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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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베스트셀러 

전세계 32개국 출간 후 베스트셀러

작가 도나 타트,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14년 퓰리처상(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 문학, 음악 분야상) 수상

완독률 98.5%(호킹지수 기준 : 아마존 킨들 완독률 지수)

워너브라더스사의 영화화 예정작


소설 한 편이 이룩한 성과다. 베스트셀러이자 완독률 98.5%의 재미와, 퓰리처상의 작품성과 깊이를 동시에 가진 소설. 그리고 이번 작품을 포함해 단 세편의 소설을 쓴, 과작寡作으로 유명한 작가가 타임지 선정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니. 도나 타트가 10년 간의 집필 끝에 탈고한 소설,『황금방울새』가 궁금했다.

 


 


이 새는 왜 자신이 그토록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지, ... 더엎이 짧은 사슬에 묶여 날지도 못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라도 이 새의 존엄성을, 아주 자그마한 용감함을, 솜털과 연약한 뼈를 볼 수 있다. 두려워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새. 세상에서 물러나기를 거부하는 새. 

- p. 474 , 2권

 

 

황금방울새』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카렐 파브리티우스의 명화이자, 그림을 둘러싼 한 청년 시어도어 데커(시오)의 회고록이다. 1권은 테러 사건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뀐 소년 시오의 삶을, 2권은 8년 후 성인이 된 시오가 황금방울새와 함께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전개를 그린다.

 

 

 

 

시간을 거슬러, 14년 전 소년 시오는 엄마와 미술관에 들러 잠시 관람하던 중, 폭탄 테러에 휘말려 엄마를 떠나보낸다. 사고 현장에서 당시 시오는 엄마를 찾기 위해 엄마가 좋아하던 황금방울새 전시실을 찾아갔고, 거기서 우연히 죽어가는 한 노인의 간청으로 그림을 몰래 들고 나온다. 그 후, 황금방울새는 시오에게 엄마를 되새기게 하는 유품인 반면, 걱정과 불안의 원천이 된다. 조금 악동같지만 재기발랄했던 한 소년의 평범한 삶은 그림과 함께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사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죽었고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은 전부 나의 잘못이지만, 엄마를 잃은 순간부터 나를 더 행복한 곳으로, 사람들이 더 많거나 나와 더 잘 맞는 삶으로 이끌어줄 지표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 p. 14, 1권

 

소설은 한 소년의 삶이 우연한 사고로 인해 어떻게 바뀌고 꼬이는지를 섬세한 구성과 묘사로 그린다. 편모 가정에서 갑작스레 엄마를 잃고, 고아나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 시오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자주 회상한다. 애잔하고 안타까워서, 평범한 소설처럼 결국 시오가 삶의 희망과 의미를 찾고 행복해지길 바랐지만 순탄치가 않았다. 우연같은 사건들과 사소하게 넘어갔던 것들이 나중에 운명이 되어 삶의 궤적을 바꾸는 것을, 때로는 마구 웃으면서, 때로는 가슴 아프게 바라봐야 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전개를 예상 하지 못했다. 100%에 가까운 완독률의 이유가 아닐까.

 

 

작품의 말미에 시오의 회고는 과연 인간의 운명이란 무엇이고, 그 인간의 손에서 만들어진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친구 보리스의 말처럼, 선행이 항상 선을 낳지도 않았고, 악행이 항상 악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시오의 삶은 종잡을 수 없었다.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은 운명의 사슬처럼 시오를 옭아맸다. 엄마를 잃은 상실감과 비례해서 커지는 명화 황금방울새에 대한 집착에 시오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현실은 점점 어긋나가고, 시오는 그러한 상황에서 비상하려 했지만, 때로는 사기, 범죄의 늪에 빠지기도 했고, 약물중독에 걸려서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 처지에 번민하기도 했다. 마치 그림 황금방울새처럼, 날개를 가졌지만 홰에 묶인 채 날지 못하고, 퍼덕일수록 어리석은 상처만 남기는 것이 운명인가.

