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다시 여름, 한정판 리커버)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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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의 시를 처음 봤을 때, 그의 시는 시릴정도로 아리고 깊어서 나같은 사람은 도저히 닿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시는 나와 동일한 언어로 구성되는 데도 불구하고 완성된 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언어처럼 느껴진다. 그의 시를 읽고있으면 시인은 태생부터 다르다는 말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던 시인은 울고 또 운다. 이 책은 산문집으로 팔리고 있지만 실상은 시인지 산문인지 구별되지 않는 문장들이 초겨울의 낙엽처럼 쓸쓸하게 떨어져내린다. 단어 하나 하나에 시리듯 베어있는 감정들은 조금이라도 시선을 돌리거나 무관심으로 지나치면 툭, 하고 터져 눈물을 흘릴 것만 같다. 어째서 시인들은 신경쇄약에 걸리지 않는 걸까? 돌담을 스치는 바람에도 가슴이 에는 통증을 느낀다면 삶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무너져내릴 것이다. 시는 무너져버린 삶을 다시 쌓아올리는 작업일까, 아니면 무너지지 않도록 빗대어 놓는 버팀목일까? 무엇이 됐든 시는 아리고 슬프다. 아리고 슬픈 시를 나는 읽고 또 읽는다.


어느 곳 하나 힘준 데가 없는데도 그의 문장은 높은 산처럼 다가온다. 그 무게엔 놀라울 정도의 끈기가 담겨 있어 반드시 목적한 곳까지 닿고나서야 주저앉아 해소의 감정을 풀어낸다. 나는 그 발걸음을 본 순간 그것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추격전도, 총격도, 폭발도 없는 드라마인데도 긴장의 끈이 놓이지 않는다. 빨려든다는 표현은 그의 담담한 발걸음과 어울리지 않고 스며든다는 표현은 한 걸음 한 걸음 속에 담긴 힘을 전달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이 담담한 시인의 발걸음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내 언어의 초라함이 나는 슬프다. 따라가기를 멈추고 머리를 쥐어짜보지만 허공에서 물을 긷는 것처럼 손에 쥐어지는 말은 없다. 그동안 시인은, 예의 그 담담한 걸음을 계속하고 내가 할 수 있는건 뒤쳐진 거리를 따라잡아 다시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지켜보는 것 뿐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시인은 울고 또 운다. 마음 한켠에선 누군가의 고통을 이토록 뻔뻔히 구경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하는 걱정이 스며든다. 나는 시인의 어깨를 다독여줄수도, 그의 손을 잡아줄수도 없다. 나는 돈을 주고 그의 책을 사 읽는 것이, 어쩌면 그에 대한 모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살에 갇힌 시인의 고통을 지폐 한장과 바꾼 천박함.


나는 아무래도 박준의 팬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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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건강실록 - 역사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는
고대원 외 지음 / 트로이목마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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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건강실록>은 <조선왕조 실록>이 아니라 <승정원 일기>에서 이야기의 근거를 찾는다. 왕조 실록만큼, 아니 왕과 비빈, 기타 그 가족들과 관련된 병에 대해서만큼은 실록보다 훨씬 상세히 기술한 것이 <승정원 일기>다. 한의학을 전공한 9명의 저자는 방대한 양의 사료를 뒤져 35개의 이야기 꼭지를 뽑아냈다.


크게 1, 2챕터는 왕과 비빈의 생로병사를 기술하고 3, 4에서는 조선시대에 이름을 떨친 의사들과 왕궁에서 향유한 의료 문화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가 9명이나 되어 글의 질이 들쭉날쭉하고 방향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 2챕터는 사실상 지루함과의 싸움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저자들은 의학인으로서, 정치적 관점은 미뤄둔 채 철저히 병에 집중했다고 말하지만 그 탓에 이야기가 빈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게다가 <승정원 일기>가 왕궁의 병사를 아무리 상세히 기술했다 하더라도 현대의 의학인들이 그것만 보고 당시의 병을 진단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시도는 아주 좋아보였지만 결과는 꽤 빈약했다. 현대 의학의 관점으로 당시의 병을 진단하고 가상의 치료를 상상해본다던가, 뭐 이런 파격적인 시도는 애초에 불가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1, 2챕터는 역사 이야기도, 의학 이야기도 아닌 어영부영한 자세로 지루한 줄타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3, 4챕터에서는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물론 여기서도 의사들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관점이나 해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에 집중을 하니 어정쩡한 자세는 똑바로 서고 드디어 방향을 갖게 된다. 조선시대 의학 얘기라 하면 허준과 <동의보감>밖에 알지 못하는 나에게 전설적인 명의들의 이야기는 새롭고 다채로웠다. 동방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지만 의학에서 만큼은 확실한 명성이 있었던 것 같다. 수백년 전에 활약한 꼬레(Corea)의 의사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나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챕터 4는 왕궁이 향유한 일종의 웰빙 라이프 소개서다. 화장품과 차, 각종 건강식들. 왕궁의 소소한 생활상을 써보려는 사람들에게 이 부분은 디테일을 더하는 좋은 아이템이 될 것이다.


