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풍부하고 단순한 세계 - 실재에 이르는 10가지 근본
프랭크 윌첵 지음, 김희봉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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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시간과 공간이 단순히 개념적 존재가 아니라 물리적 실재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공간은 고무처럼 휘고 팽창할 수 있으며 우리는 저마다 그 고유한 공간 속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산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시공간의 비밀을 알게 되면 시계를 거꾸로 돌려 태초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견디기 힘들다. 태초의 순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을까? 사실 이러한 질문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문이 여기서 멈춘다면 좋겠지만 아마 많은 사람의 호기심은 마지막 한걸음을 향해 괴로움 움직임을 계속할 거라 믿는다. 그렇다면 '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를 인지할 수 있을까? 마치 저 신화 속 신들이 행했던 것처럼? 경험의 세계에서는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무를 인지한다. 무 자체가 아니라 무와 쌍을 이루는 존재의 부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개념적 존재에 불과했던 시간과 공간이 물리적 실재로 밝혀진 것처럼, 언젠가는 무의 실체가 밝혀질 수도 있지 않을까? 무라는 현상이 사실은 어떤 입자가 만들어낸 장이라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상상일까? 그렇다면 무는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무라는 것이 존재하는 공간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시공간을 만드는 무가 있고 그 무가 있는 시공간이 있고, 무가 있는 시공간을 만드는 무가 또 있고...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다 보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바로 이 질문들이 끊임없이 나를 우주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이유 같다. 돌고 도는 이 문제의 최종 답을 찾기 위한 여정. 이 세상은 무에서 출발해 아주 단순한 몇 개의 규칙에 따라 움직였다. 심지어 이 규칙들도 사실은 단 '하나'의 다양한 측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힘 중 하나인 중력은 끊임없이 평형을 향해 가려는 우주의 관성에 저항하며 항성과 행성과 그리고 생명을 낳았다. 모든 힘이 사실 하나라면, 왜 그 힘은 동시에 상반되는 결과를 낳는 걸까. 이 기적과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혹자는 초월적 존재를 끌어오지만 현대 과학은 이것이 누군가의 의지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토록 풍부하고 단순한 세계>는 시공간의 역사를 설명한다. 두껍지 않지만 독해는 결코 쉽지 않다. 김영사라는 전설적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번역이 훌륭한 것도 아니다. 각 장은 현상의 해답을 제시할 것처럼 굴다가도 명쾌한 답변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이 책은 스스로에게 질문할 기회를 준다. 우리는 무엇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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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리커버)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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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1800년대 남부의 노예들을 북부의 자유주나 캐나다로 탈출시켰던 비밀 조직의 이름이다. 야만의 시대에도 늘 선각자는 있기 마련인데, 19세기의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흑인을 돕는 흑인 조직이 아니었다. 노예제 폐지에 반대하는 수많은 백인과 흑인이 도망친 노예들에게 은신처와 먹을 것을 비밀리에 제공하고 북쪽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그들은 역할에 따라 스스로를 ‘역장’ 또는 ‘기관사’로 불렀다. 도망 노예들은 ‘승객’, 은신처는 ‘역’이었다. 비밀 조직답게 실제 철도 용어를 은어로 쓰며 10만 명이 넘는 노예들에게 자유를 선물했다. 노예제와 관련이 있는 한 백인의 분노는 백인과 흑인을 가리지 않았다. 도망친 노예에게는 다시 옛 주인에게 끌려가 본보기를 위해 끔찍한 인체 실험의 대상이 되거나(백인들은 식사를 즐기며 이 스펙터클을 구경했다), 구타를 당한 뒤 목이 걸리거나, 운이 정말 좋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도망을 쳤던 바로 그 중노동으로 복귀하는 미래가 있었다. 백인들은 자기와 같은 피부색을 지녔으나 생각이 좀 달랐던 배신자들에겐 의외로 큰 자비를 베풀었다. 주먹맛을 좀 보여준 뒤, 그 자리에서 목을 매달았다.