 

그러나 시오는 그러한 날갯짓과 비정한 운명 같은 홰의 간극에서 아름다움과 예술이 만들어진다고 역설한다. 그 중간 지대에서 숭고함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중간 지대에 모든 사랑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삶에 몰두하고, 이상을 꿈꾸고, 영원과 불멸을 추구하지만 운명- 죽음 등- 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몸짓들과 현실의 운명 사이에서 마치 스파크처럼 사랑, 숭고함, 비장미와 같은 아름다움이 만들어진다. 운명에 체념하기보다 삶에 몰두하고 개똥밭같은 현실을 똑바로 해쳐나가야 한다. 아름다움은 거기에 있다. 그리고 예술은 그러한 아름다움을 영구적으로 보존해 가려는 인간 욕망의 한 자락이다.

 

시오가 황금방울새를 집착하고 사랑한 이유는 이것이 아닐까. 엄마를 잃은 후에 겪은 지독한 상실감, 예측할 수 없고 유한한 삶은 시오를 늘 불안과 번민에 빠뜨렸다. 그러나 17세기에 그려진 황금방울새는 오랜 세월에도 불변인 채로 세상에 남아있다.  '카렐 파브리티우스, 1654'라는 글자와 함께. 그 존재 자체가 시오에게 위안이 되었고, "덜 유한하고 덜 평범한 사람"으로 남게 했다. 그리고 예술작품 황금방울새를 사랑했던 자신의 마음 한 조각도 그림이 존재하는 한 불멸할 것이라고 회고는 끝을 맽는다.

 

 

 

시오의 회고를 읽으면서, 마치 100세 노인 같은 스칸디나비아 소설의 위트, 러시아 소설에 담긴 진지한 인간 성찰, 그리스 비극이 주는 운명의 비장함이 한 작품에 녹아있는 듯했다. 소설은 운명, 실존의 불안과 번민, 예술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너무나도 섬세한 구성과 묘사로 풀어내었다. 운명은 어떤 형태이고, 예술은 무엇이며, 인간과 운명, 예술은 어떤 관계인가. 문학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두루뭉술해서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잡히지 않는, 말하고 싶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삶의 영역을 허구를 통해 구체적이고 충실하게 드러낸 느낌이다. 소설이 삶의 진실을 추구한다는 명제가 적어도 황금방울새만큼은 옳다.

 

사실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를 직접 읽고 나니, 처음 완독률 98.5%라는 광고를 접했을 때와는 인상이 달랐다. 문체는 가독성 높고 평이하다기보다 한땀 한땀 바느질하듯 섬세하고 세밀했다. 마치 고전명작소설을 읽는 듯했다. 내용은 기대 이상으로 무겁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섬세한 문장은 작품의 무게감을 살렸고, 무게감은 독자를 몰입하게 했다. 근래 읽었던 동시대 소설 중에 가장 신기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장을 덮고, 아마 세월이 지나면 세계명작문학전집의 작품으로 꽂혀있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적어도 도나 타트와 『황금방울새』 독자들의 사랑은 작품이 보존되는 한 불멸할 것이다.

선한 행동이 항상 선을 낳는 건 아니고, 악한 행동이 항상 악에서 나오는 건 아니야. 안 그래? 현명하고 선한 사람도 모든 행동의결말을 알 수는 없어. 무시무시하지! - p. 442, 2권

왜냐하면, 만약 우리를 정의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는 얼굴이 아니라 우리의 비밀이라면, 그렇다면 나를 삶의 표면 위로 떠오르게 하고 나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꺠닫게 하는 비밀은 바로 그 그림이었다. - p. 470, 2권

나는 환영 뒤에 진실이 있다고 정말 믿고 싶지만, 결국 환영 너머에 진실은 없다고 믿게 되었다. 왜냐하면, 마음이 현실을 내모는 지점과 현실 사이에는 중간 지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아름다움이 만들어지는 곳, 두 가지 다른 면이 뒤섞이고 흐릿해져서 살밍 주지 못하는 것을 제공하는 무지개의 가장자리 같은 곳이다. 바로 모든 예술이, 모든 마술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 p. 479, 2권

