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온전히 나답게 - 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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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아는 사람에게 전자책을 빌려줬었는데, 돌려받고 나니 도대체 무슨 책을 읽었을지 궁금해졌다. 평소에 생각이라고는 질색을 하는 사람이다. 글자를 읽어본 적은 대학 졸업 이후 한 번도 없다. 책과 가장 안 어울리는 사람을 꼽자면 상위권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책을 읽는다. 이유가 뭘까? 책에서 무엇을 얻으려 한 걸까? 그걸 알 수 있다면 나도 이른바 공감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읽지 않는 사람들의 감성을 간질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한마디. 나는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정체성에 대한 고민. 즉 나는 누구냐에 대한 답.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삶의 취향과 목적이 뚜렷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람들은 늘 자기 정체성의 모호함을 두려워한다. 나는 혹시 껍데기 뿐인 인간인건 아닐까?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해주는 '진짜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래서 <온전히 나답게>라는 제목부터가 구미를 당긴다.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온전히 나다운 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거나 온전히 나답게 사는 법을 배우고 싶었을 것이다. 이 순간 나는 사람들의 이중성에 놀라고 만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회가 정한 모범 사례(좋은 직업, 좋은 패션, 좋은 배우자, 좋은 태도, 좋은 외모)를 원하면서 한편으로는 열과 성을 다해 그들과 나를 구분하는 뭔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에겐 평범하면서 동시에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 공존한다. 먹히는 글을 쓰기 위해선 이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그것을 철저히 활용하고 숨기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구체적 행동지침을 제공하는 것. 나는 그 친구가 이런 가벼운 에세이를 그토록 빽빽하게 줄을 그어가며 읽을 줄은 몰랐다. 그가 칠해 놓은 형광펜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 중 두 가지를 살펴보자.


무언가를 배우려면 무언가를 해야된다.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p. 13).


이 말을 해석하면 이렇다. 좋은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선 따로 뭔가를 배워야 한다. 포트폴리오가 될만한 뭔가를. 연봉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 38페이지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힘들고 그만두고 싶을 때는 아무 생각도 안 하는 편이 낫다. 그저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p. 38).


이 말을 해석하면 이렇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는 아무 생각도 안 하는 편이 낫다. 그저 그 생각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또 월급날이 돌아오니까.


그는 13페이지에서 이직의 꿈을 품었다가 25페이지만에 회사를 관두고 싶은 마음을 깔끔히 접었다. 책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셋째, 공감과 위로, 그리고 합리화. 게으르고, 바보같고, 한심하고, 멍청한 나의 모습이 비단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공감과 위로. 나아가 그런 삶이 결코 잘못된 게 아니라는 합리화가 이런 류의 책을 읽게 하는 핵심이다.


다른 인간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이 오해라고 해도 별 상관이 없다(p. 36).

내 오해로 촉발된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는 충분히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딱히 내 잘못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게 묵묵히 만들어 나가다 보면 어쩌면 나도 무언가를 이룰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42p).

'그렇게 묵묵히 만들어 나가다 보면' 이 '생각없이 출근하고 퇴근하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출근하고 퇴근하다 보면' 으로 비약한 것이 분명하다.


인생은 자기 합리화의 과정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77p).

이보다 더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의 외모나 피부색이나 옷차림으로 그를 판단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간사한 본능이라 생각한다(91p).

내가 소개팅에서 외모를 이유로 상대방을 깐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같은 이유로 미용과 패션에 쏟아붓는 나의 소비는 전적으로 옳은 행위다.


아무리 새로운 물건도 빛이 바랜다. 어딘가에 돈을 쓰고도 아깝지 않으려면 경험에 쓰는 것이 가장 낫다. (중략) 비록 우리가 곧 모든 것을 잊게 된다 하더라도, 여행은 투자 대비 효용 가치가 가장 높은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p109).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빠져나간 지출 금액과 갔다 와봤자 전혀 달라지지 않은 일상 때문에 굉장한 허무가 몰려오는데, 이런 감정을 한방에 날려주는 명쾌한 문구다. 우리의 현실 도피, 그 허무한 행위는 사실 투자 대비 효용 가치가 가장 높은 일이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쓰자. 더 쓰자. 마음껏 쓰자.