콜슨 화이트헤드는 어린 시절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실제 땅 밑을 달리는 기차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대단히 실망했다고 한다. 그 허탈감이 바로 이 소설의 탄생 계기다. 화이트헤드는 실제로 땅을 파 선로를 깔고 기관차를 들여와 기차를 달리게 했다. 역장들은 진짜로 역을 지켰고 승객들은 북부로 달리는 이 기차를 따라 자유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어둠을 찢고 달리는 기차처럼 경쾌한 소설이 아니다. 콜슨 화이트헤드는 끔찍한 노예사냥이 그냥 옛날 일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현실에서도 끈질기게 살아있는 해충이라는 걸 알리고 싶은 듯 위기와 위기와 고난과 고난과 공포와 공포와 처참과 처참을 짓이긴 이야기 속으로 캐릭터를 몰아붙인다. 중간중간에 끼어든 평화는 곧 다가올 폭력을 강조하기 위한 장식일 뿐이다. 이 소설은 꺼질 듯 말 듯 아주 실낱같은 희망만을 보여주는데, 풀어쓰면 ‘그래도 아직 흑인이 멸종한 것은 아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래도 우리 민족의 역사에는 이처럼 멍청한 노예 제도가 없었음에 안심하고, 한편으로는 자부심까지 갖게 됐는데, 따져보면 이처럼 안이한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이것은 계속해서 파내고 끄집어 이야기하지 않으면 마치 존재한 적도 없었던 일로 느끼는 인간 인식의 한계 아닐까?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1930년대 연방작가프로젝트에 자금을 제공해 노예 출신들의 실화를 수집했다. 이 책의 각 장을 장식하는 노예 수배 광고들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도서관에 쌓여있는 기록들을 참고한 것이다. 그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기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록을 뒤지고 꺼내 이야기를 이어갔기 때문에 그 상처가 얼굴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되어 빛나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끄러운 과거를 지치지도 않고 되풀이하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좀 그만할 때도 됐지 않았냐’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건 어떠한 상황과 이유를 대더라도 정당하지 않다. 뭔가를 바라기 때문에 저런다는 잔인한 인간들의 폄훼는 말할 것도 없다. 역사가 원하는 건 단 한가지 뿐이다. 그저 듣고, 기억하는 것.


어려울 것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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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박보나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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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태도가 작품이 될 때>는 1969년 스위스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열렸던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에서 가져왔다. 이 전시는 전통적 개념의 예술 형식인 회화나 조각을 단정하게 보여주는 대신에, 비물질적이고 언어가 중심이 되는 작품들을 유기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선보였다.(p.7~8)


이 전시는 68혁명 직후에 열렸다.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반전, 평등, 해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통제와 억압으로 상징되는 기존의 보수적 질서는 모두 거부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기존 체제와 규칙을 비판적으로 바라봤으며,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예술계도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미술의 관습적인 틀을 거부하는 새로운 작품의 형식과 전시의 형태로 구현되었다. 쉽게 말해 보는 순간 이딴 게 예술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주 전시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얼음을 끌고 멕시코 시티의 길바닥을 걸어 다니거나 한 회에 한 명만 관람할 수 있는 연극 같은 것들. <태도가 작품이 될 때>는 이처럼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사회질서와 미술을 다르게 읽는 사람들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같지도 않은 걸 예술이랍시고 펼쳐놓는 주접이 꼴 보기 싫은 사람이라면 부탁이니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와 유심이 봐주기 바란다. 예술이 이러저러한 형태여야 한다는 건 그 누구도 정하지 않은 일이고, 그 누구도 정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떠한 형식, 형태, 또는 행위가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당성과 앞으로도 쭉 이어질 권리를 갖는 거라면, 우리는 노예제도와 가부장의 억압, 국가의 폭력이 당연시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고 여성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며, 경찰의 고문을 규탄하고, 머리를 기르고 짧은 치마를 입는 일들이 모두 비상식적이었다. 세상에 자유와 평화, 평등이 늘어나는 이유는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덕분이다. 그리고 그 비판의 최전선에는 우리가 개수작이라고 부르는 일들을 끈질기게 해내는 예술가들이 서 있다.


