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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달 별 사랑 ㅣ 고블 씬 북 시리즈
홍지운 지음 / 고블 / 2022년 12월
평점 :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는 커피숍에서 진하고도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기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우주 달 별 사랑>이라는 제목과 표지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거친 세상 속에서 피어나는 아련한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후의 감정은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귀여우면서도 웅장한 사랑의 대서사시를 본 것 같은 기분에 젖어 한동안 그 안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소년과 소녀가 보여주는 사랑은 연애 감정 같은 게 아니라 모든 세상을 아우르는 심장과 같은 거였습니다. 너와 내가 서 있는 이 우주와 지구, 달, 별 모든 걸 감싸 안는 감정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달 등대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 오가는 우주선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지키던 소년 핀이 있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오히려 나쁜 사람이 더 많다고 했어.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해서 반드시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라고 했고"
-p.38
자신을 지켜주던 할머니를 잃은 소녀 메이는 자신을 도와줄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할머니가 착한 사람이 나를 도와줄 거라고 했어. 그리고 핀은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어.
그렇다면 핀은 착한 사람인 거지?"
-p.37
그렇게 만난 그들은 생존을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신비한 소녀 메이는 달나라에서 살고 있던 선주민, 월인이었습니다. 달을 개발하고 개척하는 일을 맡은 회사에서는 무차별적인 개발을 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월인과 광부들의 희생이 따랐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표현을 하는 건 마땅치 않았습니다.
메이는 동족을 잃고 마침내 할머니까지 잃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마지막 힘을 써서 메이를 날려보냈는데, 그 힘에는 아마도 메이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생존하고 존재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할머니의 소원이 그림자에 실려있던 모양인지 달 등대지기를 하는 소년 핀이 메이를 발견하여 구출합니다. 언뜻 보아도 지구인과는 다르게 생긴 외모 때문에 조용히 숨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합니다. 자그마한 소녀의 사연을 듣고는 돕기로 결정합니다.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물방울 안에 들어있던 소녀가 신기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길을 잃지 않게 돕는 게 자신의 사명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을 설명합니다. 소년 핀은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또렷한 힘이 있었습니다.
메이는 월인 특유의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몰랐습니다. 게다가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내 감추고 있었기에 - 우리 표현으로 하자면 초능력 같은 걸 원활하게 쓰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켜야 하는 것,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되찾아 갑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었던 그들 앞에 요안이라는 야망가가 나타납니다.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 나는 좋은 사람이야.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들을 좋아해. 너도 그렇게 될 거야."
-p.113
하지만 그의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를 말합니다. 애초에 메이의 시련은 '좋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바로 그, 요안 때문에 시작되었던 겁니다.
핀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었죠.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치고 그런 사람 없다고.
아마도 이 자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이 소설은 외로움 속에 있던 이들이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합니다.
저는 종종 공허한 바다에 떠있다는 감정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잠시나마 그 바다에서 나를 떠받히고 있는 무언가가, 누군가가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