나는 YOLO라는 게 한동안 큰 이슈가 됐던 건 삶의 허무를 소비로 채우려는 사람들에게 철학적 근거를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뿐인 인생 즐기자는 말은 사실 오랜 시간 마케터들이 갈고 닦아온 메시지가 아닌가. 이 익숙한 메시지에 누군가 세련된 껍데기를 입혔다. 욕망을 자극하는 거짓 메시지는 때때로 진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인생을 즐기는 게 정말 잔액이 0이 될때까지 탕진하는 거라면 우리는 허무의 바위를 죽을때까지 굴리는 시지프스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YOLO는 21세기 소비 사회가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이다.


이상 세 가지를 종합하면 사람들은 책을 통해 뭔가 해답을 얻고 싶어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혹은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 좋은 책은 해답을 제공하기보다는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책을 나쁘다고 말한다. 그래서 답이 뭔데? 나보고 직접 생각하라고? What the...!!


모르긴 몰라도 이 에세이의 작가가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취한 사상적 토대는 이런 류의 값싼 에세이로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아마 도스토옙스키과 빌 브라이슨과 줌파 라히리에서(에세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작가들) 사고의 양분을 얻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에세이는 생각을 많이 한 사람들의 족집게 과외 같은 건데, 나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몇 개의 족집게 유형 해설로는 딱히 강의를 듣지 않았어도 풀 수 있었을 문제를 풀게 될 뿐이다.


족집게 과외만 듣다가 언젠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족집게 과외를 엄청나게 많이 들어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면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나가는 건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남의 걸로는 나를 만들 수 없다. 가끔 참고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에게 이 책이 좋은 참고 대상이 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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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 졸업을 앞둔 너에게
커트 보니것 지음, 김용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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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5 도살장>으로 시작했다. 트랄파마도어 행성에 애완지구인으로 잡혀간 적이 있고 그들로부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인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뻔 했다. 2차 세계대전에는 포병부대에 관측병으로 참전했다. 단 한 명의 독일인도 죽이지 못했고, 그 탓에 독일인들의 포로가 되었다. 드레스덴. 소이탄이 유서 깊은 건물과 문화를 녹이는 동안 나는 제5 도살장의 지하에 쥐새끼처럼 숨어있었다. 떨림이 모두 멈추고 난 뒤, 독일인들은 완전히 항복을 선언했다. 나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가진 건 하나도 없었지만 꽤 잘 사는 여자와 결혼했다. 장인의 후원으로 검안사가 되었다. 사업은 잘됐다. 아마 아이도 낳았을 것이다. 그렇게 몇 년간 행복한 삶을 살았다. 트랄파마도어에 애완 지구인으로 잡혀가기 전까지.


짹짹?


<제5 도살장>은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우리에겐 두 개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하나는 제5 도살장을 떠나 영영 커트 보네거트와 작별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좀 기괴하다. 트랄파마도어인에게 납치되어 그들의 애완지구인이 되는 것이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트랄파마도어인들은 내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인지하는 법을 배우기 직전 나를 지구로 돌려보냈다. 이유를 물어보니 비자가 만료됐다고 했다.


무슨 비자?


커트 보네거트가 죽었다는 말이었다. 친절한 외계인들은 트랄파마도어와 지구의 가교 역할을 하던 그 독일계 미국인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무의 세계로 떠난 탓에 아쉽지만 두 별의 교류도 그것으로 끝이라고 했다. 그들은 떠나는 나에게 커트 보네거트의 전집을 선물했다. 나는 이걸 전부 내게 주고나면 당신들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당신들은 이 남자를 잊을 생각인가요? 당신들과 이 남자 사이의 우정은 고작 그 정도였나요? 그들은 커다란 네개의 눈을 깜빡이며 서로를 바라봤다. 아마도 내 말을 이해하느라 한참이나 고민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고 있으므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가 그를 잊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안심하고 지구로 돌아가세요.


그렇게 가는거지.


나는 커트 보네거트가 보고 싶을 때면 그의 마지막 소설 <타임퀘이크>를 꺼내 아무 페이지나 읽기 시작한다.