<조선왕조 건강실록>은 시도는 좋았지만 좋게 봐줘야 30% 정도의 성공을 거둔 미완의 책이다. 하지만 그 시도는 확실히 박수쳐줄 가치가 있다. <왕조 실록>와 <승정원 일기>에는 이것말고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누군가 이 사료들을 열심히 연구해 조선 역사를 그저 <왕조 실록>으로 퉁치지 않는, 다양한 분야의 독특한 관점을 담은 역사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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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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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의 세계에서 맺는 피상적 인간관계, 반지하 월셋방의 찌질한 인생, 주류 사회에 끼지 못하는 외로움, 독특한 생각과 취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비웃고 뒤트는 시니컬한 유머와 독설. 한국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이 모든 속성들을 골고루 갖고 있는 박상영표 소설에서 다른 뭔가를 하나 찾자면 그건 아마 '퀴어'일 것이다. 동성애. 소외받은 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소외된 인간들.


박상영 소설 속의 동성애자들은, 그러나 사회의 노골적 편견과 몰이해에 고통받는 존재는 아니다. 작중 화자의 말에 따르면 박상영은 결코 동성애를 대상화하여 저급하게 소비하지 않는다. 핍박받는 자들의 절규와 고통으로 그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면 그건 핍박받는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더 나쁜 일이다. 기부금을 받기 위해 TV로 송출되는 자선단체들의 광고를 보라. 화면 안에는 끔찍하게 병들고 다친 수 많은 '불쌍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더 많은 기부금을 끌어내기 위해 가장 처절한 상처를 까뒤집고 전시한다. 광고 속에서 그들은 일종의 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는 불쌍하기 때문에 이해해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연의 섭리를 어기게 된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가장 완벽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그 누구도 그들을 이해하려하지 않는 것이다. 두 사람이 중국집을 갔다고 하자. 한 사람은 간짜장을 다른 한 사람은 짬뽕을 시켰다. 이 경우 두 사람은 서로의 선택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할까? 상대가 짬뽕 혹은 짜짱면을 시킨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여 그 선택의 정당성을 찾아낼까? 무슨 소리. 두 사람은 서로 무엇을 시켰는지도 모른채 그저 자신의 메뉴를 맛있게 먹고 가게를 떠날 것이다. '서울에 사는 27세 남자'라는 말과 '서울에 사는 27세 게이'라는 말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세상. 진짜 괜찮은 세상은 우리가 동성애를 '받아들일'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박상영의 소설들을 다시 읽어 본다. 그는 그가 창조한 작중 인물의 말처럼 동성애를 대상화하여 천박하게 소비하진 않는가? 게이들에게 침을 뱉는 사람들, 퀴어 축제에 난입해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지 걱정된다" 고 소리지르는 '똑똑한' 엄마들,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의 어처구니 없는 몰이해, 그리고 이모든 사회적 편견과 폭력에 시달려 자살하는 게이들. 박상영 소설 속의 게이들은 그 누구도 이러한 폭력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같이 침울하고 허무한 삶을 산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과거의 실수를 무한히 반복하며 스스로를 늪에 빠뜨린다. 이유가 뭘까? 그리고 바로 이 순간, 바로 이 의문을 떠올린 순간 나는 나조차도 엄청난 편견을 가지고 이 소설을 읽었음을 깨닫는다.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 피상적 관계 속에 나와 타인을 이어주던 고리들은 점점 얄팍해지고, 반대로 나를 에워싼 껍데기는 갈수록 단단해지는 사람들. 그래서 외로워지고, 외롭기 때문에 더 외로워지는 인간들. 외로움이 만든 인생의 구멍을 탕진적 소비와 SNS에서 만든 가짜 자아로 채우려는 사람들. 그들은 게이여서 그런 삶을 사는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이 가진 보편적 삶, 보편적 고민, 보편적 고통인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탕진과 방황을 볼때마다 나는 무의식 중에 사회적 편견과 멸시가 그들을 이런 상태로 몰아 넣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니,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은 게이여서 그런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우리와 똑같이,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기에 그런 삶을 사는 것이다.


당신은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답은 멋지고 쿨할 수 있다. 하지만 무의식은? 포용과 친절 속에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끔찍한 편견이 내포되어 있다면? 어쩌면 이 소설은 일종의 테스트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게이에 대해, 정말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판단하는 테스트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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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감각 - 지극히 인문학적인 수학 이야기
박병하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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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세상을 기술하는 언어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창조 설화들이 사실은 인간이 수학을 깨우쳐가는 과정의 메타포가 아닐까 생각한다. 창조 설화들은 모두 신이 무에서 '자신(나)'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최초의 분별. 무와 나를 구별하는 것. 그것은 0에서 1로 나아가는 수학의 위대한 첫걸음과 닮아 있지 않은가?


현대 수학자들은 수학이 철학으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철학자들이 수학에 보내왔던 애정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소크라테스는 혼이 살아있는 인간이 되려면 수학을 공부해야 하며 진정한 지도자를 양성하려면 수학 공부를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칸트는 수학이야말로 진정한 이성의 학문이라고 했다. 근대 수학의 토대를 쌓은건 누구인가? 어느 대단한 수학자가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자(philosopher), 끊임없이 회의하고 회의했던 르네 데카르트 였다. Cogito Ergo Sum!


