으로 건강을 챙기면서, 넷플릭스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시간. 짧은 시간에 두 가지를 모두 챙길 수 있어 만족도가 가장 높다. 넷플릭스는 언제부터 이렇게 가까이 내 삶에 들어왔을까?

"넷플릭스를 알아가면서 단순한 영화감상 사이트에서 연구대상으로 바뀌었다. 지난 40년 동안 쌓은 비즈니스와 기술경험에 넷플릭스에 대한 이해가 더해지면서, 그들이 어떻게 글로벌 강자로 우뚝 섰는지 궁금증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p.5)" IBM, 삼성전자 등 굴지의 기업에서 기술과 비지니스의 시너지에 집중했던 저자 이호수는 책 <넷플릭스 인사이트>에서 넷플릭스가 만들어 낸 디지털 혁신을 파헤친다. DVD 대여업체에서 시작한 넷플릭스는 2007년 1월 비디오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다. 스트리밍을 통해 고객의 취향과 선호도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고 여기에 AI기술을 접목시켰다. 책은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가 넷플릭스를 창업하게 된 배경부터 짚어간다. 이후 넷플릭스가 사용한 전략과 목표, 방향성 등을 설명하고, 영화나 콘텐츠 제작자와 디즈니+,HBO 등 또 다른 OTT플랫폼으로부터의 견제 등도 다룬다.

넷플릭스의 경쟁력은 '데이터'와 '기술'에 대한 신뢰 아닐까? 넷플릭스는 데이터를 근거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고 한다. 작품 추천, 개인화 페이지, 네트워크 운영 최적화 등 우리가 바라보는 넷플릭스 화면 속 기능들은 모두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그들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작품을 보여줄까?'보다 '어떻게 더 정확하게 보여줄까?'에 집중한다. 트렌드, 기술력, 소비자 요구 등 보다 본질적인 니즈보다 기업의 (임원 혹은 오너의)의사에 따라 방향성이 결정되는 국내 콘텐츠 시장과 상당히 비교되는 지점이다.

2016년 1월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했을 때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넷플릭스의 유료 서비스가 무료 비디오 시장의 장벽에 부딪힐 거라는 것과 제한된 국내 콘텐츠의 수가 그 근거였다. 하지만 지금 완전히 뒤바뀌었다. 비디오는 이제 박물관에서나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넷플릭스 계정만 있다면 국내 콘텐츠는 물론, 일본, 중국을 넘어서 독일,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미주지역의 작품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넷플릭스가 고품질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릴리즈하고, 어떤 취향도 만족시킬것만 같은 라이브러리를 보여주면서 소비자들은 온전히 그들에게 집중하며 '정주행'한다.

책은 넷플릭스를 분석한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국내 기업들을 고무시킨다. "AI의 새로운 혁신은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할 일은 인간이 할 일과 기계가 할 일을 정확히 구별해 협업하도록 해야한다."고 책은 말한다. AI에 압도되는 것보다 효용가치에 따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자는 선언은 넷플릭스의 자신감으로 읽힌다. AI가 이끄는 디지털 산업의 한 축은 이미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 주차장에서 컴퓨터를 개발하고, 모바일로 IT기기를 조정하는 서비스도 이제는 진부하다. 디지털 분야의 혁신을 이뤄내고 싶은 기업,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 비지니스를 선도하고 싶은 기업들이 참고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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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경제학 - 가짜뉴스 현상에서 미디어 플랫폼과 디지털 퍼블리싱까지 뉴스 비즈니스에 관한 모든 것
노혜령 지음 / 워크라이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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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힘을 잃었다. 지식과 전문가는 유튜브에 있고 트렌드는 인스타에 있다. '정보의 홍수'라는 표현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랫동안 정보에 둘러쌓여 살아왔다. 그 안에서 '진짜' 정보를 보는 눈이 '미래의 경쟁력'이라고들 한다. 그 와중에 전통적인 미디어는 이제 정보 획득의 창구로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듯 하다. 특히, 언론이 말하는 '뉴스'는 '가짜'라는 인식마저 얻었다. <가짜뉴스 경제학>의 저자 노혜령은 "가짜뉴스는 제도의 불신과 뉴미디어가 만나 기존 제도의 정당성 논쟁으로 분출된 파편일 뿐. (p.34)"이라고 말한다.