딩동댕! 딩동댕!


그리움이 늘 봄볕을 맞은 눈처럼 녹아내리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선 견딜 방법이 없다. 그리움은 뼈에 사무친다.


내가 <그래, 이 맛에 사는거지>를 산 이유는 트랄파마도어인들의 선물 보따리에 이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별을 떠나올 땐 아직 이 책이 출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아는 그들은 이 책의 존재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들이 왜 이 책을 빼먹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필요한 것이었다면, 그들은 직접 써서라도 이 책을 나에게 줬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내게 이 책이 필요없다고 생각한 게 분명하다. 나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트랄파마도어인들은 지구인보다 훨씬 더 많이, 그 남자를 알고 있다.


이 책은 커트 보네거트라면 무조건 구미가 반응하는 골수팬을 잡아 먹기 위한 파리 지옥이다. 당신이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면 어차피 아무런 경고도 무의미할테니, 나는 이제 소화액 속에 누워 누가 또 여기로 굴러 떨어지는지 구경이나 해야겠다. 여러분, 꼭 사서 읽으세요.


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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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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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우직하게 전진하는 담백한 소설을 읽고 싶다. 반전도, 상징도, 복잡한 플롯도 없이, 직선대로를 달리는 소설. 그런 걸 읽고 나면 이야기가 가진 순수한 힘을 믿게 된다. 인간을 고양시키고,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끄는 순수한 힘 말이다.


<오픈 시즌>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소설의 담백함을 알아차렸다. 수렵감시관이 주인공이라면 광활한 대지와 산이 배경으로 등장할 건 분명했다. 이 모든 조건은 코맥 매카시에 대한 나의 향수를 지독하게 자극했다. 더 이상 그의 소설을 읽을 수 없기에 나는 그의 후계자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지난 몇 년간 나의 독서는 그 후계자를 찾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C.J. 복스는 코맥 매카시의 후예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를 실망시켰냐고? 절대. 나는 새롭게 발견한 이 시리즈에 내 시간을 온전히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오픈 시즌>은 조 피킷(시리즈의 주인공) 시리즈의 첫 책이고, 이 책은 이미 열일곱 권이나 나와 있으니까. 내가 할 일을 그저 서재에 앉아 기다리는 것 뿐이다.


매카시의 주인공들이 늘 무거운 숙명을 짊어진 상처받는 영혼, 혹은 기어이 상처를 얻고자 발버둥치는 우울한 영혼이라면 조 피킷은 그런 고민 따위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맑은 남자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헌신하며,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박봉의 공무원. 한 마디로 옛날 사람. 이처럼 맑은 남자에게 미묘한 악의 고뇌가 파고들 여지는 없다. 잘못한 건 잘못한 거고, 잘한 건 잘한 거다. 마치 서부 개척 시대의 이상화된 남성상을 보는 것 같아 깊이에 아쉬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저 말을 타고 시원하게 초원을 달릴 때도 필요한 법이다. 단조로운 배경이 귀 뒤로 넘어가고, 상쾌한 바람이 머리를 스친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 내 가족에게 총질을 한 놈을 찾아, 똑같이 산탄총을 날려준다. 


뱅!


떨어져나간 악인의 팔이 공중을 날으며 카타르시스를 뿌린다.


나는 이제야 막 첫 책을 본 셈이므로 이 남자가 어떻게 변해갈지 알 수는 없다. 어른이 되가는 과정을 우울과 악으로 채워 넣은 <해리 포터>처럼 조 피킷의 시냇물도 번뇌와 어둠에 삼켜질까? 마음이 맑은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을 이룬 사람에게 악의 모습은 숨길 수 없는 낙인으로 나타난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은 구별할 필요도 없이 명확하다. 조 피킷이 총을 꺼낸다면 이유는 단 하나 뿐이다. 그 단순함이 감기로 막힌 내 두 코를 뻥 뚫어준다.


