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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와의 랑데부
아서 C. 클라크 지음, 박상준 옮김 / 아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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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C. 클라크의 고전 SF 소설 <라마와의 랑데뷰>는 두 가지 상반된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매우 묘한 책이다. 첫번째 속성은 아주 흥미로운 설정이다.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이야기. 어느날 태양계에 소행성 하나가 접근한다. <아마게돈>이나 <딥 임팩트>를 연상케 하지만 그렇게 흔한 얘기가 아니다. 소행성은 지름이 수십 킬로미터가 넘는 매끈한 원통. 어느모로 보나 인공물로 여겨지는 이 우주선에 인간은 라마라는 이름을 붙인다.


라마의 등장은 인간에게 일련의 호기심과 다수의 걱정을 안겨준다. 라마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태양계로 왔을까?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당연하다. 오랜 우주 개발 끝에 인간의 기술도 지표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수성에까지 정착지를 건설할 정도로 발전해 있었지만 라마는 그 모든 기술을 간단히 비웃을 만큼 대단한 문명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추진 장치도 없이 빙글빙글 자전을 하며 태양계를 향해 날아오는 초거대 원통. 그 정도 기술을 가진 존재라면 수천년 동안 쌓아온 인간의 문명을 미개하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인간이 개미를 밟은 걸 일일이 신경쓰지 않듯 그들도 태양계를 사뿐히 즈려 밟은 뒤 여행을 계속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불안을 극복하는 법은 두 가지다. 고개를 돌려 피하거나 오히려 정면으로 응시해 그 정체를 밝혀내는 것. 전자는 잠깐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엔 더 큰 불안과 공포를 낳는다. 작은 포유류에 불과하지만 끊임없는 호기심과 개척 정신으로 태양계를 지배한 인간은 라마와의 랑데뷰를 선택한다. 매끈한 원통인줄만 알았던 라마의 표면엔 우주선의 출입구처럼 보이는 에어락이 있었고, 탐사대는 주저않고 그 문을 힘껏 열어젖힌다. 바로 그 순간 잠들어 있던 라마가 눈을 뜬다.


이제 당신의 머리 속은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느라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라마는 우주선이었지만 그 크기는 소행성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였고 하나의 세계엔 온갖 것들이 존재하는 법. 생각해보면 지구도 일종의 우주선에 다름아니다. 느끼진 못하겠지만 무려 시속 1300km가 넘는 속도로 빙글빙글 돌며 우주를 떠다니고 있다. 라마도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면 쉽게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지구는 지표 위에 라마는 지표 아래에 문명을 세웠다는 것 뿐이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이제 이 소설을 묘하게 만드는 두번째 속성에 대해 얘기하겠다. 들으면 거의 백퍼센트 당신의 기대를 꺽게되겠지만. 어쨌든 이 모든 흥미진진함에도 불구하고 <라마와의 랑데뷰>는 좀처럼 긴장이 생기지 않는다. 미지의 존재와의 조우라면 으레 <프로메테우스>나 <에이리언> 같은 영화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이 소설은 라마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데서 오는 스릴러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흥미로운 도감으로 가득한 백과사전 같다. 정부에 제출하는 라마 탐사 보고서. 캐릭터들은 투명할 정도로 평면적이다. 큰 고뇌도 갈등도 없이 주어진 임무를 기계처럼 완벽히 소화해낸다. 아서 C. 클라크가 소설가이기 앞서 뼈속까지 과학자였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긴장감이 없다고 재미까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솔직히 나는 백과사전을 좋아한다).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지만 라마의 세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 만으로도 상상력이 폭발한다. 사건 사고도 없고, 끝내 그들이 왜 왔는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도 알려주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상력은 더 자극을 받는다. <라마와의 랑데뷰>는 침묵을 통해 더 많은 얘기를 전해주는 책이다.


