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수필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
김용준 지음 / 범우사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얼마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집 뒤에 실려있던 산문이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이렇게 재미있는 수필이라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알라딘에서 검색을 하다가 어떤 분의 리뷰가 신뢰가 가서 구매를 했다. 수필집에 알맞게 어울리는 책의 크기,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알맞은 분량의 글,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재미진 글들, 가벼운 듯 하다가도 깊이가 느껴지는 사색의 흔적들을 맛볼 수 있었다. 한껏 멋을 부리는 듯하면서도 정도를 넘지 않는 글이 여간 맛갈스러운 것이 아니다.

저자의 후기를 보니  그 후기를 쓴 날이 1948년 음력 2월 3일이다.  내가 근원 김용준을 알게되기까지 꼭 60년이 걸린 셈이다. 도쿄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미대학장을 지냈으며 6 ·25 후 서울 수복 때 월북했다고 한다. 초판 인쇄가1987년 3월로 되어있는 것을 보니 월북작가들의 해금 시기에 맞추어 이 글을 읽을 수 있게된 모양이다.
 
그의 직업 탓인지 화가들에 관한 일화가 많이 소개되어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안견, 최북, 장승업 등에 얽힌 일화와 함께 예술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근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받은 탓인지 한자를 능란하게 구사할 뿐만 아니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김수영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한자가 모국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한자세대가 아닌 내게는 쉬이 이해되지 않는 말들이 많아 네이버 사전에 수시로 기대어야하는 수고가 따랐다.
 
그는 아무런 조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까닭으로 늙은 감나무를 좋아하고, 그리기가 쉽다는 이유로 또 무장공자無腸公子(내장이 없는 공자)로서 평생을 두고 애끓는 슬픔을 모른다는 윤우당의 시구에 감동되어서 게 그리기를 좋아한다. 그는 매화 앞에서는 아무런 조건없이 황홀해지고 경건해지기 때문에 또 매화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에는 '근원' 말고도 '검려' , '노시산방주인', '선부', '매정' 등 많은 호가 있다. 사물에 뜻을 부여하고 그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근원의 생각들을 엿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매화향기나 두꺼비 연적, 늙은 감나무 같은 것들은 60년이 지난 우리에게는 먼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시나 그림 같은 예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시대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여전히 가슴 깊이 새겨야할 듯 싶다.
 