 

그리고 나는 모든 사랑이 존재하는 곳이라 주장하고 싶다. - p. 479, 2권

 

운명은 잔인하지만 제멋대로는 아니라고. 자연(즉, 죽음)이 항상 이기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굽실거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항상 기쁘지만은 않다고 할지라도, 어쨌든 삶에 몰두하는 것. 눈과 마음을 열고서 세상을, 이 개똥밭을 똑바로 헤쳐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p. 480, 2권

죽음이 건드릴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영광이고 특권이다. 지금까지 이 그림에 재앙과 망각이 뒤따랐다면 -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이 불멸인 한 (그것은 불멸이다) 나는 그러한 불멸성에서 밝게 빛나는, 변치 않는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 p. 480,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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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힘
원재훈 지음 / 홍익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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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의 불행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방에 남아 있을 수 없는 데서 온다.

 

- 파스칼


자기만의 고독한 방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비참한가.

 

- 몽테뉴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다. 고독하다, 고독감 등 자주 쓰지만, 생활에서 고독이 어떤 의미인지, 실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고독을 바라보는 시각, 다루는 혹은 견디는 요령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마침 "'혼자'여서 생긴 상실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고독으로부터 삶의 풍요를 발견하게 하는 인문에세이" 『고독의 힘』을 읽었다.



   파스칼은 말했다. "우리의 불행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방에 남아 있을 수 없는 데서 온다.(p.14)" 많은 심리 연구 결과가 행복의 요건 중 하나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꼽는 때, 불행은 고독을 견딜 수 없는 데서 온다니, 아이러니다. 저자는 설명한다. "현명한 사람들은 타인과 항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고슴도치가 서로의 가시가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듯이 인간관계에도 반드시 필요한 거리가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p.54)"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을 나쁘게만 볼 법도 아니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사람 사이 적당한 간격을 보는 안목이 없어짐을 깨닫는다.


  더욱이, 무언가를 이룩하려면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철학자 아미엘은 말했다. "사물을 바라보는 힘을 기르고 평화를 사랑할수록 더욱 고독해진다. 인간은 고독 속에서 뭔가를 이루어낸다.(p.37)" 실제로 칸트, 카프카, 베트겐슈타인, 뉴턴, 베토벤 등 위대한 작품을 남긴 위인들에겐 저들만의 고독한 시간이 있었다. 저자는 그들의 업적을 그들의 고독 한 조각이라고 표현한다. 


  넬슨 만델라는 2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제는 관광 명소로 거듭난 독방에서, 성찰하고 자신을 벼리는 시간을 가꾸었다. 마치 신영복 교수가 투감 시절 동양 고전을 읽고 평생의 자양분을 얻은 것처럼, 때로 고독은 영혼을 가꾸고 단련시켰다. 월든을 쓴 소로가 영혼을 위해 일부러 고독을 자청하듯, 작가들은 세상과 유리된 곳을 찾고, 글감옥을 만들어 그 속에서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마치 스님들이 하안거, 동안거를 치루듯, 구도자들이 스스로 격리시키듯, 영혼의 성장과 성찰은 고독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홀로 있는 좁은 공간에서 영혼이 넓어진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p.180)"


  꼭 가시적인 성과가 아니라도 좋다. 특히 난봉꾼의 대명사 카사노바의 말년은 깊은 감명을 주었다. 사교계의 스타로 많은 귀족 여성들과 염분을 뿌린 화려한 시절을 뒤로 하고, 카사노바는 도시 외각의 도서관에 사서가 되어 자서전을 쓸쓸히 집필했다. 과거의 영광은 없다. 그러나 삶을 반추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새겨가는 응축과 성찰의 시간이, 과연 과거의 영광보다 가치가 없다고 감히 단언하지 못하겠다. 저자는 권한다. 카사노바처럼 노년에 맞는 "사색과 통찰의 시간을 미리 앞당겨서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은 그만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단 몇 분이라도 자기만의 방에서 고독을 기꺼이 맞이해야지 싶다.