라마는 원통을 둘러싼 거대한 유기물의 바다에서 원자재를 취해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낸다. 거기서 태어난 다양한 바이옷(생체 로봇)들은 라마를 쓸고 닦고, 쓸모가 다한 물건들을 분해해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라마 탐사선 엔데버 호의 선장은 조사의 막자비에 이르러 처음에 가졌던 본인의 신념을 깨고 라마의 껍질을 뜯어내 그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라마는 바닥에서부터 그대로 솟아 올라온 듯한 매끈한 직육면체 구조물로 가득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안에서 거대한 유리 신전을, 그 유리 속에 든 라마인의 물건들을 발견한다. 물건들은 접히지도, 축소되지도 않은 채 자기 모습 그대로 유리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아마도 라마는 필요할 때마다 그 원형을 참고로 바다에서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리라.


나는 이 유리 신전을 보는 순간 이데아가 떠올랐다. 사물의 본질, 혹은 원형을 간직한 이데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라마인들은 그 이데아를 먼 우주로 쏘아 보냈다. 그것은 일종의 탈출 계획이었을 수도 있다. 자기들의 모성이 수명을 다해 붕괴되는 순간 선택한 궁여지책. 모든 개체를 살릴 수는 없으니 원형들만 담아 우주로 보내면 적당한 장소 적당한 시간을 만나 문명을 복제하겠다는 꿈을 담은 것이다. 물론 라마를 일종의 선교사로 볼 수도 있다. 뛰어난 문명을 이룩한 외계의 존재가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우주선을 쏘아보낸다.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가 우주적 관점에서 이뤄지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역시 라마가 일종의 씨앗이 아니었나 싶다. 나아가 우리 지구도 어떤 신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때 참고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 지구인들은 이데아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허접한 존재니까 프로토타입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선 지구도 인간도 결국은 생체 정보를 저장해 놓은 살아있는 USB에 불과할 것이다.


SF를 읽는다는 건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파워 핸들을 얻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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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 김선형 옮김 / 뮤진트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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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가지 면에서 당신의 흥미를 끌 것이다. 첫째는 저자인 시리 허스트베트가 폴 오스터의 아내라는 것. 둘째는 이 책의 제목이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이라는 것.


이 두가지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냥 이런 책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 주길 바란다. 하지만 둘 중에 하나라도 관심이 있다면 몇 일을 투자하여 이 책을 독파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둘 모두에 관심이 있다면 당신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제목에 반했다. 원제는 <Blindfold>지만(눈가리개) 어떤 천재 번역가가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이라는 제목을 붙여놨다. 제목이 이렇다면 우선 잡고 봐야 한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 된통 당한 적은 있지만 이건 순수 문학이니까, 황망한 말장난은 아닐 것이다. 예상대로 첫 작품을 읽는 순간 놀라버렸다. 폴 오스터를 연상케하는 환상과 미스테리, 스릴러의 절묘한 배합. 나는 그제서야 이 책의 맨 앞 장에 써 있던 글귀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폴 오스터를 위하여'. 시리 허스트베트가 그의 부인이라는 사실도 그때서야 생각났다.


독서는 더더욱 탄력을 받았다. 그 소설엔 명백히 폴 오스터를 연상케하는 신비의 남자 모닝이 나온다. 여자 주인공 아이리스는 분명 시리 허스트베트 자신이리라. 남자는 여자에게 정체 불명의 물건, 이를테면 쓰다 버린 솜뭉치, 거울, 장갑 등을 주며 그 물건에 대해 묘사해 올 것을, 하지만 글이 아닌 육성을 이용해 녹음해 올 것을 요청한다. 물건은 죽은 소녀의 것이었지만 그 소녀가 누구인지, 어떻게 죽었는지, 모닝과는 어떤 관계였는지는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 규칙은 단 하나. '이것은 망자의 물건입니다'로 녹음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해오면 돈을 주겠다는 게 모닝이 말해주는 전부였다.