 "모든 위대한 예술은 결국 완성된 인격의 반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되기 전에 예술이 나올 수는 없다. 미는 곧 선善이다. 미는 기술의 연마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인격의 행위화에서 완전한 미는 성립된다. 기술을 부육膚肉 이라면 인격은 근골筋骨이다. 든든한 근골과 유연한 부육이 서로 합일될 때 비로소 미의 영혼은 서식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국어의 속살 -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시인 50인이 보여주는 풍경들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고종석을 처음 대한 것은 소설 「제망매」를 통해서였다. 80년대에 대한 부채의식을 드러내 보이는 그의 소설을 통해 그가 언론사에 근무하면서 프랑스에서 유학했다는 것, 군더더기 없는 지적인 문체를 구사한다는 것, 깊은 애정을 가지고 유난히 모국어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시론집『모국어의 속살』은 <시인공화국 풍경들>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그의 글 모음집이다. 그는 브로치나 가락지가 몸의 액세서리인 것처럼 문학은 마음의 액세서리라고 한다. 액세서리 없이 우리는 얼마든지 살수 있듯이 문학 없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은 사람이 만들어 낸 가장 아름다운 액세서리이고 그중에서도 시는 가장 휘황찬란한 액세서리로, 시를 통해서 사람은 순식간에 아름다운 거푸집을 이룬다고 한다. 액세서리는 그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다. 액세서리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자의 경우 그 사소한 것이 훨씬 주인을 빛나게 하지만 후자의 경우 없느니만 못한 경우가 된다. 어떤 액세서리를 선택하느냐 또 선택한 액세서리를 얼마나 소화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시라는 것은 아마도 가장 소화하기 어려운 액세서리 중의 하나일 것이고, 고종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나가는 액세서리를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시인 50인이 보여주는 풍경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시론집에서 고종석은 시인들이 다다른 모국어의 속살을 다시 헤집고 애무하는데 게으르지 않다. 그의 애무는 때로 섬세하고 때론 거칠고 때로는 땀구멍을 꼬집는 것처럼 아프기도 하다.  50권의 시집을 골라내는데 체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 개인적인 독서체험이 짙게 반영되었다고 하지만 그가 읽은 50인의 시세계는 그에 의해 각각의 변별력을 지니고 문학사에 자리매김 된다. 시보다도 더 시적인 표현들이 돋보이고 여느 평론가보다 더 예리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고종석은 이 책을 매주 한 챕터씩 해당 시집과 함께 야금야금 읽을 것을 권한다. 나는 그의 권유를 받아들였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시집들을 구할 수 없는 안타까운 경우도 더러 있었고, 그처럼 시를 편하게 읽어낼 수 없는 무능 탓에 끝까지 그의 권유대로 하지 못했다. 그의 권유대로 읽으려면 무려 1년 가까이 이 책이 책상위에 뒹굴어야하는데 나는 그 꼴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읽어야할 시집에 포스트잇을 붙이면서 『모국어의 속살』을 내쳐 읽어버렸다. 고종석에 대한 지적, 미적 열등감에서 해방되는 기분이다. 너무나 개운하다. 그런데 그의 다른 책 『코드 훔치기』가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원한 남편 외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4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정명자.박현섭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최고 상류사회의 교육을 받은 바 있는 벨차니노프는 38,9세의 독신자다. 그는 남러시아로 가려던 여행도중 뜻하지 않게 소유지에 관한 민사소송에 얽혀 뻬쩨르부르그에 머물게 된다. 벨차니노프는 이곳에서 자신의 주변을 얼쩡거리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벨차니노프가 9년 전 사랑했던 한 유부녀(나딸리야 바실리예브나)의 남편 빠벨 빠블로비치였다. 죽은 아내의 유품에서 그녀의 방탕한 생활을 증명한 편지들을 모조리 읽은 빠벨 빠블로비치는 딸 리사를 데리고 그녀의 애인들을 만나러 뻬쩨르부르그에 나타난 것이다. <영원한 남편>은 벨차니노프와 그의 정부의 남편인 빠벨 빠블로비치 사이의 사건을 그린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영원한 남편>에서 벨차니노프의 입을 빌려 새로운 인간유형을 탄생시킨다. 벨차니노프가 사랑했던 나탈리야 바실리예브나와 같은 유형의 여성과 그녀의 남편 빠벨 빠블로비치로 대표되는 남성이다. 여성은 오직 불성실한 아내가 될 목적 하나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은 여성으로 정열적이고 잔인하며 또한 관능적인 타입의 여성이다. 이런 여성은 방탕한 생활을 혐오하며 믿을 수 없을 만큼 맹렬히 비난하고 있지만 바로 그녀 자신이 방탕한 여인임을 모르고 있다. 이런 여성과 아주 잘 어울리는 남편의 유형도 존재하는데  빠벨 빠블로비치처럼 끊임없이 부정을 저지르는 아내와 살면서 평생토록 오직 남편이 되기만 할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닌 유형의 사람을 말한다. 벨차니노프는 이런 남편을 ‘영원한 남편’이라고 부른다. 이런 남편의 중요한 특징은 태양이 빛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에게 배반당하지 않을 수 없는 남편이다 

세계명작 혹은 대문호라는 이름은 참다운 독서를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작품을 읽기보다 작품의 이름이나 작가의 이름을 먼저 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필독 도서 목록이라거나 방학숙제 등 강압에 의해 읽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시절 처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알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태어나 처음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이미 나를 책 안 읽는 학생으로 낙인 찍어버렸다. 당시 나는 하이틴 소설을 두루 걸쳐 두껍고 낡은 하드커버의 『악의 꽃』과 시도 때도 없이 애절하게 ‘시몬’을 부르는 『렌의 애가』같은 시집 속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지금생각해보니 시에 대한 동경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당시 나와 단짝이었던 친구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있었는데 『죄와 벌』,『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먼저 읽고 와서는 등나무 아래 벤치에 나를 눕히고는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사주받은 사람처럼 그날 읽은 책의 내용들 읊어주었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잠들기 일쑤였지만 그건 이야기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감싸고 있던 보랏빛 등꽃향기와 친구의 정다운 목소리와 따뜻한 햇볕과 언제까지라도 수천의 손을 흔들어 줄 것 같던 미루나무의 고요한 반짝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운 친구여!