  설사 그들처럼 대단한 업적은 아니더라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꿈을 위해서, 혹은 의도치 않게 삶의 고비에서 고독을 만난다. 저자는 단언한다. "아무 할 일이 없이 빈둥대는 걸 고독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고독을 낙오나 실패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고독한 사람은 패배자가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켜 승리자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는 사람(p.199)"이라는 것을.


 

 


  『고독의 힘』은 원재훈 작가가 고독을 주제로, 많은 명사들의 일화, 명저들, 아포리즘, 그리고 작가의 일상에서 얻은 깨달음들을 엮은 책이다. 흔한 문학작가의 인문에세이로 기대했으나, 종종 곁에 두고 만나고 싶은 책이 되었다. 책에 담긴 일화들, 특히 위인들이 고독에 대해 남긴 주옥 같은 명언과 원재훈 작가의 감상을 가까이 두고 싶다. 고독의 힘은 고독을 없애는 책이 아니다. 고독은 병도 아니다. 고독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고, 그것을 소중히 하라고 가르친다. 릴케가 사랑한다면 오로지 혼자 있으라 했던 것처럼. 다음은 저자의 에필로그다.


  "외롭고 쓸쓸하다는 감상적인 사념은 고독의 잔가지에 불과할 뿐이다. 고독의 뿌리와 줄기는 지적이고, 강하고, 무엇보다 삶에 유익한 단백질과 같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독하게 자신의 삶에 몰두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빛나고 있다. 그들이 바로 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바퀴다. 강한 사람이 고독하고, 고독한 사람이 위대하다. 고독한 당신의 영혼에 축복이 햇살처럼 쏟아지기를.(p.236)"

 

 


   저 침묵 속의 외로움을 알게 되면,

 그 침묵 속의 기쁨을 알게 되면,

  그는 이 공포와 죄악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리고 그는 니르바나, 그 영원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법구경》 중에서 - p.27

 

​ 

우리의 불행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방에 남아 있을 수 없는 데서 온다. - 파스칼 (p.14)

자기만의 고독한 방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비참한가. - 몽테뉴 (p.17)

 

사물을 바라보는 힘을 기르고 평화를 사랑할수록 더욱 고독해진다. 인간은 고독 속에서 뭔가를 이루어낸다.

- 아미엘 (p.37)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어라. / 둘이 나눠 겪으려 하지 말고 / 오로지 혼자가 되어라.

- 릴케 (p.140)

홀로 있는 좁은 공간에서 영혼이 넓어진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p.180)

  ​ 

고독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행복이다. (p.191)


고독....무엇보다 삶에 유익한 단백질과 같다.....고독한 당신의 영혼에 축복이 햇살처럼 쏟아지기를.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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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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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화가 난다기보다 슬픈 감정 쪽이 더 컸다.

왜 이런 남자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신은 허용했을까."


"차라리 둘이서 죽여버릴까? 네 남편"


 


1. 나오미와 가나코


  가정폭력 기사를 자주 접한다. 유명인도 예외가 아니다. 닮고 싶은 여성으로 항상 순위권에 들었던 지성미의 여 앵커, 유명 코미디언의 아내 등, 가정폭력은 예상 외로 도처에 있고, 은폐, 축소되기 쉽다.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나오미와 가나코』는 이러한 가정폭력을 다룬다.


  나오미는 백화점 vip 고객 담당 외판원이다. 어느날 단짝친구 가나코의 집을 방문하고 그녀의 얼굴에 상흔을 발견한다. 성장기에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두려움에 떨면서 지켜봐야만 했던 나오미. 가나코가 남편 다쓰로에게 폭행 당한 사실을 인지한다.


  나오미는 가나코에게 적극적으로 대처하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가나코는 부모님께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리기 싫다며 손사레 치고, 진단서를 발부 받아 경찰서에 신고하자는 말에, "그건 귀찮아."로 일축한다. 가나코가 답답하다. 그러나 당한 사람의 심정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고 했던가. 나오미는 가나코가 '다툼이 무서워 자신이 참는 쪽을 선택해버'렸다는 것을 눈치챈다.