앞으로 그와 함께할 여행이 기대된다. 조 피킷의 암말 루시를 타고, 혹은 그의 픽업 트럭의 짐칸에 앉아, 와이오밍의 빅혼산을 질주하는 상상을 해본다. 저 멀리 석양 속으로 사라져가는, 엘크의 성난 뿔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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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의 미래 - 콘텐츠 함정에서 벗어나는 순간, 거대한 기회가 열린다
바라트 아난드 지음, 김인수 옮김 / 리더스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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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고나면 언제나 화가나곤 하는데, 그래서 종종 객관적이지 못한 판단을 내릴때가 있는 것 같다. 썩은 뻘에서도 진주는 나올 수 있고 더러운 응가도 비료가 될 수는 있으니, 앞으로는 최대한 진주와 비료를 찾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욕을 해봐야 남는 건 없으니까.


콘텐츠의 미래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네트워크 효과'에 대한 찬양서다. 네트워크 효과란 특정 상품에 대한 어떤 사람의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영향을 받는 효과이다. 쉽게 말해 대세론 같은 것. 그래서 모든 기업들이 그렇게 점유율에 목을 매는 것이다. 점유율이 떨어지는 건 단순히 매출의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 급격한 매출의 감소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줄어든 사용자가 남아있는 사용자의 이탈을 더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요즘 대세는 아마도 <배틀그라운드>일 것이다. 온라인 게임은 일단 사람이 많아야 랭크 매칭도 쉽고 같이 하는 맛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deadPXsociety>라는 게임이 나와서 돌풍을 일으켰다고 하자. 사람들이 배틀그라운드를 잠시 접고 <deadPXsociety>로 몰려간다. 사용자가 줄어든 배그는 비슷한 레이팅의 사람들을 묶어 한 방을 구성하기 어려워지고, 게임 대기 시간의 증가와 유저간 실력 편차로 인한 플레이의 긴장감은 떨어진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내 친구가 더 이상 이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온라인 상에서 하는 행동이 사실 거의 모두 소셜 액티비티다. NETFLIX를 보는 이유도 결국엔 "너 하오카 봤어?"를 말하기 위함이고 실시간 검색어를 찾아다니는 이유도 "야 그거 알어?"를 전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래서 네트워크 효과는 아주 중요하다. 태풍 두 개가 고만 고만 경쟁하는 듯 보여도 한 쪽이 조금이라도 커지는 순간 다른 태풍을 완전히 집어 삼키는 결과가 초래된다. Facebook의 마크 주커버그는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주커버그가 CFO인 새버린에게 "우리 시스템은 단 한번도 다운된 적이 없다."고 말하며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강조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그만 이탈이 결국 MySpace를 무너뜨리고 Facebook을 세웠듯이 똑같은 일이 Facebook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이런 얘기를 665페이지에 걸쳐서 할 건 아니다. 저자 바라트 아난드는 네트워크 파워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도무지 이야기를 끝낼줄을 모른다. 제목을 네트워크 파워와 관련된 걸로 지었다면 천번 양보해 알겠다, 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미 다른 책들이 선점한 키워드인지 콘텐츠를 물고 늘어진다. 콘텐츠가 제일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편견을 강타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음은 잘 알겠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예컨대 정말로, 네트워크 파워만 있으면 서비스가 성공하냐는 말이다. 한 예로, 저자는 애플의 성공 요인을 네트워크 파워에 눈 뜬 사업 전략 탓이라고(3rd 파티에게 자유로운 앱 개발 권한을 부여, window와 mac 모두에서 사용 가능한 기기들) 하는데 일견 맞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왜 애플은 더 큰 네트워크 파워를 가진 Android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는 걸까? 두 OS간 점유율 차이는 1.5배나 되는데도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이론을 강조하기위해 몇가지 중요한 질문을 노골적으로 무시한다.