이 책은 이상하게만 보이는 현대 예술에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해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낯선 모습에 의미라는 명찰을 붙여 우리로 하여금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 세계를 다시 해석할 기회를 부여한다. 재미있는 예술이 가득하고, 어렵지도 않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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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09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 미술에 대한 책이네요. 한깨짱님 글 보고 도서정보에 가서 또 책 내용을 보고 왔어요.
한깨짱님덕분에 좋은 책을 담아갑니다.

한깨짱 2022-10-10 09:56   좋아요 1 | URL
좋은 책 한 권을 알아가셨다면, 그것만큼 고마운 일이 없네요. 선선한 가을 즐독하세요~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 - 세상을 위협하는 멍청함을 연구하다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 지음, 이주영 옮김 / 시공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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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우리는 모두 멍청이다. 노벨상을 받거나 각 분야에서 특출 난 업적을 쌓은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믿기 어려운가? 그렇다면 주변에서 가장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아 보험금 청구나 은행 App에서 비대면 계좌 개설을 시켜보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사실 멍청함은 인간이라는 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기본 특성이다. 역사의 페이지를 조금만 들쳐봐도 이 주장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차고 넘친다. 신성로마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황제이자 사후 영웅으로까지 추앙된 프리드리히 1세는 십자군 원정 중 강에서 헤엄을 치다 물에 빠져 죽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강으로 달려드는 젊은 병사들을 보며 67세가 된 프리드리히의 마음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끓어올랐다. 내 활력이 저 젊은것들 못지않다는 걸 보여주겠어! 강물로 뛰어들자마자 물에 젖은 갑옷은 그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유럽을 평정한 노인은 결국 젖은 갑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강물에 빠져 죽었다. 깊이는 고작 엉덩이 정도였다.


우리가 멍청함을 싫어하는 이유는(자기 자신도 멍청이면서) 그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붉은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만으로 지구를 파괴할 수 있거나, 이를 전 인류가 실시간으로 시청할 만큼 미디어가 발달한 세상에서는 시시각각 조여 오는 멍청함의 향연에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차르, 시황제, 그리고 가깝게는, 흠...


멍청함에는 대개 혐오라는 일관된 반응이 동반되지만 그 종류에는 나름 유형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멍청함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확신에 찬 멍청이, 무지한 멍청이, 그리고 부주의한 멍청이. 영향력은 언급한 순서와 같다.


우선 확신에 찬 멍청이에 대해 알아보자. 이는 세상에 가장 큰 피해를 끼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이 멍청함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확신이 멍청함을 낳고 멍청함이 다시 확신을 강화하는 피드백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나쁘다는 걸 알지만 본인의 이익을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이 아니라 정말로 그 일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나 과거 기독교인들이 흑인을 함의 자손으로 규정하여 노예제를 정당화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유형은 사실상 치료제가 없다. 살면서 이런 멍청이들을 만난다면 그저 도망치는 것만이 해답이다. 그러나 당신의 상사나 대통령이 그런 유형이라면? 흠...