  다쓰로는 아침상이 입맛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뜨거운 된장국을 가나코에게 엎어버리고, 회식에 술취한 밤 부부관계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심하게 폭행한다. 다림질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등 사소한 빌미로 계속 옥죈다. 가나코의 멍들고 부은 상처를 지켜보던 나오미. 결심한다.


  "차라리 둘이서 죽여버릴까? 네 남편." 둘의 살인계획 '클리어런스 플랜'은 그렇게 시작한다. 1부는 나오미를 중점으로 플랜을 실행하는 과정. 2부는 다쓰로의 죽음 이후로 사건이 유야무야 처리되자, 시누이 요코가 흥신소에 의뢰해서 집요한 추궁을 하는 과정을 가나코의 입장에서 전개한다.

 


  2. 나오미와 가나코의 살인 계획


   밤잠을 설치다 무심결에 읽었다. 끝내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그만큼 조마조마했고, 공감했고, 긴장했다. 여정의 결말이 궁금했다. 책의 끝머리 코멘트. "결말을 어떻게 할지 작가도 마지막까지 망설인 소설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주인공들과 함께 조마조마. 두근두근. 즐겨주세요." 이해 간다.


  장롱면허로 운전조차 조마조마한 그녀들이, 때로는 분노감에 칼로 찔러죽일까, 낭떠러지에 밀어버릴까 살인을 두서 없이 상상하던 그녀들이, 계획을 하나하나 진행해 나간다. 엉성하지만 강해지자 결기를 다진다. 그리고 요코와 흥신소의 끈질긴 추적 때문에 하나씩 실마리가 드러날 때. 서툴고 두려우면서도 맞서 나가는 그녀들의 모습에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애당초 왜 나오미와 가나코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을까. 폭력은 단순히 물리적 상처만 남기지 않는다. 수치심, 굴욕감, 분노, 열등감, 상대방에 대한 종속감, 무기력 등 이런 정서들이 엃히고 섫힌다. 지속적인 폭력은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킨다. 특히. 건전한 가정은 안정감을 주지만, 폭력 가정의 경우 가정이라는 울타리 자체가 감옥이자 장벽이다. 그래서 지속적이고 은밀하다.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현실의 벽이 그만큼 공고했던 것은 아닐까. 가나코의 가정을 둘러싼 주변 환경들, 남편에 대한 심리적 종속감, "그건 귀찮아."로 응축된 제도권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와 신변보호에 대한 불신감과 스트레스. 남편이 자신과 친정에 복수할 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 역설적으로 시누이 요코가 경찰을 신뢰하지 못하고 흥신소에 오빠의 추적을 거액 의뢰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중첩되어, 실제 다쓰로는 천성적으로 소심한 인물이었음에도 가나코에겐 뛰어 넘을 수 없는 거대한 괴물로 보였을 것이다. 오히려 극단적인 선택에 가나코는 안도하지 않았을까. 웬만한 수단은 소용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평범했던 그녀들이 가정폭력이라는 아픔을 공유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과정. 극단적인 계획의 이면에, 공감하게 만드는 이유. 살인을 옹호할 수 없음에도, 그것들이 그녀들의 서툴고 엉성한 살인 계획을 지지하게 만들고, 그녀들의 결말이 행복하길 바라며 조마조마하게 읽어나가게 했다. 나오미와 가나코의 여정에 눈을 떼지 못한 이유다. "당신도 이 여자들을 응원할 수 밖에 없다."


  "아무튼 부모님에게만은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

  "알았어. 그럼 경찰서에 가자.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 그걸로 피해 신고를 하자."

  "그건 귀찮아."

  - p. 50


  "거짓말. 가나코도 잘 알고 있을 거야. - p. 50

    

   "이젠 화가 난다기보다 슬픈 감정 쪽이 더 컸다. 왜 이런 남자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신은 허용했을까 - p. 236

   "결혼에 대한 평범한 여자의 평범한 소망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인생 최대의 함정이었을 줄이야." -p. 356

  "전화를 마치자 가나코의 내부에서 또 새로운 감정이 싹텄다. 설령 무슨 일이 있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사람을 죽여놓고 할 수 있는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자신의 존엄성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다. 죽음을 선택하지도 않을 것이다. 마지막 의지였다.