취재기자, 미디어 스타트업 경영자 등 미디어 안팎을 25년간 경험한 노혜령 저자는 '가짜뉴스'를 경제학 관점에서 접근하다. 디지털 사회에서 진짜 저보를 가려내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지, 가능하기는 한 건지, 뉴스 산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현장의 경험을 담아 통찰력있게 풀어냈다. 저자는 '뉴스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응당 당연하다고 여겼던 뉴스의 객관성이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일 뿐' 이라고 덧붙인다.

책은 인쇄 매체의 역사부터 짚어본다. 그리고 출판물과 신문 등 미디어 역사를 바탕으로 언론의 영향력을 살펴본다. 이후 뉴스가 플랫폼 혁명에서 사그라든 이유를 고찰한다. 저자는 SNS와 같은 뉴미디어의 출현에 무게를 둔다. 또 제도적 압력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신기술의 출현도 원인 중의 하나다. 책에서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의 비즈니스 원리를 책에서 다루는 이유다. 반면, 저자는 포탈이나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이 언론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유기적 성격을 띄는 플랫폼의 정보들이 파편화되어 검색 비용을 높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책을 읽으며 '기레기'라는 단어가 계속 떠올랐다. 뉴스에 '가짜'를 붙이기 시작하며 기자는 '기레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문성과 사명감 대신 정치색을 입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펜을 들기보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앞장선다는, 아주 불명예스러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책에서는 전통적 미디어와 현재의 뉴 플랫폼을 대척점으로 두고 경제학적 관점을 분석한다. '돈'이 되기때문에 득세하고 사그라든다는 게 저자의 결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더욱 기존 언론과 뉴스 정보가 가치를 잃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뉴스의 가치와, 현재의 위치,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찰해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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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여자들 -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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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여'라는 말,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표현이다. 인사 시즌에 여성 직원들이 대거 보직을 받았다. 정부의 '여성 등용 정책'에 맞춤한 결과였다. 새롭게 보직을 맡은 인물들이 언급될 때, 여자라서~, 예쁘니까~ 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또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같은 '여성' 직원일 때 지나가던 '남성' 직원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여적여라고.

'남자 직원에 대해 또 다른 남자 직원이 얘기하면 그걸 남적남이라고 하나?'라고 구차하게 묻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야기 꽃을 피우던 여성 직원은 이상하게 열패감이 든다. 지나가던 남성 직원, 앉아 있던 여성 직원 사이에는 단 하나 '성 차이'만 있다. 책은 이런 현상을 '젠더 공백'이라 말한다. 그리고 "젠더 데이터 공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그것이 대개 악의적이지도, 심지어 고의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것은 수처년 동안 존재해온 사고방식의 산물일 뿐이기에 일종의 무념이라 할 수 있다. (p.16)"고 말한다.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여성운동가인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의 글이다. 여성 학대 관련 법령 개정, 영국의 인권단체 리버티가 수여하는 '올해의 인권운동가상' 수상 경력에서 볼 수 있듯 저자는 '여성', 그 중에서도 '인권'과 관련한 행보를 이어왔다. 두번째 저작인 이번 책에서 저자는 기술, 노동, 의료, 경제, 정치 등 16가지 삶의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데이터 공백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과 차별을 일으키는지 면밀히 분석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인류의 반, 여자에 대해 기록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여자를 표준 인류에서 벗어난 존재로 여겨왔다. 그것이 여자들이 보이지 않게 된 이유다." - 저자의 말

책은 '젠더 데이터 공백'으로 시작한다. 스마트폰 사이즈, 피아노 건반, 심지어 에어콘 온도까지 일상의 모든 것을 재단하는 '표준'이 대개 '남성'에 맞춰져 있다고 책은 설명한다. 유모차를 끌어야 하는건 주부들인데 도로는 회사와 집을 오가는 남성들 관점의 편리에 따라 지어진다. 또 남성의 신체사이즈를 표준삼아 자동차가 만들어지니 운전석이든 조수석에 앉는 여자들은 의자를 어떻게 조정하더라도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즉, '보편적'이라는 '기준'은 곧 '남성'들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다양한 예시와 통계를 통해 '여성의 배제'를 설명한다. 그리고 책은 '데이터를 젠더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성 진출 공백을 메우면 된다."고 해법을 제안하며 "(그렇게될 경우) 여성의 삶과 관점이 빛 속으로 나오게 된다. (p.387)"고 말한다. 일부 독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사고 자체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여성이~'라고 말해지는 상황에서 '남성이~'라는 표현이 있기나 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세상은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남성과 나머지로 분류된다. 그 사실을 인식시킨다는 것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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