아이리스는 이상하다 못해 제정신이 아닌 이 프로젝트에 어쩐지 마음이 끌렸다. 모닝의 요구는 황당했지만 분명 합당한 면이 있었다. 그 이상한 요구들은 사물이 거울, 솜, 장갑 같은 추상성, 또는 백혈병으로 죽은 14세 소녀의 소지품 따위의 구체성에 오염되기 전, 그러니까 인간이 사물에 뭔가를 부여한 의미가 아닌 사물이 직접 말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발굴해 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저마다 다른 사연과 이야기를 가진 사물은 인간이 붙인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향기도 맛도 나지 않는 무기물로 전락하고 만다. 마찬가지로 너무 구체적인 사실 또한 수 많은 이야기를 하나로 축소시키는 범죄를 저지른다. 그 거울이 백혈병으로 죽은 14세 소녀 메리의 것이라는 말을 해주는 순간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우리의 귀는 그 구체성이 구축한 특정한 이미지에 막혀 완전히 다른 얘기를 전하는 거울의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게 폴 오스터가 시리 허스트베트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것은 폴 오스터가 나에게 가르쳐주는 글쓰기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아이리스는 모닝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죽은 소녀의 정체를 파헤치려 한다. 마침내 그녀는 소녀가 모닝의 아파트에서 살해당한 여자라는 걸 알게 된다.


이제 작업은 끝났다. 여자는 더 이상 사물이 말하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그녀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건 살해당한 여자와 그녀의 몸에 칼을 찔러 넣는 모닝의 모습 뿐이었다. 수 만, 수 십만의 가능성으로 들끓던 의미의 용광로는 아이리스의 추측에 의해 잔인하게 박제된다. 거기선 이제 단 하나의 이야기 말고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이 소설이 글쓰기 방법에 대한 것이면서 동시에 글쓰기 자체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 속에서 인물은 행동하고 사건은 가지를 뻗는다. 작가는 수 많은 가지를 하나로 모아 결론에 이르고 독자는 바보같은 모범생처럼 고개를 숙인 채 그 길을 걷지만 거기엔 분명 다른 결말도 존재했을 것이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말은 다른 많은 것들을 버린다는 말과 같다. 버려진 이야기를 모으는 일, 이야기를 버리지 않고 구석구석 쌓아두는 일. 폴 오스터의 세계가 그토록 모호한 이야기와 환상으로 채워져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이 소설이 어떻게 끝날지 알고 싶어 미친듯이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소설은 문득 56p에서 끝나버린다.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모든 게 모호한 상태로.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은 4개의 단편을 모아 놓은 단편집이었던 것이다. 견딜 수 없던 호기심은 허무로 또 분노로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어떤 불가능한 작업에 대한 열의로 변해갔다. 그것은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욕망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이리스의 바보 같은 행동을 되풀이 하려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은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했다. 나는 내가 이 소설을 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 소설 속으로 뛰어 들어가 모호한 것들을 찢어버리고, 끝맺지 않은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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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트 원티드 맨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6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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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에 태어난 존 르 카레는 올해로 87세다. 충분히 살아있을 만한 나이. 그런데 나는 왜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냉전의 종식이 문제였던 것 같다. 소련이 사라지고 동독이 무너지고 동유럽에 불어온 자유의 바람과 함께 스파이들은 모두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을 그렸던 존 르 카레도 함께.


그래서 <모스트 원티드 맨>을 영화로 봤을 때 나는 존 르 카레의 원작을 현대식으로 재구성한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2001년에 벌어진 9.11 테러 이후의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냉전의 소멸과 함께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던 폭력과 전쟁은 21세기의 벽두부터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그와 함께 이 늙은 첩보 소설의 왕도 잠에서 깨어났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 줄거리가 차지하는 몫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었다. 경고하건대 이걸 영화로 먼저 본 사람이 있다면 절대 책을 읽지 말 것을 권고한다. 물론 모든 이야기들이 끝을 알고 있다고 해서 다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떨어지는 종류가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존 르 카레의 첩보 소설은 007이나 본 시리즈처럼 쉴 새 없이 액션이 몰아치는 스펙터클이 아니다. 마치 방망이를 깍는 노인처럼 천천히 산더미 같은 서류를 뒤지고, 담담한 심문을 이어가고, 그렇게 거미줄에 거미줄을 엮어 마구잡이로 얽힌 실타래에 붙여 놓은 것 같은 이야기를 스르륵 풀어내는데서 나오는 쾌감과 전율이 매력인 것이다. 이 답답하고 느린 전개는 마지막 순간 엄청난 보상을 선물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상자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고 있다면 돼지같은 인내심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히려 책을 두 번 세 번 읽는 건 재미의 반감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 경우엔 처음에 느꼈던 감동과 전율이 오히려 갈고 닦여 더 빛나는 현상이 벌어진다.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나중에 보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나중에 읽는 건, <모스트 원티드 맨>에 관한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다면 지금 당장 경고와는 반대로 이 작품을 접해보길 바란다.