  가나코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 p.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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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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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자라고 아세요? 색소가 희마한 사잔데 은색이랍니다.

  다른 사자들과는 달라 따돌림을 당한대요.

그래서 멀리서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한다는군요.

쇼코는 말이죠, 저나 곤을, 그 은사자 같다고 해요.


- 무츠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이 있다. 성적 지향, 빈부, 성격 차이가 아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을 끝까지 읽은 이유는 무엇보다 인물들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소설은 왜 이들의 사랑을 '반짝반짝 빛나는' 으로 정의했을까.


  '반짝반짝 빛나는'은 알콜중독자 아내와 의사인 게이 남편의 이야기이다. 부모의 등쌀에 맞선 자리에 나가고, 서로의 내막을 알면서도 문득 결혼한 사이. 상식적이지 않고 선뜻 행복한 가정이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둘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소설은 아내 쇼코와 남편 무츠키의 1인칭 관점으로 번갈아 진행한다. 소쿄는 무츠키가 자상하고 섬세해서 좋다. 무츠키는 아내가 종종 히스테릭한 성격을 드러내지만, 게이의 세계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십년 지기 애인인 연하남 곤의 존재를 받아들여줘서 고맙다. 한편으로 안쓰럽고 미안하다.


  하지만 초조하다. 아들의 사정을 아는 시아버지는 쇼코에게 둘의 관계를 '물을 안는'다고 표현한다. 쇼코는 섹스에 관심이 없다고 대답하지만, 이내 성욕 자체보다 섹스를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그 상황이 물은 안는 듯한 공허감과 초조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깨닫는다.


  읽는 동안, 남편의 동성 애인까지 스스럼 없이 대하는 쇼코가 궁금했다. 심리와 동기는 무엇일까. 불안한 정서 탓에 무츠키에게 의지하는 것일까. 기묘한 상황에 종속된 감정을 느끼고 무츠키의 욕구에 순종하는 것인지. 혹은 '착한 아이'가 되어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일지. 쇼코의 히스테릭한 표현은 역할 갈등이 아니었을지 짐작했다.


 


  그러나  쇼코는 그 이상이었다. 심지어 곤은 무츠키가 직장에 있는 낮 시간 동안 자주 신혼집에서 쇼코와 시간을 보낸다. 쇼코가 무츠키와 곤의 정자를 섞어 인공수정 하겠다는 결심을 전해듣고, 무츠키에게 주먹질을 하고 떠나기까지 한다.


  결국 곤이 떠나고, 쇼코와 무츠키는 서로를 교정하고 일반적인 가정으로 거듭나겠지 막연히 추측했다. 처음 쇼코는 곤을 찾아 일주일을 정신 없이 보냈고, 집안에 남아있던 곤의 흔적을 정리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무츠키도 일상으로 복귀한다. 결국 한바탕 신혼 초의 해프닝이었을까. 어쩌면 둘의 관계가 일반 상식선 안으로 들어왔을 때, 섣부르게 힐링이란 말로 둘의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타인 시선,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 진정한 힐링일까.

  쇼코는 색다른 선택을 했다. 9월 30일 둘의 결혼기념일. 무츠키에게 놀랄 만한 선물을 한다. 무츠키는 아랫층 202호에서 파티를 한다는 소쿄가 엉뚱하지만 내려가 보는데, 거기에는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기다렸다. 곤이 머리에 리본 장식을 한채 말끔히 서 있었고, 곤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아랫층에 있었다. 곤은 이제 이웃이었다.