 

 

나는 중개자 없이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났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혹은 매체를 통해 들어왔던 그의 명성과는 달리 커다란 감흥을 느낄 수는 없었다. 심리소설처럼 보여지기도 하지만 고차적 심리소설도 아니고, 죽어버린 아내의 정부를 찾아 복수를 하겠다는 추리소설도 아니고, 남편과 정부 사이에 일어나는 단조롭고 소소한 사건이 너무나 평이하게 전개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대문호의 호칭으로 불리지만 그때는 다른 작가에 비해 원고료도 절반정도 밖에 받지 못하는 소설가였다고 한다. 그나마 쓰여지지도 않은 소설을 걸고 가불하기가 일쑤였고 돈은 도박판에서 모두 잃었다. 두명의 아내를 두었지만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작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탓인지 도스토예프스키는 여성보다는 남성의 심리 묘사에 더 능한 것 같다. 이 소설에서도 한 여자의 남편과 정부 사이의 미묘한 심리묘사를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 대해서 좀 더 알고싶은 분께는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을 함께 볼것을 권하고 싶다.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이론은 <영원한 남편>과 적확하게 부합하는 소설이다.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에서 지라르는  빠벨 빠블로비치의 욕망은 벨차니노프를 자신의 욕망의 중개자로 삼고 있다고 얘기한다. 

 

 “빠벨 빠블로비치는 벨차니노프의 중개에 의해서만 욕망을 품을 수 있으며, 신비론자들이 말하듯이 벨차니노프 안에서만 욕망을 품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벨차니노프를 자기가 선택한 여자의 집에 데리고 가서, 벨차니노프가 그 여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고 그 여자의 에로틱한 가치를 보증하도록 한다.(94쪽)”

르네 지라르는 또 “『영원한 남편』은 내면적 간접화의 본질을 가능한 한 단순하고 순수한 형태로 드러내준다. 독자의 주의력을 딴 데로 돌리거나 독자로 하여금 길을 읽고 헤매게 하는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이 텍스트는 너무나 분명해서 오히려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소설의 삼각형에다 우리를 눈부시게 하는 빛을 비추고 있다.” 고 말한다.

자신의 이론에 적확하게 부합하는 텍스트를 찾아낸 지라르에게 박수를!!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내 욕망의 중개자였던 나의 친구에게 그리움의 포옹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을 빌려드립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하늘연못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마르케스는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이다. 그의 작품들이 많이 번역되어있지만 대부분은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시작하는 듯하다. 그러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두가지로 반응하는 것 같다. 마르케스에게 빠지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내 책꽂이에도 <백년 동안의 고독>이 10년 넘게 고독을 씹고 있다. 이 <백년 동안의 고독>은 마르케스가 멕시코의 아카풀코 지방으로 여행을 가던중 영감을 받고는 모든 여행을 포기하고 돌아와 1년넘게 집중해서 쓴 글이라고 한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전세계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런 작품의 영광과는 달리 나는 <백년 동안의 고독>을 포기했던 사람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늘 마르케스에게 붙어다니는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말때문인지 나는 마술처럼 그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마술처럼 한권을 밤새워 다 읽고 말았다.  

<꿈을 빌려드립니다>는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에는 단편소설이,  2부에는 산문이 그리고 3부에는 작가탐구가 실려있다. 나는 <백년 동안의 고독>의 그 느낌이 아직 살아있었던 탓인지 소설보다 먼저 산문을 읽었었는데 산문이 소설보다 훨씬 더 소설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권력과 마찬가지로 여행도 성욕을 돋군다."로 시작하는 <하늘에서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만일 항해자들의 연대기와 그들의 항해일지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일 뿐만 아니라, 금지된 문학의 대표적인 텍스트가 될 것이다.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미해결된 범죄의 온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스파이들의 거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한 적어도 세 사람 이상의 군주를 잉태한 밤의 천국이었다.

 
   

 처럼 선박과 기차 안에서의 사랑에 대해 언급한 마르케스는 또 "자동차 속에서 임신되는 아이들이 일반 아이들보다 더 똑똑하고 뼈도 부러지지 않는다."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비행기에서의 사랑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비행기의 화장실에서 할수 있는 사랑의 체위는 무려 162가지이며 손잡이만으로도 74가지의 각각다른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놀라운 정보도 접할 수 있다. 이외에도 산문부문에서는 문학에 대한 그의 생각과 노벨문학상에 대한 뒷얘기를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다.

마르케스의 소설은 때로는 환상문학처럼, 또 때로는 너무나 사실주의적 문학으로 읽힌다. 사실 그의 대명사처럼 따라다니는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말은 '마술'과 '사실'이라는 공존할 수 없는 두 영역을 한데 붙여놓았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이 말은 작품을 읽고나면 이보다 더 옳은 말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 단편집에 실려있는 <포르베스 부인의 행복한 여름>과 <난 전화를 걸러 온 것뿐이에요>는 현대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명과 문맹, 소통과 소외, 집단과 개인의 문제등을.

마르케스는 콜롬비아의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나 문명의 혜택을 누린 대령이었던 할아버지와 전통적인 할머니 사이에서 8세가 될때까지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귀신과 괴물이 창궐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후에 마르케스에게 커다란 문학적 토양이 되었다고 한다. 또 마르케스는 토스토예프스키, 발자크, 카프카, 윌리암 포크너, 소포클레스 등을 좋아했다고 한다.