첫째, 형성된 네트워크의 힘을 찬양하면서도 애초에 그 네트워크를 이루게 하는 힘이 뭔지에 대해선 설명을 생략한다. 네트워크 파워가 전부라면 애초에 Facebook이 MySpace를 무너뜨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태풍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거기엔 어떤 이유가 존재한다. 저자의 찬양론은 이미 네트워크 파워를 이룬 기업들이 그것을 이용해 더욱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애초에 어떻게 그걸 형성하는지에 대해선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네트워크 파워를 확보한 뒤에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광범위한 전략을 내놓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사업 요소를 더 철저하게 연결하라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그러면 그 힘을 어디까지 키워야할까? iPhone같은 창조적 파괴자를 숨도 못 쉬게 할만큼 짓밟아버리려면 얼마나 커야 하냐는 말이다. 온 우주를 덮을 정도로? 한때 나는 MS가 세계를 지배할 거라 생각했다. 온 세상 모든 컴퓨터에 윈도우와 오피스가 깔려 있었으니까. 저자도 인정하듯이 그 미국놈들보다 네트워크 파워를 잘 이해하는 조직은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 책을 읽으며 확실히 배운 점 한가지는 뭔가에 심취해 극단적인 판단을 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을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만능키를 원한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창. 하지만 그 창이 언제든 우리의 목을 찌를 수도 있다는 걸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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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지 않는 법 - 수학적 사고의 힘
조던 앨런버그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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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이야기로 가르칠 수는 없을까? 영희가 빨간공 2개를 철수가 검은공 3개를 가졌다. 철수와 영희가 가진 공은 모두 몇 개인가 수준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로 된 수학 말이다. 그러니까 MMORPG의 퀘스트 같은 걸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학습자가 단계별로 원리를 파악하고 스스로 생각해 문제를 해결한 뒤 마침내 계산을 하는 것. 세상이 이토록 많이 변했음에도 우리의 교육은 20세기 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건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아마도 효율이 문제였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배워야 할 걸 모두 가르치기 위해선 수학을 '개념화'해 상자 안에 담아야 했을 것이다. 이야기는 너무 길고 거창하다. 어떻게 평가를 해야하는지도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문제를 그대로 방치해왔다는 건 이 업계의 근무태만도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드론이 날고, 운전자없는 자동차가 다니는 시대가 아닌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게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깊이 있는 지식보다 별거 아닌 상식이나 명언 따위에 오히려 열광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이런 분야의 지식들은 확실히 뭔가 하나를 '알았다'는 느낌이 든다. 어디가서 아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것, 결국 쓸모가 있다는 것. 결국은 이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다.


배워도 아무 쓸모가 없는 교육 중 최고를 꼽으라면 아마 수학일 것이다. 지겹도록 외웠던 근의 공식은 지금 어디에 있지? 2차원 평면에 눈이 빠져라 좌표를 찍어 기울기와 절편을 구했던 경험은? 가방 안에서 그 빌어먹을 빨간공과 검은공을 꺼내는 일은 또 어떤가? 나는 그 대목에서 거의 실신할 뻔했다! 수포자가 생기는 이유는 전적으로 교육의 문제다.


그런데 여기 메사추세츠 복권 사업에 뛰어든 MIT 학생들이 있다. 그들이 매주 30만장씩 로또를 사서 구매 금액의 3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면 믿겠는가? 그들은 각 등수의 당첨금에 당첨 확률을 곱해 기대값을 계산했다. 그 기대값이 충분한 수익이라는 게 밝혀지자 이 천하의 운빨 게임은 예측이 가능한 '일'로 바뀌었다. 그들은 최초의 전업 로또 구매자가 됐다.


이들이 사용한 방법이 바로 수학이다. 곱셉만 알면 누구나 적용 가능한 평범한 이론이었다. MIT 학생이어서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수학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본질을 스스로 꿰뚫은 반면 우리는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결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 누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기만 하면 우리도 그들처럼 될 수 있다. 근대의 공교육은 원래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깨우치는 천재들을 위한 게 아니다. 알려주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둔재들을 일깨워 그들을 똘똘한 아이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경제 발전을 위해 튼튼한 '중산층'이 필요하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틀리지 않는법 - 수학적 사고의 힘>은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수학에 '대한' 책이다. 모든 이야기들이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수학이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이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어떤 물질이 암을 일으키는 것과 무관함이 밝혀졌다는 연구 발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말이(상관관계) 왜 흡연을 하면 폐암이 생긴다(인과관계)와 다른지를 알려준다. 무려 600쪽에 달하는 책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이런 사람에게 수학을 배웠다면 우리 모두의 인생은 확실히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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