  쇼코가 말한 은사자 비유가 떠올랐다. 색소가 희미한 사잔데 은색이다. 그들은 무리로부터 배척당하며 어쩔 수 없이 자기들만의 공동생활을 한다. 심지어 더위와 추위에 약하고 초식으로 연명한다. 쇼코는 무츠키와 곤, 게이 친구들을 은사자로 비유했지만, 무츠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답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며늘아기도 은사자처럼 보이는구나"


  책을 덮은 후, '반짝반짝 빛나는' 이란 표현이 어렴풋이 잡혔다. 통상적인 사회에서 벗어난 그들과 그들의 관계는 일반인들에겐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겠고, 그래서 공동생활을 하며 서로를 보듬어야 하지 않았을까. 쇼코는 은사자 같은 그들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 인물이었다. 마치 은사자의 갈기가 바람에 날려 빛나듯, 작가는 그들을 반짝반짝 빛나는 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묘한 관계 또한 교정과 힐링의 대상이 아닌, 나름의 생리를 유지해 나가며 서로를 보듬어 안았던 덕분에 반짝반짝 빛날 수 있었다는 역설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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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두 번 숨다 탐 철학 소설 19
황희숙 지음 / 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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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비트겐슈타인의 케임브리지 귀환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 신이 도착했소."버트란트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을 알게 된 것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적 모험 가운데 하나였다"고 소회했다. 『비트겐슈타인, 두번 숨다』는 현대 철학의 큰 획을 그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동시대의 지성들도 찬탄했던 그의 삶을 그린 철학소설이다.

  1930년대 후반, 미국 유학 중인 신여성 지효는 무작정 친구 '반 다인'과 함께 시대의 지성 비트겐슈타인을 찾아 영국으로 떠난다. 비트겐슈타인의 행적을 추적한 내용, 그와의 만남과 사상에 관한 지적 여정을 청갈색 노트에 기록했다. 시간은 흘러 지효의 외손자인 중학교 2학년 상우의 가족은, 어느날 외가 서재에서 지효의 유품 청갈색 노트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춘천 외가로 향한다. 상우의 가족은 노트를 읽으면서 지효의 여정과 비트겐슈타인에 대하여 알아가게 된다.


  지효는 집안에서 법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길 바랐으나, 마음은 철학에 있었다. 무작정 비트겐슈타인을 찾기 위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러셀을 만난 후,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수수께끼 같은 지도를 해석해서 오스트리아를 경유하여 노르웨이 오두막에 은둔해 있던 비트겐슈타인을 만난다. 1937년 그는 '철학적 탐구'를 저술하고 있었다. 철학자와의 만남 이후로도, 비트겐슈타인을 알기 위한 탐구를 지효는 청갈색 노트에 기록해 나간다. 친구의 이름이 미국의 추리소설가와 같은 '반 다인'이었듯, 지효의 여정은 마치 추리소설을 방불케 했다.


  21세기를 사는 상우는 지효의 노트를 읽으며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빠져든다. 지적 감수성의 자극제이자, 세상을 보는 스펙트럼으로 다가왔다.  '철학이 유리병 속에 갖힌 파리에게 출구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는 지론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명제에 마음이 끌린다.


  외할머니의 노트는 마치 새로 받은 클래식 기타 악보 같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타 소리를 들으려면 일단 시작해야 하고,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새 곡을 만났을 때 기타를 천천히 치면서 악보를 한 장 한 장 넘기듯이, 외할머니의 노트를 읽어 가기로 했다. p.31

 지효의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사상적 여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그의 전기 작품인 『 논리-철학 논고』,  후기 작품인 『철학적 탐구』, 임종 전까지 집필했던 『확실성에 관하여』의 탐구였다. 아마도 그녀의 청갈색 노트의 의미는, 비트겐슈타인이 케임브리지 교수로 재직 당시, 제자들에게 기록하게 했던 '청색책', '갈색책'의 지효식 추리버전이 아니었을까.