콜롬비아 태생인 그가 1995년 70세가 넘은 나이로 조국을 버리고 멕시코로 망명했다. 그가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을 위한 외교 활동을 해온 정치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새로운 소설을 쓸 수 있는 매일 여덟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하루 표준노동시간을 소설에 할애하고 있다. 그에게 문학은 노동인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르는 척 시작시인선 82
길상호 지음 / 천년의시작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모르는 척, 아프다

 

 

술 취해 전봇대에 대고

오줌 내갈기다가 씨팔씨팔 욕이

팔랑이며 입에 달라붙을 때에도

전깃줄은 모르는 척, 아프다

꼬리 잘린 뱀처럼 참을 수 없어

수많은 길 방향없이 떠돌 때에도

아프다 아프다 모르는 척,

너와 나의 집 사이 언제나 팽팽하게

긴장을 풀지 못하는 인연이란 게 있어서

때로는 축 늘어지고 싶어도

때로는 끊어버리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감전된 사랑이란 게 있어서

네가 없어도 나는 전깃줄 끝의

저린 고통을 받아

오늘도 모르는 척,

밥을 끓이고 불을 밝힌다

가끔 새벽녁 바람이 불면 우우웅…

작은 울음소리 들리는 것도 같지만

그래도 인연은 모르는 척

 

 
길상호는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모르는 척』은 첫시집『오동나무 안에 잠들다』에 이은 두번째 시집이다. 등단 6여년만에 두권의 시집을 묶어냈다면 그는 시에 성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시는 양산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시집을 읽지 않은 탓에 그의 시가 어떤 시적 변화를 가졌는지 알 길이 없다. 두번째 시집의 제목으로 뽑아올린 시는 원제가 「모르는 척, 아프다」이다.  '모르는 척'이라는 말은 앎을 전제하고 있다. 우리는 알고 있는 사실은 '모르는 척' 할 수 있지만 모르는 것은 '모르는 척'할 수가 없다. 그것은 그냥 모르는 것이다. 시인은 무엇을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시 속에 등장하는 전봇대는 술취한 이의 오줌발을 받아내면서 '모르는 척' 한다. 하지만 전봇대는 '아프다.'  전봇대는 전깃줄을 끌고 가가호호 방문한다. '때로는 축 늘어지고 싶어도/때로는 끊어버리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감전된 사랑이란 게 있어서'다. 시인은 사랑에 감전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스스로 '모르는 척'해도 그는 아프다. 누구나 다 타인의 아픔을 아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시인이기에 가능하다. 그가 '모르는 척'하는건 그가 아프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깃줄 보다도 더 질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끈 world wide web으로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 연결된 것들 하나하나를 모두 아파한다면 시인은 온 생을 앓으며 살아야하리라. 알아야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다. 앓아야하는 것도 시인의 몫일 것이다. 알지만 앓을 수 없는 시인의 생존 방법은 그래서 '모르는척'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짧은 기간동안 두권의 시집을 낸 시인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그는 과일 껍질을 벗기면서 '삶의 나사를 풀어 놓는 중이라고'(「껍질의 본능」) 생각하고, 구두에서 소 한마리를 본다. 때로는 '몬트레 수심 1500m 바닥에/ 다리 셋달린 물고기(「세다리 물고기」)'도 보고  브라운관이 깨진 채 버려진 텔레비젼에서 '어떤 노숙자'를 읽기도 한다. 시를 찾는 시인의 눈이 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이 폭넓은 視界는 그 넓이만큼 깊이를 획득하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강변에 앉아 소주 한 병 들이켜고

소주병 말고 나를 던져버리면 되는 일,

어차피 병 속의 술을 몸에 옮겼으니

내가 소주병 되어

뻐끔뻐끔 기포 토하며 가라앉을 수 있으리라

                                        「서울이여, 안녕」

그가 저렇게  말하자 나는 공연히 불안해진다.  그의 첫번째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가 그 제목만으로 식물적 상상력 혹은 자연친화적이라면 이 두번째 시집은 앓고 있는 자의 '모르는 척'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척' 그가 이미 견딜 수 있는 한계에 다라랐음의 다른말이기도 하지 않은가.  난중일기를 떠오르게 하는

굳이 내 육신의 수몰처럼 사소한 일은

신문에 한 줄 글로 기록하지 마라

같은 구절에서는 그의 시에 넘쳐나는 물의 이미지와 겹쳐 나는 출렁, 시의 멀미를 느껴야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