언제나 그렇듯 존 르 카레의 스파이 세계는 비윤리적이고 참담하다. 스파이들이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은 가장 신뢰받는 자를 포섭해 배신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이 목적을 위해 처음부터 가장된 신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신뢰를 오랫동안 관리하고 육성해 나가는 과정은 최상급 소고기를 얻기 위해 애지중지 소를 키우는 사육을 연상케 한다. 과정이 얼마나 아름답건 그 끝은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도살장이다.


9.11 이후 독일의 함부르크는 새로운 첩보전의 무대로 떠오른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직진한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이방인에게 관대한 이 항구 도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독일의 첩보부. 여기에 영국의 MI6, 미국의 CIA가 가담한다. 미-영 연합군은 조심성 넘치고 철저하고 옛 스파이의 정석을 토라처럼 숭앙하는 독일 첩보부와는 여러모로 대척점에 서 있다. 바흐만(독일)은 우아하고 마사(미국)는 천박하다. 바흐만은 잡은 물고기들을 살은 채로 운반하기 위해 어창에 상어를 풀어놓기를 원하고 마사는 자기 물고기를 잡아 먹는 상어의 씨를 모조리 말리려한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작가가 어떤 의도로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기서 취하는 미국의 태도가 오히려 바흐만 보다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지와 천박함, 복수심은 별수 없이 인간의 핵심이다. 미국의 행동은 근시안적이고 무지하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초보적이지만 그것이 바로 그들의 인간성을 증명하는 것들이다. 철저히 계산된 작전, 계산된 음모가 첩보원의 미덕이 될 수는 있어도 인간성의 증거가 될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모스트 원티드 맨>이 암시하는 미국의 도덕적 타락에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들은 충동적이며 동시에 무분별하다. 인간이 되지 않길 원하는 건 오히려 철저한 독일인, 바흐만이다.


인간을 도덕적, 윤리적 존재로 여기는 관점은 애초에 한참이나 빗나간 생각이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위대한 인간이 윤리와 도덕을 통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리라는 생각은 사자와 톰슨가젤이 위원회를 구성해 고기 대체제를 개발하겠다는 것만큼 터무니 없다. 미국은 우리를 향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망할 거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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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2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 병신같은 리뷰에 좋아요를 박는 병신들이 여덟명이나 되다니...

한깨짱 2021-03-02 13:36   좋아요 0 | URL
세상엔 놀라운 일들로 가득하지
 
정키 펭귄클래식 60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조동섭 옮김, 올리버 해리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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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마약이 영감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 본다. 좋은 밴드가 외국에서 많이 나오는 이유는 대마초나 코카인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열광하는 영화의 일부는 분명 약쟁이들에 의해 탄생할 것이다. 반면 술은? 헤밍웨이는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한 뒤 알콜중독자가 되어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박살냈다. 커크 해밋은 한동안 술에 빠져 전세계적으로 무려 1억장이나 앨범을 팔아치운 전설의 밴드 메탈리카를 해체시킬뻔 했다. 나는 술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시인을 가끔 본 적 있다. 그들이 마약을 했다면 아마 다른 말을 했을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술은 인간을 파괴하지만 마약은 아닐지도 모른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마약은 인간을 신의 영역에 데리고 갔다 지옥으로 추락시킨다. 입에 대는 순간부터 시종일관 지옥으로 잡아당기는 술과는 달리.


나는 마약 옹호자가 아니다. 단지 마약이든 술이든 그 끝은 동일한데도 약쟁이을 알콜중독자보다 밑에 두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약에 취한 사람은 침대에 축 늘어져 자기만의 환상에 빠져있지만 술에 취한 사람은 아내와 아이를 때린 뒤 집안을 엉망으로 망쳐 놓고 거리로 뛰쳐나가 행인들과 싸움을 벌인다. 약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면 중범죄에 중범죄를 가중한 것 같은 호들갑을 떨면서도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건 그 죄의 원인을 술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술은 누구나 하지만 마약은 그렇지 않은 게 이유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유.