  비트겐슈타인은 전기 철학에서, 언어의 그림이론을 바탕으로 모든 철학의 문제는 언어의 논리를 오해했기 때문에 발생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그러나 지효를 만났을 때의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그의 전기 사상에 오류를 발견하고 고치고 있었다. 그는 『논리-철학논고』의 서문에서 본질적인 점에서 문제들을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밝힐 정도로 자신만만했으나,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인류학적 관점에서 '삶의 양식'을 통해 새롭게 조망하기 시작했다. '말놀이', '가족유사성' 의 개념을 활용한다. 대화 상대방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과 그러한 유사성으로 인해 언어의 오용이 생기는데, 여기서 무의미한 철학적 문제들이 파생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시간이란 무엇인가, 수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들은 언어의 수수께끼에서 발생한,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기 하루 전까지 집필했던 『확실성에 관해서』는 동일하게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다르다는 것을 밝히려고 했다. 토끼 - 오리 그림, 여성 -노파의 그림처럼.


  도시를 안내하는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그는 유명한 장소로 직접 끌고 가는 안내원이 아니었다. 가장자리로 또 도심으로 이리저리 종단, 횡단하게 사람을 끌고 다님으로써 결국 시내를 완전히 알게 하는 그런 이상한 안내원과 같았다. p.160

   지효는 비트겐슈타인의 삶을 보면서, '그에게 가장 엄격한 심판관은 종교적 신이 아니라, 양심, 즉 그 자신의 가슴 안에 사는 신'이었다고 말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최전선에서의 군복무, 포로수용소에서 논리- 철학 논고를 탈고한 일, 초등학교 교사에서 자신의 철학적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일, 막대한 유산 상속의 포기. 그리고 은둔, 2차 세계대전 당시 케임브리지 교수에서 병원의 약국 배달원으로의 전직. 자신의 철학을 과감히 수정한 것과 의식을 잃기 하루 전까지 집필에 몰두했던 집념.이 모든 것들이 그의 양심의 궤적이었다.


 그에게 가장 엄격한 심판관은 종교적 신이 아니라, 양심, 즉 그 자신의 가슴 안에 사는 신'이었다. p.160

  상우에게 비트겐슈타인은 소통이었다. 깐깐한 교육열을 가진 엄마에게 단절감을 느꼈다. 상우는 가족유사성의 개념을 통해 가족에게서 서로가 동일하진 않지만 비슷한 면모를 발견하게 되고, 말게임은 가족 간의 단절감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 다른 규칙과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대화하는 사이, 틈이 벌어졌던 것이다. 상우의 가족은 지효의 청갈색 노트를 함께 읽으면서 비트겐슈타인이란 공통화두가 생겼다. 결국 엄마는 상우를 이해하게 되고, 상우는 지효의 마지막 결론을 마음 속 깊이 새긴다. 미국 유학생 상우의 누나 수우는 상우에게 외할머니의 영문 저서를 저술한 사실을 알려준다. 정치철학서, 여행사진집. 결국 지효도 집안의 기대와 달리 스스로 철학전공을 선택했고, 훌륭히 해냈던 것이다. 


  나도 비트겐슈타인처럼 마지막 순간에는, 멋진 삶을 살았노라고 말하고 싶다. 비트겐슈타인은 천재로서 그의 의무를 다했다. 나, 상우는 평범한 중학생이지만 내 의무를 찾아내서 다 해내고 싶다. 내 가슴 안에 있는 신, 나의 양심이 보기에도 흡족하도록." p.174

   매력적인 신여성 지효. 지효가 무작정 추리소설처럼 추척하고 소통한 대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철학에 대한 요점들, 양심의 궤적. 청갈색 노트를 통해 세대를 넘어 지효와 비트겐슈타인을 만났던 상우. 그리고 상우의 삶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삶이 가지는 함의. 다만 책의 분량이 이들의 매력을 담아내기에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많은 형이상학적인 철학의 난제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시각은 인상 깊다. 언어의 오용으로 인한 수수께끼로서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 철학은 이러한 유리병에서 벗어나 명료한 사고를 갖게 하는 활동이라는 것. 단지 철학의 문제뿐만 아니라, 논리적 오류와 말장난이 난무하는 시대, 상우의 가족처럼 소통이 부족한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번쯤 비트겐슈타인처럼 내 가슴 안의 신, 양심에 따라 엄밀한 태도로 세상을 분석해 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의 유언처럼 멋진 삶을 살았노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에게 전해주게. 나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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