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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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자기 이외의 누군가가 마음을 담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영양이 되는 것이다. -p.267"


영화로도 제작된 일본 작가 오가와 이토의 장편 소설 <달팽이 식당>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한 구절을 옮겨보았습니다. 푸르르면서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 덕분에 추운 날씨임에도 훈훈하게 읽어내려갔습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코끝에 와닿는 어떤 향기들이 저를 고스란히 시골의 한 작은 식당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은 영화 속의 음식과 상냥한 주방의 장면들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활자만으로도 그 기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체격이 작고 가녀린 린코(혹은 링고)가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식재료를 대하는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달팽이 식당>은 이미 100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설입니다. 오가와 이토라고 하면 비교적 최근 작품인 츠바키 문구점>을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소설을 피하는 편이라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달팽이 식당도 이번이 첫 만남입니다.



누구에게나 첫 번째 만남이란 무척 중요합니다. 식당의 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간 저는 그렇게 잔잔한 느낌으로 링고를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쌓아 올려왔던 게,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음에도 다시 시작할 결의를 다진 그녀를 어떤 표정으로 만나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지켜보는 사이에 - 향긋한 음식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 힐링의 감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정성이 먹는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가재도구와 함께 남자친구가 사라져버렸음을 깨닫습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낌새도 없이 그녀의 전 재산까지 들고 없어졌습니다. 다행히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남겨준 겨된장 항아리만은 무사했습니다.



당황하거나 슬퍼하지는 않았지만 별안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겨우 남아있는 동전 몇 개를 들고 겨된장 항아리를 껴안은 채 엄마가 살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엄마가 묻어놓은 돈을 가지고 달아날 셈이었는데, 애완 돼지 엘메스에게 들키는 바람에 야단법석이 일어납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있기에 여기서 살고 싶지는 않았지만 별 수 없었던 링고는 엄마의 집 창고를 빌려서 작은 식당을 엽니다. 그게 바로 '달팽이 식당'입니다. 모든 걸 다 잃어버렸지만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레시피까지.



여러 음식점에서 일하며 요리사를 꿈꿔왔던 그녀인지라 세계 각국의 요리법까지 섭렵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아직은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에 조용한 시골 마을의 작은 식당 요리사가 되기로 합니다.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나아가는 자신이 되기로 합니다.



손님을 위한 음식을 천천히 준비하는 식당이니만큼 손님은 하루에 한 팀만 받기로 합니다. 손님의 성격이나 사연, 필요에 맞는 요리를 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런 마음이 닿아서였을까요, 달팽이 식당에서 식사를 한 손님들에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딸을 데리고 멀리 떠나갔던 구마씨의 아내 시뇨리타가 돌아온 게 바로 그 시작점이었습니다. 그 후로 상복만 입고 있던 할머니, 거식증 걸린 토끼를 돌보길 원했던 어린 소녀 등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유명세를 치르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달팽이 식당은 점점 성장해 나갑니다.



그리고 링고에게 커다란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제는 자신이 음식을 통해 치유와 기적을 맛볼 차례입니다. 그런 그녀를 저는 활자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였습니다.



과거의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쁜 얼굴로 음식을 먹는 걸 보며 행복해했습니다. 지금은 퇴색해버린 게 아닐까 싶지만, 역시 내가 만든 혹은 제공하는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이를 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링고처럼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저는 제가 있는 자리에서 단 한 사람을 위한 요리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링고의 요리를, 먹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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