한 가지 나은 점은 마약 중독자의 소설이 알콜중독자의 소설보다 더 주목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가에게 마약 중독 경력은 유용한 포트폴리오가 된다. 마약 때문에 불운한 인생을 살았다면 더 큰 관심을 받을 수 있다. 그가 소설을 써냈다는 건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을 극복했다는 의미니까. 내용은 추잡할 수록 더 좋다. 성공한 사람에게 불운한 과거는 훌륭한 커리어가 된다.


<정키>. 이 소설은 아무 것도 읽을 게 없다. 윌리엄 버로스는 자신이 마약에 빠져 살던 시절의 이야기를 아주 세밀하게 이 소설에 묘사해 넣었다. 약쟁이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면 다른 취재는 필요 없다. 소설은 약을 밀매하고 경찰에 쫓기고 감옥에 가고 소매치기를 하는 밑바닥 이야기로 가득하다. 술의 문제는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거지만 마약의 문제는 약에 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점이다. 그는 늘 약에 취해 있다. 종류는 다양하다. 몰핀에서 코카인, 헤로인, 대마초에서 멕시코산 환각 선인장까지.


내용을 더 얘기해 주고 싶어도 할 말이 없다. 무엇을 느꼈는가 물어도 침묵으로 대답할 밖에. 나는 주인공이 자기 팔에 주사기를 꽂을 때 마다 내 몸에도 그 날카로운 바늘이 꽂히는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피부가 따끔했다. 그러나 그 따끔한 뒤에 환각은 찾아오지 않았다. 작가가 느꼈을 그 황홀한 환각의 세계말이다. 나는 그게 증오스러웠다. 나에겐 고통만이 있을 뿐 환희는 없었다.


윌리엄 버로스는 비트 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타이틀로 짭짤한 벌이를 했다. 비트 제너레이션에 속하는 작가들은 자기들만 통하는 은어를 사용하고 제임스 딘이나 말론 브란도 같은 반항적인 배우를 숭배했다. 그들은 이후 탄생할 히피 문화의 롤모델이었으며 사회에서 성공하려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그런 태도로 인해 사회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사람들은 열심히 시스템에 저항하면 언젠가 그것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순진한 생각이다. 시스템이 자신의 적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섬뜩하다. 자기를 떠나 광야로 나간 이들에게 의미를 부여해(비트 제너레이션!) 또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세계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관대하고, 


당신이 아는 것보다 교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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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니어스 - 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 ‘스탠퍼드 디스쿨’의 기상천외한 창의력 프로젝트
티나 실리그 지음, 김소희 옮김 / 리더스북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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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 '스탠퍼드 디스쿨'의 기상천외한 창의력 프로젝트. 엥간히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요란한 수식이 붙을수록 내용이 빈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내 편견을 부술만한 책을 만나지 못했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장을 고르라면 1장 리프레이밍, 2장 아이디어 자극, 3장 브레인스토밍, 6장 제약이다. 우선 리프레이밍부터 얘기해보자.


지난 10년간의 조직 생활 동안 나는 프레이밍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지켜봐왔다. 한국 기업은 특성상 대부분 상명하달식의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소심하고 순종적이며 성실하기까지 한 대한민국의 회사원들은 지시 사항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시키는대로 최선을 다해 일을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사무실에는 '완벽한 똥'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로 가득찬다. 18세기 운송 회사의 직원들이었다면 더 빠른 말을 찾아오라는 사장님의 지시에 전세계의 온갖 말 농장을 조사했을 것이다. 포드가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프레임은 정말로 정말로 무섭다. 컨퍼런스에 온 사람들에게 이름표를 다시 디자인하라고 하면 그들은 너무 작은 이름, 걸리적 거리는 목줄 등을 열거하며 단점이 보완된 이름표를 만들 것이다. 때때로 그런 결과물은 봐줄만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이름표가 왜 필요한 걸까? 창의력은 이런 본질적 의문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름표를 '다시 디자인'하라는 프레임은 너무나도 강력해 사람들에게 이런 의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두번째는 아이디어 자극이다. 이런 책이 무용한 이유는 뻔한 얘기를 한다는 것인데 뻔한 얘기라도 구체적인 How to가 있으면 괜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책이 해주지 않기에 내가 해본다.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 아무 문장이나 하나 고른 뒤 주어와 동사를 무작위로 바꿔본다.