과거에 수학은 철학과 명확히 구분되는 학문이 아니었다. 당시 철학자들은 생각하는 일을 모두 철학의 범주로 넣었던 것 같다. 나는 이것이 직업이 세분화 되지 않았던 전근대의 한계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철저한 논리로 세상의 이치를 규명하고자 했던 철학자들에게 연역의 정수인 수학이 생소했을까? 그들은 수학적 사고가 아니라 그냥 사고를 했다. 사고 자체가 수학적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에 이르러 수많은 일들이 각자 전문성의 기치를 걸고 세분화된 탓에 우리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수학자, 아니 그냥 생각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을 영영 잃어버린 것 같다. 제가 문과라서 수학이 참 약합니다. 철학과 출신이 어떻게 수학을 이해하겠어요? 놀라운 일이다. 우리 스스로 두 개의 영역을 구분한 순간 우리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 영원히 사라져버렸으니 말이다. 이제는 돌아갈 길이 너무 요원해 보인다. 수학은 끔찍한 공식과 추상화된 기호가 난무하는 괴물이 되버렸다. 그런가하면 철학은 가장 단순한 진실을 가능한 복잡한 언어로 기술하는 뒤틀린 자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수학의 감각>은 수학이 그저 생각하는 방식 중 하나였던 시절로 우리를 돌아가게 한다. <수학의 감각>은 수학이 내포한 인문학적 감수성을 호도하지도, 수학이 가진 전문성을 뽐내지도 않는다. 이 책엔 제곱과 제곱근, 우리를 괴롭혔던 식들이 등장하지만 그것은 사고를 돕는 도구로써 기능할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영에서 하나를 분별하고 하나에 하나를 더해 둘을 연역하듯, 사고는 충분히 단순화된 형식으로 치환되어 문제의 핵심에 도달한다. 수학적 사고란 진정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동안 우리가 받아왔던 수학 교육이 얼마나 헛다리를 짚었는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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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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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드 다이아몬드에게 관심이 생긴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난 다음이었다.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설적 베스트셀러라면 일단 가재미 눈을 뜨고 보는 나이기에 <총, 균, 쇠>의 저자는 그닥 관심이 가지 않았다.


<사피엔스>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역사와 생물학, 역사와 과학이 결합된 새로운 서술법. 국가나 민족을 뛰어넘어 인류 그 자체를 냉정하게 해부하는 과감한 시도. 인간이 언제나 역사의 주체임을 무의식 중에 받아들이던 나에게 철저한 객체로 존재하는 인간은 인식의 한계를 확장시키는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라리는 그 책에서 자신이 <총, 균, 쇠>에 빚을 졌다고 밝혔다. 자연스럽게 내 다음 행선지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총, 균, 쇠>는 여름 휴가철에 들고갈 수 있는 만만한 책이 아니다.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읽을 때도 오독을 방지하기 위해 연달아 두 번씩 정독했다.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그러니 마음이 가도 선뜻 손을 내밀 수 없는 모호한 관계가 나와 제러드 다이아몬드 사이에 유지되어왔다. 그러던 중 바로 이 책을 만난 것이다.


<나와 세계>는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완벽한 입문서다. 원래 이 책은 저자가 로마 루이스 대학의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일곱번의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 글은 구어체로 기술되어 쉽게 쉽게 읽히고 내용은 교양 수업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다. 이 세계가 직면한 문제점과 그 문제를 해석하는 틀을 명확히 제공하여 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은 독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게다가 이 책은 아주 얇고 싸기까지 하다.


저자의 첫번째 질문은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 이다. 그는 그 이유를 지리적, 제도적 요인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서구 사람들이 익숙하게 제기해왔던 민족적 특성은 인간이 제도와 환경의 산물임을 밝힘으로써 일축된다.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는 현상을 구조적으로 해석한 뒤 책은 중국이라는 라이징 스타를 실례로 들어 이 해석의 틀을 실전배치한다. 그러나 한 국가의 흥망이 오로지 지리와 제도의 복합으로만 결정될까?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과거에 좋은 제도를 이미 확립한 국가라면 그 발전은 영속할 수 있을까? 저자는 개인이나 국가가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후 그가 제시하는 역사적 사례는 시시각각 위기에 직면하는 우리에게 그것을 돌파해 나갈 일말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결국 역사란 인간과 환경이 주고 받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며, 이 상호작용의 형태와 내용에 따라 어떤 국가는 성장하고 어떤 국가는 붕괴하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강의에 이르러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점들을 몇가지로 나눠 제시하지만 이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철저히 외면해왔던 것들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마지막에 이르러 출발선을 제시한다. 그는 강의실 문을 열며 이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위기를 돌파해 나갈 시간임을 알린다. 그는 큰 소리로 독려한 뒤 주춤대는 우리를 놔둔 채 운동화 끈을 여미고 강의실 밖으로 달려나간다. 끝이 곧 시작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세계는, 비로소 나와 세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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