무지한 멍청이는 말 그대로 뭘 모르기 때문에 멍청한 짓을 벌이는 유형이다.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밥을 굶고 탄산음료와 과자로 허기를 달래는 사람이나 LG 유플러스에서 개통한 삼성 갤럭시 폰을 LG전자 서비스센터에 와 고쳐달라고 하는 부류가 여기에 속한다. 가끔 보면 귀엽기도 한데, 막상 겪어보면 여지없이 짜증과 답답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 유형은 자신의 무지를 심각하게 비난하거나 공격하면 나는 멍청이가 아니라는 방어기제가 폭발하면서 무지를 믿음으로 전환해 확신에 찬 멍청이로 진화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이런 부류를 다룰 때는 좋은 말로 타이르거나 잘못된 점을 차분히 설명하는 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은 부주의한 멍청이다. 사실 부주의 또한 습관과 같아서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은 있지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부주의란 대개 우리 존재의 크기만큼 미미해 그냥 웃고 넘어갈 경우가 많다. 물론 얼마 전 발생한 삼성증권 위조 주식 유통 사건이나 토스 증권 환전서비스 오류처럼 개인이 감당하기에 벅찬 규모의 실수가 단순한 부주의로 야기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시스템의 개선을 통해 실수 자체를 막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이런 정리가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에 대한 질문과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결론만 말하면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이 책은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 내용들, 예컨대 멍청함은 어디서, 왜 생겨나는 것이며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들이 왜 우리 주위를 서성이는지, 또 우리 자신이 그런 멍청이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도 전해주지 않는다! 제목은 그저 낚시에 불과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내가 여러분보다 먼저 이 책에 낚였고 그 실패담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분은 나의 멍청함으로 인해 멍청한 선택을 하게 될 일 하나를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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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 - 동시대 문화 탐구 민음사 탐구 시리즈 2
윤아랑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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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배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은 읽는 이의 머릿속을 부글거리게 만든다. 주제와 문장이 너무 어려워 당신의 독해력을 평가하는 진정한 시험이 될 것이다. 덮지 않고 완주하면 독서 인생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기념으로 스스로에게 상을 부여해도 좋다. 이 책 이후론, 그 어떤 책도 당신의 독해력을 넘지 못할 것이다.


한편으로 이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가진 지식의 방대함에 놀라게 된다. 도대체 얼마나 읽고 보고 듣는 걸까? 아무리 그게 직업이라지만 누구나 알만한 작품부터 심해의 미확인 희귀종 찾기 대회에서 우승할 것 같은 생소한 작품들까지 손대지 않는 것들이 없다. 매체도 출판(책, 만화), 영화, 웹툰, 공중파 드라마, 예능, OTT 오리지널들까지 경계가 없다 못해 사실상 온 우주의 콘텐츠를 전부 흡수한 것 같은 경험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글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걸까? 한 동네를 산 사람과 세계를 산 사람의 폭과 넓이는 단순한 양의 차이를 넘어 질적으로 달라질 테니까. 시야가 다르니 안 보이는 것이 보일 테고 안 보이는 것에 대한 서술이 안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어렵다 못해 황당하게까지 다가올 수 있다. 인류 최초로 세균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역시!


하지만, 평론이란 것도 결국 독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아는 사람들끼리 돌려 읽고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잘했다 잘했다 하고 말 게 아니라면, 솔직히 나는 왜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저자는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평론가인데 이 바닥에선 이렇게 글을 쓰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는 모양이다. 문단은 정녕 독자를 떠나 자신만의 갈라파고스를 만들 생각인가!


<네 멋대로 해라>의 고다르는 자동차의 벡터에서 파국의 징후를 엿본다. 이는 문명의 운명에 대한 로셀리니의 근심을 자기식으로 확장, 번안한 장치다.(p. 85)


사실 이 정도는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읽는 것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다. 이 책에는 가독성을 낮추려 일부러 끼워 넣은 것 같은 수많은 사족(괄호를 치고 끊임없이 부가 설명을 적어 넣는다)과 함께 사전 지식이 없다면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예컨대 위 인용문에서 로셀리니의 근심 같은), 전문용어(예컨대 르상티망, MTF 트랜스젠더, 논모노섹슈얼 같은)가 바늘비처럼 정수리를 강타한다.


맷집 하나는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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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비평이 너무 많죠. 특히 문화쪽의 비평들이 그런 경향이 더 있는듯.... 독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비평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깨짱 2022-10-02 09:11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너무 안 보니까 점점 더 그런 성향이 강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일종의 오덕 문화처럼 되는 것 같기도 한데, 그 특성상 알아듣는 사람들끼리는 엄청난 유대와 존경이 생기는 영향도 있는 것 같구요.

간만에 탈진할 정도로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번역서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