로켓이 하늘 위로 날아갔습니다. 이 문장을,

개복치가 하늘 위로 날아갔습니다.

로켓이 땅 속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방구가 눈 위로 날아갔습니다.


일견 말이 안 되는 문장처럼 보이지만 이 과정에서 당신은 당신의 사고 틀이 얼마나 좁고 갑갑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연습은 차차 사물을 리디자인 하는 것으로 발전될 수 있다. 문 손잡이를 사람의 손 모양으로 바꿔본다거나 220v 콘센트에 돼지 얼굴을 그려 넣는 것처럼. 엉뚱하고 유치해 보이지만 이런 생각 연습은 잠자고 있던 우리의 뇌를 격렬하게 깨우는 효과가 있다.


셋째는 브레인스토밍이다. 회사 생활 10년 동안 이걸 잘하는 사람을 만나 본 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브레인스토밍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심판한다는 것이다. 알콜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이 똑같이 알콜중독자가 되듯이 권위적인 관리자 밑에서 일을 해온 사람들은 어느덧 심판자의 역할을 몸에 익힌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말할 때 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블라 블라 블라. 이 멍청이들아 이건 브레인스토밍이자나!!


아이디어는 언제나 양이 질을 담보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뽑아내려면 우선 많은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것이다. 아이디어 회의를 할 기회가 있으면 사람들이 말을 할 때마다 '안 된다'고 해보자. 당신은 그 한 마디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자신의 아이디어가 타당한지 아닌지 마음 속으로 수백번 심판할 것이다. 그럴거면 차라리 각자의 자리에 앉아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뒤 메일로 공유하는 게 더 낫다.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는 모든 사람이 모든 의견에 대해 호응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런 공포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 의견에 호응하는 걸 진심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그저 브레인스토밍이어서 그랬던 것 뿐인데.' '나중에 자신의 아이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을 때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건 아닌가. 그렇게 호응을 해주더니 이 사람 완전 위선자 아냐!' 그래서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하기 전에 그 방법을 명확히 고지해주는 게 좋다. 적정 인원은 4~5명. 둘은 절대 안 된다. 둘이서 하는 브레인스토밍은 어느덧 쓸데없는 고성과 논쟁으로 변질될 것이다. 적정 시간은 1시간이다.


나아가 나는 안티-브레인스토밍을 추천한다. 1시간 동안 모든 아이디어를 뽑아낸 뒤 가장 마음에 드는 몇 개를 투표로 골라(이 때 여러 조건으로 구분하여 다중 투표하는 것도 좋다.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일. 중장기 과제. 등등) 그 아이디어들이 왜 안 되는지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다. 브레인스토밍과 안티-브레인스토밍을 잘 이용하면 당신은 혁신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제약이다. 마감 시간이 최고의 각성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람들은 자유에 대해 지나친 망상을 갖고 있다. 무제한의 자원, 무제한의 시간, 무제한의 권한을 주면 엄청나게 훌륭한 서비스나 제품이 탄생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창의력은 오히려 큰 제약을 만났을 때 반짝 반짝 빛이난다. 얼마를 써도 좋으니 해외 여행을 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뻔한 생각을 할 것이다. 최고급 요트. 별 7개 짜리 호텔의 스위트 룸.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그러나 100만원으로 세계 여행을 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생각해 낼 것이다.


뭔가를 요청 받을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뭐가 되도 좋으니 마음대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지시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마음대로 생각한 나의 결과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제약이야 말로 창의력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도 지시하는 사람도 이 제약에 대해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예산도 못 쓰고 인력 추가도 안 된다면서 뭘 해오라는 거야? 예산과 인력을 두 배로 늘려 주면 더 확실한 해결책을 갖고 오겠지? 세상은 정말, 


기절할 정도로 많은 오해와 미신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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